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아침에 출근을 막 끝냈을 때
휴대폰에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영호야 어머니께서 방금 전에
서해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오래된 친구입니다.
함께 학교에 다니고
내가 군대에 가니 뒤따라와서
같은 군대 13기수 후배이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전국 각지에서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혼자서 호젓한 길에 서 있으면
전해 준 쪽지가 한 다발일 만큼 잘 생긴 친구입니다.
그 친구 군대에 갓 입대하여
훈련병일 때 자주 밤에 불러내 만났었고
나는 대전에서 그 친구는 점촌에서 근무하면서
내가 전화를 많이 쓸 수 있는 통신병이다 보니
전화도 자주 했었습니다.
훤칠한 키에 인물도 좋아서
시월행사(국군의 날)에는 빠지지 않고
공군 기수단으로 뽑혀서 삼년 내내 세 번을
세종로를 누빈 사람입니다.
살금살금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도 잘 부르고 하는 짓도
커다란 키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워
인기가 참 좋은 친구입니다.
그 친구 결혼식 전날
춘부장께서 부르셨습니다.
“함”에 하얀 띠로 정성스럽게
어깨에 멜빵으로 걸어주시며
하시던 말씀 “너무 짓궂게 하지 말고 잘 다녀와!“
착한 신부 만나서 열심히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신 그 친구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셨습니다.
친구부부가 자는 방에 한밤중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곤 하신다면서
그 친구는 한숨을 푹 쉬고는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생활인 마라톤도 열심히 하고
부인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들 남매
지금 대학생입니다.
어느 날은 힘들어하는 것이 역력해서
“요즈음은 시설에 모시는 것도 흉이 아닌데
그렇게 지내다보면 가정이 파괴된다던데
형제들하고 상의해서 그렇게 해봐?
제수씨가 너무 힘들겠다.“
삼 남 일 녀 중 장남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해도
자기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이면 간병인을 보내고 혼자서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저러네.....“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년 전 어느 여름날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누우셨다, 간병인 얘기가 한달이나 넘길지 모른데......”
돌아가신 다음에 뵈면 뭐 하느냐면서
문병을 갔었습니다.
여름날 홑이불을 덮고 누워 계신 몸이
너무도 야위고 팔다리가 뼈와 가죽만 남아서
장작개비처럼 보였습니다.
치매로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계신
천진한 상태의 어머니의 모습이 측은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음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달을 넘기고 해를 넘기기 두 번......
죄스러운 얘기인지 모르지만
아내와 얘기할 때
그 친구와 그 가정을 얘기할 때
아직도 살아계신 그 어머니
아무것도 모르시는 상태에서
지내시는 것이 통계적인 수명연장이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답답하게 맴도는 대화의 실마리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왔습니다.
첫마디 내 입에서 나간 말이
“그래 오랫동안 욕 많이 봤다,
그런데 부평 자네 집에 계셨잖은가?“
하는 물음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3월 9일에 고향 병원으로 모시고 내려갔다면서
본인도 출근을 했다가 연락받고
내려간다고 하였습니다.
당일에는 못가고
어제 오후 3시를 넘겨서
회사에서 출발하여 여섯시 넘어서
아내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빈소에서 흰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조용히 권사님의 남아계신 부군이신
친구 아버지와 친구 부부와 형제, 누나부부를 위해
그리고 그 후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친구와 둘이서 맞절을 하고
손을 잡고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욕 많이 봤어!”
친구는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간단하게
“응!” 하고 대답했습니다.
빈청에 들리니
친구 아버님이 옛날의 잘생긴 풍모도
많이 늙고 야위신 체 맞이하셨습니다.
교육계에 종사하셨고
친구의 형제들 부부도 대부분 중 고등학교 교사로
제직중인 가정입니다.
“아버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세요?”
거기서 처음 상주에게 해야 할 인사말을 했습니다.
친구부인이 반갑게 웃는 낯으로
“왜, 어제 안 오시고 이제 오세요?”
스스럼없이 나무라는 투로 반가움을 표시합니다.
“제수씨! 오랫동안 고생 많았어요.”
하는 말에 “저야 당연한 일을 했지요,
그리고 간병하시는 아줌마가 고생 했지요.“ 합니다.
보아놓은 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둘러보니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리가 부족한 것이 느껴집니다.
식사를 대강 마치고
그야말로 살며시 빠져나왔습니다.
상갓집에서는 인사 없이 살며시 오는 것이 인사라는 말에 따라.
그리고 고향집에 어머니께 들렀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셨던 어머니께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십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일찍 가야 되는 사정을 말씀드리고
물러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진동으로 돌려놓은 전화에
전화가 걸려와 있었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친구들이 아우성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죄만 했습니다.
차를 고속도로에 올리고
생각하면서 운전을 합니다.
그 친구에게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작년 연말에 한밤중에 그 친구에게서
술에 취해 전화가 왔었습니다.
직장에서 회식을 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직장동료가
교회에 나가라고 하더라고
횡설수설 했습니다.
이튿날 오전 중에 전화를 해서
긴 통화를 했습니다.
그 친구하는 말이 자기를 설득해서
교회에 나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설득하고 이해시킬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시간 내서 우리 집에 오라고 초대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누워만 계시던 어머니께서
이제는 안식에 드셨습니다.
“군대도 나를 따라 왔던 친구를
천국에도 데리고 가야지요.“
그 가정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이번 행사를 치루면서
많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첫댓글 그리도 진한 정을 가진 친구가 있었내요...샘님,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