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기 10주차] 대구의 딸
지난 목요일, 에니어그램 영성지도 수업을 하며 '서원기도'라는 말이 나왔다. 창세기 28장에서 야곱은 절박한 심경으로 머리를 굴리며 서원기도를 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세기 28장 20-22절)"
이 날 수업에서는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실 것이란 확고한 믿음에서의 서원이 아닌, 숨통을 죄어 오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조건을 내걸고 서원한 야곱의 불안함에 초점을 두었다. 불안함이 야곱으로 하여금 서원기도를 하게 했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하시는 씨앗이 되었다. 살기 위해 주님께 배팅을 했는데 주님은 야곱의 인생을 잭팟이 되게 하셨다, 물론 고된 노동과 씨름으로.
'서원기도'라고 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2012년 대학 4학년,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이다. 교사가 되겠다는 확신도 없고 마음도 잡히지 않아 의무적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거북이처럼 동기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의무감 보다는 뭐든 마음에 꽂히고 영감이 오면 달려들어 몰입하는 성격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4학년 교생실습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이번 실습 때 하나님의 길을 보여달라고, 지난 3년 동안 조금씩 보여주신 비전들 말고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듣고 싶다며 툴툴 댔다.
감사하게도 교생실습을 하며 만난 아이들은 예쁘고 착했으며 실습반 선생님께서는 지혜로운 학급 경영에 대한 본을 보여 주셨다. 이전 해인 3학년 때 다녀온 필리핀 비전트립에서 만난 아이들과 실습반 아이들의 미소가 겹쳐지며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치타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거북이에서 토끼를 건너뛰고 치타라니, 체력도 약하고 단순 암기에 취약한 나는 똥줄타는 심정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방대한 분량을 헉헉거리며 따라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체력이 슬슬 바닥을 치고 입술이 터졌다. 거기다 내가 워낙 섬세한 성격이구나를 또 그때 알았다.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을 쓴 날에는 어김 없이 새벽에 토를 했다. 다시 잠들지 못해 퀭해진 눈으로 소파에 앉아 '이 시험을 두 번은 못 치겠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생각했다. 그렇게 힘든 날들이 반복되고 마침 생명의 삶 QT 본문이 욥의 이야기를 다룰 때 즈음,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이거 두 번은 못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합격하면 대구 교육을 위해 몸을 바칠게요."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게 대구의 딸이 되었다. 1차 시험을 한 달 여 앞두고 홀로 공부하고 싶어 아파트 독서실에 등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곳인데, 중요한 시험을 앞두었을 때 독서실에 등록하면 괜시리 마음이 놓이고 의욕이 샘솟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당시 흔치 않던 발 전용 1인 전기장판을 마련해 자리 밑에 놓아주셨다. 손, 발이 차갑던 나는 귀여운 장판 위에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친구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매일 각자 다른 친구들이 독서실 앞으로 찾아왔다.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뜬금없이 아파트에 찾아와 달달한 디저트와 손편지를 안겨주고는 돌아갔다. 어떤 날은 교회 친구들이 와서 밥을 사주고 초콜렛을 잔뜩 건네고 후다닥 가버리고, 다른 날은 (심지어 타지에 사는) 중학교 동창들이 "임용고시 준비한다는 소식 들었다"며 이니셜 새긴 컵케익과 손편지를 들고 와서 10분 정도 웃겨주고 돌아갔다. 교회에 가면 그닥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로부터 응원과 격려의 디저트를 한아름 받았고, 당시 팀을 담당하시던 목사님께서는 집 앞까지 픽업 오셔서 밥, 커피를 사주시고는 축복의 기도를 한껏 해주신 후 다시 데려다주셨다.
신기했다. 다른 것들에 신경쓰고 싶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두고는 하루에 1~2번 켜서 중요한 연락만 확인했는데, 사람들은 날짜가 겹치지도 않게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를 가득 들고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물이었다. 이 때의 신기함, 감사, 놀라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원기도를 한 대로 10년 동안 대구 교육을 위해 애썼다. 굳이 대구 교육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선생님이 되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 반을 잘 꾸려나가고 선택한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돌이켜보니 서원 기도를 지키게 된 셈이다. 최근 들어 많은 교사들이 학교 현장을 떠났다. "못해먹겠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각자가 교실에서 겪은 사연들에 구구절절 공감이 되고 나 역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아, 나 서원기도 했는데. 기도를 잘못해서 발목이 묶였나?' 생각하며 그때의 기도를 짐짝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서원기도를 했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하나님은 서원기도를 반드시 지키신다. 내가 서원기도를 지키지 않을 때라도 하나님은 끌어서라도 그 약속을 지키신다."고 하셨다. 그 말이 마치 "도망가면 잡아온다"처럼 들렸다. 끊어내고 싶을 때 마음껏 끊지 못하는 족쇄 같이 느껴져, 하나님은 나를 곤경에 빠뜨리시고 이대로 두시는 분이라는 오해도 했다. 이 스토리와 어머니와의 대화를 에니어그램 수업 때 나누자, 수녀님께서는 "어머니의 말씀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되, 서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연약하고 그 서원을 이룰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가신다"는 말씀을 하시며 두려움에 매여 있지 않을 것을 당부하셨다.
집에 돌아와 수녀님 말씀을 곱씹어보니 임용 전 사람들이 찾아와준 서프라이즈가, 하나님과 새끼손가락 걸고 도장을 찍은 후 나는 홀라당 까먹었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가 다 도와줄거야. 지원사격 나간다. 받아랏 선물!" 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도 그 선물을 받았다. 이번에 박사디펜스가 된 타전공의 선생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갓 나온 따끈따끈한 논문에 정성 담은 편지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풀 코스로 선물해주셨다. 그러고는 논문 한글 파일, 반드시 구비해야 할 서류, 꼭 알아야 할 tip 들을 아무 대가 없이 전수해주시며, "논문 꼭 쓰세요. 선생님은 잘할 수 있을거에요. 반드시 논문 완성해서 졸업할거에요. 응원할게요." 라는 격려와 힘을 주셨다. 우연히 한 학기 수업을 같이 들었는데 그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져, 하나님은 이 인연을 선물 같은 만남, 시간으로 치환하셨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귀가 얇고 주변에 쉽게 물든다. 백지처럼 순수하고 심지가 곧다는 선배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에선 인정하지 못했던 건, 백지이기에 쉽게 물들지만 워낙 섬세해 쉽사리 휩쓸려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는 발장구가 그들 눈에 심지가 곧아보였을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검열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인간의 세 가지 근원적인 감정인 불안, 두려움, 분노 중 불안이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고, 그 불안으로 인해 서원기도를 드린 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가 살아갔던 삶의 패턴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구의 딸'이라는 닉네임은, 불안에 잠식되어 죄로 번져나가지 않게 하는 장치가 되었다. 다가올 미래를 알 수 없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파생된 널뛰는 불안함을 잠식시켜주는 약속이다. 나를 옭아매는 덫이 아니라 '또 어떤 선물들로 나를 놀라게 하실지' 궁금한, 로맨띡한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