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시대 시중유화(詩中有畵) 풍속시(風俗詩)의 대가
이규상의 한시편(漢詩篇)
*고영화(高永和)
조선 후기 시인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은 김홍도의 속화(俗畫, 풍속화)에 비견되고 있는, 민간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시(風俗詩)의 대가이자 시중유화(詩中有畵)의 최고봉에 올랐던 인물이다. 이번 지면을 빌려 그의 시중유화(詩中有畵)의 풍속시(風俗詩) 3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풍경을 담은 산수화(山水畵)와 민간의 생활상을 다룬 풍속화(風俗畵) 그리고 백성들의 다양한 생활상을 다룬 풍속시(風俗詩)가 대략 18세기 무렵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림 속에 시를 넣은(畵中有詩) 김홍도와 시 속에 그림을 담은(詩中有畵) 이규상이야말로 당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이규상은 파리한 얼굴의 백성들이나 유리걸식하는 아픈 백성들의 생활상을 현실 시각으로 형상화한 시는 남기지는 않았다.
○이번 지면을 통해 이규상(李圭象)의 농가의 노래 <전가행(田家行)> 칠언절구 6수(首)와 시골의 노래 <촌요(村謠)> 칠언절구 4수(首), 그리고 인천의 노래 <인주요(仁州謠)> 칠언절구 9수(首)를 차례로 소개하겠다.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칠언절구 한 수(首)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속에 농가의 모습을 정감어린 시어로 형상화했다.
먼저 <전가행(田家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농가의 전원의 모습에 더하여, 한양의 기녀와 시골 아낙의 삶을 대비한 수(首)와 농가 아낙의 고된 일상을 그린 수(首)를 보탰다. 그리고 <촌요(村謠)>는 농가(農家)의 구성원인 아낙과 시어머니, 노인과 남편의 일상적인 모습을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로 아름답게 그려내었고, <인주요(仁州謠)>는 개화기 이전 서해안 어촌 인천(仁州)의 풍경과 바닷가 마을의 어민들의 삶의 모습과 풍속을 질박하고 긴밀하게 그려내었다.
갯벌에서 소라, 게, 물고기, 낙지, 새우를 잡고 뱃사람들은 준치, 숭어를 잡는다. 또 바닷가에 줄 이은 가마솥에서 소금을 굽는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수로에는 조운선을 비롯한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간다. 용유도엔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다. 그리고 인천의 뱃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며 만선의 풍어와 선박의 안전을 기원한다.
◉18세기에 들어서서 조선의 문단에는 사실적인 묘사와 개성 있는 화풍이 돋보이는 진경(眞景) 산수화와 더불어 지극한 말과 지극한 감동을 일으키는 참다운 시(眞詩)를 표방하는 진시(眞詩)운동이 숙종 때 일어났다. 또한 진시(眞詩) 창작을 위한 핵심 시론인 천기론(天機論)을 정비하였다. 대제학 김창협은 “천기(天機)가 깊은 자 만이 진시(眞詩)를 쓸 수 있다.”고 역설했다. 18세기 진시 운동에 큰 영향을 받은 시인 중에 이번 작품의 저자 이규상(李圭象)도 있었다. 그의 시(詩)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비견된다하여 당시 문인(文人)들이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럼 이에 이규상(李圭象 1727~1799) 시(詩)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이규상이 시로 그린 그림은 정선(鄭歚, 1676~1759)의 그림이라기보다 김홍도의 속화(俗畫, 풍속화)를 닮았다. 주지하다시피 김홍도는 우리나라 풍속화의 최고 권위자이다. 조선시대 17세기 무렵 문단에선 명(明)나라 복고풍이 일면서 질박한 고대의 당시(唐詩)를 배우고자 하는 기류가 일었다. 그래서인지 당대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의 시(詩)는 ‘조선적인 당풍(唐風)’이라고 평하는 분도 계신다.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한 폭의 아름다운 농어촌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흥감(興感)을 그려낸 걸작’이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당풍의 시중유화(詩中有畵)’에 가까운 흥취를 느끼게 만든다. 왕조시대 우리나라 농촌에서 농민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과 마주할 수 있고 질박하면서 충직한 생활모습을 한 편의 그림을 보는 듯한 농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중국 북송시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소식(蘇軾, 1037~1101)은 왕유의 시와 그림을 두고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라고 했다. 아마도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라는 이 말은 시에서 경치가 잘 서술된 부분을 읽었을 때 그림처럼 그 경치가 떠오른다는 뜻이며,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는 말은 경치를 잘 묘사한 그림을 보았을 때 시적 감흥이 일고 더 나아가 시적 언어가 떠올랐다는 뜻일 게다.
한편 이규상은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으로 조선후기 문학사를 증언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에서 18세 연하인 김홍도의 그림을 두고 “시속의 모습(畵中有詩)을 잘 그려 세상의 속화체(俗畫體, 풍속화)라 일컬어졌다”고 했는데 김홍도가 그림으로 그린 것을 이규상은 시(詩中有畵)로 그려냈던 것이다. 홍세태(洪世泰)와 이병연(李秉淵)은 자타가 공인하는 시인이었는데 이규상도 스스로 공인받은 시인이라고 자부했을 정도였다.
○또한 그는 쉰 살에 부인을 잃고 곤궁하게 오직 시(詩)와 문(文)에 마음을 붙이면서 살았다. 자신의 시집 『일몽고(一夢稿)』 앞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문학이고 또 평생 공을 들인 것이 시라 하였다. 평생 시만큼 좋아하는 것이 없었기에 시를 보면 배 큰 사내가 음식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고 목마른 천리마가 샘으로 달려가는 형상이라 하며, 그것이 불가에서 이른 삼생(三生, 전생, 현생, 후생)의 결습(結習, 뿌리 깊은 습관)이다.”라고 썼다.
◉이번 작품의 저자 유유재(悠悠齋)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은 조선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字)는 상지(像之), 호(號)는 유유재(悠悠齋)ㆍ일몽(一夢)이다. 18세기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망라한 인물지(人物誌) 《일몽고(一夢稿)》를 저술하였다. 그러나 20세기 말까지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1935년에 간행된 한산이씨의 문집인 《한산세고(韓山世稿)》에 묶여 있다가 최근 학계에 알려져 1997년 《18세기 조선 인물지-병세재언록》이라는 제목으로 창작과 비평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조선후기의 인물 전기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만큼 충실한 내용을 갖추고 있는 저작물이다.
그는 조준(趙峻)·이중호(李仲浩)·성대중(成大中) 등 비교적 이름을 드러내지 않던 선비들과 교류하였다. 1727년(영조 3)에 태어나 학행으로 천거되어 조산대부(朝散大夫)를 제수 받은 뒤, 잠시 홍릉(弘陵) 참봉(參奉)을 지냈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가 없으며, 1799년(정조 23)에 죽었다는 것만 《한산이씨세보(韓山李氏世譜)》에서 전한다. 《일몽고(一夢稿)》는 조선후기의 인물 전기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만큼 충실한 내용을 갖추고 있는 저작물로, 총 12권7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세기 당대의 인물 180여 명이 수록되어 있어 저자의 다양한 인물교류와 지식체계를 엿볼 수 있다.
◉시골 아침에 이슬이 내려앉은 풀밭을 걸으면 바지가 젖어 흥건하다. 온갖 삶이 가득한 들판에는 이곳저곳 드나드는 벌레들이 수두룩하고 남새밭엔 온갖 채소가 푸릇푸릇 싱그럽다. 집 근처 작은 도랑에는 가재가 자갈 밑으로 숨어들고 올챙이는 꼬리를 흔들며 삶을 노래한다. 촌가의 나무 마루에 누워 집을 지키던 아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편안히 낮잠을 즐긴다. 집의 닭도 개도 품앗이 하듯이 한 번 울어대면 외양간의 누렁소도 덩달아 울어대니 온 동네가 시끄럽다. 고요한 마을에 밝은 낮 햇살이 비추니 먼 산 뻐꾸기가 싱겁게 울어댄다. 서정적(抒情的)이고 목가적(牧歌的)인 소박(素朴)한 전원(田園)의 풍경이다. 이를 시로 형상화한 시인이 바로 이규상이다.
●다음 농가의 노래 <전가행(田家行)>은 조선 18세기 시인 유유재(悠悠齋)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의 작품이다. 모두 6수(首) 칠언절구를 나열해 완성했는데 그 압운자(押韻字)는 ‘微’, ‘陽’, ‘刪’, ‘庚’, ‘先’, ‘陽’이다. 이 작품 6수(首) 중에 4수(首)는 이규상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농가의 전원의 모습을 시 속에다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2수(首)는 먼저 한 수(首)는 한양의 기녀와 시골 아낙의 삶을 대비시켜 놓았고 그 다음 한 수(首)는 농가 아낙의 고된 일상을 그려 놓았는데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며 낭만적이다. 모든 칠언절구마다 펼쳐지는 시속의 그림은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훈훈한 장면을 연상케 만든다. 그는 그야말로 천재 시인이었다.
1) 농촌의 일상을 노래하다 전가행(田家行) 6수. / 이규상(李圭象 1727~1799)
沙融溪暖荻芽微 눈 녹고 시내 따스하니 억새 싹이 작게 폈고
靑靄初收白鷺飛 푸른 이내 처음 사라지니 백로 날아가네.
田婦亦知春色愛 농촌 아낙 또한 봄빛의 아까움을 아노니
鵑花一朶揷釵歸 진달래 한 가지 비녀처럼 꽂고 돌아오누나.
이 절구 속의 그림에서 가장 선명한 색깔은 시골 아낙이 비녀 곁에 꽂은 진홍빛 진달래꽃이다.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는 아낙의 모습이 봄빛에 청춘하다. 이규상의 시(詩) 답게 ‘억새 싹, 눈과 백로 그리고 진달래’ 봄날의 색채 대비가 선명하다.
京國佳人錦繡粧 한양의 기녀 금으로 수놓은 비단옷 입고 화장하더라도
一生離別野鴛鴦 일생의 들의 원앙 같은 부부관계 맺지는 못하지만
田家篛笠荊釵裏 시골에선 삿갓 쓰고 나무 비녀 꽂더라도
長對娘夫媚嫵相 길이 아내와 남편 마주하며 서로 아양을 떤다네.
한양의 가인(佳人, 기녀)은 금으로 수놓은 비단옷 입고 화장을 하지만 원앙 같은 부부관계는 맺을 수가 없다. 반면에 시골의 아낙은 삿갓 쓰고 나무 비녀 꽂고 소박하게 살지만 영원토록 아양 떨며 부부로서 오순도순 살아간다. 한양의 기녀와 시골 아낙의 인생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놓았다.
朝出平田薄暮還 아침에 밭에 나가 저물녘에 돌아와
夕炊纔了月升山 저녁밥 지을 불 때니 그제야 달이 산에 떴구나.
鳴舂更備明晨飯 방앗소리 울려 다시 내일 새벽밥을 준비하노니
休息惟於片夢間 생각건대 짧은 꿈속에서는 휴식이 있겠지.
새벽부터 저물 때까지 밭에 나가 일하다가 돌아와 저녁밥을 한다. 때마침 보름달이동쪽 산에서 뜬다. 식사가 끝난 후, 또 다시 내일 새벽밥 준비를 서두른다. 아마도 휴식은 짧은 꿈속에서나 있을 듯하다. 고된 일상이 그려져 있지만 왠지 따뜻하고 훈훈하다. 저자는 일순 호롱불빛이 새어 나오는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의 모습과 건강한 백성들을 낭만적으로 그려내었다.
鷄冠迥立鳳仙橫 맨드라미 우뚝 서고 봉선화는 늘어져
瓠蔓縈莖紫翠笳 덩굴진 박 줄기 자줏빛 가지와 엉켜
一陣朱蜻來又去 한 무리의 고추잠자리 오고 또 가네.
雲高日燥見秋生 구름은 높고 햇살 기우니 가을이 생겨남을 보이네.
이 시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보통의 산수화와는 조금 다르다. 산과 개울이 없다. 오직 여름철 경물만을 나열했다. 맨드라미, 봉선화, 고추잠자리도 붉고, 가지는 자줏빛, 박 줄기는 파란색이어서 색감이 진하고 산뜻하다. 벌써 구름이 높고 햇살 기우니 가을이 다가오는 듯하다. 시골살이의 흥이 저절로 일어난다.
中婦山田拾素綿 아내는 산에 마련한 밭에서 흰 목화 따고
郞收紫稻遠郊前 남편은 뭔 들판에서 붉은 벼 수확하네.
稚兒留在看門戶 아이만 남아 문에서 내다보다가
任摘庭茄累累懸 뜰에 줄줄이 달린 가지를 따는구나.
아내는 산밭에서 흰 목화를 따고 남편은 들에서 붉은 벼를 수확한다. 아이만 집에서 홀로 놀며 자꾸 문 밖을 내다보다가 뜰에 줄줄이 달린 가지를 딴다. 온 식구가 다 제 몫을 한다. 아내든 남편이든 아이든 모두 가을철에는 수확하느라 분주하다. 전원의 농가는 그야말로 풍요를 만끽하는 계절이다. 집에 남은 아이마저 부모를 기다리며.
臘月乾坤匝雪霜 섣달(음력 12월)엔 천지에서 눈과 서리가 번갈아 내리니
陽春別在養牛房 봄볕의 따스함은 특별히 외양간에만 있네.
輸綱已畢完乘屋 벼 진득 실어놓았고 지붕의 띠 잇는 것도 마쳤으며
蒲席閒編到夜長 부들자리 짜는 동안 밤은 깊어만 간다네.
농가에 겨울이 왔다. 온 세상에 눈과 서리가 번갈아 내린다. 이미 겨울 준비는 마쳤다. 벼도 창고에 가득하고 지붕의 이엉도 새로 고쳐 이었다. 외양간의 소여물도 이미 준비해 놓았으니 농가엔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다. 겨울 동안엔 아마도 부들자리 짜느라 밤이 깊어갈 것이다.
[주1] 미무(媚嫵) :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양을 부림
[주2] 승옥(乘屋) : 지붕의 이엉, 지붕을 얽다.
●다음 시골의 노래 <촌요(村謠)>는 위 시와 같이 조선 18세기 시인 유유재(悠悠齋)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의 작품이다. 모두 4수(首) 칠언절구를 나열해 완성했는데 그 압운자(押韻字)는 ‘麻’, ‘眞’, ‘先’, ‘先’이다.
대나무 울타리가 둘러친 초가집에 한 줄기 등불 빛이 새어나온다. 아낙이 절구질 마치고 먼저 잠들었고 늙은 시어머니는 한가로이 앉아 물레를 돌린다. 따듯한 콩밥과 미음 장국에 연한 무뿌리와 새하얀 겉절로 시골의 늦은 식사를 하는데 달기가 꿀 같으니 인간 세상의 8가지 진미가 따로 없다. 칡껍질과 함께 짠 짚신 한 짝을, 노인이 한 푼씩을 받고 저잣거리에서 팔아서, 쌀과 건어물로 바꿔서 돌아온다. 부뚜막 밭솥에 불을 지펴 음식을 하다가 시골 새색시가 새벽녘에 먼 시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손 베개하며 꾸벅꾸벅 존다. 때마침 돌아온 남편을 반기며, 색시가 “행여 밤길에 다치지나 않았나요?”하니 남편이 “달이 높다랗게 떠있던데.”라고 말하는듯하다. 저자는 농촌의 정경을 따스한 시선으로 아름답고 순박하게 전원의 풍경을 그려내었다.
2) 시골의 노래 촌요(村謠) 4수 / 이규상(李圭象 1727~1799)
茅簷四面竹籬遮 초가집에 대나무 울타리 사면으로 둘러치니
射出燈光一道斜 한 줄기 등불이 새어 나온다.
少婦罷舂先倦睡 아낙 절구질 마치고 먼저 잠들었고
老姑閒坐運繅車 늙은 시어머니 한가로이 앉아 물레 돌린다.
豆飯泔漿暖似春 콩밥과 미음 장국 따뜻하기가 봄 같고
菁根軟白作菹新 무뿌리 연하고 새하얀 겉절이 만들었네.
田家晩食甘如蜜 시골의 늦은 식사, 달기가 꿀 같으니
不識人間有八珍 알지 못하겠네, 인간 세상의 여덟 가지 진미가 있다는 걸.
藁莖織處葛皮連 짚신 짜는 곳에 칡껍질 널부러져 있으니
一對鞋成直一錢 짚신 한 켤레면 한 푼의 가치라네.
累累擔肩翁出市 켜켜이 어깨에 매고 노인네 저자에 나가니
換來精粲與乾鯿 정미된 쌀과 건어물 바꿔서 돌아오리.
食簞納鼎竈微煙 음식 광주리를 솥에서 쪄 넣으니 부뚜막에 잔잔한 연기 이는데
燈下村娘枕手眠 등불 밑 시골 새색시 손 베개하며 잠들었네.
夫壻鷄鳴趁遠市 남편은 새벽닭 울 때 먼 시장으로 나갔으니
歸時說在月高懸 돌아와선 “달이 높다랗게 떠있던데.”라고 말하겠지.
●다음 인천의 노래 <인주요(仁州謠)>는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 18세기 시인 유유재(悠悠齋) 이규상(李圭象 1727~1799)의 작품이다. 모두 9수(首) 칠언절구를 나열해 완성했는데 그 압운자(押韻字)는 ‘陽’, ‘庚’, ‘侵’, ‘支’, ‘先’, ‘虞’, ‘歌’, ‘眞’, ‘虞’이다. 시인은 서해안 어촌의 인천(仁州)의 풍경과 바닷가 마을 어민의 삶의 모습과 풍속을 이 글을 통해 질박하고 긴밀하게 그려내었다.
궁벽진 시골 인천에는 어부의 아내는 광주리 이고 남편은 전립 쓰고 물고기 조개 어장에서 매일 일한다. 발을 엮어 서까래 늘어놓고 조수 들락 하면 소라, 게, 물고기, 새우가 꽉꽉 들어찬다. 아낙들이 갯벌에서 조개와 낙지를 경쟁하듯 갈고리로 잡는데 마치 갯벌에서 바느질하듯 파서 잡아 담는다. 음력 5월 보름 즈음에 준치가 포구로 올라오면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화려하고 번성한 파시가 형성된다. 어부가 한 자가 넘는 숭어를 아가미에 새끼로 꿰어서 달아맨다. 숭어는 어살 친 어부에게 잡힐까봐 물속에 몸을 숨긴다. 가마솥에다 소금을 굽는 부엌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솥에 흰 눈이 쌓여 있는 듯하다. “바닷물에 기대 사는 삶이라 비웃지 마소. 모든 백성들이 이 소금을 먹는다오.” 4월에는 바람 온화하고 파도가 잔잔하여 수많은 조운선이 일시에 포구 앞을 지나간다. 대포 소리 울리고 붉은 깃발 허공에 일렁인다. 나루의 관리들은 재빨리 배들을 맞이한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수로에는 조운선을 비롯한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간다. 특히 강화도 덕진진과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덕포진, 그리고 인근에 있는 손돌묘 아래 벼랑에는 파도가 무수히 때린다. 손돌(孫乭)이란 사공이 바다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 속에, 뱃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며 만선의 풍어와 선박의 안전을 기원한다. 용유도(龍流島)의 말은 최상품이나 야위어 뼈가 솟아 있다. 목동이 찾아와 살펴보곤 그냥 가버린다. 늘 그렇듯 서해의 온 바다와 산에는 구름 떠다니고 때론 우레 치며 비를 내린다.
3) 인천의 노래 「인주요(仁州謠)」 칠언절구 9수 / 이규상(李圭象 1727~1799)
仁州風俗似窮鄕 인천의 풍속이 궁벽진 시골 같아
不識靑雲有玉堂 높은 사람들의 옥당이 있다는 걸 모르네.
女戴草囊男氈笠 아내는 광주리 이고 남편은 전립 쓰고
日生忙出蛤魚場 해 뜨자 바삐 물고기 조개 어장에 나가보네.
編箔排椽截海橫 발을 엮고 서까래 늘어놓아 가로지른 바다 끊으니,
重重圈作內中城 겹겹이 이은 안쪽은 내성 같구나.
潮來潮去須臾後 조수 들락날락하니, 잠시 후
螺蟹魚蝦戢戢盈 소라, 게, 물고기, 새우가 꽉꽉 들어찼구나.
童蛤淺埋大蛤深 어린 조개 얕은 곳에, 큰 조개 깊은 곳에 묻혀
絡蹄巢穴杳難尋 낙지가 숨은 구멍 까매 찾기 어렵네.
浦娘競把尖鉤鐵 갯벌의 아낙들 경쟁하듯 날카로운 갈고리 잡고서
細掘融泥似捻針 갯벌 세밀하게 파내는데 바느질 하는 것 같구나.
端陽過後一旬垂 단오가 지난 뒤에 열흘 정도 더 지나면
政是鰣魚上浦時 바로 이때 준치가 포구로 올라올 때이구나.
馬賈船商來又去 말을 탄 장사꾼과 배를 탄 장사꾼이 오고 가니
繁華粧點碧波涯 푸르른 바닷가가 번성하니 화려하게 꾸몄어라.
拿得鯔魚一尺全 숭어를 잡아끌어 올려보니 한 자가 넘고
瞥然飜手索頭懸 별안간 손을 날려 머리를 찾아 달아맨다.
忙從別浦潛身出 바삐 쫓아가 특별한 포구에서 잠긴 몸을 드러내는데
或恐看於箭主前 혹여나 어살 친 주인에게 보일까 봐 두려워해서라네.
蜂窠燕壘闢鹽廚 벌집인 듯 제비집인 듯 소금 삶는 부엌이 늘어서있고
鹽釜鹽成白雪鋪 소금 솥에 소금이 말라가니 흰 눈처럼 퍼졌구나.
寄水生涯君莫笑 바닷물에 기대 사는 삶이라고 그대는 비웃지 마소.
五行民食一般需 세상 모든 백성들이 두루 먹는 소금을 구함이네.
四月風和平海波 사월에 부는 바람 온화하고 파도가 잔잔하니
漕船千百一時過 세미 실은 수많은 조운선 일시에 지나가네.
大砲聲放紅旗颭 대포 소리 울려 퍼져 붉은 깃발 허공에 일렁일 제,
津吏迎舠似擲梭 나룻터의 관리들은 북 던지듯 재빠르게 배를 맞이하네.
孫石墳前潮打垠 손돌의 무덤 앞에 밀물이 벼랑에 부딪히니
精靈竟作海中仙 손돌의 혼 마침내 바다의 신선이 되었다지.
船人到此齊虔告 뱃사람들 여기에 이르러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지만
不盡風波禍福人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으니 화와 복을 준다네.
[주1] 손돌(孫石) : 음력 10월 20일경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 고려 시대, 왕이 강화로 피란할 때 손돌(孫乭)이란 사공의 배에 탔는데, 왕이 그를 의심하여 죽인 후 해마다 그 즈음이 되면 추워지고 큰 바람이 분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손돌풍(孫石風)은 음력 10월 20일경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을 말한다.
龍流島上産龍駒 용유도에서 최상품은 뛰어난 말이라지만
蒼白毛中聳骨癯 창백한 터럭 가운데로 뼈가 솟아 야위었네.
牧子來尋空見跡 목동이 찾아왔으나 헛되이 살펴보고 가버리니
雲騰雷掣海山紆 구름 오르고 우레 치며 바다와 산을 감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