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리품의 분배” (민 31장 25-34절) 230802 수요설교
공동체에 관하여 박상혁(LA 버클랜드침례교회 담임목사)
요즘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가 지성사의 흐름으로 볼 때 개인주의에 기초한 현대 시대는 끝나고, 뒤 잇는 후기 현대주의시대에는 좀더 역사적, 통전적인(holistic) 세계관을 요구한다. 이 후기현대주의 사상에서 공동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이성에 기초한 결정론(의무론, 공리주의)이 주류를 이루던 현대윤리학도 요즘 덕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진행되며, 어쩔 수 없이 공동체에 관해 논의한다. 윤리학에 Being(내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관한 연구가 Doing(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만큼 중요하다. Being 곧 인격형성에 관한 연구는 공동체의 문제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현대신학도 공동체 개념은 중요하다. 현대신학에서 삼위일체론 위치 칼 바르트(Karl Barth) 종전의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 삼위일체론 신학의 기초적인 틀로 바르트 이후 신학자들(Moltmann, Pannenberg, Jungel, Rahner) 역사적으로 교회는 삼위일체를 늘 고백했으나 많은 경우 '삼위'보다 '일체'가 강조. 예, 어거스틴 이후 신학자들 삼위일체론의 기본적 문제를 '한 분이신 G이 어떻게 세 분이 될 수 있는가' 편파적인 가르침은 G의 존재를 너무 개인의 모양으로 이해. 삼위일체론 올바른 회복과 현대신학 기본적 질문 '세 분이신 G이 어떻게 한 분이신가' 곧 G의 존재의 신비는 세 분이 한 분이심. 곧 공동체의 신비라고 말할 수 있다. G의 존재가 삼위일체라면 그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 또한 공동체적인 시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신앙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모양은 두 셋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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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식(산울교회 담임목사)
공동체의 세기다. 수많은 다양한 공동체들이 생태와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소수 성 정체성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 혹 여러 종교적 대안 공동체들이 속출하며, 수많은 영성 공동체들이 새롭게 형성. 왜 수많은 공동체들이 이 시대에 한꺼번에 일어날까가? 르네상스 후 지난 400년간 지탱해온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졌기 때문. 일종의 포스트모던 현상. 기존의 세계관은 오늘날 인류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공동체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키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실험을 하게 만든 것. 지난 20C 말에 일어난 이데올로기의 붕괴는 냉전 해체뿐 아니라 기존의 모든 이성 중심의 세계관의 붕괴를 불러왔다. 16~18C가 개인의 이성 중심 한 계몽철학 시대였다면 19~20C는 역사 이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 철학의 시대였다.
모든 이성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에 기초한 이데올로기는 하루아침에 붕괴. 인류 역사는 드디어 2,000년 만에 해체와 혼돈 새로운 모색기로 접어들었다. 2천년 전 J 당시 지중해 문명권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 당시 지중해 문명권에서는 그리스, 로마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이 급속히 쇠퇴, 그 결과 당대의 엘리트였던 지배 계층은 쾌락과 방종으로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했고 민중은 동방에서 들어온 수많은 신비주의에 급격히 빠져들고 말았다.
총체적 위기 속에서 소종파적 공동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이 중 한 분파에 불과했던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약 400년간 모색기를 거쳐 새로운 가치와 윤리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형성에 성공한 것. 중세 1,000년 이끌었던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 소종파 공동체로부터 탄생. 기독교는 16C 맥락의 탈 중세 근대화의 과정에서도 패러다임 전환에 성공. 여기에 주도적 역할 한 것은 개신교였다. 중세 가톨릭에 의해 이단 분파 공동체로 정죄됐던 개신교는 지난 400년간 진행된 근현대 서구 사회 형성 과정에 새로운 지배 세력인 자본가 계층의 세계관을 형성에 성공했다. 지난 400년의 서구 근대 문명은 한마디로 개신교 문명이다.
ᅠ그러나 이 개신교적 서구 문명의 패러다임은 몰락했다. 2천년 만 새로운 해체, 혼돈, 모색기 시작. 이 모색기가 앞으로 얼마나 갈지, 어떤 공동체가 21C 이후의 인류 문명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지 아무도 모른다. 수많은 공동체들이 누룩처럼 번져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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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툴리안 "우리의 축제는 이름이 동기를 잘 나타내는데, 그 이름은 그리스어로 '사랑'을 뜻한다. 얼마나 큰 비용이 예상되든지, 경건의 이름으로 사용된 돈은 얻는 것. 이 식사로 궁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 G도 낮은 자들을 많이 생각하신다"고 주장.
환대 공동체
교회 공동체 X를 머리로 그의 이름으로 모인 가족 공동체, 초기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에 대한 환대를 믿음만큼 중요한 구원의 구성요소로 생각했다. 초기 교회가 오직 X만이 구원의 유일한 통로임을 믿은 배타적 신앙 공동체 한편,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세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이 땅에 오신 X 자체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들을 돌본 포용적 공동체이다.ᅠ
트리니티 복음주의신학교 신약학 교수 조슈아 지프 1C 기독교 지도자 다수가 A 비롯 믿음의 조상들 '믿음과 외인들에 대한 환대에 의해서' 의롭게 됨을 탄탄한 성경주해와 문헌 증거한다. 지프는 종교개혁의 이신칭의 교리를 전복, 중세식 공로 및 행위에 의한 구원 옛 신학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서 의로움의 근거는 모든 믿음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인식, 가장 구체적 표현이 외인에 대한 환대임을 성경과 교회사가 증언한다.
예 : 《클레멘스 1서》 제목의 1C 말(95-97) 편지는 로마의 클레멘스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분열로 위기의 고린도 교회가 평화와 안정을 위해 본받을 모델로 A, 롯, 라합을 소개. 이들 모두 그들의 믿음(경건)과 환대로 구원. "G이 A을 이끌고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씨도 그렇게 될 것!하자 A이 G 믿었고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믿음과 환대로 노년에 아들 주셨고, A이 G의 산에서 아들을 G께 재물(10.6-7)
환대와 경건으로, 롯은 소돔 전역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 때 소돔에서 구출. J은 자신에게 소망 둔 자들은 붇드시고, 자신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벌과 고통 받게 하셨다(11.1)
믿음과 환대로 기생 라합은 구원받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정탐꾼들 여리고로 보냈을 때, 그 땅의 왕은 그들이 정탐하러 들어왔음을 알고 그들을 잡는 즉시 죽이려고 정탐꾼들을 잡으러 부하들을 보냈으나 라합은 자기 집 위층에 놓인 삼대 밑에 숨겼다(12.1-3).
이런 주장이 클레멘스 같은 정경 외부 저자의 주장만은 아니다. 정경에 포함된 야고보서의 행위 논증, 마(25장)의 양과 염소 비유, 누가-행전 텍스트에서 예수와 제자들, 사도 바울과 실라를 영접하는 에피소드들이 모두 공통의 요소를 지닌다.
조슈아 지프는 "이런 초기 기독교 텍스트들은 외인들에 대한 환대가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관행이 아니라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된 요소다. 이 텍스트들이 외인을 사랑함으로써 G께 우리의 공로를 쌓을 것처럼 모종의 '행위-의로움'을 정당화하지는 않겠지만, 행위와 구원이 밀접하게 연결됨은 환대야말로 예수의 인격과 메시지를 전심으로 수용한 가시적인 증거임을 시사한다."
G의 환대로 공동체로서 기독교 교회 탄생. 환대 타인에 대한 환대로 신적 환대가 인간적 환대의 시발점. 환대 공동체 기독교 정체성 X안에서 환영, 환대, 교제 선사하신 G의 행동.
종교개혁과 교회의 공동체성 및 공동선
교회 공동체 의식은 신약성경과 초대 교회에만 있었을까? 사도행전 이후 점점 시간이 가면서 신자들 수 늘고, 3C경 특별한 직분과 직위를 가진 '성직자'(clergy)들이 '평신도'(laity)로 지칭되는 일반 신도들과 구별되는 제도상의 분화가 이뤄졌다. 특히 4C에 기독교가 공인 결국 국교가 되고부터 교회의 조직과 직제에 관료화가 일어난다. 교회 내 신자들도 서열화 되고, 사역자들도 상하 계급 관계, 심지어 교회들 간에도 상위 교회가 구별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신약과 1C 교회만큼은 아니지만, 제도화되고 계급화된 중세 교회의 조직에 공동체성을 회복 부여하기 위해 노력. 예, 칼뱅 신학의 핵심이 뭐냐에 대한 논쟁이 오래했었지만, 일부 학자들은 'X와의 연합'과 '공동체를 위한 선물'이 칼뱅 신학의 중심이다. 송용원 《칼뱅과 공동선》 교회와 공동선과 관계를 다루며 이 부분을 강조. 요약은 다음과 같다.
칼뱅에게 X와 연합은 교회의 공동선을 위한 요새이고, 교회의 공동선은 X와 연합한 신자의 삶의 목적. X는 모든 신자와 교회가 '공유하는 유산'이자 공동선. 칼뱅은 "G은 우리를 한 몸처럼 묶으시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쓰도록 하신다. 누구도 자신을 위해 주어지지 않았고, 공통체가 서로를 위해 주어졌다." '성도의 교제' 사도신경의 용어를 설명에, "교회는 유연성 없고 엄격한 기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상호 섬김과 도움의 공동체다"다. 즉 교회는 위계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상호 소통으로 존재하는 공동체다.
25 L께서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미디안과 전승 후 전투 참가자들과 포로들의 정결 규례와 G은 전리품 분배 과정을 G께서 세우신 규정에 따라 미디안 전쟁의 승리는 G의 도우심으로 인한 것임을 주지시킨다.
26 너는 제사장엘르아살과 회중의 수령들과 더불어 이 사로잡은 사람들과 짐승들을 계수하고
27 그 얻은 물건을 반분하여 그 절반은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에게 주고 절반은 회중에게 주고
28 전쟁에 나갔던 군인들은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의 오백분의 일을 L께 드릴지니라
29 곧 이를 그들의 절반에서 가져다가 L의 거제로 제사장엘르아살에게 주고
30 또IS 자손이 받은 절반에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 떼나 각종 짐승 오십분의 일을 가져다가 L의 성막을 맡은레위인에게 주라.
31 모세와 제사장엘르아살이 여호와께서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
G은 모세에게 전리품들의 분배에 대해 지시하신다(25-30절)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이 절반, 나머지 백성이 절반을 차지한다(27절)
1. 병사들은 자신들의 몫인 절반에서 1/500을 떼어 제사장 몫으로 준다(28-29절).
2. 백성은 자신들의 몫인 절반에서 1/50을 떼어 레위인의 몫으로 내놓는다(30절).
G은 나간자나, 안 나간 자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전리품을 나누게 하심. IS 공동체는 전리품을 받는다. G은 빠짐없이 전리품을 나누게 하심은 IS이 전리품을 나누는데 표본.
이 규정의 의도는 뭘까? 공동체 의식. 전쟁의 승리의 결과도 함께 나누며, 기쁨도 함께 나눈다. IS은 한 공동체며, G의 공급하심으로 삶을 깨닫게 하셨다. IS 공동체 구성원은 전리품을 나누며 G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승리했, 온 공동체가 전쟁의 승리를 주신 G께 감사.
헨리 나우웬, <공동체>, 두란노, 2022
경쟁이 심한 세상 성격 중 돋보이는 부분.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광고 제품만 남다르게 뛰어난 특징. 신문과 라디오와 TV에서 보도 스포츠 기자들은 선수들의 출중한 실력을 실어 나른다. 연극 영화 서커스 보고 즐길 때 금세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에 집중한다.
‘출중함’에 치중 현상이 만연, 자기 정서와 감정과 기분이 얼마나 큰 영향을 입는지 모르지만 자신과 이웃들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엄청난 에너지를 남들과 비교 자신이 어떻게 특별하고 어느 부분에서 돋보일지에 신경 쓴다. (중략)
출중함 강조 공동체 차이점 고수함 행여 내 것 앗아가 불행하게 할지 두려워 염려 소유에 집착. 재물로 남들 이기고, 수완과 기술로 남들 못하는 일 통찰로 남들 마음에 강한 인상과, 영적 체험을 특별함으로 영역조차 사람들이 중요한 존재로 돋보이려는 전쟁터.(중략)
이어령 교수 - 스토코마
나는 나 없는 전체주의를 낳는 요인. 왜? 개인의식이 부족할 때 언제나 독재자의 손이 뻗치게 되기 때문. 비극은 태반이 나를 찾지 못한다. 내가 없는 우리는 힘 없다. '우리주의'가 있다. 학연, 지연, 혈연 위주의 우리주의가 매우 강하다. '개체주의'는 '우리주의'와 같이 통한다. 발생하는 것이 스코토마다.(부정적인 선입견으로 사물이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증상의 심리학 용어, ‘심리적 맹점’ 뜻) 이를 깨뜨려야 대인관계에 나타나는 현상은 심각하다.
(1)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배타성이 강하다.
(2) 통하는 사람끼리 '우리끼리' 의식이 강해진다.
(3) '우리끼리' 외의 사람은 담 너머 사람으로 만든다.
(4) 실리적으로 그 사람만 보면 할 말도 없어지고 편견이 도사린다.
(5) 전통적인 공동체의식인 학연, 지연, 혈연 단위는 잘 안 따지고 넘어간다.
(6) 스코토마가 심화되면 사람을 마구 심판한다. 즉 지옥에 보낼 사람이 너무 많아진다.
특히 30절에, G은 IS백성이 받은 나머지 절반의 노략물에서 1/50을 각출해 레위인들의 몫으로 주라고 명령. 출전 군인들과 IS회중이 각각 절반씩 나눠 가졌기 때문에 결국 레위 지파의 몫은 제사장 몫의 열 배다. 두 집단 사이 분량의 차이는 민 18:26과 상응: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IS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L께 드릴 것이라”.
3~36절은 탈취물의 종류와 숫자이고, 3~46절은 L께 공물로 드린 종류와 숫자이다.
32 그 탈취물 곧 군인들의 다른 탈취물 외에 양이 육십칠만 오천 마리요
33 소가 칠만 이천 마리요 34 나귀가 육만 천 마리요
35 사람은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서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도합 삼만 이천 명이니
36 그 절반 곧 전쟁에 나갔던 자들의 소유가 양이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라
37 L께 공물로 드린 양이 육백칠십오요
38 소가 삼만 육천 마리라 그 중에서 L께 공물로 드린 것이 칠십이 마리요
39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라 그 중에서 L께 공물로 드린 것이 육십일 마리요
40 사람이 만 육천 명이라 그 중에서 L께 공물로 드린 자가 삼십이 명이니
41 L께 거제의 공물로 드린 것을모세가 제사장엘르아살에게 주었으니 L께서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42 모세가 전쟁에 나갔던 자에게서 나누어IS자손에게 준 절반
43 곧회중이 받은 절반은 양이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요
44 소가 삼만 육천 마리요
45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요
46 사람이 만 육천 명이라
47 IS 자손의 그 절반에서모세가 사람이나 짐승의 오십분의 일을 취하여 L의 장막을 맡은레위인에게 주었으니 L께서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G께서 전리품 분배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말씀하신 것은 IS백성이 물질 문제로 인해 분쟁에 싸이지 않고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8 군대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모세에게 나아와서
49 모세에게 말하되 당신의 종들이 이끈 군인을 계수한즉 우리 중 한 사람도 축나지 아니하였기로
50 우리 각 사람이 받은 바 금 패물 곧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 고리, 목걸이들을 L께 헌금으로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려고 가져왔나이다
IS의 지휘관들, 곧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말하기를, 군인들을 계수했는데 단 한 명도 축나지 않아서 각 사람이 찾은 각종 금 패물들을 G께 드릴 예물로 가져왔다.
50절과 52절 즉 ‘각 사람이 찾은 것들’과 ‘각자 자기를 위해 탈취한 것들’ 표현에서 보듯이 군인들은 자신들이 찾아낸 전부를 G께 드린 것으로 보인다.
50절 군인들이 패물을 가져온 이유 ‘L 앞에서 우리의 목숨을 속죄하기 위한’것. 만약 이들이 출 30:11-16과 같은 의미에서 속전이라면 ‘반 세겔’ 등 정해진 액수만 드림(참조, 출 30:13-15) 출전병 수 1만 2천명 6000세겔만 드리면 되었지만 가져온 금 패물의 총량은 2.8배나 많은 1만 6750세겔(52절) 이들이 바친 것은 출 30장과 달리 어떤 정형화된 돈이 아니라 각종 금 패물. 5절 언급 ‘각 사람이 찾은 것들, 즉 금 패물들, 발목 고리, 손목 고리, 인장 반지, 귀고리, 목걸이’ 이처럼 자신들이 갖다 바 것을 다 갖다 바치는 모습 역시 감사의 표시가 증거다. 큰 전쟁에서 자신들 중 아무도 ‘축나지 않은’것 감사로 이해한다.
교훈 두 가지. 첫째, G은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지 않을 권능의 G이시다. 예수께서도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요6:39) 성도는 G의 권능이 삶 속에서도 베풀어지기를 기대, 기도한다.
둘째,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과 은혜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누가복음 17:11-19에 나오는 치유함을 입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서 오직 한 명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J C께 감사를 표현했다(15-16절) 예수께서는 아홉 명의 감사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면서 그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다(19절)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다 병에서 고침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감사한 사람 한 명만 구원의 선언을 받았다. 감사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G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전리품을 골고루 나눔을 보고 군 지휘관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한 사람도 죽지 않은 것을 깨닫고, 전쟁의 승리는 G께서 주신 것임을 고백 모세에게 여러 패물을 가져온다. G앞에 속죄의 의미로 가져왔다고. G의 임재 앞에서, 거룩하심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51 모세와 제사장엘르아살이 그들에게서 그 금으로 만든 모든 패물을 취한즉
52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L께 드린 거제의 금의 도합이 만 육천칠백오십세겔이니
53 군인들이 각기 자기를 위하여 탈취한 것이니라
54 모세와 제사장엘르아살이 천부장과 백부장들에게서 금을 취하여 회막에 드려 L앞에서IS자손의 기념을 삼았더라
모세는 ‘L 앞에 IS자손의 기념물’(지카론)로 바쳤다(54절) 기억하다(자카르)에서 파생된 단어. 금 패물의 ‘기념물’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 첫째, IS로 미디안 전쟁에서 나타난 G의 놀라우신 구원의 능력을 기억. 둘째, IS이 G의 구원에 대해 신실하게 반응한 것.
G이 기억하는 백성, G을 기억하는 백성 - 박철현(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L앞에 IS자손의 기념물’이란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에서 ‘L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은? ‘L의 기억은 곧 구원의 스위치’라 할 수 있다. 몇몇 중요한 성경 구절들을 참고할 수 있다(창 8:1; 19:29; 30:22; 출2:24; 삼상 1:11, 19 등)
창 8:1 “G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G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이 구절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홍수 이야기(6-9장)의 교차대조법적 구조 정중앙. 이 구절 전까지 홍수가 점점 더 심해지지만 G이 ‘노아와 …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언급 시점부터 홍수는 점점 줄어들음. ‘G이 기억하셨다’가 노아 홍수 이야기의 전환점 역할 이점에서 ‘G의 기억은 곧 구원의 스위치’라 할 수 있다.
창 19:29 롯이 소돔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어떤 선 때문이 아니었다. “G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G이 A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보내셨더라” 이때 ‘생각하사’란 히 ‘기억하다’(자카르)로 번역함이 더 적절. 즉 “G이A을 기억하사 롯을… 내보내셨더라”로 G의 기억, A에 대한 기억이 구원의 스위치가 된 것. G 기억은 중요하다. G의 기억은 성경 인물들의 경우처럼 구원의 스위치가 되기 때문.
G하신 일들을 기억함. 모세가 IS백성 앞에서 행한 고별 설교들 신 총 15회 ‘기억하라’권면(신5:15; 7:18[x2]; 8:2, 18; 9:7, 27; 15:15; 16:3, 12; 24:9, 18, 22; 25:17; 32:7)
대표적으로 신 7:18-19은 IS이 G과 그 하신 일을 잘 기억하면 G이 가나안의 모든 거민들에게도 출애굽 당시에 바로와 그 백성에게 한 것처럼 행하실 것이다. 반면 신 8:18-19은 IS이 기억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처럼 기억은 중요.
이런 면에서 민 31장 IS 출전자들은 이를 잘 행했다. 그들은 큰 전쟁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게 역사하신 G의 손길을 깨달은 즉시 자신들이 얻는 전리품 중 가장 귀한 전리품인 금 패물 전부를 ‘L앞에서 … 기념물’로 내어놓음으로 자신들의 기억 속에 이 일을 남겼던 것.
기억하는 백성이 산다. G이 기억하시는 백성이 살고, G을 기억하는 백성이 산다. 그러므로 G이 인생에 베푸신 일들을 잘 살피고 기억하면 G도 기억하시고, 성경에서 G이 기억하셨던 모든 신앙의 선조들이 받았던 구원과 은혜의 역사를 여러분이 경험하게 하실 것이다.
수도원의 메시아
어느 수도원에 깊은 산 속 작은 오두막집에 한 랍비가 조용히 살고 있었다. 쇠락의 길로 가는 수도원 문제로 고뇌하던 수도원장은 그 움막의 랍비를 찾아가 수도원을 부흥시킬 조언을 청해 들었다. 랍비가 "죄송합니다. 저는 아무런 조언도 드릴 것 없으나 당신들 중 메시아가 있다." 수도원장은 이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 말을 들은 늙은 수도사들은 랍비가 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 "우리들 중 메시아가 있다니. 수도원에 있는 우리 다섯 명의 수도사 가운데 한 사람이 메시아란 말인가? 그렇다면 과연 누가 메시아일까?" 늙은 수도사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어쩌면 메시아일지 모르는 서로를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기 시작하자 이 수도원의 분위기는 전과는 사뭇 달라졌고 점차 사람들이 그 수도원을 찾아와 수도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수도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져 마침내 그 수도원은 옛 명성을 다시 찾는다. 랍비 덕분에 수도원은영성의 중심지다.
진정한 하나됨의 공동체는 서로 통해 X를 볼 눈을 갖을 때, 서로를 주께 하듯 대하며, 존중, 사랑할 때, G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참된 공동체, J의 몸 된 교회는 완성될 것. 그런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눈을 들어 주님 바라보며, 형제자매 안에 계신 X를 바라보는 훈련된 공동체는 어떤 역경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 영원한 그 날을 꿈꾸며 더욱 신실하게 살아가는 주님의 참된 제자 공동체가 될 것이다.
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