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
아래내용은 우리가 한번 쯤 가서 피정도 하고 순례하였으면 해서 올림니다, 저는 금년에도 7/5일 한국신부님 한분 모시고가서 미사드리고 왔습니다, 2001년부터, 년2~3회 감니다,
* 소팔가는 장춘시에서 약 37Km 떨어진 곳인데 장춘시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 1796년에 8가구가 이 황무지에 들어와 자연스런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소팔가라 불려지게 되었다.
8가구 중 5가구가 가톨릭 신자집이었다. 나중에 점차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증가 하였다. 그들은 그곳에 사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모여서 함께 기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1839년에 만추의 횅주교가 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그로부터 즉시 소팔가는 신부를 모실 수 있었다.
오늘 날 그 마을은 207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800가구에 3000명의 마을 인들이 살고 있다. 그 중 98%가 가톨릭 신자이다. 한국교회와 소팔가 사이에는 깊은 역사적 관련이 있다. 1843년 초 한국 교회가 정치적 박해를 당할 당시 김대건 부제는 사목 활동을 하러 이곳에 오게 되었다. 장차 길림교구의 설립을 위한 훌륭한 기초를 놓았던 사목 협조자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1884년, 소팔가는 첫 번 째 사제 예냥트 신부(프랑스 사람)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는 1947년 까지 18년 동안 소팔가 본당에 부임하였다. 그리고 1947년 부터 1980년 까지는 사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치적 박해 때문에. 1980~2003년 8월 현제까지는 중국인 신부가 사목자로 일하고 있다.
소팔가는 길림 교구의 원천이며 어린 교구의 요람이었다. 길림 교구는 겨우 100년의 역사를 갖었으나 소팔가는 207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첫 번째 주교가 그의 사목생할을 시작한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1844년에 라틴신학교가 설립되었고 1858년에는 '성모성심 공동체'가 탄생되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이 소팔가로부터 왔는데 '딩밍리'라는 가족이 5세대에 걸쳐 19명이나 되었는데 5명의 소년이 서품되었고 10명의 소녀들이 수녀가 되었다. 그 가족은 고향에서나 외국에 잘 알려진 바로 그 유명한 " 거룩한 가족 딩" 가족이었다. 그래서 소팔가는 아주 먼 옛날 부터 "거룩한 땅"이라고 불려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이 소팔가에서 2년간의 사목 활동을 한 사실은 그 영광스런 "거룩한 땅"의 의미는 오늘 날 더욱 진실이 되었고 감사로움을 그 분께 드리게 된다. 끝
*이글은 2004년에 양로원 건립 (피정의집겸) 시에 판프렛번역된 자료입니다, 저는 그곳을 우리 한국에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되며,
지금 길림주교 도 그곳 출신이며 주교님의 형님 손자도 신부님 이시며, 현재 길림 소신학교 지도신부님이며,(교장) 소신학교
학생25명 그곳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 성광 이 전시되여 누구나 소신학교에 가면 만나보실수 있습니다 관심 이있으시면
열락 주시면 자세히 아르켜 드리겠습니다,
특히 카페주인님 요셉 형제님 께서 는 성인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존경이 남다르신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합을 느끼게되여 이곳에 올립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김세실리아 올림,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생소한 곳이지만 정말 새로운 소식에 감사합니다
요셉님, 수선화님, 안녕하세요, 부족합니니다, 성김대건 신부님께서는 그곳에계실때도 많은 활약을 하셨답니다,최신부님은 공부 학구파로 명성을, 매사에 차분한점 ,김신부님은 약간에 다열적인 성격도 그래서 일을 많이 하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