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 페트라(Petra)
요르단 관광의 대표적인 명소이자 BBC에서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40곳’에 선정된 신비로운 사막 위의 고대도시 페트라!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돼 서구 세계에 그 잊혀졌던 과거의 영화로운 모습을 드러낸 페트라를 두고 영국의 시인 존 버건 신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영혼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여”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3시간을 달려온 사막 한 가운데 사암과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협곡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와 같은 고립된 고대 도시 페트라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수직으로 깍아지른 절벽을 조각칼로 깍아 내려 온 듯한 암벽도시의 놀라운 석조건축술과 장미 빛이 도는 아름다운 사암이 뿜어내는 빛의 향연에 매혹됩니다.
우리에게는 유명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후의 성배”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졌습니다.
페트라는 1985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지금까지도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곳 페트라의 주인이었던 고대 나바테아인들과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 고대도시의 주인으로 알려진 나바테아인들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략 기원전 4세기경부터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며 당시의 대상무역이 이루어지는 육로에서 멀리 떨어진 숨겨진 협곡의 페트라에 자신들만의 은둔처를 만들었던 것이 페트라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중 기원전 1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그리스의 지배가 약해진 틈을 타 유향과 각종 희귀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며 부를 축적해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당시 실크로드와 왕의 대로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던 페트라는 새로운 대상무역의 거점으로 떠올랐고 나바테아인들이 이집트에서 데려온 석공들과 여러 장인들이 이 신비로운 고대 도시의 암벽을 조각해 1km가 넘는 좁은 협곡을 따라 들어가면 절벽들에 둘러 싸인 웅장한 석조건축의 절절을 보여주는 고대 도시의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서기 2세기경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로마제국이 아라비아 사막에 새롭게 개척한 무역로로 인해 페트라는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들이 이룩해 놓은 석조건축술을 보면, 초기의 투박한 나바테안의 건축술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부터 주변 국가의 유명한 석조건축의 장인들이 투입되면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양식으로 발전하다 종국에는 로마시대의 세련된 모습까지 갖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바테안들은 그들 고유의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만 지극히 단편적인 자료들만 남아 있어 그들의 역사와 문화, 사상들을 엿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사료연구가 되지 않고 있고 이토록 번성했던 고대왕국을 건설했던 이들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는 것 자체가 수수께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페트라의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나바테안들이 이 곳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기원전 1세기 훨씬 이전부터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7000년 경의 문명의 흔적들도 발굴된다고 하니 하루 아침에 이곳이 나바테안들에게 발견돼 고대왕국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구약성서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장손이었던 에서가 이끌던 에돔족의 땅이라고 기록이 돼 있습니다. 페트라는 바로 그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기원전 1400-1200년)로서 에돔의 셀라(셀라는 히브리어로 ‘바위’라는 뜻)라고 불리었습니다. 현재의 Petra도 그리스어 바위라는 뜻이니 그 당시에도 동일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로마시대의 지배하에 있다가 서기 7세기경에 아랍 이슬람 세력하에 요르단이 복속되면서 완전히 잊혀진 고대왕국이 사막 속에서 1812년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잠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페트라를 방문한 사람은 이 매혹의 고대 도시를 보기 위해 하늘을 가릴 듯이 좁고 낮게 이어진 1km가 넘는 시크(Siq-협곡)를 지나가야 합니다. 페트라로 통하는 유일한 입구인 이 곳만 막으면 그 어떤 군대도 침범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입니다. 고대 도시의 수로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이 시크를 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사방이 탁 트이는 곳에 이르면서 페트라의 웅장한 석조건축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알 카즈네를 만나게 됩니다. 암석을 파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조각한 이 신전같기도 하고 궁전같기도 한 2층 형태의 건물과 함께 주변에 산재한 수 많은 무덤들을 볼 수 있습니다.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알 카즈네는 한때 이곳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고대의 보물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페트라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인 데이르(수도원)는 원래 나바테안들이 세웠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비잔틴 시대를 거쳐 오며 예배의 장소로 쓰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지금도 수도원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트라의 건물들 내부는 복잡하지 않은 방들로 구성돼 있는데 암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물결무늬의 다채로운 색깔과 기하학적인 무늬들로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합니다.
그 외에도 이집트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파일런(탑문) 구조를 가진 건출물과 거대한 바위산 자체를 깍아 만든 33층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로마식 원형극장은 너비가 40m에 이르며 최대 3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 페트라를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페트라의 웅장하고 신비한 유적들과 더불어 페트라 남쪽의 사막 와디 럼을 방문해 사막사파리를 즐기기도 합니다.
현재 페트라 주변에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윈들이 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전에는 페트라 안의 무덤과 사원들 내부에서 살기도 했지만 요르단 정부에서 페트라의 보존과, 관광객들에게 본격적으로 개방하면서 더 이상 페트라 내부에서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지금은 주변의 사막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원래의 생업인 양과 염소를 치는 유목생활도 하지만 페트라에서 관광업에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유적 발굴현장에서도 일하며 오랜 세월 동안 살아 온 페트라 주변에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전설의 고대 나바테아인들의 왕국, 암벽도시 페트라는 그 신비한 자연경관과 잊혀진 전설 같은 나바테안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이번 이집트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대의 어느 시점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은 웅장하고 화려한 고대 문명의 연장선상에서 요르단의 페트라를 보신다면, 몇 천 년의 시간을 이어가며 문명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첫댓글 빨리 가고 싶어여~~ㅎㅎ
저도 빨리 가고 싶어요~! 근데 예전에 제가 페트라 갔을 때 그 사막에 누워 있는 주인 없는 개한테 물렸었어요 ㅠㅠ 울 회원님들은 그런 일이 없으시길..
와우 정말 대단하네요. 과학이 발달된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대문명의 유적들을 보면 타암머신을 타고 휙 떠나고픈 유혹에 빠집니다. 터어키의 가파도키아도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이집트와 페트라 기대감이 더욱 부풀어갑니다
아~대단하네요 ^^ 사진만 봐도 가슴이 셀렙니다 ^^
페트라 들어갈 때 말타는 구간이 있는데 다들 괜찮으시겠지요?? ^^
몽골에서 말타기 했는데~~크흐!
이런곳에서는 정말 '사진기술 좀 제대로 배워놀걸~"하는 아쉬움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