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Ω‥‥‥자유게시판 스크랩 국가론 시각에서 본 ‘삼성공화국’ 현상
빛깔 추천 0 조회 172 12.01.13 19:4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국가론 시각에서 본 ‘삼성공화국’ 현상

 

송백석

 

 

 

I. 서론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가-재벌 관계에 대한 논의의 성격이 이전 시기와는 다른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정부 하에서 주된 관심 의제는 패권독점자본분파 삼성의 지배력에 관한 것이다. 이전에 국가-재벌 관계의 관심이 주로 국가와 독점자본 일반, 즉 국가와 재벌 전체에 관한 것으로 모아지면서, 외환위기 이전에는 경제발전 성공모델을 탄생시킨 국가-재벌관계의 한국적 특수성은 무엇인가 아니면 비판적 시각에서 국가-재벌의 공모 속에 진행된 개발독재가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는가를 분석하려는 연구방향이 나타났다.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국가-재벌 관계가 과연 변하였는가라는 큰 질문의 틀 안에서 발전국가 속성의 잔존여부, 시장경제의 실현 여부 등의 문제에 연구의 초점이 모아져 왔다. 이에 반해 노무현정부 하에서는 이전 시기와 비교해 매우 차별적인 것으로서 국가와 개별자본 삼성의 관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위 ‘삼성공화국’ 논란이 부상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공화국논란은 삼성이 외환위기 이후 실시된 구조조정과정을 성공적으로 거치고 국내외의 기타 개별자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구축한 경제적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지 논란이 아니라 삼성공화국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삼성공화국현상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째, 삼성공화국의 정의는 무엇인가? 삼성공화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개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삼성공화국에 대한 의미 정립은 제대로 시도되지 않았다. 삼성공화국의 용어가 국가와 자본의 개념이 병렬된 합성어이니만큼 국가-자본 관계의 맥락에서 정의가 내려져야 할 것이다. 둘째, 과연 한국의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는 삼성의 지배력에 종속되어 있는가? 삼성이 재계, 정계, 관계 그리고 언론계를 이미 장악했을 뿐만이 아니라 재경부와 금감위 등의 정부부서가 삼성의 이익을 보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만약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과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위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정치경제적 현상을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측면에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이 글은 자본주의국가 연구의 초석을 닦아놓은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국가론의 틀 내에서 한국 국가와 독점자본 재벌의 관계를 탐구한다. 가속화되는 지구화와 국가권력의 중심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 속에서 연구의 관심대상이 국가에서 시장과 시민사회로 옮겨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시장과 시민사회연구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다 준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국가’라는 메아리가 잠들지 않았다. 다시 국가를 보자는 흐름은 ‘새로운 형태의 전 지구적 주권’을 찾으려는 노력에서도 (Hardt and Negri, 2000) 그리고 “부적절하게 매장된 국가론”을 부활시키겠다는 일단의 서구학자들의 의지에서도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Aronowitz and Bratsis 2002: xi). 그런데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체제의 재생산은 ‘정치적인 것’의 구성적 작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움직임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이 단지 외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상황과 같은 것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국가론은 다시 활발한 연구영역이 될 것인데 다만 향후 어떠한 형태의 국가가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와 KBS가 삼성의 지배력을 실증적 차원에서 분석한 자료인 삼성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본 논문은 풀란차스 국가론과 삼성보고서의 구체적 자료를 접목시키면서 한국의 삼성공화국 현상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삼성보고서가 삼성의 경제적 지배력, 삼성인적네트워크, 삼성지배구조, 삼성의 홍보전략 등에 심층적인 실증적 자료를 포함함에 따라 그동안 저널리즘의 공간에서 중구난방으로 제기된 삼성공화국 보도와는 매우 차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보고서는 여러 가지 자료를 분절적으로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한국정치경제를 이론적 차원에서 총괄하여 이해하는 것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은 삼성보고서를 풀란차스의 이론 틀로 새로운 각도에서 읽어내면서 삼성공화국 현상을 패권독점자본분파가 지배하는 한국자본주의시스템의 효과로 이해해야 할 것임을 강조할 것이다.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 2장에서는 주류 국가론과 맑스주의 국가론을 비교한 후 본 논문의 분석 틀인 니코스 풀란차스의 시스템 재생산원리를 소개한다. 제3장에서는 앞장에서 소개한 이론 틀을 한국에 적용, 국가와 재벌 사이에는 객관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삼성공화국 현상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제4장 역시 풀란차스 이론을 한국에 대입시켜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는 정부 부서의 장치통일성을 통하여 삼성을 필두로한 재벌전체의 이익실현을 위해 기능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결론에서는 삼성공화국 현상의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과제를 던져본다.

 

 

 

 

II. 국가의 정의

 

 

1. 주류 국가론

 

국가의 정의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개진되어 왔으나 아직까지 사회과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국가 개념의 모호성은 국가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도 조차 정확히 정리된 국가의 정의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이는 국가란 개념의 복잡성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한정된 정신능력으로 그 실체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Hoffman 1995: 19). 더 나아가서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국가란 개념은 아예 폐기되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는 지난 이천 오백년 동안 국가 개념의 문제가 논의되어 왔지만 그 의미가 워낙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나머지 어떠한 일체성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Easton 1991: 107), 1950년대 미국의 정치학자들의 어휘목록에서 국가라는 용어를 삭제해 버릴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국가의 개념을 대신하여 '정치시스템(Political System)'의 용어를 도입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다.

 

이스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개념은 정치학과 사회학에서 중심적인 개념적 기제(conceptual apparatus)이다. 국가의 중심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학자는 다름 아닌 막스 베버(Max Weber)이다. 맑스주의 국가론 학자들이 주로 사회의 계급과 사회구조의 분석 맥락에서 국가에 대한 연구를 행한 반면 베버의 국가 연구는 사회내의 소수 엘리트들이 일종의 특별한 '협회' 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국가를 연구하였다 (Wright 1985: 210). 이러한 점에서 베버적 접근방식이 국가를 사회의 복잡한 현상을 조정하는 하나의 조정체로 보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베버는 주장하기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이성적 행정부의 필요성이 질적 그리고 양적측면에서 커져왔다고 말한다 (Weber 1983). 베버의 추종자들은 맑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자율성을 소홀히 여기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힘만을 과대평가하며 정치적 요소의 자율적 권력을 지나치게 경시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Mann 1986: 17).

 

이 같은 베버의 영향이외에 국가의 중심성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배경에는 역시 '국가제자리찾아주기(Bring-the-State-Back-in)'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친 학자들의 활동이 있다. 이스턴에 의해 대표되었던 '정치시스템' 학파의 인기가 시들해 졌고 국가의 개념이 다시 정치학에서 주요 개념변수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네틀(Nettl 1968)은 그의 논문 『개념변수로서의 국가』에서 국가의 개념을 도외시하는 주류정치학의 접근자세를 정면 비판하고 '국가제자리 찾아주기'를 제안하였는데 그의 제안은 흔히들 일컫는 국가중심주의 이론가들(state-centred theorists)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 국가란 하나의 중심성을 가진 제도적 몸체였고 사회를 설명하는데 있어 독립변수로 여겨졌다. 그들은 국가가 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압력으로부터 대응하는 차별화된 자율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했고 맑시즘이 국가 자율성을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정치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는 환원주의의 오류에 빠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예를 들면, 스테판은 『국가와 사회』의 서문에서 다원주의와 맑시즘이 국가를 단순히 종속변수로만 여기고 있음을 질타하고 있다. 요컨대 “근대국가의 집행부는 부르주아의 전체의 공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라는 명제는 국가를 하나의 종속변수로 가정하고 경제시스템을 독립변수로 가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Stepan 1978: 20). 비슷한 맥락에서 노드링거는 맑시즘을 “대체로 낡아빠진” 사회 중심적 접근방법이라 평가하고 그것은 “국가를 사회 내에서 경쟁하는 이익집단들의 자본과 부채의 총량을 정확히 계산한 뒤 사회내의 경쟁의 결과를 비준해주는 '현금출납기'로 여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Nordlinger 1981: 42). 그는 국가관리들이 국가자율성을 행사하는 힘의 원천이며 그들이 국가자율성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스카치폴 역시 다원주의자들과 구조기능주의론자들 사이에서는 국가가 결코 독립변수로 채택되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고, 영토와 국민위에 조정하는 조직으로서 국가라는 것은 사회의 이익집단과 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그저 대변하지만은 않고 목표를 세우고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국가의 자율성이라는 것이며 독자적 국가목표의 설정이 가능하지 않다면 국가라는 것이 중요한 행위자로서 운위되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Skocpol et al. 1985: 9).

 

 

2. 맑스주의 국가론: 풀란차스국가론을 중심으로

 

 

2-1. 껍데기로서의 자본주의 국가

 

이처럼 국가를 사회변화의 독립변수로 보는 관점과는 달리 맑스주의자들에게 있어 국가는 하부구조인 경제체제 작동의 효과로서 나타나는 상부구조로서 받아들여진다. 물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보듯이 국가를 종속된 상부구조로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맑스주의 국가론은 국가를 사회구성체 재생산에 ‘필수적이지만 제한적 기능’을 담당하는 정치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필수적이지만 제한적이라 함은 국가가 현 계급지배체제의 재생산에 필수적이지만 현 계급질서를 뒤바꿀 수 있는, 다시 말해 부르주아 지배의 자본주의 생산관계까지도 바꿀 수 있는 기능까지는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기능의 한계를 염두하며 풀란차스는 "국가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이 보장되어야만, 그래서 노동자계급과 인민 대중에 대한 착취가 유지되어야만 국가는 존재한다. 생산관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관계들로서의 재생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계속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개입은 부정적인 일반적 한계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부분'에 대한 특수한 불 개입을 특징으로 한다"라고 역설한다(원문강조) (Poulantzas, 2000: 191).

 

그렇다면 1)왜 풀란차스는 국가가 자체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 부심했고 2)무슨 이유로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풀란차스는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로의 이행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로서 국가가 자체적으로, 즉 국가권력을 잡은 정치세력이 주도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평화적으로 건설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부심했던 것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institutional materiality of the capitalist state)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풀란차스가 자본주의 국가기능의 한계를 말하면서 유혈혁명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국가권력을 잡은 정치세력이 유혈사태를 일으키면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한다거나 국가권력을 잡지 않은 정치세력이 역시 피를 뿌리면서 국가권력을 탈취하여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도입하려는 어떠한 방법도 배격했다(Poulantzas, 2000: 251-265). 유혈사태을 야기하는 일체의 시도는 비록 성공한다 하여도 필연적으로 독재적 정치체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고 이런 맥락에서 스탈린이즘의 독재성을 이해하고 있었다(Poulantzas, 2000: 251-265). 따라서 그의 관심사는 유혈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가능할 수 있겠느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과연 자본주의 국가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체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할 수 있겠느냐, 구체적인 표현으로 과연 국가권력을 잡은 정치세력이 평화적으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실현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국가는 자체적으로, 즉 국가권력을 잡은 정치세력이 평화적 방법으로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하는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풀란차스는 이처럼 국가가 자체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핵심을 바꾸고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할 수 없는 한계를 생산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분리된 자본주의 국가의 특수한 제도적 물질성에서 찾고 있다(Poulantzas, 2000: 49-53). 이 같은 물질성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는 구조적으로 친부르주아적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권력이 어느 정파에 의해 획득되어 있느냐 하는 점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국가는 단순한 정치적 지배에 환원될 수 없는 특별한 물질적 틀을 지니고 있다. 국가 기제 그 특별한 그래서 무시무시한 그 무엇―어떠한 정치세력에 의해 쟁취되는―은 국가 권력에 의해 소진 될 수 없다. … 비록 국가가 지배계급들에 의해 무에서 탄생한 것도 또는 단순히 그들에 의해 쟁취된 것도 아니지만 국가권력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에 부르주아지의 권력)은 이러한 물질성에 각인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Poulantzas, 2000: 14). 따라서 경제영역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개입의 한계는 구조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그 한계는 국가기제의 외부에서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국가개입의 한계는 국가기제 내부에서도 부과되는데 그것은 국가기제 역시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물리적 응축이기 때문에 국가기제의 내부에서도 그 한계가 내재화 되어 있다고 풀란차스는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Poulantzas, 2000: 190-199).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국가권력이 비록 좌파세력에 의해 확보되어 있어도 자본주의 국가 권력의 친부르주아성은 국가의 물질성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요원하다는 것 그리고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 노력은 그 과정에서 부르주아의 방해와 저항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풀란차스에게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과 노동의 지배/피지배관계인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할 수 없는 껍데기와 같은 존재이다. 비유를 들자면 국가의 기능이란 벼 껍질이라든가 피막의 기능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의 관계는 벼 껍질과 쌀알의 관계와도 같다.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 지배관계의 재생산에 구성적인 작용을 하지만 그 지배관계 질서를 바꾸지 못하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벼 껍질은 수정된 씨방이 점차 자라서 쌀알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 쌀알 내부의 습도를 유지하고 병균이나 해충과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쌀알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쌀알이 튼튼한 열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호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벼 껍질은 쌀알을 구성하는 씨눈과 씨젖의 상호관계를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구성적으로 작용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재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지배관계인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에는 관여할 수 없는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껍데기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또한 국가는 중요한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피막과도 같다. 피막은 그것이 감싸고 있는 내용물의 현상태를 변하지 않게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지만 내용물의 성분 따위를 바꾸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2-2. 시스템재생산원리

 

국가를 껍데기로 보는 것은 풀란차스의 시스템재생산원리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삼성공화국현상’을 연구하는데 있어 시스템재생산원리가 중요한 이론 틀이다. 유명한 밀리반드-풀란차스 논쟁을 다시 한번 회고하면서 시스템재생산원리를 이해하는 노력을 해보자.

 

밀리반드-풀란차스 논쟁은 풀란차스가 밀리반드의 저서 『자본주의 사회의 국가』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제기하는 선공으로 시작되었다(Miliband, 1969). 특히 문제 삼았던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성격에 관한 대목이다. 밀리반드는 자본주의국가의 친부르주아 성격을 자본가계급 구성원들이 정부 내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자본가들과 정부관료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 등과 같은 인적제휴에 연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풀란차스에 따르면 인적제휴라는 것은 국가가 친 부르주아 성격을 갖는 결정적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풀란차스에게 인적제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자체였다. 다시 말해 시스템의 효과로 인하여 자본가들과 정부관료들 사이의 인적 제휴 따위가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풀란차스는 말하기를,

 

 

국가기제와 정부안에 자본가 계급 구성원의 직접적 참가는, 비록 그것이 일어나는 곳에서도, 문제의 중요한 측면이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과 국가의 관계는 객관적 관계이다. 이것은 만약 특정 사회구성체내의 국가의 기능 구성체내의 지배계급의 이해 일치한다면, 그것은 시스템 자체 때문이다: 국가기제내에 지배계급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객관적 일치의 원인 아니고 효과일 뿐이며 사건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 (원문강조) (Poulantzas, 1969: 73).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밀리반드는란차스의 이론적 접근을 "국가와 시스템의 변증법적 상호관계의 현실적 고려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구조적 결정주의, 나아가 구조적 극도 결정주의"라고 비판한다 (Miliband, 1970: 53).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풀란차스는 한쪽에 너무 치우쳐 있고 국가 엘리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점에서 지나치다. 왜냐하면 '객관적 관계들'에 대한 그의 과도한 강조는 국가가 하는 것은 매번 그리고 언제나 이들 '객관적 관계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시스템의 구조적 제약성이란 그야말로 절대적이기 때문에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스템'에 의해 그들에게 부과된 정책들을 단순히 수행하기나 하는 기능인들과 집행인들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문강조) (Miliband, 1970: 53).

 

 

여기서 필자는 밀리반드의 풀란차스에 대한 평가, 즉 '구조적 극도 결정주의'라는 비판에 일정 정도 동의함에도 불구, 밀리반드는 풀란차스가 어떠한 맥락에서 '객관적 관계'를 언급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한 채, 풀란차스를 그저 단순히 구조주의자라고 비판하고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풀란차스는 "밀리반드의 문제는 사회계급들과 국가를 객관적 구조와 시스템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Poulantzas, 1969: 70). 따라서 풀란차스에 대한 올바른 비평은 바로 풀란차스가 말하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에 대한 파악을 위해서는 풀란차스의 '시스템재생산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풀란차스의 국가론에는 두 개의 핵심 명제가 있다. 첫째, 그는 "국가는 사회구성체 통합의 요소이며 한 계급의 다른 계급들에 대한 지배를 결정짓는 시스템 생산 조건들의 재생산 요소이다"라고 주장한다(Poulantzas, 1969: 73-4; 1987: 44-5). 이 명제를 통해 풀란차스는 계급들에 의해 구성된 시스템은 그 자체가 지배의 실재물 (entity)이며 국가의 역할은 투쟁하는 계급들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국가는 계급투쟁으로 특징되는 사회시스템의 재생산에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다. 둘째, 풀란차스는 시스템의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국가가 패권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고 있다(Poulantzas, 1973a: 299; 1973b; 1979).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국가의 중심적 역할은 조절의 역할이며 그것은 지배계급과 지배계급분파들의 이익을 대변(represent)하고 조절(organise)하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Poulantzas, 2000: 127).

 

위의 두 가지를 결합하면 시스템은 국가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계급들로 갈라진 사회를 통합하는 가운데 재생산 된다는 완성된 명제가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풀란차스가 믿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재생산 원리이다. 이에 근거 풀란차스는 부르주아지와 국가 사이에는 객관적 관계가 존재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만약에 A가 사회구성체 시스템 내에서 지배계급이면 그것이 부르주아지가 아니더라도 국가의 역할은 지배계급 A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사회의 통합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체계화하고 대변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바로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국가와 부르주아지 사이에는 어떠한 주관적 관계가 있을 수 없다. 국가의 역할은 껍데기로서 자본주의시스템의 지배관계를 바꿀 수는 없으며 단지 현재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계급투쟁으로 갈등이 내재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림1)의 가)에서 보듯이 국가는 지배계급인 자본과의 객관적 관계 속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표하며 조절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풀란차스는 "만약 특정 사회구성체내의 국가의 기능과 이 구성체내의 지배계급의 이해일치한다면, 그것은 시스템 자체 때문이다: 국가기제내에 지배계급 구성원들이 직접 참가하는 것은 이 객관적 일치의 원인이 아니고 효과이며 사건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풀란차스가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며 둘 사이에는 객관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언급할 때 그림1)의 가)처럼 하나의 사회구성체 단위를 (한국, 일본, 영국 등의 단위) 시스템으로 염두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는 여기서 하나의 사회구성체를 재생산원리에 종속 받는 경제시스템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풀란차스는 그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시스템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파워블록 시스템이다. 파워블록(power bloc)의 개념은 국가기제의 주변부에서 사회지배계급들이 정치활동을 벌이는 정치공간을 더욱 더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다듬어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파워블록은 몇 개의 지배계급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지배의 공간이다. 풀란차스는 파워블록 역시 하나의 패권계급 분파가 다른 세력들에 대한 지배를 이루면서 재생산되고 있는 하나의 경제 시스템으로 생각한다. 역시 여기서 국가는 파워블록의 통합의 요소이다. 이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역시 패권지배계급분파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사회구성체라는 경제시스템에 적용하였던 똑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풀란차스는 파워블록을 다수세력의 존재로 인한 상충적 통합이 정치적 지배아래 완성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파워블록에서의 통합은 독점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운데 완성된다. 왜냐하면 독점자본이 파워블록 내에서 지배계급분파이기 때문이다(Poulantzas, 1973a: 229-39). 이에 따라 그는 "그것의 [국가의] 정책이라는 것이 결국 패권 계급 또는 패권계급 분파를 위하여 형성되고 있는데, 오늘 날 바로 독점자본을 위하는 방향으로 되고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Poulantzas, 2000: 136). 그림1)의 나)에서 보듯이 여기서 국가와 독점자본의 관계 역시 객관적 관계이다. 사회구성체라는 경제시스템의 재생산과정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유지시키듯이 파워블록시스템의 재생산도 국가가 독점자본의 지배를 유지시키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풀란차스는 "국가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조절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Poulantzas, 2000: 128 and 136).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재생산이란 결국 그림 1)의 다)에서처럼 사회구성체와 파워블록이라는 두 시스템이 동시에 맞물리고 상관하면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III. 삼성공화국 현상I: 국가와 재벌의 객관적 관계

 

 

1. 재벌의 지배력

 

삼성공화국현상이란 한국자본주의시스템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와 최강자본분파 삼성이 주도하는 독점자본 재벌 사이의 객관적 관계 하에서 재벌 일반의 이익이 유지되고 보호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삼성공화국현상은 재벌공화국현상을 말하는 것이며 다만 최근 삼성이 재벌 중 뚜렷한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이익이 두드러지게 관철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삼성공화국이라 말 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자본주의 국가로서 독점자본 재벌과 객관적 관계에 있다. 정부가 사회구성체 수준에서 지배계급A 그리고 파워블록 수준에서 지배계급분파 A+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구성적으로 작용하면서 순기능 하는 한 그 정부는 지배계급 A와 지배계급분파 A+의 국가이다. 그림2)에서 보듯이 한국의 역대정부는 사회구성체 수준에서 한국 자본일반의 지배를, 파워블록 수준에서 독점자본의 지배를 보장해왔기 때문에 역대 정부는 한국 자본일반과 독점자본 재벌의 국가이며 그들의 관계는 객관적 관계이다. (글의 뒷부분에서도 보겠지만) 국가는 사회관계의 응집이라는 점에서 한국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뿐만 아니라 한국노동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그 응집이란 종국에 시스템재생산원리가 작용하는 특수한 물질적 응집이기 때문에 한국자본주의 국가는 최종분석에서 한국 자본일반과 독점자본 재벌의 지배를 보장한다. 이로 인하여 박정희국가, 김영삼국가, 김대중국가, 그리고 노무현국가의 시기에도 한국 자본은 지배계급이었으며 재벌은 지배계급분파의 지위를 유지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국가는 한국 자본일반과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고 조절하는데 그것은 한국 자본이 지배계급이고 재벌이 지배계급분파이기 때문에 그러하며 어떠한 주관적인 관계에서 그러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재벌의 한국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지배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표1)에서 보듯이 30대 재벌의 GDP대비 자산비중, 매출액비중, 부가가치비중이 각각 최소 50%, 60% 그리고 10%를 상회해 왔다. 외환위기 이후 30대 재벌의 점유비중이 하락해오기는 했으나 한국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이 1987년에 비해 약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2002년 현재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자산이나 매출액 혹은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비록 1987년 수준에 비해 하락했지만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닐뿐더러, 1997년 이후 재벌의 당기 순이익은 경제 전체의 당기 순이익의 변화를 거의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록 그 영향력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부가가치 측면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며, 1997년 외환경제위기 이후에는 그 값이 5대 재벌을 중심으로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송원근?이상호, 2005: 110-111). 단기적 경기상황의 변동, 정세적 변화, 그리고 계급투쟁양상의 변화에 따라 재벌의 지배력이 변동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독점자본주의 체제인 이상 재벌은 파워블록내에서 상존세력이며 구조적으로 지배계급분파일 수 밖에 없다.

국가가 독점자본의 이익을 조절하고 보호하지만 자본주의 국가가 상시적으로 재벌이익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국가는 재벌과 객관적 관계라는 큰 틀에서 재벌지배를 보장하기는 하나 정세적으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재벌의 활동에 개입하면서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30대 재벌의 GDP대비 자산비중은 1996년부터 98년 까지 각각 75.8 %, 88.8%, 93.4%, 매출액 비중은 78.6%, 83.9%, 88%, 부가가치의 비중은 12.8%, 11.6%, 13.4%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과도한 집중이 IMF위기라는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를 불러일으키자 국가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재벌정책을 통해 독점자본의 활동에 개입하였다. 이결과 자산비중, 매출액비중, 부가가치의 비중은 2002년 각각 54.9%, 65%, 11.4%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의 재벌정책 역시 한국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고 조절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개별자본에게 공세적으로 보이는 재벌개혁도 종국적으로 전체 독점자본의 안정적 지배체제의 구축을 도모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표1)GDP대비 30대재벌, 5대재벌, 삼성그룹의 비중(금융보험업제외)(단위: %)

 

 

1987

1990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자산

30대재벌

55.1

61.9

69

75.8

88.8

93.4

79.6

72.3

58

54.9

/GDP

5대재벌

29.9

34.1

39.1

43.2

54.5

62.5

51.5

42.3

35.8

34.6

 

삼성

5.8

7.3

9.6

10.5

12.9

12.4

12.2

10.9

10.3

10.5

매출액

30대재벌

66

61.7

73.1

78.6

83.9

88

72.4

78.8

67.5

65

/GDP

5대재벌

41.9

37.6

48.7

52.6

57.8

66.9

54.6

56.5

44.1

44.6

 

삼성

10.9

10.7

12.6

12.6

13.6

15.4

15.7

17.5

14.9

15.8

부가가치

30대재벌

10.8

12.1

14.2

12.8

11.6

13.4

11.4

10.9

9.8

11.4

/GDP

5대재벌

6.1

6.7

8.7

7.6

7.5

7.6

9.1

7.6

6.7

8.2

 

삼성

1.4

1.9

2.6

1.8

1.7

2.1

2.5

3.3

2.3

3.1

부가가치

30대재벌

14.3

15.9

18.5

16.7

15

17.5

14.9

13.9

12.8

15.1

/GDP

5대재벌

8.1

8.9

11.3

9.8

9.8

10

12

9.7

8.7

10.8

 

삼성

1.9

2.5

3.4

2.3

2.3

2.7

3.2

4.3

3.1

4.1

(출처: 김상조, 2005)

 

표2) 30대 재벌 대비 5대 재벌과 삼성그룹의 비중(금융보험업 제외)(단위: %)

 

 

1987

1990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자산

5대재벌

54.2

55.1

56.6

57

61.4

66.9

64.7

58.5

61.7

63

 

삼성

10.6

11.8

13.9

13.8

14.8

13.3

15.3

15

17.8

19.1

매출액

5대재벌

63.5

61

66.5

67

68.9

76

75.4

71.7

65.4

68.5

 

삼성

16.5

17.3

17.3

16

16.3

17.5

21.6

22.2

22.1

24.3

부가가치

5대재벌

56.6

55.9

60.8

58.9

65.1

57.1

80.3

69.9

68.3

71.7

 

삼성

13

15.6

18.3

13.9

15.1

15.5

21.8

30.7

23.9

27.2

(출처: 김상조, 2005)

 

표3)5대 재벌 대비 삼성그룹의 비중 (금융보험업 제외) (단위: %)

 

1987

1990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자산

19.5

21.5

24.6

24.3

23.7

19.9

23.6

25.7

28.8

30.4

매출액

26

28.3

26

23.9

23.6

23

28.7

30.9

33.8

35.4

부가가치

23

27.8

30.1

23.6

23.2

27.2

27.1

43.9

35

38

(출처: 김상조, 2005)

 

 

 

현 한국자본주의시스템에서 일어나는 특기할 만한 것은 30대 재벌내에서 5대 재벌의 비중과 특히 삼성의 비중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5대 그룹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겪기도 했지만 최근 오히려 매출액과 부가가치 점유비중에서는 상승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삼성의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 최강독점자본분파 삼성의 지배력이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표1)에서 보듯이 2002년 5대재벌 및 삼성의 점유 비중은 모든 항목에서 1987년 수준을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특히 삼성(금융보험업 제외)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농림어업?금융?비영리 부문을 제외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7년 1.9%에서 2002년 4.1%로 크게 높아졌다. 표2)와 표3)은 30대 재벌과 5대재벌에 대비한 삼성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은 2005년 4월을 기준으로 총자산 209조 630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룹전체 매출액은 금융회사들을 포함하면 약 139조원정도에 이른다. 이것은 2004년도 우리나라 전체 경상 국내총생산의 17.9%에 이르는 규모이며, 2004년 국내 부가가치 생산액의 20.1%에 해당한다. 삼성은 2005년 4월 현재 5대 재벌 일반자산의 50.8%, 자본총액의 45.9%, 매출액의 39.5%, 당기순이익의 46.2%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의 2005년 현재 주식 시가총액은 94조원으로, 우리나라 4대 그룹중 현대, LG, SK그룹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한 88조원보다도 많다(송원근, 2005: 43).

 

 

2. 시스템 효과로서의 삼성네트워크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가와 재벌 사이에는 객관적 관계가 형성된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정을 거치고 선두 주자로 부상한 개별자본 삼성의 영향력이 표면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삼성공화국이라는 국면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5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시장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발언하였는데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정확히 말하면 권력은 삼성에게 넘어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삼성화재 등 3개 삼성그룹 계열사가 헌법재판소에 공정거래법 제11조 재벌금융사 의결권 행사조항과 관련하여 헌법소원을 낸 사실, 금산법(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관련 정부가 삼성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유지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시장경제 질서와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스스로 폐기하는 것 같은 모습들은 모두 삼성의 힘이 대기업으로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상승했다는 징후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저널리즘에서는 이 같은 삼성공화국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요직에 삼성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회에서 처리되는 경제관련 법안은 삼성의 영향력에 변형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삼성은 재계, 정계, 관계 그리고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전직 검사 및 판사들에 대한 대대적은 영입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고위관리들은 퇴임 후를 위해서라도 삼성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고 한다. 삼성과 언론재벌의 ‘동맹’으로 ‘삼성저널리즘’이 팽배하고 삼성에 유리하게 보도가 나가 경제의제를 왜곡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KBS의 삼성보고서는 삼성인사의 인적네트워크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이전까지 저널리즘에서 삼성공화국현상을 구체적인 자료 없이 선정적으로 보도해 오던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보고서가 “삼성공화국의 힘은 그 인적네트워크를 통해 발현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밀리반드식 접근에 입각하여 삼성공화국현상에는 삼성의 광범위한 인적네트워크의 힘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보고서는 삼성의 이너써클이라는 소위 삼성네트워크의 인적구성을 1)삼성에 취업한 고위공직자(5급 이상)?법조인(판?검사 경력자)?언론인, 2)삼성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 3)삼성그룹 관련 재단이사, 4)삼성출신 고위공직자, 법조인, 정치인, 주요 경제?경영학회 임원 등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 인적네트워크는 로비스트의 기능, 법률적 위험(legal risk)에 대한 ‘방패막이’의 역할, 그리고 삼성의 이해관계와 가치를 사회 전체의 바람직한 모델 내지 유일한 모델로 포장하고 이를 대변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인적 네트워크의 전체 인원 수는 총 278명으로 파악되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사외이사가 99명(전체의 35.6%)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재단이사(85명, 30.6%), 삼성에 취업한 고위공직자(44명, 15.8%), 법조인(28명, 10.1%) 순이다. 경력별 분석을 보면 관료가 101명(34.4%)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학계 87명(29.6%), 법조인 59명(20.1%), 언론인 27명(9.2%) 순이다. 노무현정부 들어 삼성의 인사들이 다수 입각을 하고 삼성에 의한 전직 관료나 판검사를 영입하는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음을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3년(2003~2005년)과 그 이전 3년(2000~2002년)간 삼성에 취업하거나 사외이사가 된 관료나 법조인의 수를 비교해 보면, 참여정부 이후에 각각 34명과 22명으로 그 이전의 25명과 12명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삼성의 관료 네트워크와 법조계 네트워크에서 노무현 정부 들어와 취업한 관료와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63.6%와 68.2%로, 이전의 40.3%와 37.1%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다.

 

삼성공화국 현상을 이처럼 밀리반드식 접근으로 보는 것이 인적네트워크의 구체적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를 끌기도 하지만 삼성공화국 현상을 노무현정부시기에 조응하는 한국자본주의 체제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삼성보고서를 풀란차스식 접근에 입각하여 보고서의 구체적 자료를 삼성필두의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효과로서 이해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즉 삼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노무현정부와 삼성의 이해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삼성네트워크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것이 아니라 삼성네트워크는 단지 삼성 필두의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자본주의시스템의 효과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국면적 특성을 이전 시기의 시스템 성격과 비교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보고서가 삼성의 인적네트워크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결과는 실제로 존재하는 재벌인적네트워크의 극히 일부분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독점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정부조직과 독점자본을 연결 짓는 재벌인적네트워크는 삼성인적네트워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다단하다. 따라서 삼성인적네트워크는 재벌인적네트워크의 작은 일부 일뿐이다. 따라서 삼성공화국현상 이전에 재벌공화국현상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현재도 재벌공화국 현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재벌공화국 현상의 국면적 현상으로 삼성공화국 현상이 이해될 수 있다. 노무현정권이 상대적 진보정권이라고 하지만 정권의 성격은 현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효과에 묻히고 만다. 즉 패권자본분파 삼성을 필두로 한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효과로서 노무현 정권도 친 삼성정권으로 변모한다. 진대제 전 삼성전자사장의 정통부장관으로 입각, 삼성계열사인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주미대사 부임, 그리고 정부 내에 소위 말하는 ‘삼성장학생의 포진’ 따위의 일들은 그저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고 한국파워블록시스템 작동의 객관적 효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한국사회의 파워블록에서 삼성은 리더자본으로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파워블록시스템의 재생산과정에서 삼성의 이익이 객관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이익이 고위 정부관료들이 의식도 못하는 사이 보장되고 있으며 친(親)삼성적으로 보이는 정부의 행정조치,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 삼성의 행보,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자동적으로 삼성을 위해 기능하는 파워블록의 재생산 메카니즘에 의거 일어나고 있다. 현재 노무현 정권시기에 조응하는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국가와 삼성을 필두로 한 재벌 일반의 이익이 객관적 작동에 의해 유지, 보호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삼성의 이익관철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IV.삼성공화국현상II: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장치 통일성

 

 

1. 자본주의 국가의 장치 통일성(통합-집중화)

 

풀란차스는 국가와 자본 사이에는 시스템재생산원리가 보장하는 구조적 연대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만약 좌파세력이 국가권력을 획득한 경우에는 국가의 친자본적 성격이 변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단기적으로 국가의 친노동적 성격이 발현하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지만 결국 국가의 모든 정책이라는 것이 친자본적인 것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비록 좌파가 국가권력을 잡더라도 그다지 중차대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는 “비록 좌파정부가 국가의 부서와 국가기제를 정말로 장악하는 경우라도 그것이 정말로 국가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그에 따라 실제권력의 주축을 구성하는 곳들을 항상 장악한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좌파 정부가 지배 기제를 힘들게 장악한 경우에도 국가의 제도적 구조라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어떤 국가기제가 가지고 있는 지배역할을 다른 기제가 가지도록 자리를 바꾸어 놓을 수 있게 한다”(Poulantzas, 2000: 138)라며 좌파세력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에도 국가의 친자본적 성격이 변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풀란차스는 이같은 국가기능의 친자본성은 한편으로 앞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 시스템 구조 수준에서 국가가 경제영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분리해 존재하는 것에 연유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 국가기제 수준에서 국가기제란 종국적으로 자본의 이익관철을 지향하는 통합-집중화의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국가의 친자본적 기능으로 수렴하는 장치 통일성 때문에 친노동 정책의 입안도 결국 친자본적 정책으로 탄생하고 만다는 것이다. 비록 "국가란 일종의 힘의 관계, 좀더 정확히 계급들 그리고 계급분파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물질적 응집이다"라고 주장하지만 국가는 결국 최종분석에서 패권계급의 이익을 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풀란차스는 "국가란 순수하고 단순한 관계 혹은 관계의 응집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들과 계급분파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특수한 물질적 응집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원문강조) (Poulantzas, 2000: 128-29). 그는 국가를 단순히 관계의 물질적 응집이라고 본다면 국가의 친자본적 통합-집중화 기능을 설명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단순한 물질적 응집이 아니라 특수한 물질적 응집이기에 친노동적 국가정책의 입안도 결국 친자본 정책으로 탄생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풀란차스가 생각하기에 비록 국가의 "많은 부서와 기제들 사이에 그리고 심장부에 내부 갈등"이 존재하지만 "국가의 정책은 지배계급에 우호적으로 확립된다." 왜냐하면 그림 3)에서 보듯 "국가는 보통 구심성 (centralism)으로 지칭되는 장치 통일성 (apparatus un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원문강조) (Poulantzas, 2000: 132-33). 국가내의 부서들 사이에 많은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결국에 자본계급과 독점자본계급분파의 이익과 지배를 보장하는 국가의 통합-집중화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피지배세력을 대표하는 세력이 국가 내에 존재하더라도 그래서 반(反)자본정책이 입안되더라도 국가의 장치 통일성으로 결국 친자본정책이 되어 나온다는 주장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날 독점자본을 선호하는 국가의 통합-집중화는 따라서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확립된다. 국가제도들은 어떠한 지배적인 메커니즘들, 양식들, 의사결정체들이 독점자본외의 이익에 대해서는 열리지 않도록 변화하며, 국가의 어떤 '다른 곳'에서 자본의 다른 분파들을 위하여 생겨난 국가 정책이나 조치들을 차단하는 거점들이 된다...... 패권계급이나 계급분파는 그들의 이익을 이미 실현시키고 있는 국가기제를 지배적지위로 확립시키기도 하고..............장기적으로 모든 지배적 국가기제는 패권분파의 이익을 위한 특권처가 되는 경향이 있고 패권관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경향도 있다. 국가권력의 통일성은 어떤 기제들이 다른 것들에 종속되게 만드는 하나의 사슬을 통하여 확립되기도 하고, 패권 분파의 이익을 구현하는 특정한 국가기제와 부서 (군대, 정치경찰, 내각 등 그 무엇이든 간에)가 행하는 지배 다시 말해 파워블록내 다른 계급분파들의 저항 거점들이라 할 수 있는 다른 부서들과 기제들에 대한 지배를 통하여 확립되기도 한다(인용자강조)(Poulantzas 2000: 137).

 

이처럼 패권계급/패권계급분파는 국가의 통합-집중화 기능에 힘입어 그들의 이익을 보장 받게 된다는 것을 풀란차스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좌파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풀란차스는 좌파정권의 친노동적 기능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풀란차스는 이처럼 패권계급/패권계급분파가 경제적 지배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그 지배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들을 재생산한다고 말한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조건의 재생산은 패권세력의 지배를 피지배자들이 ‘적극적 동의’로서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같은 패권계급/패권계급분파의 지배가 결과적으로 유럽의 각국들에서 권위적 국가주의(Authoritarian Statism)라는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권위적 국가주의란 국가가 독점자본의 필요에 부합하는 기능을 펼치면서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행태를 띠게 되는 정치 현상이다. 권위적 국가주의는 정치민주제도와 자유의 급격한 축소,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에 대한 국가 통제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풀란차스는 『국가, 권력, 사회주의』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부심했으며 이에 대한 답으로서 국가기제를 내부에서 급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최선의 전략으로 제안하였다(Poulantzas, 2000: 256).

 

 

2.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장치 통일성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과 통합-집중화 기능을 강조하며 좌파정권의 한계를 역설한 풀란차스의 주장이 예리한 통찰로서 다가오는 이유는 한국의 현실이 그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수준의 현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정권이 부르주아 정권이기는 하나 이전의 한국정권과 차별적인 진보성을 갖춘 정권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본산인 IMF체제하에서 종속적 국가로서의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던 김대중 정권보다 좀더 개혁적인 국가정책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한계, 노사정위원회의 파행, 개혁입법의 좌절 등에서 나타나는 개혁성 후퇴는 풀란차스가 말한 좌파정권 한계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노무현정부의 개혁성 문제와 관련해 재경부와 금감위의 친삼성 역할이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삼성보고서도 역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에 취업한 공직자 10명 중 8명은 감독기구 혹은 (준)사법기구 출신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삼성에 취업한 공직자는 총 74명이다 (행정부 공무원 47명과 전직 판검사 27명). 이 중 82.4%(총 61명)가 재경부, 금감위 등의 행정감독기구나 경찰, 검찰, 법원과 같은 (준)사법기관 출신이었다. 행정부의 경우 재경부, 금감위, 공정위, 감사원등 감독기관이 삼성 스카웃트의 선호대상이 되었고 검사의 경우 특수부 출신처럼 기업 및 경제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는 검사들이 선호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삼성그룹의 현안과 관련 있는 재경부의 금융정책 담당부서 경력자의 영입이 눈에 뜨이고 있음을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삼성보고서가 역시 밀리반드식 접근에 입각, 재경부와 금감위 출신의 삼성인사들이 재경부와 금감위의 친삼성 성격의 원인임을 부각하고 있지만 풀란차스의 관점에서 재경부와 금감위의 친삼성 기능은 앞에서 살펴본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친자본적 통합-집중화 기능의 효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통합-집중화는 재경부, 금감위 등의 많은 정부 부서의 장치통일성을 거쳐 독점자본 재벌의 이익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세적 변화 등으로 인하여 통합-집중화 기능이 단기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기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기제의 친재벌적 성격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오고 있다. 삼성보고서가 삼성에 취업한 공직자의 구체적 숫자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정부의 감독기구 혹은 (준)사법기구 출신임을 밝혀내었지만 그 구체적 숫자는 각 재벌에 취업한 공직자 전체 숫자 중 일부일 뿐이며 취업한 공직자중 대부분이 재경부, 금감위 등의 행정감독기구나 검찰, 법원같은 (준)사업기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 부서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재생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심부서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흔히들 말하는 ‘모피아’가 위세를 떨치는 것은 이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친재벌적(친독점자본적) 통합-집중화 기능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며 현 시기에 일어나는 친삼성적 통합-집중화, 특히 재경부, 금감위의 뚜렷한 친 삼성적 기능은 삼성의 경제 지배력에 조응하는 한국의 특수한 국면적 현상이다. 그림 4)에서 보듯이 삼성을 필두로 한 재벌의 이익은 풀란차스가 통찰한대로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장치 통일성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확립되고 있으며 재경부와 금감위가 핵심경제부서이기 때문에 기타 부서보다 삼성을 위하여 기능하는 현상을 뚜렷이 발현 시킬 수밖에 없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삼성의 특권처이다. 패권계급분파는 그들의 이익을 실현시키는 국가기제를 지배적 지위로 확립시키기도 하고 특권처로서 만들어 저항거점을 무력화시키기도 하는데, 금산법개정문제, 애버랜드 회계기준 변경문제 등에서 보이는 움직임을 통해 보아도 금감위와 재경부를 삼성의 특권처로 분류할 수 있다. 삼성보고서는 이들 핵심부서들이 삼성의 특권처로 간주될 수 있음을 매우 구체적인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다. 금감위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계열사들의 금산법 제24조 위반 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련사실을 제대로 발표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경부가 금산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놓았을 때 이 정부안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위법행위를 결과적으로 사후 합법화하는 내용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 최종안에는 2004년 11월 입법예고 당시에도 없던 내용까지 부칙 조항에 추가되어 삼성생명 및 삼성카드의 금산법 제24조 위반행위를 완벽하게 합법화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2004년 4월 공정위는 삼성에버랜드가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에도 해당됨을 확인하고, 1년 이내에 법위반상태를 해소할 것을 명령했지만 금융지주회사법의 소관 부처인 금감위는 삼성에버랜드의 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자발적 처리 계획 제출만을 요구한 채 검찰 고발 등 형사처벌을 위한 법 집행을 유보했다는 것이다(김상조, 2005).

 

보고서가 제기하는 다양한 구체적 사실은 재경부와 금감위가 노무현정부내에서 대표적인 삼성의 특권처이며 삼성을 필두로한 재벌의 이익에 수렴하는 노무현 자본주의 국가의 통합-집중화가 아주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확립되고 있음을 경험적 수준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공정위와 같은 어떤 다른 부처에서 나오는 반삼성적인 국가 정책이나 조치들을 차단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를 정부에 존재하는 삼성의 저항거점으로 분류 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지배적 국가기제는 패권분파 이익을 위한 특권처로 변하게 된다는 풀란차스의 주장을 다시 되새길 만하다. 왜냐하면 공정위 역시 독점자본분파의 공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4차례의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하여 총 485억원의 과징금을 징수한 공정위 역시 삼성인적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일부 공정위 출신 관료들은 삼성에 영입되어 다양한 형태로 삼성과 관계를 맺고 있다.

 

 

 

결론

 

 

이 글은 한국정치경제의 중요한 일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삼성공화국’현상을 자본주의 국가론의 시각에서 읽어보았다. 삼성공화국현상을 경험적 수준에서 분절하여 읽는 것보다 이론적 수준에서 총체적으로 읽는 것을 통해 삼성공화국 현상의 구조적 측면을 이해하는 시도를 하였다.

 

서문에서 이 글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밝혔다. 첫째, 삼성공화국의 정의와 관련한 것으로서 삼성공화국이란 재벌공화국을 말하며 다만 최근 삼성이 재벌 중 뚜렷한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이익의 두드러지게 관철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삼성공화국이라 말 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삼성공화국이란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이 재생산되는 가운데 자본주의 국가와 최강자본분파 삼성이 주도하는 독점자본 재벌사이의 객관적 관계 하에서 재벌 일반의 이익이 유지되고 보호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였다. 두 번째, 과연 노무현 정부가 삼성의 지배력에 종속되어 있는가 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 글은 표면에서 드러나는 노무현 정부의 친 삼성적 기능은 삼성필두의 재벌이 지배하는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효과로서 그리고 지배계급과 지배계급분파의 이익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기능하는 자본주의 국가기제의 통합-집중화의 효과로서 이해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세 번째 만약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며 과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는가의 질문을 서론에서 제기하였는데 이에 대해 답하면서 본 논문을 마치고자 한다.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삼성공화국, 즉 삼성필두의 재벌공화국에 존재하고 있다. 재벌공화국은 양차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한편으로 국가와 독점자본 사이의 객관적 관계 하에서 재벌의 이익이 유지되고 보호되는 정치경제의 시공간으로 정의 되는 재벌공화국에 우리는 존재하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경유착의 주역인 독점자본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공간으로 정의되는 재벌공화국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전자의 보편성과 후자의 한국적 특수성의 공간에 모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전자로서의 재벌공화국은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조응하는 보편성의 공간이고 후자로서의 재벌공화국은 한국적인 특수성의 공간이기 때문에 재벌공화국에 문제점이 있어 그것으로 벗어나야한다면 그것은 후자로서의 재벌공화국에서 탈피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현 자본주의 발달국면에 조응하는 정치경제의 시공간으로서의 재벌공화국에서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 미래의 생산력 발전과 생산관계의 변천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독점자본주의라는 시공간의 국면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재벌공화국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라면 그것은 한국적 천민자본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후자로서의 재벌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길은 전자로서의 재벌공화국에 존재하는 국가와 재벌사이의 객관적 관계에 순응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들에게 국가와 독점자본의 객관적 관계에 순응해야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최선의 지향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체제변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 없다는 점 그리고 민주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 이정표도 완성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한 차선책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객관적 관계에 순응하는 것을 통해서 적어도 한국적 특수성의 공간으로 정의되는 재벌공화국의 기반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벌사이의 객관적 관계에 순응한다 함은 첫째, 정경유착으로 상징되는 ‘공모관계’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의 공모관계는 국가-재벌 사이의 ‘주관적 관계’를 설정해 왔고 이것은 계급 갈등의 악화, 국가와 시민사회 영역의 갈등, 대재벌 국가자율성의 약화 그리고 한국적 천민자본주의 속성의 심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객관적 관계에 양자가 순응하게 되면 개별자본 삼성과 현대가 각각 8천억원과 1조원의 기부금을 마지못해 사회에 헌납하지 않아도 한국자본주의 시스템의 재생산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시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국가와 재벌 양자가 객관적 관계에 순응한다 함은 둘째, ‘공세와 저항 관계’의 종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국가와 재벌 사이에 바람직한 상대적 분리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으로서 국가가 그토록 호소하는 자율적인 재벌개혁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재벌이 그토록 주장하는 시장경제원칙이 확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는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독점자본을 적절히 제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란 한국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위한 절대적 구성요소다. 재벌이 자체적으로 개혁에 임하여 결과적으로 시스템 안정화를 위한 국가개입의 공세가 원천봉쇄 될 경우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인 정경분리의 형태가 유지되면서 국가-자본사이에는 객관적 관계가 유지 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 관계에 순응한다는 것이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그것을 구체화하여 실천적 지침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재벌공화국을 탈피하려하는 사람들이 풀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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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신문 및 방송기사

뉴스와이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프레시안, 한겨레신문. KBS 추적 60분.

□ 참고 웹싸이트

(http://www.peoplepower21.org/search/issuemap.php?cid=45)

(http://www.polsci.ku.dk/ipsaRC49/previous_conferenc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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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1.13 20:21

    첫댓글 삼성공화국,,,이게 국회에서 다수가 되면 부딛칠 첫뻔째 장애물,,,청기와도 마찬가지,//////바야흐로 한국은 삼성이 접수한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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