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투기와 복부인의 등장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 건설과 함께 개발되기 시작한 강남은 우리나라 땅 투기의
발원지였다. 사실 그 전에는 땅 투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헐값으로 부동산을 사들이긴 했지만 그들은 땅값이 오른 후에도
팔지 않고 집을 지어 세를 놓거나 소작을 주었다.
일본에서도 땅 투기는 전후 고도성장기인 1950년대 중반에나 나타난 현상이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10여 년이 늦은, 제3한강교 기공식이 열린 1966년부터 서서히
땅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늘날 지하철 3호선 양재역의 동남쪽에 있는 ‘말죽거리’
지역은 당시 아예 복덕방 촌을 이뤘다.
“말죽거리에 가 땅을 사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하루 수십 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땅을 사고팔면서 땅값을 올렸는데, 그 수법 역시 《강남
1970》에서 민 마담(김지수 분)이란 인물이 잘 보여준다.
1966년 초 평당 2백~4백 원 수준이던 말죽거리 땅값은 1968년 말 불과 2년 만에
평당 6천 원으로 뛰었다. 부동산투기억제세가 부과되고 불경기 등으로 일시적으로
주춤하기도 했지만 강남의 땅값 상승률은 늘 타 지역을 압도했다.
예를 들어 1963년 당시 땅값 수준(지수)을 100이라 했을 때, 1970년 강남구 학동의
땅값은 2,000, 압구정동은 2,500, 신사동은 5,000이 되었다. 7년 만에 각각 20배,
25배, 50배가 오른 것이다. 같은 기간에 중구 신당동과 용산구 후암동은 각각 10배와
7.5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
1979년이 되면 아예 단위가 달라졌다. 학동의 땅값 지수는 13만, 압구정동 8만
9,000, 신사동 10만이었다. 이에 따르면, 1963~1979년 16년간 학동의 땅값은 무려
1천 333배, 압구정동은 875배, 신사동의 경우 1천 배가 올랐다. 같은 기간 신당동과
후암동의 땅값은 각각 25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
물론 강남의 땅값이 그 전에 워낙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놀라운 지가 상승이었다.특히 강남 지역에는 옛 왕실 재산이 많았는데 이를 불하하면서
평당 90~120원에 내주는 특혜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한 이가
훗날 영동백화점의 주인이 되는 김형목과 삼호의 창업자가 되는 조봉구였다.
《강남 1970》에서 “그분 땅을 밟지 않고는 영동을 지날 수 없다”고 묘사되는
허 회장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아마 실제 모델이 이들일 것이다. 이들이 가진 땅을
합하면 100만 평에 가까웠다고 한다.사람들은 이 같은 강남 땅값 폭등을 일러
‘말죽거리 신화’라고 불렀다. 이후 말죽거리 신화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978년에는 ‘복부인’과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같은 해에 이화여대 백명희 교수가 『조선일보』에 ‘복부인’에 대한 칼럼을 실었고,
1980년에는 임권택이 연출하고 한혜숙, 박원숙, 윤양하 등이 출연한 영화
《복부인》이 개봉하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농담 삼아 복부인들이 우리나라의 여권 신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아파트 덕분에 문단속이 쉬워지면서 주부들이 나들이하기
한결 편해진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1천만 평에 가까운 영동 1지구와 2지구 구획정리사업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개포 지구 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됐고, 이어 수서, 대치 지구에서도 사업이 시작되었다.
실로 강남은 무한에 가까운 택지 공급 지역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강남이 점점 더 확장되고 땅값 상승 행진을 이어가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이곳에
집중되었다. 부동산 투기 억제책, 양도소득세, 공한지세, 8.3 조치, 토지공개념 도입 등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강남불패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불패의 강남 부동산인사청문회가 도입된 2000년 이후부터 국민들은 고관대작에
오를 지도층의 부적절한 부동산 소유 의혹을 지겹도록 보게 되었다.
이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느냐 못 하느냐를 좌우하는 문제가 되었고 청렴도를 측정하는
가장 변별력이 높은 항목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총장에서
낙마한 천성관이었다. 사실 그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내각 명단을 발표했을 때 많은
장관 지명자들이 강남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서 “강부자(강남 부자) 내각”이라는 말을
탄생시키며 조소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강남의 부동산을 소유하기를
꿈꾸고 또 강남 부동산은 강력하게 이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강남의 부동산은 왜 그렇게 강력할까?
첫째, 강남 부동산 소유자들이 정부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강남에는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거주한다. 1급 이상 공직자들의 20~30퍼센트가 강남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 배타적인 수사권을 가진 사람들,
국회에서 입법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강남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대부분 강남을 잣대로 세워지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따라서 부동산 규제
완화도 강남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고 -이제는 더 이상 지어지기 힘들겠지만- 대규모
신도시를 지정할 때도 언제나 “강남 대체 공급”이란 말이 나온다.
물론 강남에 사는 고관대작들은 다시 이웃의 금융회사 사장, 대기업 임원, 부동산
졸부들과 연결되어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고관 후보자 가운데에는 자기가 집을 살 때 친구나 친척이 돈을 대준
것일 뿐이라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때의 친구와 친척은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들만의 카르텔 멤버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사례들은 이른바 ‘강남 카르텔’이 부동산 정책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참여정부 때 만들어진 종합부동산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거의
무력화되었고, 물론 이에 앞장선 이들이 강남 지역 국회의원들이었다.
둘째, 빈부 격차의 심화는 곧 높은 진입장벽을 만들고, 그들만의 천국으로 구조화된다.
특히,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실시된 단기적이고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재벌과
강남 부유층의 금고는 두둑이 채워졌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져만 갔다.
마찬가지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참여정부의 경우 국토 균형 발전 정책으로 돈이 풀려
강남 부동산 값이 올랐고, 뒤를 이은 두 보수 정권의 경기부양책으로 시장에 풀린
돈 때문에 강남 진입장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이런 높은 지가는
실수요와는 별개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을 낳아 소위 강남 판타지를 만들어
냈다. 사실 이런 ‘판타지’가 강남 3구의 부동산 지배력을 키우고 불패 신화를 이어
가게 하는 가장 큰 사회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강남의 40만 호가 갑자기 80만 호가 될 수 없을뿐더러
강남 사람들이 그런 미래를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셋째, 강남은 현대판 ‘계급 세습 구조’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다.
과거의 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에서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재산과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고, 거주지가 계급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는 개인의 계급이 자신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재생산되는 소위 ‘금수저’ 상속 구조가 확실히 정착되어 가고 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미성년자나 어린아이가 고가의 부동산을 여럿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현실적으로 금수저를 재생산하는 두 축은 부동산과 교육이다.
즉 누가 강남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느냐, 누가 자사고, 특목고, 외고에 진학해서 명문
대학을 가느냐 혹은 조기 유학을 다녀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강남 출신이 유리한 것은 명백하다. 과연 최근 서울대학교 입학생과 행정고시 합격자
중에서 30~40퍼센트가 강남 출신이라고 한다. 자식들의 삶의 질과 출세가 강남에
사느냐 못 사느냐에 따라 이미 결정된다고 하면, 어떻게든 강남에 진입하거나, 최소한
강남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지방에 사는 부자들도 강남에 투자할 정도이며, 시골 촌부도 재건축의 표본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을 지경이다. 물론 최근에 와서 강남의
부동산 불패 신화도 빛을 많이 잃었고 과거와 같은 집값 상승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지만, 강남에 진입하려는 수요가 여전히 많은 상황과, 무엇보다 강남 거주자들의
경제력과 권력이 있는 한 ‘강남 불패’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 한종수, 강희용 저, ‘강남의 탄생’에서
- 몽골 평야의 목동과 말, 하원 최철호 선생의 사진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