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출은/김영복
나는 '집순이'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슈퍼에서 장 보는 것 외에는 특별히 나갈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즈음에는, 애들이 오기 전에 사방에 널려있는 학용품이나 옷들을 챙겨서 정리하고, 청소 후 간식을 준비하다보면 애들이 순서대로 돌어왔다. 그 때의 특별한 외출은 교회에 가는 것과, 학기에 한번 쯤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날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렇게 한 해 두 해 살다보니, 어느 순간 애들은 많이 자랐고, 그때야 겨우 나의 외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아이들 공부시키면서 했던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힘든 외출을 하려고 했을까 싶다. 1997년 3월 나는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러 날마다 외출을 했다. 두 애들이 대학에 갔고 막내만 남은 상태였던것이다. 그제야 외출을 하려니까 외출복도 사야 하고, 화장도 하고, 머리도 깔끔하게 손질하여, 책가방을 든 아줌마 학생이 되었다. 내 나이 마흔 다섯에 용기를 낸 야심찬 외출이었다.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늦게 시작한 학생으로, 지금 생각하면 무리한 외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만해도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우리 반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인 곳이라 생각하며,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놀이가 되었다. 그 시절 처음으로 친구도 사귀고 모임도 참석하는 외출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이 신학을 하면서 이제 사치스런 외출은 끝을 내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집순이'로 돌아온 것이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나는 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을 지내다 보니 이제 세 아이들은 모두 결혼하여 40대가 되었다. 나도 칠십이 넘었지만, 이제는 외출할 날이 자주 생긴다. 하지만 건강치 못한 몸 때문인지, 모임이 있는 날이 다가오면 설레는 것이 아니라 괜히 짜증이 난다. 마음과 몸이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집 밖으로 나간다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나에게 외출은 엄청난 부담이다. 주일과 수요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이 나에게 딱 맞는 외출이다. 가끔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즐겁게 놀고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오는데, 왜 피곤하냐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갑상선 수술 얘기를 하게 된다. 요즘은 모임이 있어 집을 나갈때면, 계단을 내려가며 기도를 한다. "하나님, 오늘 기분좋게, 씩씩하게 놀다오게 해 주세요. 누가 저를 보며 피곤하냐고 묻지 않게 해 주세요"이렇게 중얼거리며 나간다. 외출은 가벼운 마음, 설레는 마음이어야 할 텐데...책상 위의 달력에는 약속한 날이라든지 병원에 가는 날, 그리고 가족 누군가의 생일 표시로 가득하다. 쳐다보면 답답하고 아득해진다. 생각만 해도 피곤함이 몰려온다. 언젠가 천국으로 가야할 때, 그날의 외출은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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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은 ‘外出’이라는 한자가 말해 주듯이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태어남은 세상으로의 외출, 대단한 결단의 외출입니다. 외출은 사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법 그럴싸한 일이 있어 나가는 것이어서 외출복이라는 것도 따로 챙겨 입습니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곱게 치장하고 나갑니다.
행세께나 하는 사람은 외출이 당연히 잦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나러 나가는 것이고 세상을 만나러 나가는 것은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세상을 알게 되고 사람을 만남으로써 행복해지며 사람을 만남으로써 절망하게도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남으로써 모르던 것을 알게도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일이 없었다면 세상은 이만큼 발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외출은 나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공간에 세워줍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내 표정이 홀로 있을 때와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화제가 달라집니다. 외출은 사회생활의 일부분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를 담뿍 안고 바람을 가르면서 나가는 외출, 달력에는 몇 주일 전 아니면 몇 달 전부터 빨간 글씨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아래 다시 밑줄까지 치고 기다렸던 외출도 있습니다.
C-19 이후로 사람들의 외출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생애의 절정이 지나가면 날이 갈수록 설레는 외출도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아예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여자는 외출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여 ‘우리 집사람’이니 ‘우리 안사람’이라는 말을 썼고 남편을 ‘이댁 쥔양반’, ‘주인어른’이라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흔다섯 살에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그것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이냐를 따지지 않고 배우고 싶어서 학교에 갔으니 떳떳한 외출입니다. 남편이 극구 반대를 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두 애들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셋째는 아직 남았고 애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마음을 크게 가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남편이 골프를 배우라고 권유했다는 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아내로서 남편에게 대접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집에 있는 것이 편하기야 하지만 외출을 너무 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외출하면 몸이 단련이 되지 않아서 잘 넘어지기도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외출하면 사람을 만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외출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게 합니다. 외출하지 않다가 하면 습관이 되지 않아서 더 피곤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출할 일이 줄어듭니다. 줄어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할 말도 줄어들고 갈 곳도 줄어들고 전화 오는 곳도 줄어듭니다. 옷 갈아입고 팔랑팔랑 나다닐 일이 줄어들고 나다니고 싶지도 않아집니다. 몸만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그렇게 시킵니다.
그래서 ‘No’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겠다고 합니다. 무엇이나 ‘Yes’입니다.
위에서 밑줄을 그은 어휘들은 띄어쓰기 수정할 부분입니다. 붙여서 쓸 것과 띄어서 쓸 어휘들을 표시했습니다. 컴퓨터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수정해주는 프로그램이 깔린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컴퓨터도 틀리게 일러 줍니다.
‘외출을 했다’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데 외출을 했다를 ‘외출했다’로 바꿔 쓰면 더 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