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쉼터 외 1편
노혜봉
어머니의 시신이 놓여 있었던 그 자리에 누웠다*
안방 윗목 석회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두 손을 잡고 가슴에 올린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의 차가운 체온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상여는 골목길을 빠져나가 서소문 거리를 지났다
남대문 길옆에서 외할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어린 나이, 화장장까지 가시는 길에 손사래도 못 했다
흰 종이꽃 색색가지 종이꽃을 먼 길로 보냈다
막내가 다섯 살, 둘째는 여덟 살, 난 맏아들 11살
세 살 터울의 철부지 남동생 둘은 윗집에 있나보다
어머니는 늑막염을 만 삼 년이나 앓으셨다는데,
결핵성이었나 보다 입원, 퇴원, 또다시 각혈, 퇴원
세브란스병원에서 단가에 실려 오셨던 그날 돌아가셨다고,
일제 강점기라 약도 못 구하고 음식도 귀했던 시절
(서른한 살 아까운 나이
두 달만 더 버티셨으면 광복의 기쁨을 보셨을 텐데)
학교를 파하고 윗집 외할머니 집으로 갔던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도 못 보고 목소리도 못 들었다
천하에 몹쓸 맏아들. 어머닌 어찌 눈을 감으셨을까
장례식날 밤, 윗집 건넌방, 두 남동생을 양쪽에 뉘인 채
하염없이 천장을 보며 캄캄한 밤을 뒤척였다
혹시라도 병이 옮길까 염려해서였는지 우리에겐
어머니의 곁에서 지낸 추억의 스냅 사진이 별로 없다
맏이인 내게라도 어머니의 무덤, 한 줌의 재를
어디에서 눈물로 뿌렸는지
아버지는 끝내 말씀해 주지 않으셨다
―당신, 어머니 시신 자리엔 왜 누워 보았어요, 혼자서 무섭지 않았어요
―아니, 어머니 살냄새를 기억해 두고 싶었나 봐, 어머니 품에 폭 안기고 싶었나 봐
나는 밤에 잠자다가, 무호흡증으로 편하게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어, 하루라도 빨리, 그게 내 유일한 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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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아내 없이 꼬박 아들 셋과 삼 년을 사셨다는 자기 아버지가 너무 가엾고 불쌍하다고 눈물이 글썽거린다
겨우 12년을 더 사시려고 세상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신,
7월 18일, 시아버님 제일에 두 분 연미사를 정성껏 드리려,
연애 시절에 두 분이 좋아하셨다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노래 예물도 연습해둔다.
*남편한테서 들은 이야기 (첫 연 첫 행 이하 이야기) 시아버님은 배재 출신, 시어머님은 진명 출신. 두 분은 상동 교회에서 처음으로 만나셨다고 한다. 시아버님이 연극 장발장 주인공으로 나오시고 시어머님은 교회에서 그 연극을 보고 두 분이 첫눈에 반하셔서 혼인을 하셨다고 함.
드뷔시의 달빛 소나타
발가락으로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움직임을 아시는지,
달빛은 루체른의 호수 반짝이며 꿈꾸는 떨림이다
작은 조각배가 흔들린다
손가락으로 간절한 은빛을 잡아댕기는 조각배의 귓속말이다
몽롱한 안개의 귓속말에 끌려서,
피아노를 치며 소프트 페달을 누르며 밟는 왼발, 발가락으로 빚는 여린 음색,
피아니시모 여리게, 더 여리게, 더, 더 여리게, 아주 여리게
피아니시시모로, 다시 여리게
꿈이 익은 색 금빛을 부드러운 물결 속으로 잡아댕긴다
손을 뉘인 채 귤빛 조각배는 꿈길을 느리게 저어간다
피아노를 치며, 발가락을 살짝 반만 떼다가 댐퍼 페달*을 누르곤 음결과 음결 사이를 붙임줄로 이어간다
폴 베를렌느의 詩,** 가릉빈가의 날개가 꿈꾸던 영혼의 색,
호수 위 감미로운 깃털의 詩語들,
음표로 그린 그림 한 폭, 사라지듯 멀어져 간 달빛,
찬란하게 비상하는 나무 위의 몽상 가릉빈가의 그림자.
*달빛 소나타는 페달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해야 음색이 아름답다. 피아노 건반을 연주할 때, 일정한 음이 들린 후에 사라지는 음을 계속 울리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페달. 소리를 풍부하게 감미롭게 해주는 제일 오른쪽에 있는 페달.
**드비쉬는 베를렌느의 시 「달빛」을 보고 영감을 받은 뒤, 이 곡을 작곡 했다고 함.
노혜봉_1990년도 《문학정신》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 빛> 외 5권. 시선집으로 <소리가 잠든 꽃물>이 있음.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경기도 문학상 대상 외 다수 수상. <시터>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