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도(串里島, 곶리도)
여행일 : ‘20. 5. 17(일)
소재지 :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관리도리.
트레킹 코스 : 선착장→발전소→작은깃대봉→깃대봉→투구봉→임도→선바위전망대→선착장(소요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장자도에서 서쪽으로 1.6㎞(군산에서는 38㎞)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장자도(대장도 포함)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섬 중앙의 깃대봉(136.8 m)과 남쪽의 투구봉(129 m)을 축으로 하여, 전체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구릉형 산지로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으로는 길쭉하고 위쪽이 약간 뾰쪽하게 생겼다. 어떤 이들은 이 모양새를 두고 뾰쪽한 꼬챙이 같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섬 이름도 ‘꼭지도’라 불려왔다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꼬챙이 관(串)자를 붙여 ‘관리도’로 고처 불렀다는 것이다. 관리도는 1.65㎢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7.3㎞나 된다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리아스식 해안이 그만큼 잘 발달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섬은 그 덕분에 여느 유명 섬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동쪽과 사빈(沙濱)이 잘 발달된 서쪽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확연한 대비를 이루면서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 찾아오는 방법
관리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자도(군산시 옥도면 장자도리)’로 가야 한다. 섬으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장자도 선착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산항에서 배를 탈 수밖에 없었으나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의 ‘선유대교’, 선유도와 장자교를 잇는 ‘장자대교’가 잇달아 놓이면서 차량의 진입이 가능해지자 중간기착지인 이곳 장자도에서도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단다. 하지만 우린 신시도로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있는 ‘야미도 선착장(군산시 옥도면 야미도리)’으로 왔다. 이곳에서 낚싯배를 대절해서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 우리가 타고 갈 ‘해동호’이다. 자그만 낚싯배이지만 30명 정도는 너끈히 탈 수 있는데다 구명조끼까지 갖추고 있으니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우리 외에도 이런 낚싯배를 이용해 섬으로 들어가는 산악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목적은 딴판이다. 뱃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우리와는 달리 다른 산악회들은 대부분 서해의 도원경(桃源境)으로 소문난 십이동파도(十二東波島)까지 함께 둘러보기 위해서 낚싯배를 이용한다.
▼ 배를 타고가다 잘 생긴 바위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횡경도(橫境島)와 소횡경도 사이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데 목을 내밀고 있는 거북이를 쏙 빼다 닮았다. ‘자라여’라고도 불리는 ‘거북바위’일 것이다. 횡경도와 소횡경도는 모두 무인도이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어 바다낚시 마니아들이 아니면 찾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두 섬의 중요성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옆에 있는 방축도와 명도, 말도 등과 함께 일렬로 늘어서서 서해에서 밀려오는 바람과 파도를 온 몸으로 막아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 섬 안쪽에는 호수와 같은 바다가 만들어진다. 말 그대로 관리도와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섬 속의 섬’ 답게 잔잔하기 짝이 없는 바다 속에서 평온하게 떠돌 수 있는 것이다.
▼ ‘야미도항’을 출발한지 20분이 지나서야 ‘관리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장자도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탔더라면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야미도항에서 출발하면서 상황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관리도보다도 오히려 더 멀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방축도를 탐방하려는 다른 일행들을 먼저 내려주고 이곳으로 왔다.
▼ 선착장에 내리니 커다란 마을 표지석이 여행객을 맞는다. 그 옆에는 관광안내도도 세워져 있다. 이 동네도 역시 관광서비스업의 비중이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관리도는 고군산군도에 속한 작은 섬이다. 여기서 고군산(古群山)은 ‘옛날 군산’을 의미한다. 현재의 군산은 하나의 도시이지만 원래는 지금의 군산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아우르는 지명이었다고 한다. 바다 위에 점점이 솟아있는 섬들이 마치 산봉우리의 무리처럼 보여 ‘군산(群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 승선대기소로 여겨지는 건물 앞 땅바닥에도 ‘관리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의 세 지점에는 앉아서 쉬기 딱 좋은 돌 3개가 놓여있다. 섬을 대표하는 산봉우리인 시루봉과 질망봉, 투구봉이란다. 참고로 관리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본래의 이름은 ‘꽂지섬’이었는데 이는 무관의 고장으로 적을 무찌르기 위해 수많은 무장들이 활을 쏘아 적의 몸에 화살을 꽂아댄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그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섬의 지형이 마치 꼬챙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꼭지도’라 불리다가 ‘꼬챙이 관(串)’자를 붙여 관리도라 했다는 설이다.
▼ 선착장 오른편은 온통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이다. 섬의 동쪽과 북쪽 해안은 대부분 저런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 마을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내연발전소를 지나자 목조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등산로와 연결된다. 아니 섬의 높이를 고려하면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
▼ 길은 잘 나있다. 경사가 완만한 숲길을 잠시 걷자 이동통신사의 중계탑이 나온다.
▼ 이어서 약간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자 시야가 트이면서 ‘데크 시설’이 있는 작은 깃대봉에 이른다. 선척장에서 살펴봤던 관광안내도에는 이곳 작은시루봉의 오른편 해안에 ‘시녀자갈밭’이 있다고 했다. 또한 어느 선답자는 작은 모래사장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며 다녀오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양쪽으로 바위들이 아늑하게 감싸 주고 있어 세간의 어지러움을 씻어내기에 더없이 좋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이곳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바다 전망이 더 넓어지면서 봉우리의 높이와 탁 트인 시야가 거칠 것 없게 만든다. 좌측으로는 관리도 선착장 및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멀리 바다 건너에는 희미하게나마 선유봉과 대장봉이 나타난다. 아직 덜 걷힌 안개 때문이다. 이 안개는 고군산군도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는 말도-명도-방축도-횡경도를 아예 사라지게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오른편은 텅 빈 여백으로 남아있다.
▼ 작은 깃대봉에서 잠시 쉰 후 깃대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능선을 지키고 있는 괴이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어쩐지 눈에 익다. 얼핏 우산을 펼쳐놓는 것처럼 생겼다. 맞다. 몇 년 전에 들렀던 이탈리아에서는 저런 소나무를 ‘우산소나무(Pinolo, 영어로는 Stone Pine 또는 umbrella pine)’라고 부르고 있었다. 미끈하게 큰 줄기의 끝에 가지와 솔잎이 우산처럼 펼쳐져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처럼 유럽의 화가들도 이 우산소나무를 작품소재로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 몇 분만 더 진행하면 하얀 정자가 나온다. 관리도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낙조전망대’로 시멘트 기둥에 번듯한 지붕까지 얹고 2층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조망은 썩 뛰어나지 못하다. 주변의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그저 관리도 선착장 및 마을을 조망하는 것에 만족하면 되겠다.
▼ 전망대에서 50m쯤 더 내려가면 캠핑용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비박(Bivouac, 野營) 마니아들에게는 일몰까지 볼 수 있는 명소로 각광받는 곳으로 사전 예약(010-5159-9794)을 통해 안부 아래 캠핑장에서 야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전망대 데크에서는 야영 및 취사행위가 금지되어 있단다. 참! 데크에서 해변과 마을 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시간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작은 시루봉을 거치지 않고도 마을을 통해 곧바로 이곳에 이를 수 있겠다.
▼ ‘데크 쉼터’에서 바라본 협곡, 이 협곡의 오른편 절벽에다 ‘전망데크’를 매달아 놓았다.
▼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려는 지자체의 간절한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까지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절벽에 잔교(棧橋)를 놓았는가 하면 그 끄트머리에 제비집 같은 전망대를 지었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용바위 전망대’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절벽전망대에 내려가면 해안절벽의 기암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착장의 ‘관광안내도’에 표기되어 있던 ‘용바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선상 투어로나 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저 절벽에 삐져나온 바위 가운데 하나가 용의 머리를 닮았을 수도 있겠다.
▼ 시루봉으로 향한다. 관리도의 능선 가운데 가장 가파른 구간이나 통나무계단이 놓여있어 속도만 조금 떨어뜨린다면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거기다 거리까지 짧다.
▼ 5분 정도 오르자 ‘데크 쉼터(80.9m봉)’가 지어져 있다.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듯하나 조망은 썩 뛰어나지 못하다. 지나온 능선과 가야할 능선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빼놓고는 특이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선답자의 글에는 북쪽에 위치한 말도-명도-방축도-횡경도는 물론이고 동쪽으로 관리도 앞바다와 선유도-장자도-대장도가 그림같이 시야에 들어온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 데크에서 내려서자 이번에는 닭벼슬처럼 솟아오른 암릉이 손짓한다.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해봐야 5m를 넘기지 않고, 길이도 100m가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규모의 바위능선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능선을 ‘관리도의 용아장성’, ‘관리도의 공룡능선’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설악산의 백미인 ‘용아장성(龍牙長城,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봉들이 연이어 성처럼 길게 둘러쳐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나 능선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다는 ‘공룡능선(恐龍稜線)’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마는 관리도가 본디 면소재지도 못되는 자그마한 크기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될 듯도 싶다.
▼ 이 암릉은 ’부처손(또는 萬年松, 長生草)‘ 군락지이기도 하다. 산부인과 계통의 질병과 통증을 다스리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훼손된 곳이 많다고 했는데, 이곳은 아직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았나 보다.
▼ 암릉이 끝나면서 능선은 조금 가팔라진다. 거기다 오른편은 서슬 시퍼런 바위 절벽. 그렇다고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밧줄 난간을 설치해 벼랑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 데크쉼터를 출발한지 12분 만에 ’깃대봉(136.8m)‘에 올라선다. 두세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삼각점 하나만 박혀있다. 그 흔한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블랙야크‘에서 매달아 놓은 것으로 보이는 인증용 ’정상표지판‘만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정상은 조망이 허락되지 않는다. 다들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 깃대봉 정상을 넘으면 멀리 투구봉(129.5m)과 질망봉(91.2m), 그리고 천공굴 해안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은 서서히 높이를 낮추어 가는데, 바위와 암릉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든다. 특히 오른편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 길 낭떠러지이다. 관리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 하겠다.
▼ 우리나라에는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곳이 제법 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곳들로 하나같이 수많은 기암괴석들을 품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도 소금강이라는 별명 하나 더 붙인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겠다. 아니 바닷가에 면해있으니 소금강이 아니라 해금강(海金剛)이라 하는 게 옳겠다.
▼ 관리도의 명품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 ’쌍촛대바위‘라고 한다.
▼ 암벽구간을 지나면 또 다른 협곡이 나타난다. 절벽 위로 난 탐방로가 위험했던지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굵은 동아줄을 안전용으로 매어놓았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묵었던지 중간이 끊어져 있다. 이걸 믿다가는 오히려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 협곡에 내려선다. 이곳도 용바위전망대만은 못해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그나저나 관리도의 서쪽해안은 온통 저런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다. 해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섬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관리도의 명물 ’천공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 시루봉에서 내려선지 30분 만에 안부 삼거리(이정표 : 징장불해수욕장↑ 0.58㎞/ 관리도마을← 1.45㎞/ 관리도마을↓ 1.66㎞)를 만났다. 왼편은 관리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 관리도의 최고봉인 ’투구봉‘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 다른 이정표에는 관리도마을로 이어지는 두 방향을 ’꽃지2길‘, 우리가 가려고 하는 징장불해수욕장을 ’꽃지4길‘로 표시해 놓았다. 안내도도 함께 그려놓아 길 찾기에 도움을 주고 있으나, 반면에 두구봉과 질망봉, 시루봉 등 산의 위치를 탐방로에서 벗어나게 표시해 오히려 혼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징장불해수욕장으로 방향을 잡으면 잠시 후 가파른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하지만 버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르는 도중 시야가 열리면서 눈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섬들이 눈에 가득 차오르는데 힘들다는 생각이 파고들 틈새가 어디 있겠는가.
▼ 이어서 15분 후에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정상↑ 0.16㎞/ 징장불해수욕장← 0.32㎞/ 관리도마을↓ 1.71㎞)가 나온다. 이정표에 나와 있는 정상은 ’투구봉‘을 말한다.
▼ 이때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신시도 등 푸른 바다에 흩어져 있는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트레킹 내내 아름다운 풍광이 함께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관리도의 해안절벽은 물론이고, 웅장한 바위와 드문드문 솟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지는 대장도와 장자도, 선유도가 1.6㎞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아름다운 풍광들 가운데서도 정점(頂點)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징장불 해수욕장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떠 있는 섬들, 그 건너편의 멋진 바위들까지 한 눈에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 투구봉으로 향한다.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남짓 치고 오르자 드디어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다. 그저 선답자들이 매달아놓은 수많은 리본들이 이곳이 투구봉의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투구봉은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무장한 장군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관리도에는 군(軍)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말을 탄 무사의 모습을 한 ‘질망봉(말봉우리)’, 승려로 이뤄진 군사 모습을 한 ‘중바위’ 등이 그것이다.
▼ 계속해서 천공굴 방향의 능선을 타본다. 3분쯤 진행하니 시야가 열리면서 천공굴로 연결되는 능선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런데 너무 멀다. 가야하나를 놓고 고민하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만다. 천공굴까지 다녀오려면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된다는데 이를 감행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징장불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관리도마을 방향으로 흐르는 능선을 따르면 된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징장불해수욕장→ 0.12㎞/ 관리도마을← 0.51㎞/ 정상↓ 0.36㎞)에서는 선두대장이 남겨놓은 방향표시를 따라 관리도마을 방향으로 진행했다. 징장불해수욕장이 코앞에 있는데도 그리 한 것은 선두대장의 배낭에 남아있는 술에 정신을 빼앗겼다고 보면 되겠다.
▼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자그마한 섬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널찍한 임도에 내려선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만이다. 이젠 임도를 따라 관리도마을로 향하면 된다. 관리도의 ’관광안내도‘에서는 이 길을 ’꽃지3길‘로 표시하고 있다.
▼ 임도를 따르다보면 시야가 열리면서 코앞에 있는 시루섬(’솔티섬‘이라는 사람들도 있다)은 물론이고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신시도 등 푸른 바다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섬이 많은 전남이나 경남 해안에서야 익숙한 풍경이겠지만 전북지역에서 만나니 이채롭다. 그것도 온통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산들이라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 지금은 옥도면이 속하는 작은 섬들에 불과하지만 원래는 이곳이 군산의 원류였다. 수평선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마치 작은 산들이 모여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군산(群山)’이다.
▼ 시루섬의 오른편에서 소나무를 고깔모자처럼 쓰고 있는 작은 바위섬은 ‘선바위’라고 한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자못 아름다운 데다 기괴하기까지 하다. 해식해안의 전형적인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식절벽(sea cliff)은 해식동굴(sea cave)을 거쳐 ‘씨 아치(sea arch, 독립문처럼 암석 기저부가 뚫린 다리모양의 파식지형)’로 변하고, ‘씨 아치’는 세월이 흐르면서 ‘시스텍(sea stack, 암석이 파도의 침식을 차별적으로 받아 만들어진 굴뚝 형태의 지형)’이 된다. 그렇다면 선바위는 시스텍이라고 보면 되겠다.
▼ 임도를 따라 100m쯤 걸었을까 오른편 능선을 따라 오솔길 하나가 갈려나간다. 바닥에는 야자매트까지 깔아놓았다. 그러니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우린 육각정을 만났다. 관리도의 또 다른 조망 명소인 ’선바위 전망대‘이다.
▼ 정자에 오르면 관리도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선유도와 장자도 등 고군산군도의 섬들도 조망된다. 하지만 ’선바위 전망대‘라는 이름과는 달리 선바위는 나뭇가지 사이로 살포시 그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 임도로 되돌아와 관리도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첫 번째로 만나는 풍경은 모래와 자갈이 반반쯤 섞인 ’설록금해변‘. 제법 규모가 큰 해변이지만 어선 두어 척과 양식시설로 보이는 배가 보일 뿐 특이할 게 하나 없는 해변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마을까지 들어서있었다고 한다. 아니 이곳 말고도 버금물과 징장불에도 마을이 있었단다. ’꽃지‘까지 합하면 관리도에 네 개의 마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십이동파도에 북한 간첩선이 나타나 주민 2명을 납치한 사건 이후 3개 마을이 모두 꽂지로 이주해 지금에 이르고 있단다.
▼ 두 번째로 만나는 ’샛꼼해변‘은 설록금 해변만도 못하다. 이번에는 그런 배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서넛이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게 보일 따름이다.
▼ 모퉁이를 돌아서면 마을이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30분이 걸렸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1시간을 쉬었으니 실제로는 3시간 30분을 걸은 셈이다. 그건 그렇고 이곳 꽂지마을은 대략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떠올려 볼 만한 풍경은 있었다. 1995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말미잘’이 이곳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유현목 감독의 42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던 이 영화는 국민배우 안성기와 최민식, 한석규, 이영하, 나영희, 채시라, 강석우, 장동휘, 김희라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총 출연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었다. 또한 이 영화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을 서정적인 영상으로 아름답게 표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이 영화는 이곳 관리도와 선유도에서 대부분 촬영되었다. 관리도는 故김수복 가족의 집을 세트장으로 꾸몄는데, 현재는 ‘관리도길’이라는 민박집 겸 쉼터로 문을 열어 관광객들에게 낭만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추억의 장소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촬영지임을 알리는 패널(panel)까지 전시하고 있는데 말이다. 2만 원짜리라는 갑오징어 한 마리 데쳐놓고 소주를 마시다보니 금새 얼큰하게 취해버렸다. 이후의 사진이 없는 이유이다. 참! 관리도의 촬영지는 이곳 말고도 폐교(現관리도 캠핑장)와 등너머(지명)앞 바다가 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