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으로 알려진 성동구 성수동 2가(2)
성수동2가 제1동 지역은 영동대교 북쪽지역이어서 한강이 범람하면 가장 먼저 물이 들어오는 곳이어서 '큰 개무기바닥', '작은 개무기바닥'이라고 칭하였고, 주민센터가 있는 북쪽은 (성수동2가 750번지) 조선시대∼일제말에 걸쳐 대대로 마을을 주재하는 관청이 있었던 자리라 하여 「대청골」 또는 「큰 관골」이라 불렀다.
강원도 지방의 숯이 뗏목으로 북한강을 내려오면 성수동 2가 나루터에 제일 먼저 닿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히 이곳 성수동2가 770번지 일대에는 숯을 저장하는 탄고(炭庫)가 많아 이 일대를 「숯탄골」 또는 「탄동」이라고 불렀다.
또 주민센터 근처의 성수동 2가 760번지를 ‘이문(里門)께’라고 부렀다. 이곳은 나루터와 최단의 일직선상이 되는 거리이므로 여기에 이문을 세우고, 파수를 두어 동네를 지키게 하였다. 현재 건물은 없어졌지만 이문을 세웠던 주춧돌 4개가 최근까지 남아 있었다.
성수2가 제3동은 일제 때는 동양척식회사 소유의 농지였으므로 토박이 주민은 2% 정도이고, 대부분 주민이 1960년대 이후 외부에서 이주해 왔다.
이 동의 동서로는 「광나룻길」과 「구의로」가 뚫려있고, 「구의로」에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지하철 성수역이 들어서 있다. 성수역은 지하철1호선과 2호선이 이어지는 환승역이어서 규모가 크다.
성수2가 제3동과 화양동, 송정동을 잇는 길목에는 ‘뼈다리께’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다.
이 명칭은 기동차가 동대문에서 뚝섬, 광나루까지 운행되던 때 이곳을 흐르는 개천(현재는 매립)을 건너기 위해 놓인 다리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당시 단선으로 철교를 놓았는데 그 모습이 하도 앙상하여 마치 살을 모두 뜯어먹고 남은 생선 가시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