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주지 수암스님 |
남자야, 누가 가장 높고 착한 이인가? 먼저 부처님과 법을 믿어야 하며,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절에 가야하고, 배운 대로 행해야 하며, 자기만의 해탈을 구하지 말고 대승에 회향하여 일체중생을 이익 되고 안락 되게 해야 하느니라”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이지만 화계사에서 더 실감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화계사는 선사상의 중심사찰의 한 곳이지만 ‘고요한 선방’ 만을 떠올리는 보통의 선찰(禪刹)이 아니라 ‘수행과 교육’ ‘복지와 포교’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수도 서울의 중심도량이다. 35년의 세월 동안 32개국에 120여개의 홍법원을 개설, 5만여 명의 제자를 양성하며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숭산스님이 조실로 주석하며 세계일화(世界一花)의 뜻을 펼치던 곳이라 그런지 도량 곳곳, 불사 하나하나가 모두 사회로 연결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앉으나 서나 ‘부처의 길’로 정진해야 불자”
“깨달음은 현실에 있어
안으로 축적된 에너지
이웃. 사회로 회향해야
진정한 보살의 삶이죠”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지원, 쌍문동 노인복지센터 지원, 국립재활원 및 국립의료원 지원 등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기 위한 사업. 라오스 화계초등학교와 이주노동자 지원 그리고 국제선원 지원 및 도제양성, 군법당 및 경찰법회 지원, 화계법보 및 포교용 책자 발간을 비롯한 문서포교 등 10여 가지의 활동이 자비보시기금회를 중심으로 하는 ‘1불자-1자비 실천운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연간예산이 30억 원에도 못 미치는 강북의 사찰로서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9일 일요일 법회와 강의시간을 피해 수암스님을 만나 그 연유를 들어봤다. 결론부터 알아보면 배운 만큼 실천하고 아는 만큼 실천으로 옮길 것을 믿고 따라주는 스님과 신도간의 ‘신뢰’와 ‘희망’에 있다. 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때 불교학생회와의 소중한 인연으로 대학생불교회와 사찰 청년회 활동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스님을 외호하고 사중(寺中)에 보탬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온 순수 불청인이었다. 대학 1학년 때는 새벽5시에 집을 나서 6시에 절에 들어가 선배와 함께 <금강경오가해> 옮겨 쓰며 대중외호를 꿈꿨다. 그러기를 2년. 고민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나 스스로 출가해 수행자의 삶’을 사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가장 이상적 삶’에 대한 결심을 더욱 깊어져갔다. 집안 어른을 설득하는 데 2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당당히 허락을 받아냈다. ‘대장부의 길’을 가는 데 도망치듯 가긴 싫었다. 의지가 있으면 언제나 희망은 보였다.
화계사 총무-주지 소임도 희망을 안고 시작했다. “서울의 큰 절에 두 개 반이나 되는 불교대학이 갖춰져 있으니 능동적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안주해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폭넓게 가르치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진하다보니 이제 화계사는 주야간에 대학원까지 600여명이 공부하는 교육도량이 됐다.
“숭산-성광-수경스님이 일궈 놓은 텃밭이 있다 보니 각 강좌마다 100여명이 공부하게 됐다”고 하지만 그 텃밭에 씨앗을 뿌리며 가꾸는 정성은 여느 사찰의, 어느 대학의 교육전문가 못지않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직접 챙겨왔다. 사시기도 이후 이부(관음)기도는 동참자가 적어도 직접 챙긴다. 일관된 흐름이 중요한 교육에서도 직접 챙기는 부분이 있다. 수행정진의 핵심이 되는 천수경 반야심경 예불의식 세 가지다. “의식의 통일화를 기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교육과 함께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포교다. 불교대학 여덟 개 반을 운영하기 위한 홍보이기도 하다. 움직이는 버스에 광고판을 달고, 부녀회를 통해 아파트에 현수막을 거는가하면 각종 게시판에는 화계사 안내문을 붙이고 일간신문을 통한 전단지 배포까지 시도하고 있다.
“소극적으로 가만히 앉아 신도들이 찾아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부처님오신날, 칠석, 백중에는 전통적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있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사회복지, 인재확보를 위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안된다. 신도들도 단체로 몰려다니는 시대가 아니다. 자기 스스로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시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수행은 신심과 원력만 있으면 되지만 총성 없는 전시와 같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경쟁 없는 사회, ‘이 뭣고’ 화두만을 들고 있어도 사회에서 인정해주면 괜찮지만 그것은 상호간에 경쟁과 침략이 없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강원과 선원을 다니다 ‘사판(事判)’으로 결심을 굳히게 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 사찰에서 도심 사찰로, 중앙종무기관 소임을 보다가 다시 사찰의 주지소임을 맡으면서 이 시대 종교지도자의 안목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그 결심은 더욱 굳건해졌다. 스님은 그래서 문자 언어까지도 현실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보살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신도들과 많이 얘기한다.
“우리 수행자들은 신도들과 극단화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스님들은 깨달음 지상주의, 불사 지상주의에 매몰돼 있고 신도들은 기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 지혜와 복덕이고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인데 아직도 많은 스님들에게는 상구보리밖에 없고, 신도들은 자기기도밖에 없다. 입시기도 때는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복지사업이나 봉사활동을 할 때는 아직도 ‘나 몰라라’ 하는 분들이 있다. 안으로 축적된 에너지를 사회에 회향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보살의 삶이 아니고 해오(解悟)가 증오(證悟)로 넘어가지 못하면 그것은 관념이지 깨달음이 아니다”고 말한다.
“부처님이 언제 앉아만 있었나. 길을 가다 쓰러진 자가 있으면 일으켜 세워 용기를 주지 않았나. 우리 신도들은 삼밀 가운데 유상삼밀(有相三密).은 너무 잘한다. 입으로 하는 ‘관세음보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잘하지만 그 수행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지 못하면 그것은 자기 개인의 수행일 뿐 진정한 삼밀이 못된다. 넘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잘할 수 있어’ ‘그래 너는 하면 돼’ 일어설 수 있도록 칭찬하고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무상삼밀(無相三密)’의 진언이 아닌가. ‘어떻게 하면 이웃과 나라를 복되게 할 것인가’ 노력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올바른 삼밀이 아닌가. 어떻게 앉아 있을 때는 부처님이고 일어서면 중생이 되는가. 진정한 종교인은 앉으나 서나 부처의 길을 가야 한다. 앉아서 유상삼밀을 한다면 서서는 무상삼밀 수행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참수행이다. 깨달음이 어떻게 산 속에 있는가, 깨달음은 현실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명쾌하다. 경전구절을 일일이 듣지 않으면서도 귀를 잡아당긴다. 무재칠시(無財七施)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스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왜 무재칠시를 자꾸 얘기하느냐. 재물도 없이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시라고 얘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좋은 말이지만 잘못하면 이분법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소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지을 수 있습니다. 따뜻한 말을 하려면 자비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도 없는 사람이 억지웃음을 지으면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 운명, 자기 업을 극복하는 일곱 가지 수행법을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것은 ‘중생의 탈’을 벗는 것이잖아요. 중생이라고 현재 이름 지어져 있는 운명을 극복하는 참수행법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한 번 하기 이전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스런 말 한 번 하는 것이 진정한 염불이고, 관세음보살 얼굴 보기 전에 내 얼굴부터 환하게 웃음 짓게 하는 것이 자비관법이 아닌가요. 또 상대방을 위해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그 마음, 지하철 자리뿐만 아니라 언제어디서나 그러한 마음을 갖고 삶을 살아갈 때 업이 극복되고 운명이 바뀌는 것이 ‘중생의 허물을 벗는 것’이고 중생의 허물을 벗는 것이 곧 ‘부처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불공하고 회향한다면 진정으로 중생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변하는 그 자리가 바로 부처가 되는 자리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중생과 부처, 미혹한 자와 깨달은 자 둘 밖에 없는 데 중생이 바뀌면 뭐가 되겠습니까.”
신도들과 함께 ‘1불자-1자비 실천’ 운동 전개
미혹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배운 만큼 아는 만큼 실천하면 미혹에서 벗어날 것인가. 스님은 ‘이 보다 더 쉬운 공부가 어디 있겠느냐’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
스님이 기자와 두 번째 만남에서 던진 이 한 마디에 ‘1불자-1자비 실천 운동’을 전개하는 화계사 신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을 누구인가.
수암스님은 …
수암(秀岩)스님은 1986년 수덕사에서 설정스님을 은사로 출가, 백양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정혜사 등 선원에서 수선 안거했다. 홍성 용봉사 주지, 총무원 총무국장, 화계사 총무와 부주지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8월 화계사 주지로 취임했다.
스님은 매일 오전 대적광전에서의 기도, 수요일 저녁 제일선원 참선정진, 토요일 선우회의 철야용맹정진, 일요일 오전 일요법회와 오후 수선회의 참선법회 등 기도와 정진에 정성을 쏟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교입문자를 위한 3개월 과정의 기본교육과 불자로서 신행활동을 하는 데 필수인 천수경과 불교 의례의식 등을 배우는 교양과정, 2년 과정의 주간ㆍ주말반 불교대학, 1년 과정의 불교대학원, 매주 일요일 국제선원에서의 영어회화 강습과 영어참선법회 등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과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화계사를 명실상부한 수행과 교육, 국제포교의 중심사찰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
첫댓글 나무석가모니불 부처님 가피가 충만하시어 항상 행복하세요 _()_ _()_ _()_
해원결진언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 해원결 진언 ;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 일체중생과의 알게 모르게 지었던 모든 원결이 다 소멸되기를 간절히 두손 모아 기원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