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룡(臥龍)은 세치 혀로 강동(江東)을 일깨우고
다음날이 되었다.
노숙은 역관으로 찾아가 공명을 만나보고 또 당부했다.
"오늘 우리 주공을 뵙게 되더라도
조조의 군사가 많다는 소리는 결코 하지 마십시오"
"양은 때를 보아 알맞게 말하겠습니다.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니 마음놓으십시오"
공명이 빙긋 웃으며 한번 더 노숙을 안심시켰다.
그제야 노숙은 먼저 강동의 인물들을 모두 모아 놓은 장막으로 데려갔다.
전날 손권이 시킨 대로였다.
공명이 장막에 이르러 보니 장소 고옹을 비롯한 20여 명의 문무 관원이
높은 관에 띠를 두르고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여 앉아 있었다.
☆☆☆
공명은 그들과 하나 하나 만나
서로 이름을 대고 인사를 나눈 뒤 손님자리에 가서 앉았다.
장소를 비롯한 강동사람들은 공명의 풍채가 당당하고 우뚝하며 사람됨이 헌걸 찬 걸보고
곧 그가 세객으로 자기들을 달래러 온 것임을 알아보았다.
장소가 먼저 그런 공명의 기를 꺾어 보려는 듯
입을 열어 넌지시 걸고들었다.
"장소는 강동의 보잘것없는 선비올시다만
선생께서 융중에 높이 누워지내신 다는 소문은 일찍부터 들어 왔습니다.
그때 선생께서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에 견주셨다는 데 정말입니까?"
"그것은 제가 언제나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 견주어 나타내는 데 써 온 말입니다"
제갈량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
그러자 장소는 기다렸다는 듯 그 일을 물고 늘어졌다.
"요사이 듣자 하니 유예주(劃豫州)께서는 세 번이나 선생의 초려를 찾아보고 서야
겨우 선생을 얻고는 마치 고기가 물을 얻은 듯이나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는 형주와 양양을 손에 넣고자 함에서였는데
이제 그 땅은 도리어 조조에게로 넘어가 버렸으니 어찌 된 셈입니까?"
관중과 악의 같은 인물이 왜 이 꼴이냐는 투의 빈정거림이었다.
공명은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장소는 손권이 거느린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모사(謀士)라 할 수 있다.
만약 먼저 이 사람을 꺾지 못한다면 어떻게 손권을 달랠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어조로 장소의 말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한상의 땅을 얻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공 유예주께서는 인의(仁義)를 몸소 행하시는 분이시라
차마 같은 유씨의 땅을 빼앗지 못하고 오히려 힘써 사양했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결국 형주는 어린 유종에게 넘어가게 되었던 바
유종은 못나게도 아첨하는 말만 믿고
몰래 조조에게 항복하여 조조의 세력을 이토록 크게 만들어 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강하(江夏)에 자리를 잡고
따로 조조를 칠 좋은 계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결코 일을 등한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님은
누구라도 쉬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장소는 그 정도의 말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쯤은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심술궂게 공명의 말을 받았다.
"일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바로
선생의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는 뜻입니다.
선생은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게 견주었으나,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時浸)들을 억누르고 어지러운 천하를 단번에 바로잡았으며,
악의는 힘없는 연(燕)나라를 떠받치어 제나리 식 70여 성(城)을 떨어뜨린 인물입니다.
실로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바로잡을 만한 재주를 지녔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어떠합니까?
초려에 머물러 있을 때는 풍월이나 즐기고
무릎 쓸며 높이 앉았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미 세상에 나와 유예주를 돕게 된 마당에는
마땅히 천하의 뭇 생령(生靈)을 위해 이로움을 더하고 해로움을 덜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역적의 무리를 쳐 없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유예주만 해도 선생을 얻기 전에는
그래도 천하를 종횡하며 의지할 성(城) 몇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선생을 얻고 난 뒤는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모두 선생을 우러러보았으며 키가 석자 되는 어린아이들도
유예주께서 선생을 얻은 것은 호랑이나 표범의 등에 날개가 돋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습니다.
한실(漢室)은 다시 일어나고 조씨는 곧 멸망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말속에 뼈가 있다든지 한 컷 공명을 추키는 것이 아파할 곳을 골라 건드리고 있었다.
장소는 이어 말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조정의 옛 신하들이며 산림에 숨어 있는 선비들까지도 하늘 가득한 구름이 걷히어
해와 달의 밝은 빛을 우러를 수 있기를 눈을 씻고 기다리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물 불 속에 빠진 듯한 이 백성을 건져내고 천하를 이부자리처럼
편안한 곳에 두게 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선생 뿐이라 믿으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유예주께로 가신 선생은
한번 조조의 군사가 나타나자마자 바람에 휘 몰리듯 달아나니,
위로는 유표에게 보답하여 그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지도 못했고
아래로는 유표의 외로운 아들을 도와 그 땅을 보전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또 유예주는 유예주대로 신야(新野)를 버리고 번성으로 달아났다가
다시 번성을 버리고 오는 중에 당양(當陽)에서 조조에게 패하고,
이제는 하구까지 쫓겨와 그 몸 둘 땅도 없을 지경입니다.
이는 유예주께서 선생을 얻은 뒤가 얻기 전보다 못하다는 것이 되니
관중과 악의가 언제 그 주인을 이렇게 섬겼습니까?
다만 이것은 저의 어리석고 굳은 소견에서 나온 말입니다.
너무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고 몰라서 한 말이 있으면 깨우쳐 주십시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명이 꼼짝없이 무안을 당하리라고 믿었을 만큼
빈틈없는 장소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거꾸로 공명은 어이없다는 듯 좌중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대붕(大鵬)이 만리를 나는 뜻을 하찮은 새떼가 어찌 알 수 있겠소?
그 일은 비유컨대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소.
사람이 큰 병이 났을 때는
먼저 미음과 죽을 먹게 한 뒤에 부드러운 약부터 써야 할 것이오.
그리하여 창자와 폐부가 제대로 움직이고 몸이 점차 회복이 되거든
고기를 먹여 그 힘을 돋우고 비로소 독한 약을 쓰는 법이오.
그래야만 병의 뿌리를 아주 뽑고,
사람을 온전하게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이오.
만약 병자의 기운과 맥박이 제대로 추슬러지지도 않은 때에
서둘러 기름진 음식을 먹이고 독한 약을 쓴다면
그 병자를 구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외다.
우리 주인 유예주께서는 지난날
여남(汝南)에서 패해 유표에게 의지하게 되었으니.
군사는 천(千)을 채우지 못하고
장수는 관우와 장비에 조운이 있을 뿐이었소.
비유해 말하자면 병이 깊고 오래되어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소이다.
신야는 산골의 작은 현(縣)으로
백성의 수는 적고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하니
잠시 빌려 몸을 쉴 땅일지언정
어찌 눌러앉아 오래 지킬 수 있는 땅이겠소?
그래도 유예주께서는 박망(舊로)에서는 불을 지르고
백하(白河)에서는 물을 써서 하후돈과 조인의 무리를
염통과 간이 터지도록 놀라게 했습니다.
병갑은 갖추지 못하고 성곽은 튼튼하지 못하며 군사는
조련이 되지 못한데 양식마저 댈 수 없는 처지에서 그 같은 승리를 거두었으니
관중과 악의가 살아와서 군사를 부렸다 한들
그보다 더할 수는 없었을 것이외다.
거기다가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한 것은
실로 유예주께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오.
오히려 형주의 어지러움을 틈타
같은 종친의 기업을 빼앗는 일은 차마 할 수 없다 했으니
그야말로 대인이요, 대의가 아니겠소이까?
또 자포(子布)께서는 당양(當揚)에서 꽤한 일을 말씀하셨으나
마찬가지로 그 일도 유예주의 대인 대의(大義)함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로움을 쫓는 수십만의 백성들이
어린것을 업고 늙은이를 부축하여 뒤따르매
차마 그들을 버리지 못해 하루 십 리밖에 가지 못한 탓에
조조의 군사들이 따라잡을 수 있었던 까닭이외다.
백성들을 버리고 급히 진군하여 강릉을 차지했으면
어려움을 면할 수 있었음에도 기꺼이 백성들과 함께 하다 패하는 쪽을 택하셨으니
실로 그보다 더 큰 어짊과 의로움이 어디 있겠소이까?
더군다나 설령 군사가 적보다 적지 않더라도
싸움에서이기고 지는 것은 매양 있는 일이외다.
지난날 고황제(高皇帝)께서는 여러 번 항우에게 지셨으나
해하성 한 싸움에 이김으로써 천하를 얻지 않으셨소이까?
또 한신은 좋은 계책으로 그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그때까지 오래 고황제를 섬기는 동안 다른 싸움에서는 그리 자주 이긴 편이 못되었소이다......"
☆☆☆
공명은 거기까지 맞서 놓고
문득 장소를 쳐다보며 되로 받은 빈정거림을 말로 돌려주었다.
"무릇 국가의 대계나 사직의 안위(安危)를 의논함에는
으뜸으로 정해 흔들리지 않는 모책(謀舊)이 서 있어야 할 것이오.
떠벌리고 부풀리어 말하기 좋아하는 무리나
헛된 이름으로 사람을 속이는 무리가 끼여들어
이리저리 함부로 말하게 해서는 아니 되는 법이외다.
그런 무리는 앉아서 말로 하면 따를 사람이 없으나,
일이 닥쳐 맡겨 보면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오"
☆☆☆
장소는 그 같은 공명의 말에
은근히 노여움이 일었으나 얼른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장소를 대신하듯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 하나가 큰소리로 맞섰다.
"지금 조조는 군사가 백만이요. 장수가 천이라 하오.
용이 날뛰고 호랑이가 노려보는 듯한 기세로 강하를 삼키려 하는데
공은 어떻다 보시오?"
공명이 보니 우번이었다.
장소가 긴 소리를 늘어놓다 낭패를 당하는 걸보고
짧은 말로 당장 공명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건드렸다.
공명이 호기롭게 대답했다.
"조조는 개미떼같이 수만 많고 쓸모 없는 원소의 군사를 끌어 모은 데다
또 이번에는 까마귀 떼같이 시끄럽기만 하고 조련 안된 형주의 군사들을 더했으니
비록 그 수가 백만이라 한들 두려워할 까닭이 무엇이겠소?"
☆☆☆
그러자 우번은 기다렸다는 듯 차게 웃으며 비꼬았다.
"당양에서는 싸움에 지고 강하로 쫓겨와서는
계책까지 궁해 구구하게 다른 사람에게 구해 주기를 빌러 왔으면서도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하는구려!
선생이야말로 큰소리로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오?"
공명도 지지 않고 맞섰다.
"겨우 수천의 의로운 군으로 우리 유예주께서
어떻게 조조의 거칠고 모진 백만의 대군에 맞서실 수 있었겠소?
그래도 강하로 물러나 지키고 계신 것은 때를 기다리기 위함이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떠하오?
이곳 강동은 군사가 날래고 양식이 넉넉한 데다
험한 장강까지 끼고 있지 않소?
그런데도 오히려 그 주인으로 하여금
역적 앞에 무릎을 끓고 항복하기를 권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천하와 비웃음조차 돌아볼 줄 모른다 할 수 있소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유예주야말로 참으로 조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라 할 수 있소!"
그러자 기세 좋던 우번 또한 머쓱해서 물러났다.
항복이란 말속에 감추어진 치욕을 끄집어낸 반격이라 대꾸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
그 우번을 대신해 또 한 사람이 나섰다.
보질(步艦)이란 사람이었다.
"공명은 장의와 소진(蘇妻)을 흉내내어
우리 동오(東臭)를 달래러 오셨소이까? "
"자산은 소진과 장의를 그저 말 잘하는 사람으로만 알 뿐
소진 장의가 또한 호걸임을 모르시는구려.
소진은 여섯 나라 승상의 인을 차고,
장의는 두 번이나 진(妻)나라의 승상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일으키고 바로잡은 사람들이외다.
힘센 자를 두려워하고 약한 자를 깔보며
칼을 두려워 피하는 이들과는 견줄 수가 없을 것이오.
여러분은 조조가 거짓으로 지어 퍼뜨린 소문만 듣고도 겁이 나서 항복하려 들면서
어찌 감히 소진과 장의를 비웃을 수 있겠소이까?"
자산은 보질의 자(字)였다.
교묘한 말재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동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보질의 자(字)까지 공명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르긴 하되 공명은 아마도 그 자리에 나올 법한 사람들에 관해
미리 세밀하게 알아두었음이 분명했다.
☆☆☆
남의 신하되어 주인에게 항복하기를 권하는 입장의 떳떳하지 못한 구석을
날카롭게 헤집고 드는 공명의 반격에 보질이 대답을 못하자
이번에는 설종(柰宗)이란 사람이 엉뚱한 물음으로 가로막고 나왔다.
"공명께서는 조조를 어떤 인물로 보시오?"
"조조가 한(漢)을 노리는 역적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거늘,
무엇 때문에 물으시오?"
공명이 한 마디로 잘라 대답했다.
그게 어찌 본심일까만,
설종이 슬그머니 그런 공명의 심사를 건드렸다.
"공의 말씀이 틀린 것 같소이다.
한(漢)은 여러 대를 전하여 온 지금 천수(天歎)가 다해 가고 있소.
이에 비해 조조는 천하의 3분지 2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그에게로 돌고 있소.
그런데도 유예주께서는 억지로 조조와 더불어 싸우려 하니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소. 어찌 패하지 많을 수 있겠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