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

[연그림]

3월이던가요?

동생이 부탁을 하나 합니다.

간단하게 대충 천 오려서 커텐 하나 만들어 달라고요.

올해 초등학생이 된 조카 녀석에게 방 한 칸 선물할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그렇잖아요.

그래도 첫 조카의 첫 방 한 켠에 걸릴 커텐인데 어디 대충 만들 수가 있나요?

괜한 욕심이 생겼습니다.

'대충' 만들지는 못하겠더라고요.

당장 유명한 홈패션 사이트들을 기웃기웃하기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이거다 싶은 커텐이 없네요.

동생이 부탁한 색은 연두인데 사이트에 올라온 커텐들은 죄다 주름 풍성한 핑크색입니다.

대략 베끼고 변형하고 나름의 생각을 더해 몇 가지 도안을 만들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의욕 100% 충전!!

그런데 원단, 이게 참 문제입니다.

원단 시장 갈 시간은 안 나고, 인터넷에서 고르려니 선뜻 손이 가는 원단이 없어 갈팡질팡.

결국 몇 가지 디자인과 몇 십 가지 원단을 정리해 동생에게 보냈습니다. 최종 선택까진 차마 못 하겠더라고요.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동생에게 메일을 보내고 보니 어느덧 4월 중순입니다.

아~ 여행 가야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니 느닷없이 집 나가랍니다.

부산에 집 알아본다고 안 그래도 정신 없는 중인데요.

5월.

안 되겠습니다.

이러다간 올해가 다 가도 못 만들 것 같아

동생의 의견을 반만 참고해 제 맘대로 커텐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꿈도 야무지게, 손이 많이 간다는 패치 커텐으로요.

있는 천, 없는 천 다 꺼내고 새로 잔뜩 주문한 천까지 늘어놓은 다음 색을 배열하기 시작합니다.

이틀은 족히 걸렸던가요. 역시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건 어렵고 두려운 일이에요.

거금들여 사두고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 오버로크 기계. 원없이 오버로크 해봤습니다.

이어지는 광란의 미싱질. 일하는 틈틈이 하다보니 꼬박 3일이 걸렸지요.

정신차리고 보니 이런 패치 원단이 완성됐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패치로 커텐 전체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럼 일을 그만둬야할 판이에요.

사뿐히 맘을 접고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합니다.

촌스러워 매력있는 광목천을 앞뒤로 덧대고 다시 이어지는 오버로크, 미싱질...

그리고 주문한지 2개월만에 드디어 커텐을 완성했습니다. 이 희열...

어째 좀 촌스럽긴 하네요.

뭐, 촌스러워 더 좋다고 혼자 맘 다독여 봅니다.

                                  *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리 아옹다옹 살고 있나...

언제부터 이런 커텐 하나 만드는 시간이 사치일만큼 일을 좇아 살고 있나...

행복하기 위해 살기보다 행복해서 살고픈 게 나 아니었나...

가끔, 아니 자주, 덜 중요한 것으로 인해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살 때가 있더라고요.

어설프게 커텐 하나 만들어놓고 오지게 생각도 많아집니다.

[머털]

촌시러 넝마조각을 이어 붙이셨구만효

[연그림]

ㅋㅋㅋ~ 넝마조각 이어붙이기가 만만한 게 아닙니다. ^^;;

[머털]

만만치도 않은 넝마조각 이어붙이기... 쓸데없는 일, 만들어서 하는 어떤 논네 같구만효 ㅁㅊ

[피노이(박천형)]

패치워크를 하시다니..... 거참 의외라는~~ ㅋㅋㅋㅋ

[-룰루랄라-]

그런용어도 아시다니.. 거참 의외네요.ㅋㅋㅋㅋ

[연그림]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룰루랄라님께서... 패치워크란 단어를 어떻게 아시나요? 나름 전문용어라고 생각했는데... ㅎㅎㅎ~ (그나저나 도대체 왜 의외인지... OTL)

[재곤애비]

부럽은 손재주...

[연그림]

심심해서요. ^^;;;

[totolo(심철용)]

정성이 짱입니다요.... 오랜 미술감독 짬밥으로 감히 말씀드림니다.. 디자인 짱!!!

[연그림]

앗~ 미술감독님이셨군요~ 갑자기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

[앤드류 (R.B)]

약간 빈티지 스타일? 딱 커텐 스러운데욤.^^ 이쁩니다. ㅋ

[연그림]

많이 빈티지죠. 아주 깔끔하거나 아주 촌스러운 스타일이 좋아요. ㅎㅎ

[앤드류 (R.B)]

그런데 이런 걸 혼자서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

[손샘 (손채익)]

촌스러워 매력 있는...

[연그림]

그쵸? 자꾸 촌스러운 게 좋아요.

[비아그라]

조카가 아주 행복하겠습니다~^^

[연그림]

손가락만한 자동차 사주면 더 행복해할 거예요. T.T

[Sugah]

색상이 서로 잘 어울립니다.^^

[연그림]

색 조합 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생각한대로 잘 안 되네요. ;;;

[눈아파]

바쁘시니까 그 짬짬이의 소중함을 아시는겁니다 일할 수 있을때, 연그림님을 원하는 분들이 많을 때 더 열심히 일하세요 ^^ 패치원단이 구겨져있을때가 더 예쁘네요

[연그림]

네. 바쁘다 투정말고 열심히 살게요. 그래도 이렇게 바쁘게 살려던 게 아닌데...란 생각이 자주 듭니다. ^^;

[연그림]

도대체 왜 다들 의외라고 하는 걸까요. ㅎㅎㅎ~

[김경선(單婢)]

난 ,, 집에서 여러번 주물떡 거리고,, 여러번 망치고 보니 ... 그냥 사는게 싸더라는 ~ ㅎㅎ 홈패션 수강증 날짜 안지난거 아직 있는데 ~ ㅎㅎ

[연그림]

나도 홈패션 수강증 고스란히 있는데 손잡고 같이 갈까? ㅋㅋㅋ~

[기댄나무]

정성이 마니 들어간....ㅋ 저도 작업실에 미싱이 있어서 가끔 옷 만들어 입어요 ...오바로크 있는게 부럽땅

[연그림]

오버로크, 몇 달을 고민했는지 몰라요. 사실 쓸 일이 거의 없는데 괜히 바라보면 뿌듯한 녀석입니다!!

[잠실벌후까시[황지현]]

조카가 이모의 정성에 고마움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따뜻한 이모를 둔 조카는 좋겠어요~^-^

[연그림]

착하고 예쁘게 자라주는 조카들이 있어서 행복한 이모에요. ^^v

[footprint(이원항)]

이제 시집가셔도 되겠습니다.

[연그림]

결혼준비는 한 5년 전부터 완료한 것 같습니다만... T.T

[머털]

결혼하면 저런 것 안 만든다에 한표

[미스타손]

이쁜데요.

[연그림]

룰루랄라~ ^o^

[금사마왕[엄인호]]

음음~ 역쉬~역쉬~ 내가 괜히 뿌듯하네요. ^^

[연그림]

ㅎㅎㅎ~ 저 참 잘 했나요? ;;;

[연그림]

견적 보내드리겠습니다. 3개월 후에 받아보실 수 있으세요. ㅎㅎㅎ~ ^^

[봄이아빠^^(박성환)]

저두 살포시 줄서봐도 되나요^^

[연그림]

그럼 6개월 후에 받아보실 것 같습니다. ㅎㅎ~ ^^;;

[세렌디피티]

우앙.. 패치워크.. 그거 줄맞추기가 참 힘들더라는.. 너무 예쁩니다.. 조카가 좋아하겠어요~

[연그림]

안 그래도 줄맞추기 하느라 끙끙댔는데 그래도 잘 보면 안 맞는 구석들이 있어요. ^^;; 원주 풍경은 요즘 어떤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