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행 / 오 신 순 ‘동행’ 참 좋은 말이다. 함께 가는 사람, 무엇이든 받아줄 것 같고 뭐든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말이다.
각자의 삶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기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도 외롭다고
느끼는 것이 우리가 가는 길인 것 같다. 마지막 순간에도 다 놓아두고 혼자 가야
하기에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 아닐까. 잠깐의 여행과도 같은 삶의 순간마다 함께할
수 있는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일 것이다.
올봄에 특별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처음으로 나가는 가족여행이다. 태국에 가 있는 아들이 귀국하기 전에 현장도 한번 볼 겸해서 계획하게 된 것이다. 교통편과 식구들의 일정을 맞추어서 오월 중순에 칠 박 팔일의 일정을 잡았다.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들로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항공기 예약을 하면서도 정말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직장 일이나 다른 가족일로 방해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믿지 못하였는데 드디어 인천공항에서 방콕행 비행기를 탔다. 저녁을 기내식으로 먹으면서 실감이 났다. 비행시간은 6시간, 시차가 두 시간. 한밤중에 방콕에 도착했다.
단체여행에서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가면 되는데 벙어리들 셋이서 몇 자 아는 영어로 얘기했더니 그 사람들이 영어를 다 아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 헤매기도 하며 수속 장을 빠져나와 출구에서 기다리던 아들과 만날 수 있었다. 안심이다. 서툴지만 숙소와 여정을 계획하고 가이드해 줄 것이다. 1년 만의 만남이라 궁금한 것도 많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수다를 떨며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서도 쉬 자리에 들지 못하고 간식과 여행의 여유를 즐기며 얘기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느긋하게 자고 늦게 움직이자고 약속해 놓고는 한국시간에 맞춰 다 일어나고 말았다. 호텔 조식을 시작으로 첫날 관광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은 박물관을 관광하기로 하고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번 가봤다는데 인솔자도 헤맨다. 길가 작은 공원에 모인 툭툭이라는
세발 오토바이 기사들에게 물었더니 박물관 문이 닫혔단다.
대신 안내를 해줄 테니 다른 곳으로 가자며 먹던 음식까지 나눠준다.
할 수 없지 뭐. 우리 셋은 그렇게 하자는 생각인데 아들은 고민도 않고
다시 가보자고 오던 길로 돌아간다. 할 수 없이 따라 가보니 한국식당이다.
여행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고 숙식에는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남편의 주장인데 점심을 한국음식으로 먹기로 하고 들어갔다.
제육볶음과 순두부 등으로 주문을 하고 한국어로 된 여행안내서도 얻었다.
안내서에는 경고문 두 개가 있는데 박물관등을 물으면 문이 닫혔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안내해 준다면서 귀금속 매장 등으로 인솔하여 사기를
치니 조심하라는 경고가 그 첫째였다. 황당함에 함께 웃으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역시 우리 음식이 제 힘을 주는 듯했다.
방콕에서 삼일을 보내고 치앙마이로 가는 기차를 탔다. 정상 운행시간은 열두
시간이지만 캄캄한 들에서 몇 시간씩 멈췄다 가기도 하여 도착시간을 아무도 모른단다.
기차 예약 소식을 들을 때부터 남편은 걱정이 많았다. 그긴 시간을 어떻게 견디냐고. 석
양으로 기울어가는 햇살을 보며 기차에 타니 딸이 생각보다 분위기 괜찮다고 좋아한다.
철로보다 한층은 낮게 길을 따라 몇 채의 집들이 있고 시름없이 앉아 지나는 기차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계시는 노인도 보인다. 긴 의자에 한 사람씩 앉게 번호가 붙어있고 접이식
탁자와 마주된 의자 위로 2층 침대를 만들고 시트와 베개 커버를 새로 바꿔준다.
깨끗하지도 않고 낙후된 모습들이지만 밤새도록 덜컹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 마다 이야기 감이 되어주니 남편도 지루하지 않은 듯하다. 멈출 듯
미끄러져 가는 기차에서의 하룻밤은 이국적인 느낌으로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조촐한 아침을 놓고 감사 기도드리니 오늘
아침 메뉴는 감사함과 기쁨뿐이었다.
아침 8시경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소문과는 달리 아주 정시에 맞춘 편이라 했다.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아들이 잠시 몸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선교사 자녀들의 기숙사인
이곳에서 목사님을 도와 아이들의 멘토로 생활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여정 중에 태국 북부 지방의 소수부족인 카렌족들이 사는 마을을 목사의 인도로 방문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이나 손님이 와도 앉아서 손만 위로 내밀어 악수를 하는 모습은 문화적
차이를 실감케 했다. 어려운 환경인데도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옛 시골
풍경을 생각나게 해 주었고 죽순 국에 밥, 고사리 비슷한 채소와 검은 장이 전부인 아침을 대접받았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힘든 농사일을 하는데 단백질 공급원이 없다고 안쓰러워한다.
이웃집 식사 장면을 보니 큰 접시에 민물 재첩 같은 것을 삶아 가운데 놓고 손으로
밥과 재첩을 먹으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운다. 계속 권하여 먹어보니
먹을 만은 한데 그들에게는 귀한 반찬인 것이 마음에 걸려 손이 가지 않았다.
교육의 도시라는 설명을 들으며 다시 치앙마이로 왔다. 일요일만 열린다는
선데이 마켓에 들러 보기로 했다. 값도 싸고 태국 전통의 물건들과 음식들, 각국의
관광객이 어우러져서 대형 축제의 장 같았다. 밤이 늦어 여유를 가지고 구경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렇게 다양한 시간들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아들 덕분에
잘 보내고 풍성해진 마음과 아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안고 귀국 행 비행기를 탔다.
남들은 아주 평범하다 할 이 여행이 어떤 일정들보다 감동과 여운이 남는 것은 이
시간을 함께했던 가족들이 있어서 인듯하다. 박물관에서 그 나라 역사까지 설명해주며
인솔해준 아들, 이렇게 나와 보니 영어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며 오빠를
부러워하면서도 호텔 등 가는 곳마다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 딸, 재미있는 얘기
거리로 유쾌하게 해 주며 중심을 지켜준 남편. 이 땅에 사는 동안 함께하라고
맺어준 가족이라는 이름의 소중한 동행인들이다. 늘 각자의 삶들로 바쁘고
생각의 차이로 때로는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이내 좀 더 챙겨주지
못하였음을 아쉬워하며 후회하게 만드는 분신과도 같은 식구들이 있어 삶의
이유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마음에만 묻어두었던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내세울 것 없는 가정이지만 우리 네 식구를 가족으로 맺어주신 신께 감사한다.
모든 창조물에 목적을 두시는 조물주가 우리 가족을 통해서도 계획하신
일들이 있음을 기대하며 함께 이뤄내는 아름다운 동행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수필가 / 오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