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9주차] 개학(開學)
- 교사선교회 겨울수련회를 다녀오며 -
겨울방학이 끝났다. 이제 개학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벌써? 아직 이렇게나 추운데, 방학이 왜 이렇게 짧아?" 묻는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충분히 쉬지 못했는데, 아니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데 미뤄지지도 않고 재깍재깍 찾아오는 개학은 방학 동안 더 격하게 쉬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얼마간의 후회를 남긴다. 이번 방학 역시 그랬지만, 즐거움과 뿌듯함도 여느 때보다 많이 느꼈던 순간들을 선물로 받았다.
방학의 끝자락에는 늘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걸. 논문 진척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건강 관리를 잘해서 체력을 끌어올렸어야 하는데.' 와 같은, 무언가를 더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데, 이번에는 방학의 끝을 교사선교회로 마무리했다. 청년부 이후 처음 가 보는, 더욱이 코로나를 겪은 이후 오랜만에 가는 수련회라 들뜨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교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수련회는 처음이라 되려 불편하기도 하고 꺼져지기도 했다.
폐쇄적인 지역의 특성상, 또 초등 교직의 특성상 한 두 다리를 건너면 이름이라도 어렴풋이 아는 좁디 좁은 바운더리가 답답해서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가지지 않았다. 같은 직군의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내 세계가 좁아질 것이라는 가벼운 조언과 얕은 편견,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내 할 몫을 잘 해내어 학교에서 잘 지내는게 크리스챤 교사로서 할 일'이라는 선을 그어두고 경계를 넘어가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다 동학년 선생님의 권유로 용기를 내어 교사선교회에서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리더 선생님으로부터 양육을 받게 되었다. 리더 선생님, 선배 선생님과 셋이서 zoom 으로 소그룹을 하며, 작은 화면을 통해 학교생활의 힘듦을 많이 털어냈다. 어디가서는 마음 편하고 솔직하게 털어낼 수 없었던 학교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갈등과 고민들을 에누리 없이 쏟아내어도 용납받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개인 정보라 생각해서 거르고 용어들을 골라 순화하느라 내 마음을 돌보지 못해 더 생채기난 지난 시간들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힘든 아이들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말하면 각자 반에 있는 소중한 금쪽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함께 기도하고 공감하는 선생님들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소속되기엔 조심스러워 입회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어느 곳보다 더 진솔하게 내비쳤던 공동체에 한 발 더 내딛으며 문을 열었다. 그 발걸음이 교사선교회 겨울수련회였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교사들이 '간사'라는 직책을 맡고 모든 말씀과 특강을 전하는 점이 수련회의 특별한 점인데, 올해는 50주년 행사로 저녁집회 순서만 목사님을 모셔와 진행했다. 모든 순서들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세미나와 단체 집회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어 경계했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교사수련회 때 울림을 준 말씀들, 경험한 일들을 기록하며 이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내 마음에 준 울림과 영감들을 정리해두려 한다.
# 만남
- 개회 예배, 다니엘과 세 친구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꿈꿀 땐, 그 직업을 가진 '그' 사람이 좋았고 그 사람과의 만남이 좋았기 때문이다."
개회 예배 때 김기웅 간사님은 아이들은 자신이 만났던 그 어른이 좋기 때문에 그의 직업을 꿈꾼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중고등학교때 만났던 담임선생님들의 과목이 국어, 영어였고 유독 담임선생님이 좋았기에 국어, 영어 과목도 좋아해 자연스레 문과를 선택했다.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담임선생님은 시인이셨고, 교과서에 본인의 시를 싣고 출간한 책을 선물로 주셨기에 책을 읽고 문학을 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책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을 보이는 것은 선생님들과의 만남에서 연유한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세 친구, 그들과의 만남 덕분에 바벨론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복을 받았다. 기도하며 꿈의 해석을 구했기에 바벨론의 지혜자들의 목숨까지 구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은혜를 입게 된 세상 사람들은 기적을 경험했다. 우리 역시 이 땅의 고통과 죽음을 막으려 할 때,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길 때 지혜와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지난 여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직 사회에는 집단적인 우울감이 맴돌았다. 복도에서 만난 동료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집단의 좁은 바운더리로 인해 답답했던 교직문화가 되려 강한 결속감을 만들어내어 한 목소리를 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생각했는데, 사회 그 자체였다. 마음이 병들고 결핍으로 인해 뾰족뾰족 날이 서 자신의 화를 상대에게 겨누는 사회의 병리적인 현상이 수위만 다를 뿐 학교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아이들의 대화에 깊숙이 들어있기도 하고, 패배감과 열등감에 젖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악해지거나 자포자기하여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아픈 군상들이 한 학교 안에 모두 발견되는 모습이다. 사회 그 자체다.
깨어진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넘어서 기독교사로 살아간다는건 참 고달픈 일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절망적일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힘을 얻는다. 이 땅의 고통과 죽음을 막으려 할 때,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길 때 지혜와 기적을 베푸실 것을 소망하기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았듯, 우리에게 부어주실 은혜와 긍휼함을 구한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다니엘 6장 3절)"
민첩의 반댓말은 번민이다. 생각이 많고 복잡하면 번민이 생겨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리를 굴리며 꾀를 낸다. 이해관계 없이 순수하면 민첩해진다. 분주하게 갓생을 살아감에도 후회와 탄식이 넘실대는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단순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짱구를 굴려야 살아갈 수 있다는 유혹이 찾아온다. 마음을 떠보고 눈치를 보며 저울질을 하여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세상의 문화에서 나 역시 지고 싶지 않아 자기계발의 껍질에 싸인 세상의 처세법을 익히려 했다. 넘쳐나고 끝없이 만들어지고 사그라지는 세상의 법칙들을 내가 다 외우고 익힐 수 없고 그렇게 따라가서도 안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눈에 보이는 실체가 되신 예수님, 예수님보다 2000년 뒤에 태어나서 직접 볼 순 없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위안이 된다.
# 정체성
- 첫째 날 저녁 예배(하나님나라 교사 정체성)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영화의 예고편과 같다. 사랑과 정의가 blending 되어 있는 천국의 삶을 우리는 가정, 교회, 교실에서 살아내야 한다. 전염병이 휩쓸고 갈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고난이 올 때 Why? 가 아니라 Why not me? 라고 질문하면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인생 사는거 원래 힘들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찬양과 영광과 존귀로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딸 ! 면류관, 트로피가 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트로피 와이프', '트로피 자녀'에 대한 부정적인 어감이 있다. 그에 반해 존재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추구했다. 공의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사랑만을 추구했을 때 남은 것은 허탈함과 게으름, 경계 없는 안일함이었다. mbti 검사에서 F 가 나왔다고 합리화하기에는 사랑과 공의의 블렌딩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쓰라렸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이 부족했고 치우친 하나님의 형상을 그려 거기에 내 삶과 관계를 끼워맞췄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시는, 값 없이 주시는 그 사랑을 받았기에 조건 없는 사랑, 댓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풀 수 있다.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전했을 뿐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랑의 실체를 느끼고 그리스도를 만난는 문이 열린다. 전염병이 돌고 가족마저 병든 사람을 버리고 외면할 때, 받은 사랑을 자동으로 흘려보내며 지극정성으로 돌본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이 회복되고 천국에서 이 작은 행위는 큰 면류관이 되어 상으로 받는다는 사실이 벅차다. 문득 지난주 집에 온 손님이 내 물건을 만지고 자신의 짐을 벗은 채 편하게 쉬고 누리는 행동을 못마땅했던 나의 좁은 마음을 돌아본다.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을 뿐인데 마음은 괴롭고, 상대는 그대로인데 내 눈은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더 그분 발 앞에 짐을 내려놓고 아기처럼 사랑을 누려야 하는 이유이다.
# 선물
- 둘째 날 아침 기도회
"마태는 이름 앞에 '세리'를 붙여 세리 마태라 부른다. 마태가 세리였다는 사실을 흠으로 여기지 않았던 예수님, 제자들, 그리고 마태 자신은 '나'라는 존재를 그대로 수용하고 용납하는 예수님의 공동체를 보여 준다. 그 사람이 세리였든, 어부였든 상관 없이 그 모두를 사랑하고 용납하신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에 주신 빛나는 선물이다."
작년, 알고 지내는 부장님과 함께 우리 교회 수요예배에 갔다. 평소 연락을 잘 주고 받지 않는 사이지만 문득 연락이 닿았고, 같이 예배에 가시겠냐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흔쾌히 가겠다고 한 부장님과 교회에 가고 식사를 했다. "모태신앙, 신앙금수저는 신앙흙수저들을 이해 못한다. 부러웠다. 모태신앙 아이들은 못때따! 나중에 믿은 아이들이 더 착하다."라며 처음 들어보는 신앙수저를 논하셨는데, 당시엔 그 마음이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아침 기도회 말씀을 들으며 그때 나눈 대화가 떠오르며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신앙보다는 인격과 윤리, 법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행태가 더 바르고 도덕적이라 신앙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었다. 작년의 대화와 아침기도회의 말씀이 오버랩되며 신앙, 세상의 법, 율법, 도덕 등의 관념을 뛰어넘은 예수님의 사랑이 만져졌다. 구약에는 대를 이어 신앙을 지키는 신앙금수저들의 스토리가 펼쳐졌으나, 신약의 예수님은 신앙흙수저들을 골라 질그릇으로 빚어가시고 금보다 귀하게 여기셨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신앙금수저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고, 어릴 때 주님을 만난 신앙은수저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온다. 하나님의 시간에는 천 년이 하루 같은데, 그분의 시간에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없다. 그저 모두 선물일 뿐이다.
# 샬롬
- 둘째날 전체특강
"교사선교회의 핵심 모토는 주재권, 양육, 공동체, 개척의 4가지이다. 주재권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 사는 삶이다. 양육은 말씀과 성려을 통해 이루어진다. 양육의 핵심은 '섬김'으로 리더가 멤버의 마음을 잘 얻어야 양육이 가능하다. 공동체를 잘 지키는 건 성숙한 인격이며, 개척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좋은 것(그리스도, 관계, 공동체)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대안학교를 운영해도 될 만큼 프로페셔널하게 일해야 한다. 단, 사명을 가지고 해야 한다. 사명에는 항상 고난이 따른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떼로 강도 만난 사람들로 열등감이 싹트고 정체성이 사라져 자존감이 낮다. 우리는 강도맞은 자들의 평안, 샬롬을 위해 교육한다."
싱어게인3의 우승자 홍이삭의 아버지, 홍세기 선교사님의 특강이다. 특강을 들으며 '하나님의 세계' 곡을 만든 홍이삭의 얼굴과 선교사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하나님의 세계, 우간다, 선교, 교사선교회의 키워드가 선교사님 주변을 떠다닌다. 우간다 꿈의 학교를 운영하시는 선배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아픔이 전해졌다. 삶을 약탈당하고 자신의 언어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어 정체성을 잃어버린 가장 아픈 이들에게 찾아간 그 걸음걸음마다 알찬 열매들이 영글고 있었다.
GBS(그룹바이블스터디, 조나눔)를 하며 선교사님 부부가 한국에 교사로 재직할 때, 후배 선생님들을 집에서 먹이고 재우고 품었던 미담 사례를 가득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멤버들의 마음을 섬김과 사랑으로 얻어 공동체를 세워나가고, 그렇게 세워진 공동체는 또 다른 지역에 새끼를 치듯 개척을 하며 공동체가 견고히 넓어졌다. "부흥!!"을 외치며 몰아붙이지 않아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지극히 섬길 때 더 넓고 단단하게 사랑이 뻗어나가고 소망이 현실이 되었다. 내 앞의 한 사람의 '샬롬'을 위할 때 지구 반대편의 '샬롬'이 이루어지는 비밀을 엿본 기분이다.
# 단 하나
- 선택특강 <아프리카 우간다 이야기 - 바늘 하나의 기적>
"우간다 사람들은 아기, 성, 남녀, 가족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일부다처제를 비롯한 안타까운 여성들의 삶을 마주하며 바느질과 퀼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바느질, 퀼트를 가르치며 여성들로부터 현지어를 배웠고, 여성들은 이 곳에 와서 많이 웃고 돈도 벌며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바늘 하나로 삶이 달라졌다. 세상이 가성비를 외치지만 인생을 가장 가성비 있게 사는 것은 선교하는 삶이다."
교대 시절 모든 과목의 이론과 교수법을 배우며 교대생들은 얕게, 모든 것을 하는 만능캐로 성장한다. 모든 과목에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캠퍼스에서 리코더와 단소를 불고 작품을 만들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달라지는 교육과정과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연수를 통해 새로운 기술과 교수법을 배우며, '가르치기에 손색 없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직이다. 교직생활을 하며 뭔가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전문직으로서의 소명과 능력을 요구하면서도 전문직으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교사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특강을 들으며 내가 가진 재능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 하나를 가지고 억압 받는 사람들의 주름진 삶을 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배움의 기회가 있었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해보지 못해 절망으로 가는 하나의 삶의 모습만을 걸어가는 사람에게하나님 주신 두 손 두 발로 꽃피울 수 있는 삶과 희망을 보여준다. 단 하나만 있다면 충분하다. 이후엔 함께 만들어가고, 하나님께서 씨줄과 날줄로 엮어 아름답게 완성하신다.
# 마라톤
- 둘째 날 저녁예배(하나님나라 운동 비결)
"사는 것 자체가 원래 힘들고, 기독교인으로 더 나아가 기독교사로 사는건 매우 힘들다. 초대 도시는 전염병이 창궐하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인구 회전율이 높으니 범죄율도 높아지고 폭동, 열악한 치안 등 수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환경을 가지고 징징거릴 수 없다. 제 3세계에 가봐야 한다. 데살로니가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인 후, 본을 받고 본이 되었으며 영향력을 끼쳤다. 이와 대비하여 한국교회의 현상은 말씀을 들으나 받아들이고 본받는 것이 소수고, 본이 되고 영향력이 되는 삶은 더 극소수에 불과하다. 유튜브로 인해 설교가 범람하나, 예배는 data를 모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독교는 본받는 종교다.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우리 앞에는 항상 본받을 사람이 있고 내가 겪은 걸 1년 전에 겪은 사람들이 있다. 믿는 순간부터 본이 되고 본을 받으며, 이끔이와 따름이가 장엄하게 연결되는 것이 공동체이다. 우리는 많이 받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조금 더 쓰기 원하신다. We are chosen! 오늘날은 '자본주의'와 '나 자신'이 우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우리의 신앙의 길을 마라톤으로 비유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이 길을 완주할 때까지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선배들이 증인이 되어 우리를 응원하고, 앞서 달려가는 이끔이, 뒤이어 따라오는 따름이들이 장렬하게 행진하며 걷다 뛰다 걷다 뛰다를 이어간다. 중간에 지쳐서 물을 마시고 원기를 보충할 수는 있지만 잠깐의 쉼이 달콤해 오래 머무르다보면 레이스를 멈추게 된다. 탈주하지 않도록 양옆에서 부축하며 다리를 끄는 삼겹줄의 은혜가 아니면 완주하기 어려운, 외롭고도 따뜻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본이 되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나 자신을 검열하고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면 자책하며, 때론 주변의 크리스챤들도 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믿지 않는 세상의 친구들이 각자의 삶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선한 영향을 받아 마음의 문이 더 열리길 바라는 생각에서였다. 이제 바깥으로 향했던 시선을 나에게 가져온다. 달리기에 충분한 근육이 있는가, 함께 손잡고 갈 친구들이 있는가, 본을 받아 따라갈 선배가 있는가, 행여 부족한 나를 보고 따라오는 후배들이 있는가, 지쳤을 때 누군가 내민 손을 잡을 용기와 자존심이 있는가,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울 사랑과 긍휼함이 있는가 돌아본다. 다 있다, 레이스에 들어설 때 다 주셨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 된다. 그렇게 둘째 날 집회 말씀을 들으며 교사선교회에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고 집회가 마친 뒤 입회 원서를 제출했다.
# 처세법
- 셋째 날 아침 기도회
"삶의 어려움 가운데 양육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삶의 어려움 가운데 공동체는 어떻게 기능하는가? 느헤미야는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한다. 첫째, 하나님께 이른다. 둘째, 내 할일에 집중한다. 복수를 하거나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양육은 말씀을 삶으로 살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모든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처세와 관련한 글귀나 책을 찾는다.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을 때 심리학 서적이나 mbti에 과몰입한다. 유튜브를 틀거나 네이버, 인스타그램의 추천페이지를 기웃거리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카테고리다. 방향성을 잃고 부유하는 우리의 연약한 마음이 세상의 유행을 키운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세상의 문화에 따라 세상을 살아갈 처세법을 익힌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일지언정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컨텐츠들로 하루의 시간을 채워본다.
성악설에 확신을 주는 아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나쁜 짓은 배우지 않아도 하고, 강하게 지도하지 않으면 더 심해졌으며, 아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매서운 공격이 되어 돌아왔다. 학부모와 아이로부터 받은 고통 속에 느헤미야의 대처를 묵상하며 교사로서 할 몫을 해내며 잠잠히 기다렸던 간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를 힘들게 했던 학부모, 아이, 사람들이 떠올랐다. '본인이 감당이 안되어 손을 놓아버려 엉망이 되어가는 아이를 도와주겠다는데, 왜 화풀이까지 교사에게 다 할까. 마음이 얼마나 꼬여있으면 쏟아낼 곳이 없어서 학교에 분통을 터뜨릴까. 불행한 삶이 치유되지 않아 화가 가득 쌓인 사람은 멀리 해야지. 하나님 저는 싫어요!' 라며 마음 속으로 미워하고 정죄했었던 2년 여의 어두웠던 시간을 끄집어낸다. 세상의 고통에 세상의 방식으로 잘 처세해보려 했을 때 남은 건 허탈함이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중보기도와 양육, 훈련을 통해 마음에 연고를 바르시고 다리를 주물러 다시 달려갈 힘을 주셨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싫은데, 이 시간들을 겪으며 세상의 힘듦에는 하나님나라의 처세법이 필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며 그 시간이 약이 되었다. 하나님께 일러바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상황을 뒤집으실지, 얼마나 꼬셔하며 지켜볼지 그 날을 기다리며 묵묵히 내 할 일을 해 나가는 삶이 주는 유익을 경험하게 하셨다. 비몽사몽 일어나 말씀을 들으며 "잘했다" 칭찬 받은 것 같아 기뻤다.
# 직면, 공동체
- 셋째 날 저녁예배(하나님나라 역사 의식)
"기독교영성의 핵심은 즐거움과 기쁨이다. 성경은 세상의 고통에 대해 "울어라" 명한다. 직면하라, 깨어 있으라는 뜻이다. 우리는 과도한 탐욕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기득권층은 세상의 아픔에 통곡하지 않는다. 영적 간음이 일어나는 세상에서는 사회적 불의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악한 세상을 심판하길 원하지 않으시고 언제든지 돌이켜 회복시키시길 원한다. 그러나 세속의 권세에 무릎 꿇고 영적 간음을 벌이며 회개하지 않으면 버리신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는만큼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 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불편하게 산다. 공동체는 내가 기쁠 때 가서 자랑해도 괜찮은 곳, 슬프고 힘들 때 가서 고통을 얘기해도 흠 잡히지 않는 곳이다. 우리는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교회를 공동체화 해야 한다. 교회와 교사선교회는 공생관계다."
2016년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사춘기가 늦게 온 나는 그제서야 화도 내고 부당함에 맞서 글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전에 세상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봤던 것은, 현실을 마주하기 두려웠고 지금 이대로 살아가면 편한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안일함에서 기인했다. 많이 아프고 혼란스러웠던 터널을 통과하며 글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공동체의 문제를 꼬집어 의견을 제시하다 한 소리 듣기도 했고, 뒤늦게 중2병이 온 것처럼 삐딱하지만 두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며 유일한 진리 외에 100% 선, 100% 악은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진 세상에서 완전하신 하나님 한 분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공동체에서 종종 "잠잠히 기도하겠다"고 말하고선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공동체의 대다수가 알게 되어, 개인의 기도제목이 가십거리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기쁨을 자랑하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이야기하면 약점이 되는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외부 훈련들, 교육들에 열심이었다. 그 곳에서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용납받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진실한 마음을 나누고픈 목마름을 헤아리시고 건강하고 좋은 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이끄심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경험하고 누렸으면 또 나눠야 한다는 마음을 주셔서 공동체 소개도 많이 했지만, 귀하고 소중하기에 아무에게나 나누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 이 마음 또한 천천히 다뤄가시리라 믿는다.
# 소망
- 폐회 예배 말씀(복음에 합당한 삶)
"대적자로 인해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알아야 할 권리라면 개입해서 가르쳐야 한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함께 나눠주신다. 우리는 삶이 평탄하면 주님을 찾지 않는다. 고난이 있어야 주님을 찾는다. 복음에 합당한 삶은 한 마음으로 굳게 서고, 한 뜻으로 복음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며, 대적하는 자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에 가장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던 시기는 수능을 준비하던 고3, 임용고시 준비할 때, 대학원 면접을 앞두었을 때, 석사 논문을 쓸 때, 종합시험을 치를 때, 교회에서 섬기던 지체들의 삶이 어려울 때,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부모님이 편찮으실 때, 조부모님이 위독하실 때였다. 삶이 곤고할 때 이 고난을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걷어가 달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다 여기에 부으시라며 울고 매달렸다. 고난의 시기가 지나가면 이 평탄한 삶을 주셔서 감사하고 이 삶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게 해달라 기도했다. 간절하지 않고 평온하게 웃으며 기도했다. 고난이 있어야 주님을 찾는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인생이 고난투성인데 잠시나마 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며 눈치를 보면서 감사일기장을 채웠다.
수련회를 마치며 소망함이 생겼다. 어그러지고 깨어진 이 세상은 마땅히 고난으로 가득하겠지만 하나님 안에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기뻐하고,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에덴동산의 공동체를 그려가고 싶다. 초, 분,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모여 한 달, 일 년, 10년이 되니 작디 작은 시간들을 주님과 걸어가며 옹골진 열매들이 맺혀지는 10년 후가 되기를 꿈꾼다. 올해로 교직 10년 차인 내게, 수련회를 통해 지나온 10년을 매듭짓고 다가올 10년을 기쁨으로 그려가리라는 소망을 주셨다. 설렌다.
개학을 했다. 개학(開學)은 학교에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휴교 등의 이유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수업을 시작하는 것, 또는 그런 날을 뜻하는 한자어다(나무위키). 학교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고 눈에 보여지는 현실은 방학 이전과 똑같지만, 보이지 않기에 더 또렷한 실체가 마음에 새겨져 있다. 상처로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린다. 방학이 끝나 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맞이하듯, 마음의 문을 열어 아이들, 동료선생님, 학부모, 아픈 이들을 환대한다. 이 마음이 내 안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기에 온전히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