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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미래했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까지 완벽한 팔방미인! ‘신미래 - 오빠는 풍각쟁이’ [트롯전국체전]
/ KBS 210130 放送(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nY5WW0Hto3Q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朴響林(박향림)의 노래.~!
發賣日(발매일)1938年(년) 길이2:52
作詞家(작사가)박영호(朴英鎬)~作曲家(작곡가)김송규(金松奎)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1938年(년) 發表(발표)한 朴響林(박향림)의 漫謠(만요).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는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朝鮮(조선)의 歌手(가수) 朴響林(박향림)이 1938年(년)에 發賣(발매)한 노래이다.
심술부리는 日常的(일상적)인 男妹(남매)집안 오빠들을 諧謔的(해학적)으로 表現(표현)한 노래이다.
歌詞(가사)
1절
오빠는 풍각쟁이야, 머오빠는 심술쟁이야, 머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거 난 몰라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오빠는 깍쟁이야!
2절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오빠는 심술쟁이야, 머난 실여 난 실여 내 편지 남 몰래 보는 것 난 실여명치좌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심부름 시킬때면 엄벙땡하구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오빠는 트집쟁이야!
3절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오빠는 모주꾼이야, 머난 몰라이 난 몰라이 밤늦게 술취해 오는것 난 몰라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하구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오빠는 대포쟁이야!
박향림(朴響林, 1921年(년) ~ 1946年(년)은 일제 强占期(강점기)에 主(주)로 活動(활동)한 韓國(한국)의 歌手(가수)이다. 本名(본명)은 朴憶別(박억별)이며, 데뷔(debut) 初(초)부터 박정림(朴貞林)이라는 藝名(예명)도 함께 썼다.
生涯(생애)
咸鏡北道(함경북도) 鏡城郡(경성군) 朱乙溫泉(주을온천) 附近(부근)에서 出生(출생)했다. 어머니는 飮食店(음식점)을 經營(경영)했고, 朴響林(박향림)은 元山府(원산부)의 樓氏女子高等普通學校(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으며 卒業(졸업) 後(후)에 잠시 金融組合(금융조합)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1937年(년) 朱乙(주을)에는 人氣(인기) 作曲家(작곡가) 박시춘(朴是春)이 包含(포함)된 오케레코드(Ok record)의 오케(Okay)演奏團(연주단)이 내려와 公演(공연)을 했는데, 歌手(가수)를 志望(지망)한 朴響林(박향림)이 演奏團(연주단)을 찾아가 노래를 불러 보였으나 社長(사장) 이철(李哲)의 反對(반대)로 拔擢(발탁)되지 못했다는 逸話(일화)가 있다.
朴響林(박향림)은 上京(상경)하여 오케레코드(Ok record)의 競爭社(경쟁사)인 太平(태평)레코드(Taepyeong Record)를 찾아가 歌手(가수)로 데뷔(debut)할수 있었고, 朴英鎬(박영호)의 〈靑春劇場(청춘극장)〉과 〈서커스 걸(Circus girl)〉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以後(이후) 콜럼비아레코드(Columbia Records)에 迎入(영입)되어 朴響林(박향림)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히트곡(Hit song)을 發表(발표)했다. 이 時期(시기)의 代表的(대표적)인 노래로는 庶民的(서민적)인 內容(내용)을 담은 漫謠(만요)로 朴響林(박향림)의 콧소리가 잘 어울리는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 김해송(金海松)과 듀엣(Duet)을 이룬 〈電話日記(전화일기)〉가 있다.
콜럼비아레코드(Columbia Records)에서 많은 人氣(인기)를 얻은 朴響林(박향림)은 처음에 拒絶(거절)당했던 오케레코드(Ok record)에 스카우트(scout)되어 코스모스(Cosmos) 歎息(탄식)〉, 〈純情特級(순정특급)〉과 같은 히트曲(곡)(Hit song)을 繼續(계속) 發表(발표)하였다. 獨特(독특)한 목소리에 卓越(탁월)한 技巧(기교)로 漫謠(만요), 재즈(jazz), 블루스(blues)에 長技(장기)를 보였다.
비슷한 時期(시기)에 活動(활동)한 女歌手(여가수)들 가운데 가장 都市的(도시적)이고 潑剌(발랄)한 雰圍氣(분위기)의 노래를 불렀고, 야무지고 正確(정확)한 歌唱(가창)이 特徵(특징)이었다.
太平洋(태평양) 戰爭(전쟁) 中(중) 이철(李哲)과 오케레코드(Ok record)社(사)가 親日(친일) 歌謠(가요) 普及(보급)에 動員(동원)되면서, 朴響林(박향림)도 天皇(천황)의 兵丁(병정)이 되는 것이 訴願(소원)이라 血書(혈서)를 쓰면서까지 志願(지원)한다는 內容(내용)의 〈血書志願(혈서지원)〉과 같은 君國歌謠(군국가요)를 부른 일이 있다.
人氣(인기) 歌手(가수) 남인수(南仁樹), 백년설(白年雪)과 함께 부른 이 노래 때문에 光復(광복) 後(후) 이미 朴響林(박향림)이 死亡(사망)한 뒤에 김승학(金承學)이 整理(정리)한 親日派(친일파) 名單(명단)에는 血書志願者(혈서지원자)로 잘못 表記(표기)되어 包含(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血書志願(혈서지원)〉 外(외)에도 〈진두(陳頭)의 男便(남편)〉, 〈총후(銃後)의 자장가〉, 〈花郞(화랑)〉 等(등)의 君國歌謠(군국가요)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1946年(년) 出産(출산)한 直後(직후) 江原道(강원도) 洪川郡(홍천군)에서 열린 公演(공연)에 參加(참가)했다가 産後病(산후병)이 發病(발병)하여 夭折(요절)했다. 그해 7月(월)에 東洋劇場(동양극장)에서는 박영호(朴英鎬)가 追悼辭(추도사)를 읽은 朴響林(박향림) 追悼(추도) 公演(공연)이 열렸다.
박영호(朴英鎬)~作歌(작가)情報(정보)
出生(출생) 1911年(년)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朝鮮(조선) 江原道(강원도) 通川(통천).
死亡(사망) ~1953年(년) (享年(향년) 43歲(세)
言語(언어) ~韓國語(한국어), 日本語(일본어), 中國語(중국어)
國籍(국적) ~朝鮮(조선)民主主義(민주주의)人民共和國(인민공화국)
經歷(경력) ~朝鮮(조선)勞動黨(로동당) 黨務委員(당무위원)
北朝鮮演劇人同盟(북조선연극인동맹) 代表委員長(대표위원장)
筆名(필명) ~처녀림(處女林), 불사조(不死鳥)
活動期間(활동기간) 1928年(년) ~ 1949年(년)
장르(genre) 戱曲(희곡), 詩文學(시문학)
配偶者(배우자) 이선희(再婚(재혼)
박영호(朴英鎬, 1911年(년) ~ 1953年(년)는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의 劇作家(극작가)이다. 大衆歌謠(대중가요) 作詞家(작사가)로도 活動(활동)했고, 筆名(필명)으로 처녀림(處女林), 불사조(不死鳥)를 使用(사용)했다. 趙鳴岩(조명암)의 筆名(필명) 金茶人(김다인)도 함께 使用(사용)했을지 모른다는 說(설)이 있다.
目次(목차)
1 生涯(생애)
2 死後(사후)
3 參考文獻(참고문헌)
4 脚注(각주)
生涯(생애)
成長期(성장기)나 學窓(학창) 時節(시절)에 대한 情報(정보)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江原道(강원도) 通川(통천)에서 出生(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咸鏡南道(함경남도) 咸州(함주)에서 잠시 幼兒期(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後(후) 咸鏡南道(함경남도) 元山府(원산부)에서 學校(학교)를 다니면서 獨學(독학)으로 文學(문학)을 工部(공부)했다는 程度(정도)로 알려졌다.
1920年代(년대)에 朝鮮(조선)프롤레타리아(proletarian:无产者)藝術家(예술가)同盟(동맹) 系列(계열)에서 戱曲(희곡)을 創作(창작)하며 文壇(문단)에 登壇(등단)하여 1930年代(년대)부터는 大衆歌謠(대중가요)의 歌詞(가사)도 作詞(작사)했다. 카프(Calf:송아지) 活動(활동) 中(중)에는 警察(경찰)에 拘束(구속)된 일도 있다.
박영호(朴英鎬)가 干與(간여)한 元山(원산)의 朝鮮演劇工場(조선연극공장)은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演劇史(연극사)의 獨特(독특)한 存在(존재)로, 地方(지방)에 基盤(기반)을 둔 프로(Pro) 演劇團體(연극단체)로서 活潑(활발)한 活動(활동)을 하였고 旣存(기존) 興行劇(흥행극)을 革新(혁신)해 프로(Pro) 演劇(연극)으로 發展(발전)시킨 事例(사례)도 있다.
1939年(년) 劇團(극단) 高協(고협)이 公演(공연)한 〈정어리〉가 好評(호평)을 받았다. 〈정어리〉 公演(공연)을 契機(계기)로 高協(고협)은 阿娘(아랑)과 함께 光復(광복) 時點(시점)까지 演劇界(연극계)의 代表的(대표적)인 大衆劇(대중극) 公演(공연) 團體(단체)로 자리잡았다.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末期(말기)에 親日(친일)戲曲(희곡)을 썼다. 1942年(년) 朝鮮總督府(조선총독부)가 後援(후원)해 열린 第(제)1回(회) 演劇(연극)競演大會(경연대회)에 〈산돼지〉, 이듬해의 第(제)2回(회) 大會(대회)에는 〈물새〉를, 1945年(년) 열린 第(제)3回(회) 大會(대회)에는 〈별의 合唱(합창)〉을 出品(출품)했다. 이 가운데 漁村(어촌)을 背景(배경)으로 志願兵制(지원병제)를 弘報(홍보)하는 內容(내용)의 〈물새〉는 演出賞(연출상), 裝置賞(장치상), 男女(남녀) 演技賞(연기상)을 휩쓸었다.
1932年(년)부터 作詞家(작사가)로 活動(활동)하여 높은 人氣(인기)를 얻었고, 太平(태평)레코드(record)와 시에론레코드(Sierra Records)의 文藝部長(문예부장)을 지낸 바 있다.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末期(말기)에는 君國歌謠(군국가요)의 歌詞(가사)도 創作(창작)했다. 〈民草合唱(민초합창)〉, 〈千里戰場(천리전장)〉과 〈달 있는 모항(母港)〉 等(등)이 알려져 있다.
光復(광복) 後(후) 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에 參與(참여)했다가 1946年(년)에 두 번째 夫人(부인)인 作家(작가) 이선희(李善熙)와 함께 越北(월북)하였고, 北朝鮮(북조선)演劇人(연극인)同盟(동맹)의 初代(초대) 委員長(위원장)을 지냈다. 韓國(한국) 戰爭(전쟁) 때 朝鮮人民軍(조선인민군) 從軍作家(종군작가)로 參戰(참전)하였다가 休戰(휴전)을 앞두고 死亡(사망)했다. 1952年(년) 病死說(병사설)과 1953年(년) 戰事說(전사설)이 있다.
死後(사후)
2002年(년) 發表(발표)된 親日(친일) 文學人(문학인) 42人(인) 名單(명단)에 들어 있으며, 2008年(년) 選定(선정)된 民族問題硏究所(민족문제연구소)의 親日人名事典(친일인명사전) 收錄豫定者名單(수록예정자명단) 演劇(연극)/映畫(영화) 部門(부문), 2009年(년) 親日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發表(발표)한 親日反民族行爲(친일반민족행위) 705人(인) 名單(명단)에도 包含(포함)되었다.
1944年(년) 《朝光(조광)》에 發表(발표)한 戲曲(희곡) 《김옥균(金玉均)의 死(사)》 等(등) 總(총) 10編(편)의 親日 著作物(친일저작물)이 確認(확인)되었다.
〈짝사랑〉,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 〈물방아 사랑〉, 〈望鄕草(망향초)사랑〉, 〈連絡船(연락선)은 떠난다〉, 〈울어라 門風紙(문풍지)〉, 〈番地(번지)없는 酒幕(주막)〉 等(등)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에 作詞(작사)한 히트(hit)曲(곡)들이 多數(다수) 있었으나, 越北(월북) 藝術人(예술인)들이 1990年代(년대)에 解禁(해금)되기까지는 다른 사람이 作詞(작사)한 曲(곡)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김해송(金海松, 日本式(일본식) 이름: 金山松夫(금산송부) 가네야마 마쓰오), 1910年(년) 12月(월) ~ 1950年(년)?)은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와 大韓民國(대한민국)의 歌手(가수) 兼(겸) 大衆音樂(대중음악) 作曲家(작곡가)이다. 本名(본명)인 김송규(金松奎)로도 알려져 있다.
目次(목차)
1 學歷(학력)
2 生涯(생애)
3 같이보기
4 參考資料(참고자료)
5 脚注(각주)
學歷(학력)
公州高等普通學校(공주고등보통학교) 卒業(졸업)
崇實專門學校(숭실전문학교) 卒業(졸업)
도요(東洋紡) 大學校(대학교) 法學科(법학과) 學士(학사)
生涯(생애)
平安南道(평안남도) 价川(개천)에서 出生(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平安南道(평안남도) 平壤(평양)에서 잠시 幼兒期(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忠淸南道(충청남도) 公州(공주)에서 成長(성장)하였다. 忠淸南道(충청남도) 公州(공주)의 公州高等普通學校(공주고등보통학교)와 平安南道(평안남도) 平壤(평양)의 崇實專門學校(숭실전문학교)에서 修學(수학)했다. 學生(학생) 時節(시절)부터 키타(Kita) 演奏(연주) 等(등) 音樂(음악)에 뛰어난 才能(재능)을 보였다.
1930年代(년대) 中般(중반)부터 大衆音樂界(대중음악계)의 天才(천재)로 불렸고, 타고난 才能(재능)으로 作曲(작곡)은 물론 歌手(가수) 活動(활동)과 編曲(편곡), 演奏(연주), 指揮(지휘) 等(등)을 모두 能爛(능란)하게 해냈다.
재즈(jazz) 音樂(음악)을 導入(도입)해 "재즈(jazz)의 鬼才(귀재)"로 불리기도 했다. 歌手(가수)로서의 데뷔(debut)曲(곡)은 오케레코드(Ok record)에서 1935年(년)에 自作曲(자작곡)으로 부른 〈港口(항구)의 抒情(서정)〉과 孫牧人(손목인) 作曲(작곡)의 〈웃지를 마서요〉이다. 歌手(가수)로서는 김해송(金海松), 作曲家(작곡가)로서는 金松奎(김송규)라는 이름을 使用(사용)하다가 1940年代(년대)부터는 主(주)로 藝名(예명) 김해송(金海松)으로 活動(활동)했다. 漫謠風(만요풍)의 歌詞(가사)를 얹은 노래에 能(능)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sQbO7HQbFs
作曲者(작곡자)로서는 〈連絡船(연락선)은 떠난다〉,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 〈驛馬車(역마차)〉, 〈울어라 門風紙(문풍지)〉, 〈花柳春夢(화류춘몽)〉, 〈船艙(선창)〉, 〈울어라 은방울〉 等(등)의 히트(hit)曲(곡)을 남겼다. 張世貞(장세정), 朴響林(박향림), 이난영(李蘭影), 高雲峰(고운봉), 이화자(李花子) 等(등) 當代(당대)의 人氣(인기) 歌手(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이다. 西洋(서양) 大衆音樂(대중음악)에 能通(능통)하여 재즈(jazz)나 블루스(blues), 스윙(jitterbug)과 같은 그 時期(시기)에 흔치 않은 音樂(음악) 장르(genre)를 설렵했다. 김해송(金海松)은 뛰어난 演奏者(연주자)로서 舞臺(무대) 演出(연출) 分野(분야)에서도 頭角(두각)을 나타냈는데, 舞臺(무대) 活動(활동)의 特性上(특성상) 자취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zdr8wKRguPA
https://www.youtube.com/watch?v=qYfI92klpUQ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 末期(말기)에 이난영(李蘭影)과 남인수(南仁樹)가 함께 부른 〈二千五百萬感激(이천오백만감격)〉, 〈참사랑〉, 〈봄날의 花信(화신)〉, 〈그대와 나〉, 〈총후의 기원〉과 같은 親日歌謠(친일가요) 作曲(작곡) 事實(사실)이 알려져 2008年(년) 民族問題硏究所(민족문제연구소)가 選定(선정)한 親日(친일)人名事典(인명사전) 手錄豫定者(수록예정자) 名單(명단) 音樂 部門(음악부문)에 包含(포함)되었다.
親日(친일)反民族行爲眞相糾明委員會(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김해송(金海松)을 孫牧人(손목인)과 함께 《日帝强占下(일제강점하) 反民族行爲(반민족행위) 眞相糾明(진상규명)에 關(관)한 特別法(특별법)》에 明示(명시)된 親日(친일)反民族行爲(반민족행위) 決定審(결정심)의 對象者(대상자) 名單(명단)에 올렸지만 作曲家(작곡가)가 갖고 있던 當時(당시)의 社會的(사회적) 位相(위상)이 相對的(상대적)으로 낮았다는 事實(사실)이 認定(인정)되어 棄却(기각)했다.
光復(광복) 後(후) KPK樂劇團(악극단)을 結成(결성)해 美軍(미군) 部隊(부대)를 中心(중심)으로 活動(활동)하면서 오페라(opera)를 援用(원용)하여 音樂(음악)의 여러 장르(genre)를 넘나드는 뮤지컬(musical) 形式(형식)을 試圖(시도)함으로써 前衛的(전위적)이고 多彩(다채)로운 舞臺(무대) 藝術(예술)을 선보였고, 大衆音樂協會(대중음악협회) 初代(초대) 會長(회장)으로 選出(선출)되기도 했다.
이 時期(시기)의 作品(작품)으로 《투란도트(Turandot)》(1948年(년), 《카르멘(Carmen)幻想曲(환상곡)》(1949年(년), 《로미오(Romeo)와 줄리엣(Juliet)》(1950年(년) 等(등)이 있다.
韓國(한국) 戰爭(전쟁) 때 拉北(납북)됐으며, 以後(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死亡(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美軍(미군) 部隊(부대) 活動(활동)을 理由(이유)로 拉致(납치)되어 가던 中(중) 銃殺(총살)되었다는 說(설) 等(등) 越北(월북) 및 死亡(사망) 涇渭(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說(설)이 있다.
2015年(년)EBS다큐멘터리페스티발(Documentary Festival)EIDF에서 上映(상영)된 김시스터즈(Kim Sisters) 關聯(관련)한 다큐(Documentary)映畫(영화) "茶房(다방)의 푸른꿈-Try to Remember , 김대현 監督作(감독작). 2015年作(년작)에서 茶洞(다동) 집에서 拉北(납북)될때의 狀況(상황)과 拉北過程(납북과정) 中(중) 노래를 시켰다는 證言(증언), 비행기 空襲(공습)過程(과정) 中(중)에 死亡(사망)했다는 證言(증언)이 나온다.
듀엣(Duet)曲(곡) 〈靑春海峽(청춘해협)〉을 같이 불렀던 人氣(인기) 歌手(가수) 이난영(李蘭影)의 男便(남편)으로도 有名(유명)하다. 두 사람은 作曲(작곡)과와 歌手(가수)로 만나 1937年(년) 結婚(결혼)했고, 子女(자녀)들은 김해송(金海松)이 失踪(실종)된 後(후) 김시스터즈(Kim Sisters)와 김브라더즈(Kim Brothers)를 結成(결성)해 歌手(가수) 活動(활동)을 했다.
이난영(李蘭影)도 남인수(南仁樹)의 도움으로 KPK 樂團(악단)을 다시 復活(부활)시키려 했으나 失敗(실패)했다. 만요(漫謠)는 匿殺(익살)과 諧謔(해학)을 담은 우스개 노래로, 日帝强占期(일제강점기)에 韓國(한국)에서 發生(발생)한 코믹(comic)頌(송) 장르(genre)를 일컫는다.
1930年代(년대)의 主流(주류) 大衆音樂(대중음악)은 트로트(Trot)나 新民謠(신민요)였는데, 漫謠(만요)는 이들 主流(주류)와는 전혀 다른 日常生活(일상생활)의 小小(소소)한 內容(내용)을 가볍고 自由(자유)로운 歌詞(가사)에 담아 表現(표현)하면서 하나의 장르(genre)로 形成(형성)되었다.
當時(당시) 漫謠(만요) 外(외)에 彎曲(만곡), 流行彎曲(유행만곡)이라는 名稱(명칭)도 使用(사용)했다. 김용환(金龍煥)의 〈장모님 전항의〉, 〈낙화유수 호텔〉, 김용환(金龍煥)의 親同生(친동생)인 金貞九(김정구)의 〈왕서방 戀書(연서)〉, 〈世上(세상)은 瑤池鏡(요지경)〉, 金海松(김해송)이 作曲(작곡)하고 朴響林(박향림)이 부른 〈오빠는 風角爭(풍각쟁)이〉 等(등)이 有名(유명)한 漫謠(만요)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_cJH_WvzwTs
https://www.youtube.com/watch?v=gsDuJjq3ATI
이들은 모두 漫謠(만요)에 特技(특기)를 보인 歌手(가수)들이며, 漫謠(만요)는 樂劇團(악극단)의 公演(공연)을 通(통)해 많은 人氣(인기)를 모았다. 漫謠(만요)의 人氣(인기)에는 抑壓的(억압적)인 植民地(식민지) 社會(사회)에서 뒤틀림과 諷刺(풍자)가 必要(필요)했기 때문이라는 分析(분석)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겉모양과는 달리 漫謠(만요)에는 안으로 現實(현실)의 슬픔을 토로하고 不條理(부조리)한 社會(사회)를 告發(고발)하려는 批判性(비판성)이 숨어 있을 여지가 있었다.
漫謠(만요)는 희화화된 노래라는 特性上(특성상) 多少(다소) 低俗(저속)하거나 유치한 歌詞(가사)도 包含(포함)하곤 했는데, 競爭的(경쟁적)으로 漫謠(만요)가 發表(발표)되면서 低俗(저속)하게 흐르는 流行歌(유행가)를 淨化(정화)해야 한다는 主張(주장)도 있었다.
中日(중일) 戰爭(전쟁)이 勃發(발발)한 1937年(년) 以後(이후) 社會(사회) 雰圍氣(분위기)가 硬直(경직)되고 1940年代(년대) 들어 戰時(전시) 體制(체제)가 本格化(본격화)되면서 漫謠(만요)와 같은 가벼운 流行歌(유행가)도 사라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yKRWUGOF9ZM
大韓民國(대한민국)에서 漫謠(만요)의 傳統(전통)은 俳優(배우) 申信愛(신신애)가 作曲者(작곡자) 未詳(미상)의 口傳歌謠(구전가요)로 알고 다시 부른 〈世上(세상)은 瑤池鏡(요지경)〉,金用萬(김용만)의 〈回轉椅子(회전의자)〉,韓福男(한복남)의 〈빈대떡 紳士(신사)〉 等(등)에 이어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aogOKOD7xg
https://www.youtube.com/watch?v=WN2gy3bBFdc
한편 코미디(comedy) 側面(측면)에서 漫謠(만요)의 敍事性(서사성)을 强調(강조)하여 音樂(음악)의 一種(일종)이라기보다는 曲調(곡조)가 있는 漫談(만담)으로 볼 수 있다는 解析(해석)도 있다.
梁芳秀(양방수) 漫謠(만요)를 불러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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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芳秀(양방수) 漫謠(만요)를 불러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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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승철~월 2021-02-08 오후 6:38 ~ 옛날이 그리워 집니다. 참 잘 봤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