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고창·김제 2박3일[웰빙회] - 제3일
일자: 2016년 4월 15일~17일(금~일)
숙소: 부안읍
참가자(6부부): 현정 백영호, 백영 조금석,
송지헌, 백사 조운제, 운산 최종헌, 후묵
제 1일 (15일:금) 줄포 자연생태공원 걷기
제 2일 (16일:토) 신석정생가, 고창 읍성 걷기
제 3일 (17일:일) 수류성당, 금산교회,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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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일 (17일:일) 바람 9.8~16.7도/부안
07:00 기상
07:33 매창공원답사
09:45 숙소 출발
10:33 수류성당 도착 (백영 금산교회도착)
12:06~13:26 금산교회 집합(교회내력,식사)
13:38~15:09 금산사 관광
15:15 금산산주차장 출발
19:00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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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태풍급 바람
간밤에 얼마나 바람이 불어대던지 숙소가 날라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바람은 잠도 자지 않고 불어대 곳곳에서 덜렁대는 소리가 났었다. 아침에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는 아직도 세게 흔들린다.
백영이 예배를 보기위해 예배보는 교회를 찾아다녀보겠다고 한다. 필자는 매창공원을 위치를 확인해놓고 올라가기전 잠깐 들러 인증샷이나 찍을 생각이었다.
숙소가 높아 북쪽으로 보니 전날 아침 갔던 서림공원이 있는 나지막한 상소산(115m)과 그 앞에 부안군청이 보인다. 하늘에는 회색구름이 드리워져있다.
부안군청을 품고 있는 상소산(115m)이 서쪽으로 능선을 뻗어
매창공원 답사차 나가봐
숙소 밖으로 나오니 어린 나뭇잎이 간밤 세찬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져 승용차위가 어지럽다.
백영이 주일 예배를 보고 움직일 생각으로 교회를 찾아나섰다. 그런데 주위 교회들은 예배 시간이 적혀있지 않다. 김제 금산사에 가서 예배를 보겠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기생 이매창이 잠들어있는 매창공원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 백영에게 차를 그쪽으로 몰아보자고 했다. 조그만 공원이다. 그런데 바람이 아직 세게 불어 내리지 못하고 아침 식사후 잠깐 들러 인증샷을 만들어야겠다며 숙소로 돌아왔다.
간밤 강풍에 떨어진 어린 나뭇잎
웰빙식 조기국에 나물 부침개
어부인들은 주방에서 바쁘다. 어제 부안상설시장에서 사온 조기(부세)에 고사리를 듬뿍 넣어 국을 끓여낸다. 부안읍성에서 따온 어린고사리와 장에서 사온 고사리를 같이 넣었단다. 부지런히 뜯어온 방아풀(배초향), 머위, 땅드릅등 봄나물로 부침개도 부치고 나물무침도 만들어 내 놓았다. 웰빙식이다. 다들 밥 한 그릇씩 간단히 치운다. 운산을 국과 밥을 더 달란다.
환영 현수막에 사인을 해
백영은 김제 모악산(794m) 서쪽 자락에 있는 금산사쪽으로 달려가 유서깊은 수류성당과금산교회를 둘러보자고 한다. 모악산 자락에 여러 종교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금산사는 미래불을 믿는 미륵신앙의 본산이기도 하다.
플래카드에 각자사인을 하고 느지막한 9시 40분정도 되어 숙소를 나왔다. 아직 바람이 좀 있다. 그런데 시간이 급한지 백영이 매창공원과 반대방향으로 틀어버린다. 첫날 들렸어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매창의 애절한 ‘이화우(梨花雨)‘
이매창(1573~1610)은 황진이(1506?~1567?)와 함께 조선 2대 명기이자 시인으로 많은 시로 현재에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그 매창이 부안출신이다.
전날 아침 서림공원 상소산을 오르다 산책로 옆에 서 있는 매창시비를 언듯 보았는데 그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시비에는 매창의 대표적인 시 ‘이화우(梨花雨)‘가 새겨져있다.
이화우(梨花雨:배꽃) 흩날릴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楓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당대 천민에서 양반으로 신분 상승한 시인 유희경(劉希慶:1545~1636)과 헤어지면서 그리워 지은 시라고 한다. 유희경은 신분상승으로 인한 양반들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여류시인 매창의 간절한 연정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이와 버금가는 매창의 유희경에 대한 이별시 한 편 더 보자.
마음 속 그리운 정 말로는 다할 길 없어
밤새 생각타보니 머리카락 반이나 세었구나.
신첩의 괴로워하는 이 심정 아시려거든
금가락지 헐거워진 이 손가락을 보옵소서.
매창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 창극으로 재탄생
전날 갔던 고창읍성 주차장옆 고창문화의전당에서는 지난 3월31일 전북도립국악원의 창극단이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창극을 무료로 공연했다는 보도다. 2015년 전주에서 초연된 이후 호평을 받아 그 작품성과 대중성이 인정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부안에서 나고 자란 매창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매창은 황진이, 일지홍 등과 함께 당대 최고의 인물들과 풍류를 나누었던 기생이다.
다음 부안에 들르면 매창공원을 꼭 찾아가 거닐면서 매창과 좀 가까워져보기로 하고 김제 금산사로 향했다.
상소산 오르는 길옆에 세워진 매창 시비. 시 '이화우'가 새겨져있다. 전날 석정문학관 들리면서 올라가보았다.
원평에서 잠시 갈라져
23번 국도를 달려 원평의 금산면사무소 인근에 섰다. 백영은 금산교회에서 예배를 보겠다며한시간 후에 그 교회에서 만나자고 한다. 지헌은 찾아가볼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백사부부와 갔고 우리는, 운산부부, 현정 부부와 함께 수류(水流)성당을 가기로 했다.
120살 넘은 수류성당으로
신협에서 원평교를 건너기 전 좌회전하는데 수류성당 안내판이 크게 서 있다. 거리는 6km라고 쓰여있다. 원평천을 따라 현정이 앞서 달렸다. 화율초등학교를 지나 원평2교를 건너 조금 더 가니 언덕에 허름하고 투박한 교회건물이 나온다. 11:33분. 백영도 같은 시각에 카톡에 도착 소식을 올린다. 느티나무가 입구에 있고 주차장이 넓다.
수류성당의 수호목 느티나무
1892년 설립
이 성당은 18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베르모렐 신부가 금구면 배재(현 구이면 안덕리)에 배재 본당을 설립했는데 이게 수류성당의 모체로 한강 이남 최초 성당이었다고 한다. 베르모렐 신부는 1892년 안수룰(수류)공소(본당보다 작은 교회로 신부가 상주하지않는 예배소)를 설립한 것이다. 현재의 성당은 1959년 건립했고 2004년 성당지붕을 동판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현재 화율리 5개마을에서 마을주민 95%인 320명(99세대)이 이성당에 다니는 카톨릭신자라고 한다.
교회를 한바퀴 둘러보고 개천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보았다. 산이 높아서 그런지 어제 내린비로 물이 제법 많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수류(水流)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가?
모악산 남쪽 국사봉(535m) 서쪽 자락이다. 자목련이 화려하게 피었고 라일락이 향기를 내뿜고 있다. 철쭉과 영산홍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수련원 옆에 겹벚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 청소년 수련원 등 깊숙이까지 이 성당의 소유인듯 하다. 하늘에는 회색구름이 벗겨지지않고 날씨는 아직 차갑다.
우리는 다시 내려왔다. 미사가 끝나고 교인들이 밖으로 나온다. 어느 마을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물레나물
이렇게 큰 이화살나무(?)는 처음 보아... 아래사진은 전체로 본 화살나무
겹벚꽃
1908년 건립된 금산교회
다시 차를 몰고 금산교회로 달려갔다. 백영은 에배를 마쳤고 지헌팀도 와 있다. 다 같이 교회에 들어갔다. 단에 장로라는 분이 올라서서 우리를 마루에 앉으라고 한다.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목사님이 해설을 하는데 이번에는 쉬시라고 하고 본인이 한단다.
‘ㄴ’자로 된 집이다. 여자·남자가 따로 앉는 거라며 여자들은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대각선으로 커튼을 친다. 그러더니 다시 걷는다. 옛날에는 그렇게 남녀가 커튼을 치고 따로 앉아 예배를 보았단다. 그래서 ‘ㄴ’자로 지은 거란다. 글도 남자쪽 상량에는 한자로 쓰여있고 여자들이 앉는 곳 상량에는 한글로 쓰여있다.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선교사 테이트(Lews Boyd Tate)가 처음 세웠다고 한다. 1908년 새 건물을 마련하여 지금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이란다. 이교회를 설립하는 데는 테이트가 이 곳에 와서 전도한 조덕삼(趙德三:1867~1919), 이자익(李自益:(1879~1958)), 박화서 (朴化西), 왕칠순(王巡七:1887~1933)등의 도움이 컸다고 소개되어있다. 1997년 7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6호로 지정되어 전시관을 지어놓기까지 했다.
조덕삼 장로는 조세형(1931~2009)의원의 선친
조덕삼 장로는 조세형(1931~2009: 전주고 27회) 전 국회의원의 조부로 자신의 땅에 금산교회를 짓게 하고 머슴 이자익을 신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후에 자신과 함께 장로 선출에서 후보로 나와 이자익이 되자 승복하고 장로로 섬기고 그에 더해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유학보내 목사공부를 하게 하여 담임목사로 초빙하여 섬긴 인물로 유명하다. 고인이 된 조세형 국회의원의 선친이 그런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이날에야 알았다.
조 동문은 서울에서 정치 등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2009년 작고할 때까지 한달에 한번씩 내려와 가계 3대 장로로 일을 보았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왕현성 목사의 조부 왕칠순 장로
왕순칠 장로는 왕현성(4반) 목사의 조부라고 한다. 왕목사에 따르면 당시 두분 장로중 한분으로 당회록 서기를 하셨다고 한다.
엄마 품같은 모악산(794m)이 기가 세서 각종 종교가 번성했는데 금산사는 미륵불이 또 하나의 극락세계인 용화세계에 나타난다는 미륵신앙의 종찰이기도 하다. 증산교의 본부가 이 인근에 있으며 이의 분파이기도 한 미륵신앙이 많이 들어있는 대진순리교의 수련원도 이곳 모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그 자리에서 점찍어
우리는 장로님의 이 교회에 대한 내력을 듣고 허락을 받고 그 자리에 앉아 준비해온 밥과 빵으로 배를 채웠다. 전기난로도 있어 따뜻해서 좋았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고장의 유서깊은 교회와 성당을 둘러볼 수 있었다.
미륵신앙의 종찰 금산사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로 인근 금산사 추자장에 주차했다. 푸른 하늘이 조금씩 나타난다. 아직 만개를 하지는 않았지만 붉은색 계통의 철쭉과 영산홍이 반갑게 맞고 벚꼬도 보인다. 비가 씻어낸 후라 녹색이 한결 산뜻하다. 연등이 길가로 걸려있다. 초파일이 한달이 채 남지않았다(5월14일).
화려하고 탐스런 겹벚꽃
5월14일이 사월초파일
느티나무
동양 최대 실내 입불 모셔진 미륵전
아무래도 금산사는 미륵전의 미륵불이 다른 절과 비교가 되는 곳이다. 3층 통층에 서 있는 11.8m의 미륵불은 동양 최대로 국보 제62호란다. 용화세계를 해 놓은 것이다. 보관을 쓴 두 보살이 협시로 양쪽에 서 있다. 우리는 이 미륵전 앞에서 인증샷을 만들었다.
이 미륵전에는 층마다 편액이 걸려있다. 3층 현판에는 미륵전(彌勒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연 법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이라고 쓰여있다. 모두가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이라는 뜻이다.
미륵불은 미래에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미래불이다. 그 세계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와 같은 또 하나의 불국토 용화세계를 말한다. 미륵불은 현재 미륵보살로 도솔천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
미륵은 범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자비:慈悲)로 중국 등 한자문화권에서 자씨(慈氏)로 번역되었다. 대자(大慈)는 자비가 한없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관세음보살도 자비(慈悲)의 화신이다. 미륵, 용화, 대자가 다 미륵신앙의 용어들이다.
견훤이 3개월 갇혀있던 곳
비운의 견훤(867~936)이 이 미륵전 지하실에 3개월이나 갖혀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예날 지하실 자리인 미륵불 밑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가마솥모습의 무쇠덩어리가 있다. 이 무쇠덩어리가 1,200년전의 제련기술로 만들어진 부처의 좌대다. 연전에 한번 들어가본 적이 있다. 지금은 막아놓은 듯 하다.
11.8m 키의 미륵불 입상
이 고찰에는 이 외에도 5층석탑,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유사한 방등계단과 그위 석종, 6각다층석탑, 당간지주, 대적광전 등 보물들이 널려있고 에피소드도 많다.
방등계단 위 석종과 5층석탑
'웰빙을 위하여!!!'
3시 조금 지나서 주차장에 나왔다. 2박3일의 여행을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다. 11명이 손을 모으고 “웰빙을 위하여!!!”라고 크게 외쳐보았다. 천안-논산고속도로 등이 조금씩 막혀 집에 돌아오니 7시가 되었다. 백영은 4시에 전주에 도착 했다고 카톡에 올렸다.
2박3일 고향 봄나들이에 같이 한 5부부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숙소를 마련해 준 백영 동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후묵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