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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송 베스트 100 [1]
2016.06.08 14:20
1. En Blue Jeans Et Blouson Deuir (블루진과 가죽잠바)
-Adamo아다모가1964년에부른곡으로락과팝이적절히조화된노래이지요. https://m.youtube.com/watch?v=2UX3DXOcmp4
1962년, 아다모 시대의 서막을 장식한 히트 곡 ‘쌍 뚜아 마미’로 데뷔한 아다모는 1943년 11월 1일, 이탈리아 시실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벨기에의 예마페라는 광산 지역으로 이주, 그의 아버지가 탄광 광부로 일하며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천성적으로 음악을 좋아해 노래가 끊기는 날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18살 때 가족들 몰래 노래 콩쿠르에 나가 입상하면서, 아버지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1962년 벨기에에서 19살의 나이로 ‘쌍 두아 마미’를 발표하자마자 이 곡은 전 유럽으로 퍼지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이듬해에는 ‘블루진과 가죽 잠바’와 ‘눈이 내리네’로 아다모의 인기는 계속되지요. 아다모의 노래는 기존의 샹송에서 강조되어 온 문학성 대신 음악성 특히 멜로디에 중점을 두어 인기를 끌었고, 그의 레코드는 프랑스에서만 2,500만장,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900만장 그리고 남미와 동남아 등지에서 6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하지요. 그의 노래는 어떤 내용의 샹송이건 향수가 담겨있고 따스한 인간미와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에 프랑스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나라에서 더욱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 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 - Adamo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내리네’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아다모의 노래인데 1963년도 프랑스 인기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1963년에 아다모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그가 프랑스 태생이 아니라서 오리지널 프랑스 발음과 약간 다르게 들리지요.
3. Valse Dete (지난 여름의 왈츠) - Adamo 아다모가 1965년에 부른 노래. 지난 여름날의 추억을 꿈같이 노래한 아다모의 친근한 목소리가 일품이지요.
4. Sans Toi Mammie (네가 없다면) - Adamovette Girud 1963년도에 아다모가 불러서 히트시킨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 모든 게 끝이란 걸 난 안다. 네 사랑은 떠나갔으니까. 한 번 더 둘만이 사랑할 순 없겠니? 네가 외면 한다 해도 내 한탄은 네 탓이 될 수 없으리.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다오. 둘만이 함께 했던 즐거움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예전의 사랑을 떠올리며. 네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 기대도 없는 어두운 나날들이겠지. 네가 없다면, 난 아무 의미 없이 그저 떠돌 뿐이지. 난 모든 것을 잃은 듯 어두운 하늘 밑에서 떠돌 뿐이지. 거리에서 우리 시선을 끌던 계집애들의 순진한 모습에 옛날이 떠오르나니 그 모습은 뇌리에 아직 남아 있노라. 나 너한테로 가 내 마음을 털어 놓으리. 나를 너를 이끌어 주리, 넌 나만의 별이 되리. 네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괴로울 뿐, 아무 기대 없는 어두운 나날이겠지. 네가 없다면.
5. Les Clouches De Bourgongne (부르고뉴의 종) - Anais 노르웨이 출신의 샹송 가수로 아나이스가 1993년도 부른 곡. 광고 배경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Anais의 본명은 Anais Hantelle으로 어릴 때부터 클래식전문학교에 다녔는데 12살 때,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파리의 유명한 오페라 좌에서 푸치니의 ‘라보엠’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Rock'n Roll 세대이지만 중세 미사 양식의 하나인 ‘Agnus Dei’에 영향을 받았고 슈베르트의 가곡을 즐겨 불렀습니다. 그녀가 대중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이자 가수,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남편인 Didier Barbelivien을 만나면서. 그리고 앨범 작업을 하면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샹송계의 거장 두 사람을 만나는 행운까지 얻게 되는데 그 두 사람은 바로 Michel Polnareff와 Veronique Sanson입니다. 그녀의 노래 중 아련한 곳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이 노래는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고 우리나라 모 화장품의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주디 콜린스, 제인 버킨, 애니 해슬램에 버금가는 감성이 있고 맑으며 신선하지요. 또한 그녀의 음악세계는 발라드, 스윙, 댄스 등 다양합니다. 정지상태를 싫어하고 여행을 즐기는 그녀의 성향처럼, 그녀는 지금도 존 레논과 미셸 폴라레프를 사랑하고 차가운 샴페인을 즐기는 아티스트. 1960, 70년대에 세르쥬 갱스브루와 제인 버킨의 환상적인 커플이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디디에 바르블리비엥과 아나이스 커플이 커플 스타의 대를 이어가고 있지요.
6. Viens Valse Avec Papa (아빠와 함께 춤을) - Andre Claveau 미국의 스탠더드 팝 넘버를 프랑스어로 개사해서 앙드레 끌라보가 1960년대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벨기에 야코 판 도르멜 감독의 영화 ‘토토의 천국’에서도 흘러나오는데 노래 중간에 ‘엄마도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단다, 아가야. 엄마랑 아빠랑 둘이서 이렇게 춤추곤 했었지...’ 하는 노랫말이 사실은 가슴 아픈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조금도 감상적이거나 슬프지 않지요. 특히 6살 먹은 여자아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너무 행복하게 들리는 그런 노래입니다.
7. Autour De Toi Helene (엘렌느 네 곁에) - Anthony Dupray 앤써니 듀플레이가 1990년대에 발표한 아름다운 샹송으로 우리나라에서 각종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였지요.
8. Salade De Fruits (과일 샐러드) - Bourvil 1959년도에 부르빌이 부른 대표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CF 배경음악으로 Lisa ono가 리메이크한 곡이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네 어머니는 너에게 과일 샐러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 아! 정말 예쁜 이름이야. 네 하와이 조상들의 이름을 따라서 말야. 넌 그 이름이 멋짐을 인정해야 해. 예쁘고도 예쁜 과일 샐러드. 넌 내 아버지의 마음에도, 내 어머니 마음에도 들었어. 예쁘고도 예쁜 과일 샐러드. 언젠가는 꼭 우리는 하나가 될 꺼야. 바닷가 오두막집에는 파인애플과 코코넛 열매들이 늘어져 있지. 이미 난 그것들을 맛보았기에 이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네 입술의 과일 맛은 기꺼이 받아들일 거야. 난 옷을 다 벗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거야. 은빛 물고기들에게서 너를 데려오기 위해 빛을 내는 조가비들도 함께. 그렇긴 하지만 반면,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
9. Quand Refleuriront Les Lilas Blancs (라일락꽃 필 무렵) - Charistian Borel 1998년도에 발표한 크리스티앙 보렐의 대표적인 히트 곡.
10. Isabelle (이사벨) - Charles Aznavour 샤를르 아즈나블이 부른 대표적인 샹송으로 1964년에 발표한 작품.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부모는 아르메니아인으로 예능인이었던 부모의 소질을 이어받아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무대에 섰습니다. 1942년에 가수로 데뷔한 그는 1946년에는 노랫말도 쓰기 시작, 먼저 작사가로서 인정을 받았지요. 그 후 에디뜨 피아프에게 인정을 받아 솔로 가수가 되었고 그 때부터 작곡을 시작, 그가 1963년도에 작곡한 ‘라마마’는 ‘고엽’ 이 후 최대 걸작 곡으로 꼽히지요. 그는 배우로서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습니다. 오랫동안 나의 마음은 고독했지요. 깨어날 줄 모르던 나의 마음은 그러나 당신의 음성에 나의 고개는 들리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었죠.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내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나무껍질 사이에 손가락을 넣는 것처럼 나의 피부 깊게 사랑이 스며들었죠. 그처럼 강한 주장과 그처럼 강력한 힘은 평안과 안식마저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이사벨 내 사랑이여.
샹송 베스트 100 [2]
2016.06.09 01:13
11. La Boheme - Charles Aznavour 샤를르 아즈나브르가 1964년도에 부른 노래. 1965년 말, 파리의 샤트레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오페레타 ‘무슈 카르나발’에 삽입되었던 곡이지요. 이 오페레타에 등장하는 노래들 중에서 가난한 미술 학도가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가 가장 인기를 얻었지요. 이 노래는 샤를르 아즈나불이 부른 곡이 가장 많이 알려졌고 그밖에 조르즈 게타리나, 니콜, 크로와질 등이 불렀습니다. 당신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20년 전의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 무렵 나의 창가에 있는 나무에서 리라꽃이 피었지요. 두 사람의 사랑 보금자리는 누추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거기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굶주림에 지쳐 있었고 그대는 누드모델을 하고 있었지요.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건너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가끔은 가까운 카페에서 정식을 주문하기도 했지요. 언제나 배고파 초라했지만 정식을 먹을 때는 신났습니다. 따끈하고 맛있는 식사를 앞에 놓고 냅킨을 들 때면 난로 둘레에 모여 겨울을 잊고 시를 읊기도 했지요.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그대가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갖가지 재능을 갖고 있어요. 캔버스 앞에서 아름다운 허리의 곡선을 데생하며 온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종종 있었지요. 그리고는 서로가 감동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지요.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이었지요. 라 보엠, 라 보엠. 그것은 두 사람이 20살이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청춘의 공기를 마시며 살았어요. 어느 날, 문득 옛날에 살던 집 근처에 가보았어요. 그러나 우리의 추억은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요. 내 청춘의 벽과 그 거리도... 계단 위의 아뜰리에를 찾았지만 아무데도 없었지요. 리라꽃도 시들어 버렸어요. 라 보엠, 라 보엠. 우리는 젊고 어리석었어요. 라 보엠, 라 보엠. 그 말에는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답니다.
12. Yesterday When I Was Young - Charles Aznavour 1968년에 샤를르 아즈나브르가 부른 그의 대표적인 히트 곡. 이 노래의 원제목은 'Hier Encore'(지금도 어제 같아라.)입니다. 이 노래는 1966년에 Herbert Kretzmer가 프랑스어 가사를 영어 가사로 옮겼고 몇 년 후, Roy Clark이 불러서 널리 알려지게 되지요. 인생의 내리막에서 지난 날을 회상한다는 점에서 Frank Sinatra의 'My Way'를 연상케 하는데 '난 내 방식으로 이만큼 이루었어.'라고 잘난 척하는 'My Way'보다 지난 날의 회한과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가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인생이란 내 혀끝에 닿는 빗물마저 달콤한 맛 같았는데 어리석은 장난처럼 애태웠던 추억만이 밤바람에 나부끼는 촛불처럼 아롱거리네. 셀 수 없이 많은 꿈을 꾸었고 장대한 계획을 세웠었건만, 어쩌랴, 흐르는 모래처럼 나약하게 되었을 뿐. 한낮의 밝은 빛을 멀리하고 환락의 밤만을 위해 살던 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세월만 덧없이 흘렀네. 내가 젊었을 때 끝도 없이 마시며 노래하며 즐겼고 오직 유흥만이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즐겼지. 하지만 지금은 내 현혹된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고통만이 남았지. 시절과 젊음은 결국 그렇게도 빨리 보내버렸으니 인생이 그런 것이란 생각을 떨칠 줄 모르고 이제 와서 되돌려 보려 온갖 몸부림을 쳐보지만 결국은 나 자신 뿐, 아무도 남는 건 없느니. 지난날 푸른 달빛 따라 유흥으로 지새던 나날들이 내게는 새로움도 가져왔지만 지금 생각하니 꿈만 같았던 내 지난 인생이 낭비와 무의미한 공허의 피안을 맴돌고 있네.
13. Les Amants (연인들) - Charles Dumont 노래하는 시인, 에디뜨 피아프의 전 남편으로 유명한 샤를르 듀몽이 1601년도에 부른 아름다운 사랑 노래. ‘연인들’이란 제목의 이 노래는 두 사람이 이혼한 후에 발표해서 당시 다시 부부로 합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을 낳기도 했지요. 이 노래를 발표한 후,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 연인사이로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4. Ta Cigarette Apres Lamour (사랑한 후에 담배를 피우죠) - Charles Dumont 1967년에 부른 샤를르 듀몽의 대표적인 히트 곡.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으로, 남편으로 많은 작업을 같이했던 샤를르 듀몽은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재즈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전쟁 후 여러 샹송 가수의 반주를 하면서 작곡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우연히 시인 ‘프랑시스 카르코’의 눈에 들어 ‘노트르담 사원의 탑 아래서’ 라는 시를 받아 거기에 곡을 붙였고 1955년, 코라 보케르가 초연해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지요. 사랑한 후에 당신은 담배를 피우죠. 나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녀를 바라봐요. 내 사랑. 그건 언제나 같은 일이랍니다. 당신은 이미 또 다른 일을 생각하죠. 또 다른 일을 말이에요. 사랑한 후에 당신은 담배를 피우죠. 나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녀를 바라봐요. 내 사랑. 새벽이 오면 사랑도 사라질 거예요. 슬그머니 스며드는 푸른 담배 연기처럼 이 사랑은 사라져 버릴 거예요. 밤은 연인들을 이끌어내죠. 저는 이제 아무 것도 고백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낮에 저는 빈손으로 들어가죠. 사랑한 후에 당신은 담배를 피우죠. 나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녀를 바라봐요. 내 사랑. 당신은 벌써 당신 얼굴을 다시 매만지네요. 당신의 습관과 당신의 나이. 그것도 당신의 나이. 사랑한 후에 당신은 담배를 피우죠. 나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그녀를 바라봐요. 내 사랑. 나는 절대 이 세계를 다시 찾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세계로의 발걸음은 언제나 우리를 안식처로 돌아오게 했지만,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감정에 빠져든다 할지라도 당신과 나 누구에게도 사랑을 주지는 못할 거예요. 새벽이 오면 우리는 다시 정신을 차리겠죠. 사랑을 한 후에 피우는 당신의 담배가 사랑과 맞부딪혀 다 타버렸어요. 내 사랑.
15. La Mer (바다) - Charles Trenet 1945년에 발표한 샹송의 영원한 고전으로 샤를 트레네가 작사, 작곡을 해서 불렀지요. 맑은 해변을 따라 춤을 추는 바다 빗방울 속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 뭉게구름과 천사의 나래처럼 투명한 여름 하늘이 바다와 함께 어우러집니다. 끝없이 푸르른 하늘을 지켜주는 바다. 보세요. 호수 옆에서 자라나는 물기 머금은 갈대숲을 보세요. 하얀 새들과 쓰러져가는 집들을. 맑은 해변을 따라 춤추는 그들을 감싸 주네요. 사랑의 노래로 바다는 언제나 내 마음을 달래주네요.
16. Voyage Au Canada (캐나다 여행) - Charles Trenet 1962년 작품으로 샤를르 트레네의 대표작. 남성 가수 겸 작사, 작곡가로, 샹송에 재즈의 요소를 도입했지요. 1913년 5월 18일, 프랑스 남부의 나르본에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 7살 때 최초의 샹송을 만들었고 그 곡은 지방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7살에 파리에 나가 촬영소의 조수를 하다가 피아니스트 조니 에스와 알게 되어 '샤를과 조니'라는 2중창 팀을 만들어 데뷔를 하지요. 1936년, 군대에 가서 영창 안에서 만든 샹송 '기쁨 있도다.'를 1937년, '카지노 드 파리'의 르뷔에서 모리스 슈발리에가 불러 이름이 알려집니다. 1938년 ABC 극장에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Boum'으로 같은 해 디스크 대상을 수상, 1950년에도 이 노래로 수상을 하지요.
17. La Chanson De Prevert (프레베르의 노래) - Clarie Dasta 1980년대에 발표된 샹송. 이 노래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를 노래로 만든 ‘고엽Les Feuilles Mortes’에 얽힌 추억을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래서 곡의 첫 소절이 ‘고엽’의 첫 부분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자크 프레베르는 우리나라에도 그의 시집이 번역되었을 정도로 잘 알려진 20세기 프랑스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시인입니다.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도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고 하지요.
18. Comme D'habitude (나의 길) - Claude Francois 감전사로 세상을 떠난 샹송 가수 ‘클로드 프랑수와’가 1968년에 발표한 곡. 1969년 프랭크 시나트라가 My Way라는 제목으로 불러서 잘 알려진 노래입니다. 1939년 2월 1일, 이집트에서 태어난 남성 가수로 17살 때 프랑스에 왔으며, 몬테카를로의 클럽에서 타악기 주자가 되었지요. 1962년, 파리에서 가수로서 데뷔하였고, 1963년 ‘천사의 해머’라는 노래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자작곡과 포크송을 즐겨 부릅니다.
19. La Complainte Du Roi Renaud - Cora Vaucaire 1995년에 발표한 코라 보케르의 곡으로 은근히 인기를 얻고 있는 샹송이지요. 시적인 정서에 넘친 노래를 들려주는 뛰어난 여성 가수이자 마르세이유 출신의 배우였으나 1939년, 파리방송국의 아마추어 노래자랑에 우승하면서 가수로 전향했지요. 또 1941년, ABC 극장의 신인 콩쿠르에서 '부드러운 샹송'을 부르고 1위가 되어 에디뜨 삐아프와 프레르에게 인정받았지요. 1955년, 'Rose Blanche'를 포함한 LP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La Tomate'라는 캬바레의 경영자가 되어 거기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인 미셀 보케르의 부인이기도 합니다.
20. Paroles Paroles (달콤한 속삭임) - Dalida 달리다와 아랑 드롱이 함께 발표한 1970년대에 발표한 곡. ‘달콤한 속삭임’이란 제목처럼 로맨틱하게 부른 노래입니다. 1935년 1월 17일, 이탈리아 카라브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여성 가수로, 본명은 요란 다 질리오티. 어린 시절에 이집트의 카이로로 이주해서 살다가 1954년, 미스 이집트로 선발되자 몹시 좋아하는 노래로 출세할 결심을 하고 같은 해 말에 파리로 건너가지요. 몇 개의 카바레에서 출연한 뒤 1956년 4월, 올렝피아 극장의 오디션에 합격을 합니다. 심사위원 뤼시앙 모리스의 눈에 들어 결혼까지 하고, ‘밤비노’라는 오래를 취입, 데뷔하면서 인기 가수가 됩니다.
샹송 베스트 100 [3]
2016.06.11 01:09
21. Les Goelands (갈매기들) - Damia 다미아가 1947년도에 발표한 곡으로 그녀의 대표곡이지요. 1992년, 파이레서 태어난 여성 가수로 본명은 라마리즈 다미앙. 샤트레 극장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로베르티의 도움으로 괴테 몽파르나스 극장에서 데뷔를 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사샤 기트리의 눈에 띄어 아랑브라 극장에 출연한 뒤부터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프레르, 이본 조르주와 함께 프랑스 샹송계의 3대 현실파 가수의 한 사람으로 ‘Les Goelands’, ‘Sombre Dimanche’, ‘Tu Ne Sais Pas Aimer' 등의 히트곡이 잘 알려져 있지요.
22. Sombre Diamanche (우울한 일요일) - Damia 에디뜨 피아프와 함께 1세대 샹송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 다미아가 1936년도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일요일은 우울해요. 잠이 들지 못해 방황하는 시간들, 나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두운 그림자들. 작고 하얀 꽃들도 결코 당신을 깨우지 못하고 슬픔으로 가득한 죽음의 마차도 당신을 아무데도 데려가지 못하죠. 천사들은 당신을 결코 되돌려 보내줄 생각도 없으니 내가 당신과 하나가 되려 한다면 천사들이 화를 내게 될까요? 우울한 일요일. 하루 종일 그림자와 함께 보내는 일요일은 우울해요. 난 혼신을 다해 이 모든 걸 끝내리라 결심했지요. 곧 슬픔에 젖은 꽃들과 탄식들로 가득하게 되겠죠. 난 알고 있어요. 그들이 눈물짓지 않게 하세요. 내가 떠나는 게 기쁘다는 걸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죽음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에요. 죽음 안에서 내 영혼의 마지막 숨결로 당신을 보듬어 줄 수 있으니까요. 당신을 축복해 주겠어요. 우울한 일요일. 꿈을 꾼 거예요. 단지 꿈을 꾼 것뿐이에요. 난 잠에서 깨어 사랑스런 당신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단 걸 깨닫게 되었죠. 내 꿈이 당신을 절대로 괴롭히는 일이 없기를 바래요. 단지 나의 마음이 얼마나 당신을 원했는지 당신께 속삭여 주는 것 뿐. 우울한 일요일에.
23. Domino - Danielle Vidal 1950년에 발표한 노래인데 앙드레 끌라보의 노래로 잘 알려진 샹송을 모로코 출신의 다니엘 비달이 리메이크해서 부른 곡입니다. 작은 몸집과 금발머리, 사파이어색의 눈동자를 가진 천사의 목소리 주인공 다니엘 비달.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사진 모델로 활동하며 프랑스 마르세유 음악 박람회에서 "에스페란사 상"을 수상하면서 전 유럽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신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타고난 그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로 음반 차트 및 음반판매량은 단연 1위. 일본에서는 1969년 8월, ‘천사의 낙서’라는 곡으로 데뷔해서 일본가요계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요. 더 빛을 본 것은 그 다음해 1월에 발매한 "캐더린"이라는 곡으로 오리콘 차트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The Best Of Lovely Theme 앨범 중 가장 돋보이는 '오 샹제리제'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25. Aux Champs Elysees (오 상젤리제) - Daniel Vidal 배우이자 모델로도 유명한 다니엘 비달이 1970년대에 발표한 노래이지요.
24. Mea Culpa (나의 죄) - Dany Dauberson 라틴어로 ‘나의 죄’란 뜻의 메아 쿨파는 엔지니어 출신의 아마추어 작사가 미셸 리브 고슈가 에디뜨 피아프에게 바치기 위해 1954년 작사한 노래이지요. 이 노래를 부른 대니 도베르송은 1926년, 리옹에서 태어난 여성 가수인데 영화 배급 회사를 경영하던 아버지는 그녀에게 영어와 노래를 배우게 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에 진주한 미군 장병들의 위문 쇼의 감독이 되어 그녀 자신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지요. 이집트를 6개월 동안 순회공연하면서 성공을 거둔 그녀는 파리에서 정식으로 데뷔를 하지요.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낮은 목소리를 지닌 독특한 매력을 그녀는 갖고 있습니다. 나는 자존심 때문에 눈 깜짝할 순간에 너의 전부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잘못을 저질렀어. 네게 내 인생을 바칠 때, 너에게 나를 주려고 했던 욕구 때문에 나는 잘못을 저질렀지. 그리고 욕망 때문에 네 눈의 그 반짝임으로 빛나게 되었고 나는 네 입술을 보았고, 멍해짐을 느꼈지. 나는 한없이 네 감미로운 입술을 마셨지. 그리고 난 불을 마셨지. 네 팔을 느꼈을 때, 나는 나태함으로 잘못을 저질렀지. 내 애무의 시초....내 잘못이야.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여. 첫 돌을 나에게 던져라. 사랑한 적이 없는 이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거절하라. 네게 화가 나서, 이 세상에 화가 나서 나는 잘못을 저질렀지. 음란함으로, 매일 밤, 너의 품속에서 잘못을 저질렀지. 하지만 나의 영혼은 순수했었어. 내 탓이지. 그리고 탐욕으로 인하여, 네가 그것을 커다란 느낌으로 더 잘 느끼기 위하여, 나의 가슴, 즉 도둑들의 피난처에 깊이 숨겼지. 그런 식으로, 너는 그것을 보았고, 나는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질렀지. 너 때문이 아니고. Mea culpa ! 하지만 언젠가, 만약 네가 그것을 요구한다면, 다시 시작하리라, 오, 내 사랑!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지.
26. Concerto Pour Une Voix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 Danille Licari 스캣 보컬이 일품인 다니엘 리카리가 1970년대에 발표한 노래.
27. Les Parapluies De Cherbourg (쉘부르의 우산) - Danille Licari 영화배우 카트린느 드뉘브가 주연했던 1964년도의 영화 ‘쉘부르의 우산’의 주제가로 다니엘 리까리가 아름다운 스캣 송으로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입니다. 다니엘 리까리는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지요. 그런 가족 분위기 덕분에 그녀는 5살 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고 그녀의 재능은 12살이 되던 해, 프랑스 국립 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 멤버가 되면서 본격적인 음악인으로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지요. 그녀는 18살 때 친구 2명과 함께 리듬 앤드 블루스를 주 레퍼토리로 하는 '르 바랑띠느'라는 그룹을 조직했지만 곧 그룹이 해산되어 솔로로 나섭니다. 그 후, 그녀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든 것은 1964년도. 이 해에 제작된 영화 '쉘브르의 우산‘의 음악을 맡았던 거장 미쉘 르그랑은 그녀에게 영화속의 주인공인 까뜨린느 드뉘브의 노래를 대신 녹음하자고 부탁을 하지요. 이 기회를 통해 그녀는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 스캣 창법의 가수로 주목을 받게 됩니다. 1970년도, 전 유럽은 물론 미주까지 크게 히트한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을 발표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스캣 창법의 여왕이란 칭호까지 듣게 되었지요.
28. Madrid - Dario Moreno 1950년에 발표한 샹송으로 다리오 모레노의 목소리로 널리 알려진 곡이지요. 다리노 모레오는 1911년 4월 21일, 터키의 스미르느에서 태어난 남성 가수이자 배우로서 아버지는 스페인인이고 어머니는 멕시코인. 2살 때 멕시코로 건너가서 거기서 자랐지요. 마이아치라고 불리는 향토 악단의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던 중 미국의 밴드 리더 막스 알렌에게 인정받아 그의 악단의 전속 가수로서 발탁됩니다. 1948년, 파리에 진출해서 이듬해 레코드와 무대에서 성공을 거둡니다. 1952년, 도빌 콩쿠르에서 티노 로시상을 수상했고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29. Hymme A L'Amour (사랑의 찬가) - Edith Piaf 1949년에 작곡해서 1950년 1월, 에디뜨 피아프가 노랫말을 붙여 부른 곡.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 피아프는 권투 선수인 세르당과 열애 중이었는데, 1949년 10월 28일, 그가 독일에서 경기를 마치고 그녀를 만나러 돌아오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해서 만든 노래라고 합니다. 푸른 하늘이 우리들 위로 무너진다 해도, 모든 대지가 허물어진다 해도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사랑이 매일 아침 내 마음에 넘쳐흐르고 내 몸이 당신의 손아래서 떨고 있는 한 세상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내게는 대단한 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만약 당신이 나를 원하신다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어요. 금발로 머리를 물들이라고 해도 하겠어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하늘의 달을 따러, 보물을 훔치러 가겠어요. 만약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버리고, 친구도 버리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나는 무엇이건 해 내겠어요.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당신의 인생이 갈라진다고 해도 만약 당신이 죽어서 먼 곳에 가 버린다 해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겐 아무 일도 아니에요. 나 또한 당신과 함께 죽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끝없는 푸르름 속에서 두사람을 위한 영원함을 가지는 거예요. 이제 아무 문제도 없는 하늘 속에서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30. La Vie En Rose - Edith Piaf 에디뜨 피아프가 이브 몽땅과 사랑에 빠졌던 1964년도에 발표한 노래. 영원한 샹송의 고전이지요. 내 시선을 내리깔게 하는 눈동자. 입술에 사라지는 미소. 이것이 나를 사로잡은 그 분의 수정하지 않은 초상화예요. 그가 나를 품에 안고 가만히 내게 속삭일 때, 나에게는 장미 빛으로 보이지요. 그가 내게 사랑의 말을 할 때는 언제나 같은 말이라도 나는 정신이 어떻게 되고 말지요. 내 마음 속에 행복의 분신이 돌아온 거예요. 그 까닭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나를 위한 그, 그를 위한 나라고 그 분은 내게 말했고, 목숨을 걸고 맹세해 주었지요. 그를 언뜻 보기만 해도 그 때 나의 내부에서는 맥박이 치는 심장을 느끼는 거예요. 끝없는 사랑의 밤은 커다란 행복이 넘쳐서 지루함과 슬픔은 사라져 버리지요. 행복으로 죽을 것처럼 되지요. 그 분이 나를 품에 안고 가만히 속삭일 때, 나에게는 인생이 장미 빛으로 보여요.
샹송 베스트 100 [4]
2016.06.11 01:13 31.
31. Padam Padam - Edith Piaf 에디뜨 피아프가 1951년에 부른 노래로 심장이 뛰는 소리로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러브 송이지요.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뜨 피아프(본명: Edith Giovana Gassion)는 1915년 12월 19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거리의 곡예사인 아버지와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커스 곡예사였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떠돌이 생활을 했으며 아버지가 거리에서 공연하는 동안 그녀는 돈도 벌고 노래도 부르면서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녔지요. 15살이 되면서 그녀는 아버지 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친구와 함께 독립하여 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카바레 주인에게 발탁되어 처음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했고 '참새'를 뜻하는 피아프라는 이름도 만들어 주지요. 이 노래 ‘빠담 빠담’은 프랑스어로 심장이 뛰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라고 합니다. 낮이나 밤이나 귀찮게 나를 따라 다니는 이 선율. 그러나 그것은 오늘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정도로 먼 곳에서 10만 명이나 되는 음악가들에게 끌려서 온 것이다. 어느 날, 이 가락이 나를 미치게 만들 것이다. 몇 번이고 까닭을 말하려 해도 그것이 내 말을 막고 있다. 언제나 내 앞에서 지껄여대며 그 목소리는 내 목소리를 덮어씌운다. 빠담, 빠담, 내 뒤에서 달려온다. 빠담, 빠담 기억해두라고 나를 쿡쿡 찌른다. 그 가락은 내게 손가락질 하고 나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모든 것을 외우고 그 뒤를 따른다. 그것은 말한다. 당신의 연인들을 생각해봐요. 이번에는 그대의 차례지요. 가슴속에 추억이 가득한데 그대가 울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라고..... 그리고 나는 나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나의 20살은 큰북을 치고 있다. 율동이 넘치는 그 리듬을 타고 모든 사랑의 코메디가 언제나 흐르는 가락 위에 시작된다. 빠담, 빠담, 파리제의 ‘당신을 사랑한다’ 빠담, 빠담, 살고 있는 ‘언제까지나’ 빠담, 빠담, 소망하는 대로 그 모든 것이 똑바로 거리 모퉁이에 떨어진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가락 위에... 빠담, 빠담, 들어 보세요. 그 야단법석을... 마치 나의 과거가 분열해서 행진하고 있는 것 같다. 슬픔은 훗날을 위해 간직해 두어야지. 나무로 되어있는 마음처럼 고동치는 그 가락 속에는 모든 음계가 있는 것이다.
32. C'est Bon Tout Ca Aquarette Et Jeumes Fi - Emmanuelle
1963년 7월 19일, 파리에서 태어난 엠마누엘은 홀어머니에게 자란 무남독녀로 원래 전공은 미술. 원래 잘 알고 지내던 도로테의 권유로 첫 45회전판 ‘난 널 마카오에서 불러’를 발표하고 5개월이 지나 1986년 5월 올렝피아 무대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요. 이 노래는 프랑스보다도 미국에서 더 인기가 있었던 그녀가 1975년에 불러서 인기를 얻고 있는 샹송.
33. Le Fusil Rouille (녹슨 총) - Enrico Macias
앙리꼬 마샤스가 1980년대에 부른 곡으로 전쟁의 폐해를 고발한 노래지요. 이 노래를 부른 앙리꼬 마샤스는 인종과 종교 문제로 갈등을 겪는 아랍권에서는 평화를 호소하는 평화의 가수라고 합니다. 1997년에는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고 평화를 전하는 순회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 태양이 바다를 불태우는 것을 보았어요. 화산이 땅을 갈라지게 하는 것도요. 사막에서 사라진 거대한 묘지와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는 것도 보았어요. 저는 별들이 하늘을 성당으로 바꾸는 밤들을 겪었어요. 세월이 풍상을 견뎌낸 무너진 돌담에서 자주 간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어느 날인가 한 병사가 자기 집이 있는 마을로 달려가기 위해 어두운 수풀 속 어디엔가 두고 온 녹슨 총 말이에요. 전쟁을 위해 북을 울려대는 이 세상에서 누가 사랑보다 전쟁을 더 좋아할까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더 이상 결코 쏘아지지 않을 녹슨 총보다. 저는 학자를 보았어요. 저는 사도를 보았어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요. 새 생명을 낳는 한 여인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난 눈물을 흘렸어요. 아침이슬을 받아 장미로 피어난 정원의 꽃들이 예쁘군요. 첫 사랑의 만남을 위해 아가씨가 거리를 달려가네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34. Solenzara (추억의 소렌자라) / Erico Macias
피서지인 ‘솔렌자라’에 얽힌 사랑의 추억을 담은 1960년대의 샹송으로 앙리꼬 마샤스가 가사를 썼고 도메니크 말피시가 작곡한 노래이지요. 북아프리카 알제리 태생의 남성 가수인 그는 아버지는 스페인 사람, 어머니는 프로방스 사람. 14살 때 처음으로 기타를 다루고 18살부터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가족이 전쟁을 피해 마르세이유로 이주를 했고, 그는 캬바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요. 1962년, 파리에서 성공하였으며, 1964년에 작곡한 '연심'이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지요. Solenzara 해변가에서 우리는 우연히 만났지. 어느 낚시꾼이 기타를 치며 여름밤에 노래를 불렀지. 이같이 감미로운 가락을 Solenzara 해변가에서 밤마다 우리는 춤을 추었고 낮이 되면 당신은 떠나갔지.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더 이상 당신을 떠나지 않았어. 그 아름다운 곡조를 내가 들을 때 그것은 그토록 많은 기쁨을 내게 주었어. 오늘 밤, 난 우리의 사랑이 그 삶을 얻을 것을 알아. Solenzara에서의 그 사랑만큼이나. Solenzara로 여름마다 난 거기로 다시 돌아 갈거야. Solenzara로
35. Les Yeux Ouverts (눈을 뜨고) - Enzo Enzo
이 노래를 부른 엔조 엔조는 4세대 샹송 그룹으로 1995년 개봉됐던 영화 ‘프렌치 키스’의 주제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이 추억, 당신께 돌려 드릴게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는 추억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항상 무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너무 지나치게 짐을 질 필요가 없어요. 이 추억, 당신께 돌려 드릴게요. 그런 추억들, 저는 항상 그 추억들을 원한답니다. 만일 인생이 실수로 우리를 갈라놓는다면, 저는 그것을 제 서랍에서 꺼낼 거예요. 그러는 게 저는 좋아요. 하지만 그런 것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저는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거기에서 왔으니까요. 열심히 내일을 위해 살아요. 저의 행복은 당신과 닮았답니다. 당신들 둘이 서로 아주 잘 어울려요. 제가 당신께 그것을 아무리 말한다 해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는 그 모든 것은 엄연한 사실이에요 저는 눈을 뜨고 꿈을 꾼답니다. 그러는 게 저는 좋아요. 하지만 그런 것이 오래가지는 않아요. 저는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제가 거기에서 왔으니까요. 열심히 내일을 위해 살아요. 마지막 체리 주 한잔. 내 사랑, 얼마나 저는 지루한지요. 매일 매일이 지금과 비슷해요. 저는 당신이 무척이나 보고 싶답니다.
36. Puopee De Cire Poupee De Son (꿈꾸는 샹송 인형) - France Gall
1965년, 제10회 유로비전 송 페스티발에 참가해서 그랑프리를 받았던 노래이지요. 프랑스 걀은 룩셈브룩크 태생으로 이 곡의 히트와 함께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샹송 가수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아티스트입니다. 나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내 마음은 샹송에 새겨져 있어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는 좋건 나쁘건 살롱의 인형에 지나지 않아요. 내게는 인생이 장미 빛의 봉봉 과자로 보여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의 레코드는 누구나 거기서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 나는 한 번에 수천 개나 되는 목소리의 파편으로 부서져 어디든 가지요. 내 주위에는 헝겊 인형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그것들은 내 샹송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어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좋든 싫든 그녀들은 유혹당하는 대로에요. 샹송 속에는 사랑 밖에는 아무 것도 없죠.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의 레코드는 누구나 거기서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 나는 한번에 수천 개나 되는 목소리의 파편으로 부서져 어디든 가지요. 까닭도 없이 이렇게 사랑을 노래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아요. 태양 아래의 금발머리 인형이에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그러나 언젠가 사내아이들의 정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자신의 샹송을 살릴 수 있게 되겠지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37. 13 Jours En France (하얀 연인들) - Francis Lai
1968년에 발표한 노래로 프랑스 영화 '프랑스의 13일'의 주제가입니다. Francis Lai의 피아노 연주곡이지요. 또 이 곡은 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영화 '남과 여'의 테마곡이기도 합니다. 1968년, 프랑스 그레노블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기록 영화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 중에서 준상과 유진이 눈 내린 남이섬에서 눈사람을 만들 때 나왔던 배경음악으로 유명합니다.
38. Comment Te Dire Adieu (어떻게 안녕이라고) - Francoise Hardy
프랑스와 아르디가 1969년에 발표한 샹송으로 우리나라에서 CF 배경음악으로 소개된 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저는 반사적으로 대하고 싶지 않아요. 유감스럽지만 당신은 저에게 해명해주어야만 해요.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기분 좋게 헤어져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싯돌 같은 제 마음은 빨리 흥분하지만 불에도 견뎌내는 유리 같은 마음을 가진 당신은 정열을 억제하죠. 저는 몹시 당황스러워요. 저는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답니다. 그 전의 사랑은 운이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주 조금밖에 없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저로서는 해명해 주기를 더 바라고 있답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저는 당신 앞에서 크리넥스로 저의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저는 잘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우리가 지낸 하얀 밤들과 우리가 맞이하던 을씨년스럽고 푸르스름한 새벽녘을 무시해버렸죠. 그래도 저로서는 해명해 주기를 더 바라고 있답니다. 어떠한 사정이 있더라도 결코 저는 당신 앞에서 크리넥스로 저의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저는 잘 알 것 같아요.
39. J'ai Rendezvous Avec Vous - Georges Brassens
1세대 샹송 가수인 조르주 브라상스가 1950년대 발표한 영원한 샹송의 고전입니다. 프랑스 몽마르트르의 언덕 위에 여가수 파타슈가 경영하는 ‘쉐 파타슈’(파타슈의 집)라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이곳에 그녀 외에 여러 가수가 출연했고, 손님에게도 합창을 시켜서 노래를 하지 않는 손님의 넥타이를 자르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바로 이 가게에서 데뷔한 위대한 가수가 바로 조르주 브라상스입니다. 그는 ‘현대의 음유 시인’ 또는 ‘전쟁 후 최대의 샹소니에’ 등이라 일컬어졌던 위대한 아티스트. 1921년 10월 22일, 남프랑스의 세토 태생으로, 아버지는 순수한 세또인이며, 어머니는 나폴리 출신의 이탈리아인이었지요. 그가 처음으로 레코드를 취입한 것은 1952년. 1966년에는 테아트르 나시오날 포퓔레르(TNP)에서 30회의 공연을 하면서 9만 명의 청중을 동원, 1967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시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갖가지 업적을 쌓으면서도 언론과는 등을 돌리고 독자적인 길을 걸은 특이한 아티스트입니다. 40. C'est Pour Mon Papa - Georges Milton 1960년대 샹송 계를 대표했던 조르주 밀튼이 1962년도에 부른 노래이지요.
샹송 베스트 100 [5]
2016.06.11 01:19 41.
40. Il Est Trop Tard (너무 늦었어요) - George Mousstaki
조르쥬 무스타키가 1962년도 발표한 노래. 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시인 조르지 브라상을 만나고 에디뜨 피아프의 기타 반주자로 활약하다가 일약 프랑스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가수가 되었지요. 그의 대표곡으로는 'Ma Solitude (나의 고독)'과 'Il Est Trop Tard (너무 늦었어요)', 'Le Facteur (우편 배달부)' 등이 있습니다. 내가 잠자던 동안, 내가 꿈꾸던 동안 시계 바늘은 돌아갔지. 너무 늦었어. 내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리 있고 이제는 벌써 내일이야.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아주 오래 동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내가 너를 사랑하던 동안, 내가 너와 함께 있던 동안 사랑은 가버렸지. 너무 늦었어. 너는 무척이나 예뻤지. 나는 홀로 내 침대 속에 있네.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아주 오래 동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지. 내가 노래하던 동안, 나의 소중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사슬로 묶어버렸지. 너무 늦었어. 어떤 사람들은 투쟁했어. 나, 나는 전혀 몰랐지.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아주 오래 동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지.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그렇지만 나는 사랑을 나누고 노래를 부르는 일조차 있지. 내 기타를 치며 지난 날 내 어린 시절을 위해. 내 아이를 위해 시간은 흘러 흘러가고 아주 오래 동안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없어. 내가 노래하던 동안, 내가 너를 사랑하던 동안. 내가 꿈꾸던 동안 그때는 아직 늦지 않았지.
42. Le Meteque (이방인) - George Moustaki
1964년도에 부른 조르쥬 무스타키의 노래로 읊조리는 듯한 창법이 일품이지요. 그는 1934년 5월 3일, 이집트의 알렉산드라에서 출생했습니다. 본명은 Joseph Moustaki. 국적은 그리스. 그의 부친이 알렉산드라에서 프랑스 책방을 경영해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어린시절을 보애지요. 그의 나이 15세 되던 해, 음악을 좋아했던 숙부가 그를 알렉산드리아의 번화한 환락과 음악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인생의 전환기가 됩니다. 1952년, 그가 17살 되던 해,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프랑스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지중해를 건너 파리로 가출을 하지요. 그는 파리에서 문학을 전공한 시인으로 서점과 클럽을 경영하고 있던 매형을 만나지요. 매형이 운영하던 그 클럽에서는 토론과 시낭송 행사가 자주 열렸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진실파 음유시인 죠르쥬 브라쌍을 좋아하게 됐고 나중에 싱어 송 라이터로서 토대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타 멜로디에 시를 써서 곡을 만드는 이 무명가수를 말없이 주시한 작은 여인은 바로 에디뜨 피아프. 그녀는 그를 자신의 기타 반주와 백 코러스 가수로 픽업하지요. 당시 에디뜨 피아프는 이브 몽땅, 샤를르 아즈나브르, 마르셀 세르당, 샤를르 드몽과의 사랑에서 실패, 마음의 동반자로 그를 선택하지요. 하지만 과거의 남자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그녀의 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합니다. 당신의 입은 이방인의 입. 유랑하는 유태인이나 그리스의 목자와 같네.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푸른 눈은 아주 드물게 꿈을 꾸는 당신에게 꿈꾸는 듯한 인상을 준다네. 당신의 손은 방랑자의 손. 많은 정원을 휩쓸고 다닌 방황하는 음악가의 손. 마시고, 키스하고, 갉아먹어 온 당신의 입술은 언제나 굶주리고 있어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네. 당신의 입은 이방인의 입. 유랑하는 유태인이나 그리스의 목자와 같네. 도둑, 또는 부랑자와 같네. 당신의 살갗은 따가운 한여름의 태양과, 그리고 스커트를 입은 여자라면 누구든지 접촉했네. 당신의 마음은 괴로워했다네. 괴로워 할 만큼 괴로워했다네. 그것만 없다면 성가신 일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당신의 심령에는 이미 연옥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마지막 희망도 없다네. 당신의 입은 이방인의 입. 유랑하는 유태인이나 그리스 목자와 같네.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나부끼고 있네. 당신은 나를 사로잡겠지요. 당신의 심령만이 훨씬 전부터 내가 찾고 있었던 생명의 샘. 당신은 나의 왕자님이 되겠지요. ‘몽상가’라든지, 아니면 ‘젊은이’라든지, 어느 쪽이 든 마음에 드는 호칭을 택해 주어도 좋아요. 어쨌든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매일 영원한 사랑을 하겠지요.
43. Ma Solitude (나의 고독) - Georges Moustaki
이집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샹송 가수 조르주 무스타키가 1960년대에 발표한 노래로 메시지가 있는 노랫말과 친근감이 넘치는 보컬이 일품입니다. 너무나도 자주 잠들었기 때문에 나의 고독과 더불어 난 나의 고독을 거의 여자 친구로 삼았지. 달콤한 습관으로 삼았지. 나의 고독은 나를 한 발짝도 떠나지 않아 그림자처럼 충실하게. 나의 고독은 여기 저기 날 따라다녔지. 세상 구석구석까지. 아니,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나의 고독과 더불어 나의 고독이 내 침대에 누우면 그 고독은 자리를 모두 차지하지. 그리고 우린 긴긴 밤들을 보내지.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며 난 정말 몰라 어디까지 갈지. 이 은밀한 공범이 내가 그걸 좋아해야 할까? 아니면 저항을 해야 할까? 아니,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나의 고독과 더불어 나의 고독을 통해 난 그만큼 배웠지. 내가 눈물을 흘린 만큼 난 나의 고독을 때때로 차버리지만 나의 고독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지. 그리고 내가 날 따르는 다른 여자의 사랑을 더 좋아한다면 나의 고독은 나의 마지막 순간에 있을 것이며 나의 최후의 동반자가 될 거야. 아니,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나의 고독과 더불어 아니, 난 절대로 혼자가 아니야. 나의 고독과 더불어.
44. Soul Sur Son Etoile - Gilbert Becaud
1966년도에 질베르 베코가 부른 아름다운 분위기의 샹송. 1927년, 남 프랑스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인 롤롱에서 태어난 그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Let It Be Me’의 작곡자이지요. 샹송의 기본 틀에 재즈와 록, 포크송까지 여러 요소를 조화시켜 샹송의 비약적인 발전을 시킨 질베르 베코.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인 그는 15살이 되던 해인 1942년, 니스 음악원에 입학, 피아노를 전공하지요. 그는 이 시절을 통해 고전 음악의 전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피아노의 완전한 테크닉을 습득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나이 21살 되던 해인 1948년, 니스 음악원 피아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안고 그 이듬해부터 파리로 진출하여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하지요. 그 후 1950년,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부터 직업적인 음악가로 출발, 당시 유명한 여류 샹송 가수 뤼시엔 브와이에의 남편이면서 역시 샹송 가수인 쟈크 필스의 피아노 반주자로 이름을 떨칩니다.
45. Le Torrent (급류) - Gloria Lasso
스페인에서 태어난 3세대 샹송 스타인 글로리아 라쏘가 1980년대에 발표한 노래. 1928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의과대학에서 외과 공부를 하는 한편 노래를 좋아하여 방송국에 출입하면서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되는데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의 가수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불러 가수로서 데뷔하지요. 1949년, 앨범을 출시해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유럽 각지를 순회공연하다가 1954년, 파리에 입성, 이듬해 올렝피아 극장에서 노래를 합니다.
46. L'eau Vive - Guy Beart
1963년도에 기 베아르가 부른 곡으로 많은 샹송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렀지요. 1931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난 남성 가수 겸 작사, 작곡가로 10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지요. 16살 때, 파리의 음악 학교에 들어갔으나 엔지니어로 전업해서 기사 자격을 얻어 건설부에 근무하다가, 어느 날, 실연의 슬픔을 노래로 만들어 술집에서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는데 손님이었던 자크 카네티가 그 노래를 듣고 계약을 합니다. 그 노래 ‘벌써 1년 전의 일’은 지지 장메르에 의해 불려져 히트했고 그 자신도 기타를 들고 가수로 정식 데뷔를 하지요. 1958년, ADF디스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영화 ‘강은 부르고 있다.’의 주제가를 작곡해서 성공을 합니다. 47. Ce Train Qui S'en Va (떠나는 저 기차) - H'elene 광고 배경음악으로 잘 알려진 엘렌느의 1991년도 노래. 4세대 샹송 여가수 엘렌느의 미성이 돋보이는 노래지요. 난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거짓말을 할 줄도 알았어야 했구요. 그대의 미소만을 남겨 두고서 간직한 기억들 속에서 살아갔어야 했어요. 희망을 남겨둔 채 이별의 순간들을 달랬어야만 했어요. 떠나가는 저 기차는 나와 조금 비슷하네요. 기차가 떠나고 있어요. 기차가 떠나고 있어요. 그것이 힘들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나의 가장 큰 비밀들을 감출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대에게 거짓말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요. 떠나는 그대를 보는 건 가혹한 일이예요. 한줄기 눈물이 흐르기 전에. 내 넋을 잃게 만드는 그대의 미소로 난 조금 위안을 찾아요. 모든 그대의 체온에 대한 추억을 더 잘 간직하기 위해 그대 품에 안기고 싶어요. 난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거짓말을 할 줄도 알았어야 했구요. 그대의 미소만을 남겨 두고서 간직한 기억들 속에서 살아갔어야 했어요. 그렇게 믿어보려 애써도 소용이 없군요. 너무 늦었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어요.
48. En Maintenant - Isabelle Aubret
1975년에 이자벨 오브레가 부른 곡으로 샹송 특유의 정서가 잘 드러난 노래지요. 이사벨 오브레는 1938년, 프랑스 Lille에서 태어났는데 1962년, 룩셈부르크 유러비젼 송 페스티벌에서 Un Premier Amour를 불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49. Lame Des Poetes (시인의 혼) - Isabell Aubret
1960년대 발표된 샹송의 고전 중 하나로 이자벨 오브레의 대표적인 노래.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시인들이 사라진 후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르고 있네. 많은 사람들은 건성으로 노래를 부르지. 작곡자의 이름도 모르면서. 누구를 위해 그들의 마음이 두근거렸는지 알지도 못한 채. 때때로 노랫말이나 구절은 변하지. 그래서 가사가 생각이 나질 않으면 사람들은 라 라 라 흥얼거리네. 라 라 라.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시인들이 사라진 후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르고 있네. 어느 날, 어쩌면 내가 정말 죽은 후라도 어느 날 사람들은 노래를 하리니 슬픔을 달래주거나 어떤 행복한 미래를 위한 그 노래가 구걸하는 노인을 살아가게 하거나 혹은 아이를 잠들게 할까? 어느 봄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는 물가에 울려 퍼질까?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시인들이 사라진 후 그들의 섬세한 마음과 노래 소리는 소년과 소녀들, 도시 사람과 예술가들 혹은 방랑자들을 즐겁고도 슬프게 하네.
50. Fascination - Jacqueline Francois
1950년대의 유명한 샹송으로 자클린 프랑스와의 대표적인 히트 곡이지요. 1922년 1월 30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그녀는 원래 영화사에서 필름을 편집했지만 항상 샹송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레코딩을 위해 찾는 회사에서 매번 'Votre voix N'est Pas Phonogenique'라는 답변만 들었는데 '당신 목소리는 녹음에 적합치가 않다‘는 것이었지요. 그녀는 그 때마다 좌절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도전의 문을 두드리다가 마침내1947년도, ’폴 뒤랑 (Paul Durand)'을 만나면서 기회를 잡게 되지요. 25살이 되던 해, ’C'est Le Printemps‘가 그녀에게 첫 번째 Grands Prix Du Disque를 안겨주지요. 이후 그녀의 ’Bolero‘, ’Les Feuilles Mortes‘, 'L'ame poetes', "Mademoiselle De Paris" 등이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되지요. 1950년대 후반부터 정기적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순회공연을 펼쳤는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새인 푸른색의 옷을 입고 공연하기를 즐겼고, 그녀는 청중들을 마술에 빠진 것처럼 만드는 매력이 있었지요.
샹송 베스트 100 [6]
2016.06.11 01:23
51. Mademoiselle De Paris (파리의 아가씨) - Jacqueline Francois
이 노래는 1955년도 영화 ‘파리의 스캔들’의 주제가로 잭클린 프랑소와의 대표적인 히트곡이지요. 그녀는 1922년 1월 20일, 파리 근교의 고급 주택지 ‘뉘 슐 라 세느’에서 태어난 여가수로서 본명은 쟈끌린느 기유모트입니다. 아버지는 ‘로자’라는 화장품 회사의 사장이었는데 처음에는 영화계를 동경하여 필름의 편집자가 되었지만 1945년, 라디오의 노래자랑에서 우승하고 가수로서 데뷔를 하지요. 밴드 리더인 폴 뒤랑에게 인정받은 그녀는 1948년, 첫 녹음을 하고 이것이 ACC 디스크 대상을 수상했고 이 노래와 ‘볼레로’를 사운드 트랙으로 내놓아 대히트를 하지요. 그 후에도 ‘포르투갈의 세탁부’로 1956년도 ADF 디스크 대상을 획득했으며 미국의 발라드 창법을 마스터 한 바 있는 가수 앙리 데켈과 결혼을 합니다.
52. Mon Coeur Est Un Violon (내 마음은 바이올린)- Jacqueline Francois
1953년도에 잭클린 프랑소와가 부른 노래로 같은 제목의 미국 영화 ‘잃어버린 바이올린’의 주제가이지요.
53. Chanson De Amour - Jacques Demy
1931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자끄 드미는 누벨바그와 동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지만 그들과 는 다른 작품 스타일을 시도했던 그는 1950년대 몇 차례의 단편을 발표한 이후, 1961년 아누크 에메가 카바레 싱어를 연기한 ‘롤라’로 장편 데뷔를 하지요. 막스 오퓔스에게 헌정된 그의 데뷔작 ‘롤라’ 이후 자끄 드미 작품의 주된 테마는 노래와 춤이었으며 1964년 자신의 출세작이자 세계 영화사에 가장 뛰어난 뮤지컬 ‘쉘부르의 우산’을 연출,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1962년에 결혼한 아내 아네스 바르다와의 사이에 로잘리 바르다를 두었으며 그녀는 여배우 겸 의상 디자이너로 프랑스 영화계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 노래는 1967년에 발표한 샹송으로 특유의 감성이 잘 드러난 노래입니다.
54. La Decadance - Jane Birkin
배우이자 가수인 제인 버킨이 1974년도 부른 샹송. 돌아보아. 싫어. 내게 기대. 싫어. 그렇게 하기 싫어. 그럼 춤을 춰. La Dacadanse 네 허리를 움직여봐. 천천히 내 허리 앞에서. 거기 그대로 있어. 내 뒤에서 좌우로 흔들어 움직여봐. 네 손이 내 가슴과 너의 마음이기도 한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La Decadanse. 내 사랑. 언제나 변함없는 내 사랑. 조금만 더 참아. La Decadanse. 내 손가락으로 너를 데려갈 거야. 먼 곳으로 저쪽에. 희뿌연 물이 갑자기 내 감각을 흐리게 해. La Decadanse는 내 정신을 잃게 했어. 아! 너는 나를 미치게 해. 내 사랑.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겠니? 난 너를 사랑했었어, 전에는. 하지만 희미한 흔적이지. La Decadanse. 더욱 더 우리의 죽음이 우리의 영혼을 맺어준다면 그리고 우리의 육체도 신들이시여 용서하소서. 우리의 죄를. La dacadanse. 마비된 육체와 방황하는 우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신들이시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La decadanse. 마비된 육체와 방황하는 우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55. Je T'Aime Moi Non Puls (난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 Jane Birkin & Serge Gainsbourg
1970년대, 남편 세르쥬 갱스브루와 제인 버킨이 함께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에로틱한 분위기의 노래이지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저도요. 그래요. 난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그래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오, 내 사랑 흐느적대는 물결과도 같이 저는 가고, 가고 또 와요. 당신의 허리 사이를 저는 가고 또 와요. 당신의 허리 사이를. 그리고 저는 매달린답니다.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그래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오, 내 사랑...당신은 파도와도 같아요. 저는 벌거벗은 섬이에요. 당신은 가고, 가고 또 와요. 저의 허리 사이를.... 당신은 가고 또 와요. 저의 허리 사이를..... 그리고 저는 당신과 다시 합쳐진답니다.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오, 그래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육체적인 사랑은 끝이 없어요.
56. La Valse A Mille Temps - Jacques Brel
노르웨이 출신의 시인이자 가수인 자크 브렐이 1960년대에 부른 샹송이지요. 자작 샹송을 부르는 남성 가수로, 1929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한 회사의 사장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50년부터 코러스를 만들어 병원 위문 등을 하다가 1954년, 파리에서 최초의 레코드를 취입하고 성공을 거두었으며, 1957년, ACC 디스크 대상을 수상합니다. 그의 작품은 성실하고 때로는 상당히 난해했으나, 1959년, 'La Valse A Mille Temps'의 대히트 이래 친근미 있는 곡도 쓰지요. 올랭피아 극장에 자주 출연하여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57. Ne Me Quitte Pas (If You Go Away) - Jaques Brel
자크 브렐이 1959년도에 부른 노래로 그의 이름을 샹송계에 널리 알렸던 곡입니다.
58. Monaco (모나코) - Jean Francois Maurice
장 프랑소아 모리스가 1978년에 발표한 샹송으로 중후한 목소리의 토킹이 돋보이는 노래 우리나라에서는 다운 타운가를 중심으로 소개된 후 1980년대 중반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입니다.
59. Ma Femme (내 인생의 여인) - Jean Francois Voreli
장 프랑소아 보렐 리가 1987년에 부른 샹송으로 자신의 아내에게 바친 사랑의 노래입니다.
60. Comme Toi (나처럼) - Jean Jaques Goldman
프렌치 팝의 선두주자인 장 자크 골드만이 1980년대 부른 샹송. 이 곡을 시작으로 3세대 샹송 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녀는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치마는 벨벳이었다. 가족이 둘러싸고 있고 어머니가 곁에 있는 그녀는 하루 끝의 부드러운 햇살에 거드름을 피운다. 사진은 좋지 않지만 보인다. 행복, 그 자신과 저녁의 부드러움이. 그녀는 특히 슈만 그리고 모짜르트 음악을 좋아했다. 너처럼. 내가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너처럼. 뭔가를 꿈꾸며 자는 너처럼. 그녀는 아래 마을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책을 읽었고 법을 배웠다. 그녀는 개구리와 '숲속의 잠자는 공주'들에 대해서 노래했다. 그녀는 자기 인형을 좋아했다. 그녀는 친구를 좋아했다. 특히 Ruth와 Anna 그리고 특히 Jeremie. 그리고 그들은 언젠가 결혼할 것이다. 아마 Varsovie에서. 그녀의 이름은 Sarah였고 아직 여덟 살이 채 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하얀 구름과 부드러운 꿈 그 자체였지.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지. 그녀는 너의 맑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너와 나이가 같았다. 얌전하고 착한 작은 소녀였다.
샹송 베스트 100 [7]
2016.06.11 01:25
61. Monde D'Amour (사랑으로 충만한 세계) - Jean Michel Caradec 1974년 작품으로 1999년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히트한 쟝 미셀 카라덱의 러브 송. 드라마 일요 베스트, ‘그녀, 그를 만나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입니다. 오! 하느님, 무엇을 위해 제가 이 세상에 오게 됐나요? 도대체 무엇을 돕고자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났나요? 영원히 "oualoudo" "oualoudo" 그건 당신을 알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영원한 사랑이에요. 사랑의 아름다움이여 매일 아침마다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마다 매일 저녁마다 태양이 지는 저녁마다 영원히 "oualoudo" "oualoudo" 우리 두 사람, 우리 두 사람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는 함께 노래를 해요. 사랑의 아름다움이여. 저는 꽃들이 피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고, 보고도 싶어요. 온 세상 곳곳에 영원히 "oualoudo" "oualoudo" 사랑의 꽃이여. 사랑의 아름다움이여.
62. J'ai Deux Amours - Josephine Baker 1990년대를 대표하는 샹송 가수 조세핀 베이커가 1993년도에 부른 노래로 '두 개의 사랑을 가지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오래된 곡이지요. 이 노래 역시 여행을 하면서 많이 듣던 추억이 서려있는 곡이라 들을 때마다 흥얼거리게 됩니다.
63. L'ame Des Poetes (시인의 혼) - Juliette Greco 1950, 60년대에 샹송 계를 대표했던 여가수 쥴리엣 그레코가 1966년도에 발표한 곡. 시인들이 사라진 후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르고 있네. 많은 사람들은 건성으로 노래를 부르지. 작곡자의 이름도 모르면서... 누구를 위해 그들의 마음이 두근거렸는지 알지도 못한 채... 때때로 노랫말이나 구절은 변하지. 그래서 가사가 생각이 나질 않으면 사람들은 라 라 라 라 라 라를 흥얼거리네. 시인들이 사라진 후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르고 있네. 어느 날, 어쩌면 내가 정말 죽은 후라도 어느 날 사람들은 노래를 하리니. 슬픔을 달래주거나 어떤 행복한 미래를 위한 그 노래가 구걸하는 노인을 살아가게 하거나 혹은 아이를 잠들게 할까? 어느 봄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는 물가에 울려 퍼질까? 시인들이 사라진 후 오랫동안,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들의 섬세한 마음과 노래 소리는 소년과 소녀들 도시 사람과 예술가들 혹은 방랑자들을 즐겁고도 슬프게 하네.
64. Sous Le Ciel De Paris (파리의 하늘밑) - juliet Greco 쥴리엣 그레코가 1950년대에 부른 샹송의 고전으로 1960년대 우리나라 샹송 팬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노래입니다. 파리의 하늘 밑에는 사랑의 샹송 노래 소리가 흩날리고 있어요. 오늘 그 노래 소리는 어느 소년의 마음속에 싹텄답니다. 파리의 하늘 밑에는, 연인들이 걷고 있어요. 그들의 행복은 서로에 대한 진실 위에 그려졌답니다. 베루시 다리 아래엔 태평하게 앉아있는 철학자 한 사람과 음악을 연주하는 두 명의 악사, 그리고 거리를 구경하는 몇몇 사람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답니다. 파리의 하늘 밑에는, 노트르담 성당 옆의 유서 깊은 시테섬에 대한 정열에 불타는 사람들이 밤이 올 때까지 찬가를 노래한답니다. 때때로 연극을 지켜보기도 하지요. 그래요. 결국 파리에서는 모든 일이 다 잘 될 수 있어요. 여름 하늘의 빛이 다소간 남아 있을 때면, 뱃사공이 연주하는 아코디언 가락에 맞추어 희망이 파리의 하늘에서 꽃을 피워요. 파리의 하늘 밑에는, 강물이 즐거운 듯 흐르고 있답니다. 밤이 오면 그 강물은 부랑자들과 거지들의 고통을 달래주지요. 파리의 하늘 밑에는 아름다운 새들이 각지에서 날아들어 자기들끼리 지저귄답니다. 또한 파리의 하늘은 그에 대한 비밀을 지니고 있어요. 20세기 이래로 파리는 우리의 셍 루이섬에 대한 사랑의 정열에 불타고 있답니다. 그 섬이 하늘을 향해 미소 지으면 하늘은 파란 옷을 차려 입어요. 하늘이 파리를 향해 비를 내리면 그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이유랍니다. 그가 수많은 연인들을 심하게 질투하게 되면 그는 그들을 향해 터질 듯한 천둥소리를 울려대죠. 하지만 파리의 하늘은 매정함이 오래가지 않아요. 용서를 받기 위해 그는 무지개를 보여주니까요...
65. Mon Cadeu (선물) - Elsa 1988년 작품으로 엘사의 출세작. 소녀적 감성이 잘 드러난 1980년대를 대표하는 샹송. '샹송의 요정'이라고 불릴 만큼 청초한 외모와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의 여가수이지요. 그녀는 1973년 5월 20일, 화가인 어머니 크리스티나와 작곡가인 아버지 조루즈 링귀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의 예술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아 가수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유명한 하이틴 스타. 엘자는 불과13세 때인 지난 1986년, 영화 La Femme Da Ma Via(내 인생의 여인)를 통해서 스크린에 당당히 데뷔하지요. 영화 출연 중 감독에 의해 가수로도 발탁되는 행운을 얻기도 하구요. 영화의 주제가 T'en vas pas(떠나지 마세요)를 노래하며 음악 활동을 하면서 강한 호소력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그녀. 그녀의 첫 앨범은 130만 장이라는 놀라운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Top 50에 당당히 1위를 기록, 당당히 엘자라는 존재를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지요.
66. Sous Les Toits De Paris (파리의 지붕 밑) - Line Renaud (린 르노) 1950년대 샹송의 고전으로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서 불러 많은 사랑을 받은 곡. 1930년에 르네 클레르 감독이 연출한 알베르 프레장, 폴라 이를리 주연의 영화 주제가. 파리의 뒷골목에서 악보를 파는 거리의 악사가 귀여운 파리 아가씨를 사랑해서 그녀 때문에 뒷골목의 깡패와 싸우기까지 하였으나, 그녀가 루이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깨끗이 포기한다는 줄거리의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9년도에 개봉했지요. 린 르노는 주로 르뷔에서 활약하는 여성가수로 본명은 쟈끌린느 앙떼이며 1928년 7월 2일, 아르망띠에르와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요. 어린 시절부터 조모가 경영하는 카페에서 노래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그 곳에 주둔 하고 있었던 연합군 장병에게 노래를 들려주어 인기가수가 되었습니다. 전후 파리에 나가 "폴리 베르빌" 에 출연 중 작곡가 루이 갸스떼와 알게 되어 그와 결혼을 합니다. 1946년 이후에는 영화에도 출연, 성공을 거두고 1949년에는 남편이 작곡한 노래로 디스크 대상을 획득하기도 했지요.
67. Sombre Dimanche (우울한 일요일) - Lucienne Boyer 1960년대 뤼시엔 부아에가 발표한 노래로 매니아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1930년도 ‘사랑의 말을’이라는 노래로 디스크 대상을 받은 이래 그 달콤한 노래로 일세를 풍미한 여성 가수이지요. 1903년경 파리의 몽파르나스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에밀리엔느 앙리에트 부아에.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고 나서 여공과 모델로 일하고 아테네 극장의 타이피스트가 된 뒤, 그 지배인의 주선으로 무대에 설 수가 있었지요. 발음교정 선생의 충고로 가수로 전향하여 데뷔한 것은 16세 때. 1930년, ‘사랑의 말을’이라는 노래로 성공하면서 어두운 현실적 샹송에서 달콤한 사랑 노래로 변하지요. 1939년, 그녀가 경영하던 캬바레의 가수였던 자크 필스와 결혼, 1941년에는 프랑크 푸르셀을 발견하고 자기의 반주자로 삼았지요.
68. Embrasse Moi (나에게 입맞춤을) - Lucienne Delyle 1987년 뤼시엔 드릴이 부른 샹송. 1920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여성 가수로 일찍 부모를 잃고 숙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1939년, 라디오 시티의 ‘신인 뮤직홀’이라는 아마추어 콩쿠르에서 ‘외인부대의 깃발’이라는 노래로 1위가 되어 가수로 데뷔하지요. 이듬해 파라마운트 캬바레에 출연, 레이몽 르그랑 악단의 반주로 노래하였는데, 멤버의 한 사람이었던 트럼페터 아메 발레리와 사랑에 빠져 1944년 결혼을 합니다. 1947년 발레리 악단이 반주한 노래로 디스크 대상을 수상, 1957년에는 또 다시 ADF 디스크 대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해에 백혈병으로 쓰러져 1962년 4월 10일, 몬테카를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69. Dans Le Meme Wagon (사랑은 기차를 타고) - Majorie Noel 1960년대 마조리 노엘이 발표해서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샹송. 1945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여성 가수로 본명은 프랑수아즈 니보이. 노엘이라는 예명은 크리스마스를 의미하고, 또 마조리는 인기 가수 니그 오프레이가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다방을 경영하는 부모님을 도와 노래를 공부하고 1964년도에 데뷔를 하지요. 이듬 해인 1965년, 유러비전 콘테스트에서는 몬테카를로 대표로서 참가해서 성공을 거두지요. 같은 기차간에서 우리는 여행을 해요. 둘이서. 또한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간답니다. 둘이서. 하지만 저는 당신을 몰라요. 당신 또한 저를 알지 못하죠. 그렇지만 잠시 후면 바뀌게 될 거에요. 왜냐하면 조금 전 둘이 있는 같은 기차간에서 당신은 제게 미소를 지었고 제 눈 속에서 저의 이름을 알았으니까요. 곧 천둥소리가 나면 우리 마음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할 거에요. 모든 열차 칸 중에 당신을 제가 누구보다도 좋아하니까요. 같은 기차간에서 우리는 여행을 해요. 둘이서. 목적지에 이를 때면 우리가 더 행복하리라 저는 굳게 믿어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여행이 끝날 즈음엔 사랑이 우리 품안에 안기게 될 거에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 여행이 끝날 즈음엔 사랑이 우리의 품안에 안기게 될 거에요.
70. Mon Je Ne Regrette Rien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 - Marcel Amont 마르셀 아몽이 1959년도 부른 샹송으로 에디뜨 피아프의 유작으로 잘 알려진 곡. 프랑스 보르도 출생. 학생시절부터 연예인이 될 것을 꿈꾸고 대학을 중퇴한 다음 파리로 오지요. 그 후, 앙드레 파스도크에게 인정을 받아 카바레에 출연하기 시작하고, 1954년, 도빌의 샹송 콩쿠르에 입상을 하지요. 1956년에는 올랑피아 극장에도 출연했고 1958년에는 동 극장의 실황녹음으로 디스크 대상을 받아 유명해집니다.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내게 줬던 행복이건 불행이건 간에. 그건 모두 나와는 상관없어요. 아니에요.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대가를 치뤘고, 쓸어 버렸고, 잊혀졌어요. 난 과거에 신경 쓰지 않아요. 나의 추억들로 난 불을 밝혔었죠. 나의 슬픔들, 나의 기쁨들. 이젠 더 이상 그것들이 필요치 않아요. 사랑들을 쓸어 버렸고 그 사랑들의 모든 전율도 쓸어 버렸어요. 영원히 쓸어 버렸어요. 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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