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2 아버지의 마음. 눅 15:11-24 / 서충주한빛교회, 윤 석 목사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15:1 세리아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께 가까이 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고서 수군거리며
예수 이사람이 죄인들을 영접하며 같이 음식을 먹는도다 라고 말하며 비웃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 한 마리와 / 잃어버린 한 드리크마와 / 잃어버린 한 아들의 비유를 들어서
그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ㅡ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의 비유에서는 : 목자의 심정을
ㅡ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에서는 : 찾는 노력을
ㅡ잃은 한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에서는 :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게 합니다.
잃은 양이나 /드라크마나 /아들을 찾았다는 것은 구원받음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 내용에서 주도권은 잃은 양이나, 잃은 드라크마나, 잃은 아들이 아니라
잃어버린 목자나, 잃어버린 여인이나, 집을 나간 아들의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왜곡된 바리새인이나 고개가 뻣뻣한 서기관들이나 죄인으로 평가받는 세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한 주도권은 인류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눅 15:11-24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둘쩨 아들이
1. 자기가 받을 유산을 미리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구합니다.
*유대의 법에 아버지가 살아 생전에는 유산을 미리 주는 법이 없는데
그는 아버지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을 미리 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을 보면 그는 참으로 싹수가 노란 녀석입니다.
ㅡ무슨 좋은 사업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ㅡ선교여행을 다녀오고싶서도 아니고
그저 타락한 생활을 동경하여 외국에 가서 아버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며 마음껏 타락을 누려보고 싶어서입니다.
*유대의 법에는 두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경우 큰 아들에게 삼분의 이 / 둘째 아들에게 삼분의 일을 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좋은 말로 타일렀을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을 굽히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녀석을 어떻게 해야 철이 들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더니 아버지는 그에게 일정 금액을 쥐어주며
아들에 허튼데 쓰지 말고 의미있게 사용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하였습니다.
돈을 받나 쥔 아들은 아버지의 훈계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그 돈에만 마음이 쏠려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촌구석에 틀어박혀 살 줄 알았던가?
어디 넓은 세상에 가서 마음껏 쓰면서 배우고 부유하게 살아보자 라고 마음 먹고
주변 사람이 보라는 듯 콜택시를 불러서 멋진 청년의 모습을 하고서 훌쩍 방랑의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2. 집을 나온 청년은 도시 문명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날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싶다는 다짐은 잊어버리고 이제 그는 술집을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돈을 잘 쓰는 그의 주변에는 돈을 밝히는 거머리가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ㅡ당신 참 잘생겼습니다
ㅡ이렇게 비싼 옷을 입은 것을 보니 귀한 집 아들인가 보군요?
ㅡ이곳에 투자하면 이자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당신은 평생 돈 걱정 할 것 없습니다.
이런 비싼 술을 평생 마셔도 당신 금고에는 돈이 가득 쌓여있을 것이니 내가 소개하는 곳에 투자해 보시지요?
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그는 어느날처럼 술에 취해있다가 잠에서 깨어나서 밥을 사먹으려 하니 그의 주머니에는 동전 한 푼도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변에서 돈을 빨아먹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이제 외국의 거리에서 그 혼자 남아있어서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돈이 떨어졌는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며칠을 굶고 노숙자의 신세가 된 그에게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그 냄새를 따라 걸어가니 돼지 막사에서 풍겨나는 돼지에게 주는 양식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한 웅큼 집어서 먹고싶었으나 만약 그렇게 했다가는 절도죄로 유치장에 갇힐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돼지 농장 주인에게 사정합니다.
저는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저에게 먹을 것 좀 주세요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다 하겠습니다.
농장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먹을 것을 주고 돼지 똥 치우는 일을 시킵니다.
몇 해가 지나자 그 나라에 흉년이 닥쳐서 둘째 아들은 일자리를 잃고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주인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제발 먹을것좀 주세요 라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을 해보지만
냉정한 주인은 돼지도 먹지 않는 쥐엄나무 열매를 몇 개 던져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신에게 베풀 아량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ㅡ이것이 집을 떠난 자의 현실입니다.
ㅡ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타고 즐겁게 질주 하다가 맞이하는 낭털어지입니다.
ㅡ나라를 잃는 자의 슬픈 현실입니다.
청년은 이제야 비로소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품을 박차고 나온 패륜아이기에 아버지에게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지만
여기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지 않는가?
아버지에게 가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보자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부탁해보자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가 차마 나를 모질게 대하지는 않겠지?
아니야 아버지가 불호령을 하시며 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때리며 문 밖으로 밀어내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불효한 대가를 치르는 샘 치고 마음껏 맞아보자
여기서 죽으나 아버지의 집에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찮가지가 아닌가?
차라리 아버지의 집에 가서 죽으면 내 시신이라도 뭍어주지 않으시겠는가?
죽더라도 아버지의 집에서 죽으리라! 라고 다짐한 청년은 결연히 다짐을 하고서
더부룩한 머리에 꽤죄죄한 얼굴에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밑창이 뚫린 신을 신고 터벅터벅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거머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인생의 마지막 날에 심판대 앞에 서면
자기가 누리며 살았던 모든 것이 헤어진 옷이요 구멍 뚤린 신발이요 꽤죄죄한 몰골 뿐인 것입니다.
3. 청년은 아버지ㅡ, 아버지ㅡ 를 계속 부르며 눈물을 흘리며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는 거역하지 않을거야... 라고 수백번 다짐하며 걷고 있습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그리운 고향이로구나!
저 언덕만 넘으면 천국이로구나!
힘을 내어서 빨리 가자!
그런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죄지은 모습이 생각나서 더 이상 다가설 수 없어서 망설이고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저 멀리 언덕 위에서 한 노인이 자기를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노인은 분명 청년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지 꼴을 하고 있는 자가 자기의 둘째 아들인 것을 알아보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아들이 나간 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나와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들아ㅡ 살아있었구나ㅡ
아들아ㅡ 니가 돌아왔구나 이게 꿈이냐 생시냐?
니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내가 죽기 전에 돌아왔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ㅡ 감사합니다. 일흔 아들을 찾게 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
아들이 집을 나간 이후로 아버지는 하루도 편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아픈데는 없는지?
먹을 것은 제대로 먹고 사는지?
나쁜 사람을 만나 고생을 하지는 않는지?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집을 나간 자식을 걱정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간절함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는 목자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백성을ㅡ 찾으시는ㅡ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이 없는 것처럼
예수님의 인간을 사랑하심은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를 차별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죄인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일흔 양이나 /일흔 드라크마나 /잃은 아들에게는 어떠한 공로가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를 찾는 자들의 주권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의 구원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 많은 세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처럼
이 복된 주일에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죽게 내어주시고 마지막 피 한방을 까지도 아낌없이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생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복된 성도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