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뜨면
얼루튈지 알 수가 없다는 걸
두자니
지레걱정 난 몰라 할까만은
그래도
천방지축을 웃고바라 볼밖엔
감상 :
천방지축마골피[1] 또는 천방지추마골피는 문헌 기록이 없어 출처와 유래를 알 수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전설이다. 속설[편집] 천(天)은 무당, 방(方)은 목수, 지(地)는 지관, 축(丑)은 소를 잡는 백정, 마(馬)는 말을 다루는 백정, 골(骨)은 뼈를 다루는 백정, 피(皮)는 짐승의 피를 다루는 백정이라는 내용의 속설이 있다고 한다.[2]
그러나 이 속설은 역사서나 문헌에 기록이 없어 유래를 알 수 없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해당 성을 가진 백정은 발견되지 않는다.[3]
역사적으로 유명한 백정으로는 구한말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한 박성춘, 박서양 부자, 1923년 형평사운동을 전개한 백정 이학찬, 장지필 등이 있다. 전국 약 3만여권의 족보를 소장하고 있는 부천족보전문도서관의 김원준 관장은 "천민은 기본적으로 성씨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단언했다. 천민은 성씨를 가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성을 가진 사람의 조상은 천민'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 민란 등 중죄를 일으킨 이에게 동물을 뜻하는 글자를 성씨로 부여하는 일은 있었지만 후손들이 죄인임을 뜻하는 그 성씨를 잇지 않고 다른 성씨로 바꾸기 때문에 대대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며 "'천방지축마골피'와 같이 희귀한 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에서 넘어 와 정착한 이라든지 새 왕조를 여는데 공헌한 개국공신으로서 임금에게 새 성씨를 하사받은 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4]
김진우 한국성씨연구소장은 이 속설에 대해 "우리나라는 조선 중기 이후 신분제의 동요로 상민들이 돈을 주고 현달한 다른 족보에 이름을 올린 경우가 많았다. 희성씨가 종원수가 상대적으로 적다하여 천계(賤系)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악의적 통설이다. 18세기 이후 탁보(잘못된 족보)가 성행하면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희성씨를 마치 천계인 것처럼 퍼뜨린 것이다." 하였다.[5]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는 "천방지축마골피는 천계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천(千)씨, 방(房)씨, 방(方)씨, 지(池)씨 등은 중국에서 귀화한 성씨이며, 천계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통설은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내용이 아무런 검증 없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이다."라고 하였다.[6]
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사학 박사는 "천민은 성(姓)이 없었다. 전 국민이 성을 갖게 된 것은 갑오경장(1894년)부터이며, 갑오경장 전에 성을 가진 인구는 30%에 불과했지만, 신분제가 폐지되고 1909년 민적법이 시행됨에 따라 흔한 성씨로 숨어든 천민의 후손들이 자신의 신분을 ‘카무플라주(camouflage)’하는 의미에서 ‘천방지축’(天方地軸ㆍ하늘 방향과 땅의 축이 어디인지 모른다)에 착안해 입지보전책으로 퍼트린 낭설이다."라고 했다.[7]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을 지낸 박홍갑 박사도 저서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를 통해 천방지축마골피에 관련된 도시전설이 잘못된 오해라고 했다. 또한 17세기 말까지 성관을 가진 인구 비율은 50% 내외였지만, 그 후 100년이 지나서는 90%를 넘는 사람이 성관을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며, 영조 때 한양 한복판에 인쇄 시설을 갖추고 족보 장사를 하다가 적발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