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 39권은 과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정경인가?
구약은 총 39권입니다. 그런데 구약 39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정경이라는 증거가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있습니다. 그럼 그 증거들은 무엇일까요?
(1) 유대교의 인정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시거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성문화(문서화)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성문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작은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친히 두 돌판 위에 기록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18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애굽기 32: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모세는 이 두 돌판을 언약궤 안에 보관하였습니다.
신명기 10: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정경의 최초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십계명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점점 부피를 더해갔습니다.
모세는 십계명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여 언약궤 옆에 보관했습니다.
신명기 31:24-26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또,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율법책에 하나님의 말씀을 추가로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수아 24:26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또한,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 주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계속 기록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0:25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역대상 29:29 "다윗 왕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역대하 20:34 "이 외에 여호사밧의 시종 행적은 하나니의 아들 예후의 글에 다 기록되었고 그 글은 이스라엘 열왕기에 올랐더라."
역대하 26:22 "웃시야의 남은 시종 행적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하였더라."
역대하 32: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성경이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선택한 아브라함의 후손 즉 선민이었기 때문입니다(창12:3, 출19:6).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선정국가였습니다(삼상8:7, 12). 구약의 주제는 오실 메시아인데,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구속사를 준비하고 전개해나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나라를 합한 것보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더욱 역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일종의 하나님행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경이 된 것입니다.
동시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사야 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
예레미야 30: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일러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한 것은 영원한 말씀 즉 성경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약은 구약정경이 완성될 때까지 약 1,000년간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을 통한 특별계시가 계속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로 400년 동안 선지자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구약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구약의 정경은 끝이 나게 되었고 구약은 완성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유대인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구약 39권을 유대교의 정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T. C. 함몬드는 『간추린 조직신학』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 시대에 율법서, 선지서, 성문서(거룩한 책들)로 이루어진 히브리어 성경이 있었다. ... 현재의 구약이 전 세계에 걸친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고, 또한 인정을 받아왔다는 것을 주목하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구약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어온 유대교의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편, 웨인 그루뎀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문화(문서화)됨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소개했습니다.
"첫째,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더 정확하게 보존할 수 있다. 기억에 의존한다든지 구전으로 전승하는 것은 ... 문서화하는 것보다 믿을 만한 방법이 아니다(참조; 신31:12-13).
둘째, 기록된 말씀을 계속해서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신중한 연구와 토론을 가능케 하므로 그 말씀들을 좀 더 바로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확실하게 순종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기억되거나 구전에 의한 방법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들은 언제 어느 때나 누구든지 볼 수 있어서 그것들을 암기하거나, 아니면 누가 암송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됨으로써 신빙성, 영구성, 그리고 접근 용이성 등의 이점이 증대된다."
여러분, 공감이 가시지요.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약의 어느 선지자보다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놀라운 진리의 보고인 성경을 더욱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2) 예수님의 인정
저는 성령신학교 강의 때 "구약이나 신약이나 많은 위경과 외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66권을 종교회의에서 정경으로 결정한 것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대답으로 저는 먼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대하여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인정한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구약성경을 인정하셨습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각 책을 다 인용하신 것은 아니지만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수용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너희가'라고 했으므로, 여기서 '성경'은 유대교가 인정한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 성구들에도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처럼 예수님은 모세오경과 선지자의 글뿐 아니라 시편을 비롯한 지혜서들도 성경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50-51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이 구절에 나오는 '아벨'은 창세기에 나오고 '사가랴'는 역대하에 나옵니다. 히브리 구약성경의 분류 방식상, 창세기는 그 첫 책이고 역대하는 마지막 책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약 전체의 범위가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거기에 예수님이 동의하셨음을 암시합니다.
학자들은 구약정경의 결정시기를 포로 이후 시대인 B. C. 440년 경으로 추정합니다. 즉 느헤미야의 정치적 지도와 에스라의 종교적 지도하에 있던 포로 귀환시대에 학사 에스라가 장로회의를 통하여 구약정경의 범위를 확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확정된 구약 39권 전체를 성경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는 성경 어디에서도 유대인들과 대화할 때 정경의 범위에 대해 논쟁하지 않으신 것을 볼 때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이 구절에 나오는 '성경'도 당연히 구약성경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 전체를 절대 폐할 수 없는 즉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학자들이 뭐라 하든 구약의 정경성에 대해 논란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판단은 절대적인 것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구약의 정경성 논쟁은 끝난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학자들 역시 저와 같은 방법으로 구약의 정경성을 변호했음을 알았습니다.
참고로,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의 권위가)서기관들만큼이나 예수님에게도 확고한 것이었으며, 예수님이 그들과 상반된다고 느낀 것은 오직 구약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식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웨인 그루뎀은 제가 말한 그대로 말했습니다.
"신약에는 정경의 범위를 놓고 유대인들과 예수님이 논쟁을 벌이신 기록이 전혀 없다.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간에,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나 백성들 간에 구약성경의 정경이 완성되었고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이후에는 더 이상 첨가된 부분이 없다는 생각에 전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존 스토트의 글 역시 저와 일맥상통하며 통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였고 그들 삶에 우선되는 권위를 가진다고 믿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성경 자체가 주제의 장대함과 메시지의 통일성, 거대한 영향력으로 그 권위를 스스로 확증시켜 준다는 이유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충성심에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속 시원하게 선언한 후 예수님이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여긴 몇 가지 증거들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영원히 타당하다는 사실을 여러 번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다. 산상수훈에서 그분은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기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5:17-18, 눅16:17 참고). '성경은 폐하지 못한다'(요10:35).
또한 그분은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곤 하셨다. 예를 들어, 그분은 시편 110편을 인용하기 전에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친히 이렇게 말하였다'(막12:36)라고 말문을 여셨으며, 창세기의 결혼에 관한 말씀도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주장하셨다(마19:4, 5)."
그런 후에 존 스토트는 "그렇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분이 말씀을 사용하신 방식이었다. 그분은 단지 성경에 대해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하셨다"고 잘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영역에서 예를 들었는데, 그중 두 가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개인적 의무의 영역에 관한 예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매번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8-10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는 성경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나 타협의 어떤 여지도 없스셨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히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려 했고 그러기 위해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공개적인 논쟁의 영역에 관한 예입니다.
복음서에는 많은 공개적인 논쟁이 등장합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되물으셨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10:26)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의 권위를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에수님의 제자들이 손과 그릇을 씻는 것과 같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고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막7:1-13).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유대교의 전통과는 격이 다른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여기셨습니다.
바리새인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은 사후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이 죽은 일곱 남편을 둔 여인이 부활 후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24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이처럼 예수님은 구약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안식일만 열심히 지키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할 뿐 아니라 구약성경을 잘 배우고 그 말씀대로 믿고 신앙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이상 예수님이 논쟁 중 하신 말씀들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구약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셨고 그 권위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가 선생보다 높지 않고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예수님의 제자이며 종인 우리는 당연히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그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나 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설명해드린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구약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정경으로 인정하셨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글리슨 아처의 글입니다.
"구약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수락
나사렛 예수는 구약성경이 그 모든 진술과 주장에 있어서 오류가 없음을 - 심지어 역사와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까지도 - 분명하게 가정하셨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9:4, 5에서 결혼의 규례를 확립하시면서, 문자적이며 역사적인 아담과 하와에 관한 언급과 함께, 창세기 2:24을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고 시인하셨다. 또한 그는 마태복음 23:35에서 가인에 의한 아벨 살해의 역사성을,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가 살해당한 사건의 역사적 사실성과 같은 평면에 두고 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38, 39에서 전 세계를 휩쓴 홍수와 노아의 방주의 역사성을 분명히 받아들이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 ' 역사와 과학에 공히 관계되어 있는 이 기록은 현대의 과학적 경험주의의 정확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조소와 함께 거부되어 왔다.
선지자 요나가 큰 물고기 - 이 물고기가 삼일 후에 그를 해변에 토해냈다 - 의 작용을 통하여 익사로부터 보호된 이야기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을 요나의 이야기와 같은 역사적 평면에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그리스도는 그 다음 절에 계속해서, 니느웨의 이방 사람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진실로 회개했다고 - 요나서 3:7-9의 기록과 똑같이 - 단언하고 있다. 비록 이 기록이 현대의 학문에 의해서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신약 성경은 예수께서 그것을 분명한 사실로 여기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구절들에 비추어 볼 때,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이 신학, 역사, 과학의 분야에 관하여 단언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기셨음이 분명하다."
이 글의 중요성을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신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에 나오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부정하는 교수와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과 사건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고요? 저는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직접 본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8:56-58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런 것을 예수님의 선재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시기 전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건들을 우리처럼 읽거나 들어서 아는 분이 아닙니다. 직접 보아서 아시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증인의 자격으로 하나님이 천지창조와 함께 지으신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 노아 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 그리고 물고기 배 속에서 삼일이나 있었던 요나에 대해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기록들이 사실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어떤 초자연적인 것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성경 전체를 어린아이처럼 액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생활 하는 복된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신약 저자들의 인정
세계적인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은 구약성경의 정경성에 대해 이렇게 논증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구약의 모든 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주는 구절들이 많다. 디모데후서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다. 여기서 '성경'(graphe)은 기록된 구약성경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라페(graphe)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51번 언급되었는데 모두 구약성경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저 역시 신학교 강의 도중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사도 바울도 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바울이 말한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구약성경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렇다면 끝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의 3분의 2를 기록한 대사도 바울의 말을 믿지 않고 누구의 말을 믿겠습니까? 즉 바울의 말과 다른 일개 신학자들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바울이 "성경을 가지고 강론"했으며(행17:2),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행17:11). 이것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성경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구약성경을 인정하는 바울의 진술(딤후3:15-17)에 보충이 되는 성구를 우리는 베드로의 서신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1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구절은 구약의 저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반드시 성취될 일들을 무오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인도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기 글 속에 예언된 모든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 말의 출처가 그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즉 그들의 말은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후서 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 구절 역시 구약 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통해 사람의 개인적인 해석이나 선호에 의하여 진리가 굴절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글을 통해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예언을 사사로이 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드러내시고자 한 바로 그 뜻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구약성경의 절대적인 권위 즉 정경성은 히브리서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주장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한복음 14:24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처음으로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기자에 의하면 "옛적에" 즉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유대인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둘 다 말씀하신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구약성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완전한 것처럼 구약성경 역시 완전합니다. 한마디로 무오합니다!(시18:30, 19:7)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구약성경은 정경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