영월 청령포 장릉 역사탐방 후기 <1>
<2022년 7월 23일>
'염소의 뿔도 녹아내린다'는 대서(大暑), 오늘 우리는 영월로 간다.
단종의 슬픔과 눈물이 오롯이 묻어나는 유배지,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
두달여 만에 홍수를 피해 이어한 관풍헌, 그리고 두달 후, 세조에 의해 사사(賜死),
사약을 가져 갔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서강 냇가에 앉아 비통한 심정을 토로한 그 자리,
멸문지화가 두려워 아무도 수습하지 않는 단종의 시신, 왕세손 왕세자에서 왕으로 등극,
하릴없이 삼촌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다가, 결국 노산군으로 감봉되어 유배길,
유배된지 4개월만에 폐서인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17세의 애통한 주검.
그래도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 영월 호장 엄흥도가 남몰래 매장,
241년이 지난 숙종 24년에 복위되어, 왕릉의 모습을 갖춘 장릉.
1457년 6월 22일(음력), 한양을 떠나 6월 28일 청령포에 도착한 그 이후의 발자취를 따라,
당시의 아픔을, 슬픔을, 눈물을, 그리움을, 두려움을, 그리고 충절을, 인륜을 생각하고
또한, 느끼고 호흡하며 함께 어울려 걸었던 귀한 하루, 두루두루 감사합니다.
[코스] 청령포 ~ 관풍헌 ~ 장릉 노루조각공원 ~ <점심> ~ 장릉 ~ 선돌관광지
♣ 귀경길에 들렀던 [선돌관광지]는 덤이었지만,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청령포 ~ 관풍헌 ~ 노루조각공원 ~ <중식> ~ 장릉 ~ 선돌관광지
*** 노루조각공원 이후 사진은 2편에 게재.
*** 낙화암은 1457. 10. 24. 酉時(저녁 5시~7시)에 단종께서 승하 하시자, 모시던 시녀와 종인들이 '더이상 살아서 무엇하나,
임금님 따라가서 저승에서라도 잘 모시자' 앞다퉈 동강 절벽 위에서 뛰어내린 곳이다.
[금강정](동강의 옛이름 : 금장강)이란 정자가 있으며, 시녀와 종인의 넋을 기리는 [민충사(愍忠祠)]라는 사당이 있다.
동강의 낙화암 절벽은 영월역 쪽에서 봐야 제대로다.
아침 여덟 시경, 우리를 위한 애마를 기다리며 ~~~, 뜻밖의 조우에 기쁨 백배.
버스 도착, 좌석번호를 재확인하면서 승차. 가죽나무 꽃이 만발하였구나.
여주휴게소에서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
제천시 송학면 속칭 [금봉이휴게소]에서 다시한번 체중조절.
[인산인해휴게소]로 이름이 바뀌었나, 하기야 원래 주유소 이름이 [인산인해]였지 아마도 ~~~.
잠깐 사이 영월 청령포 주차장 도착,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가 반기네.
조망대
역시, 덥다 더워. 하기야 오늘이 [대서]인 걸 감안하면 이 정도 더위는 감지덕지.
주천강 평창강이 합류하여 흐르는 서강, 말발꿉처럼 휘감아 도는 청령포는 삼면이 강물, 서남쪽은 천애 절벽이 막고 있으니,
그야말로 육지의 섬, 그 옛날 유배지로서는 적격이었겠구나 싶다.
오늘도 또 하나 배운다. [구하도], 이럴 때는 한자를 같이 써 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거나 배우는 기쁨이 즐거우니 감사하다.
*** 하천이 꾸불꾸불 흐르다가 유로의 변경으로 현재는 하천이 흐르지 않는 옛 하도. [구하도(舊河道)]
승선
1457년 6월 28일 나룻배에 앉아 이 강을 건너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뱃전에 앉아, 마치 머문 듯 조용히 흐르는 무심한 강물을 내려다 보며 공연히 생각이 많아진다.
한때는 여기도 강물이 흐르는 하도(河道)였나 보다, 돌들이 흐르는 물길에 닳아서 동글동글 둥글둥글하구나.
돌탑을 쌓은 이는 무슨 간절한 소망을 담았을까? 아무튼 이루어지기를!!!
단종어소로 가는 길
단종어소 ~ 관음송 ~ 망향탑 ~ 전망대 ~ 노산대 ~ 금표비 ~ 선착장으로 ~~~.
시녀 종인 거소
단종거소. *** 단종 거소 기와집과 시녀 종인 거소 초가집은 모두 2000년 4월에 새로 건립했다.
영조 39년(1763)에 세운 '단종이 계시던 옛터'라는 뜻의 비석, 烏石에 [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영조 친필이 음각되어 있다.
그 전에 왔을 때는 분명 단종을 향해 예를 올리는 걸로 봤었던 거 같은데 ~~~, 누가 방향을 바꿨나?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충의 소나무]
담장 밖에서 90도로 구부러져 단종 거소를 향해 절을 올리는 듯한 이 소나무를 [충의 소나무], 흔히들 엄흥도 소나무라 부른다.
[관음송(觀音松)] 단종이 두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에 걸터 앉아 쉬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는 소나무,(당시 수령은 60년 전후)
***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으며(觀), 시를 읊고 때로는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音) 하여 [관음송]이라 부른다.
*** 1988년 천연기념물 349로 지정, 높이는 30m로 우리나라 소나무 중 최고, 둘레는 5m, 수령 600년으로 추정.
[망향탑] 서강이 내려다 보이는 층암절벽 위에 단종이 한양에 머물고 있을 왕비 송씨를 그리워하며 막돌을 쌓아 올렸다는 돌탑
망향탑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서강
전망대와 망향탑 사이, 묘하게 구부러진 소나무 가지.
단종(노산군)이 유배생활 중 시름에 잠길 때마다 이곳에 올라 한양땅을 바라보았다는 [노산대]는 출입 통제.
*** 설명도 없이 출입금지 팻말이 있어 궁금했는데, 윗쪽 계단 일부가 상하여 안전을 위해 고칠 때까지 출입 통제 중이라네요.
노산대를 못 가고 다시 [관음송]으로 내려온다.
[금표비] 영조 2년(1726) 단종이 계시던 곳이라 하여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석을 세운다. [淸泠浦 禁標]
요건 순전히 한마디 하고 싶어 찍었다. 아마도 2009년 쯤 설치한 안내판일 텐데,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무슨 대책이 필요할 듯.
선착장으로 ~~~.
배를 기다리며 ~~~, 사진찍기로 무료함을 달랜다.
[왕방연 시조비]로 가는 길
잠시 왕방연이 되어 서강 냇가에 앉아본다. ' ~~~,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어찌 이리도 고울까.
[단종 유배길] 한양 창덕궁에서 청령포 까지 마을길 뱃길 산길 700리, 창덕궁을 떠난지 7일 만에 청령포에 도착한다.
영월부 객사는 태조 7년에 건립, 단종이 청령포 유배 두 달만에 홍수를 피해 영월부 객사 동익헌인 [관풍헌]으로 이어(移御).
조선의 객사는 중앙에 정청, 좌우로 동익헌 서익헌을 두는 이런 구조가 통상적이다.
야사에 의하면, 사약을 든 왕방연이 차마 들어가지 못하니. 나장이 너무 지체된다고 재촉, 어쩔 수 없이 관풍헌 앞 마당에 부복,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나와 '어인 일이냐?' 하문을 하는데,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눈물만 펑펑 쏟으니,
통인 하나가 활줄로 단종의 목을 감아 당기니, 아홉 구멍으로 피를 토하며 승하하셨다. 이에 시녀와 종인이 동강 절벽으로
달려나가 투신하니, 천둥 벼락이 치고 절벽 아래 동강에는 시신이 즐비하였다. 등등.
*** 세조실록에는 노산군이 자결하자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는 간단한 기록만 있을 뿐이니, 야사가 더욱 다양해지는 게 아닐까.
현재의 건물은 1997~ 1998년에 전면 보수.
[자규루] 세종 10년(1428)에 건립(梅竹樓), 단종이 이 누각에 올라 子規詞와 子規詩를 읊은 것이 계기가 되어 子規樓로 불린다.
*** 선조 때 큰 홍수로 허물어지고 폐허가 되었으나 정조 15년(1791)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누각 앞뒤로 [매죽루] [자규루] 현판이 각각 하나씩 달려 있다.
두견새 우는 청령포 (작사 이만진 / 작곡 한복남 / 노래 심수경 1966년 발표)
*** 장릉 노루조각공원 ~ 장릉 ~ 선돌관광지 사진은 2편에 게재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청파님의 감성이 담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읊으실때 새삼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탁월한 해설에 빠졌나봅니다.
감사합니다.
청파님의 탁월한 해설이 버스도보를
한층 upgrade!!!
짱!!!!!
고맙습니다.
항상 즐겁게 들어주시고 덕담주셔서 ~~~.
항상 많은 배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열정님이 곁에 있어 늘 든든하답니다.
감사해요.
언제나 멋지신 선배님 감사하며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길 자주자주 함께 걸어요.
감사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