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일깨워 주었다. 저마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며, 진리를 등불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는 뜻이다. 연극인 윤석화씨(월간 ‘객석’ 대표)와 만난 대한불교 조계종 법장 총무원장은 “정치인이나 혹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등불이 되어 떳떳하게 살아가라”고 주문했다. 윤석화씨는 30년전 어머니 손을 잡고 수덕사에 들렀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스님과 수덕사의 포근한 풍경을 나눈 후 이 시대, 이땅,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석화=새해가 밝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덕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법장 스님=올해는 욕심을 버리는 한해가 돼야 합니다. 부처 가르침에 ‘있는 것을 없는 체 하지 말고, 없는 것을 있는 체 하지 말자’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없는데도 있는 척하고, 있어도 뺏길까봐 없는 척합니다. 이는 불행을 만드는 지름길이지요. 왜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잖아요. 우리가 맨몸으로 이땅에 왔듯이 죽을 때도 맨몸으로 갑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욕심 때문에 사회적 혼란이 생기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겁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윤=지나온 시간은 어떻습니까.
▲법장=세월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고 항상 존재하는 겁니다. 제경우 지난 세월동안 나름의 보람과 기쁨을 위해 달려왔습니다만 잘못 선택한 기쁨·보람·행복 등을 향해 달려왔구나 싶습니다. 요즘은 마음 비우기가 진리임을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윤=스님을 비롯,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지난해는 힘든 해였습니다. 특히 정치라는 기둥이 흔들리면서 국민도 흔들렸습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법장=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상대방 탓만 합니다. 대선자금이 어떻고, 국정운영이 어떻고…. 그러니 국민의 대부분이 오는 4월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을 뽑지 않겠다고 하지요. 정치인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남에게 거짓말하고 트럭떼기로 돈을 받고 불안해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등불이 되어 떳떳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자신이 지은 대로 받는다)의 정신을 항상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합니다.
▲윤=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나라가 흔들리니 민생은 무엇을 믿어야 하나요.
▲법장=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에 ‘자등명(自燈明)하고 법등명(法燈明)하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자신이 잘하면 자신이 천당가고 자신이 잘못하면 자신이 지옥가는 겁니다. 남들이 천당보내주진 않습니다.
▲윤=스님의 매운 말씀을 들으면서 이 시대의 어른이 부재(不在)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나서서 질책하고 용서해주는 어른들이 그립습니다.
▲법장=어른의 부재와 우리 전통문화 교육의 상실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에게 ‘학교가라’고 깨우면 안 일어나지만 소풍가기 전날엔 누가 안깨워도 스스로 일어나 놀러갈 준비를 합니다. 모든 게 교육하기 나름입니다. 우리는 전란을 많이 겪으면서 굶주리고 배고프게 살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먹을 것부터 생각하고 경제발전에만 매달렸습니다. 윤리·도덕·가치관은 뒷전이다보니 동방예의지국은 사라졌어요. 영어·수학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갈 생각만 합니다.
▲윤=학교교육이 점점 입시위주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이렇게 학업점수에만 연연한다면 이 땅의 인성교육을 어느 곳에서 책임져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법장=우리나라 교육제도는 거꾸로 입니다. 대학은 좋은 시설을 자랑하지만, 유치원은 건물 한귀퉁이에 붙어있거나 슬레이트 지붕이 고작입니다. 사실 6세 이하의 아동기에 두뇌와 인격형성이 되는 만큼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들이 쾌적한 공간에서 교육받아야 하지만, 대학생이야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잖아요. 제가 서산에 서광유치원을 지었는데 원훈이 ‘어린이는 각각 다르다’입니다. 유치원앞 2,000평 밭에 고구마와 고추를 스스로 심고, 토끼·오리·닭을 스스로 키우며 스스로 느끼고 배우라고 했죠. 유치원은 11회 졸업생까지 배출했는데, 체험위주의 인성교육 효과 때문인지 유치원 동창회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유치원 동창회는 별로 없잖아요.
▲윤=그렇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교육이지요.
▲법장=부처께서 길 한가운데 대변본 이에겐 아무 말도 안하셨는데, 길 귀통이에 변을 본 이에겐 호통을 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유를 물으니 “길 가운데 변을 본 이는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듣지 않을 만큼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귀퉁이에서 볼일을 본 사람은 일말의 양심이 있어 야단을 치면 들을 사람”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우리도 빨리 사회·가정·학교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
▲윤=지난 석달동안 큰 스님들께서 잇달아 여덟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이례적인 현상인데, 그 스님들이 열반을 통해 대중들에게 무언가 시대의 위기상황을 알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법장=큰 스님들께서 오래오래 사실 줄 았았는데…. 열반에 드신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복이 없고 덕이 없는 사람이다. 살아계실 때 좀더 잘 할 걸’ 하고 후회하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에 대해 너무 집착한 모습이 부끄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수행을 더욱 넓고 깊게 하며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윤=지난해 2월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하신 후 이해·용서·포용으로 종단을 이끌어오셨습니다. 사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와 시내에 나오면 조계사에 들러 마음을 편히 다스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각목을 휘두르는 분쟁이 있은 후에는 이전의 쉼터 같은 느낌이 덜해졌어요. 지난 1년동안 종단을 이끌면서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법장=‘수불이파 파불이수(水不移波 波不移水·물이 파도를 내고 파도가 물을 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어느 사회나 변화를 위한 물결이 있게 마련이죠.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도 어느 날 싸운 후에는 등을 돌리고 잡니다. 극락과 지옥이 모두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파도가 일 때는 이해와 용서가 따라야 하듯, ‘나’를 버리고 상대를 이해해야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진리이고 바로 종단을 이끄는 힘입니다.
▲윤=스님께선 무엇보다 교육과 포교에 비중을 두신다고 들었습니다.
▲법장=종단의 틀을 바꾸고 싶어 조직경영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 교육과 포교의 기본정신을 ‘족하게 알자’로 정했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싶은 것을 모두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불안에 떱니다. 돈을 못 벌어도 불안하고 벌게 되면 없어질까봐 불안합니다. 그러니 작은 행복에도 족할 줄 아는 이가 부자인 셈이죠.
▲윤=그러나 이 사회는 겸손과 감사만으로 운영되진 않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종정께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을 받은 후 북한산 사패산 터널 공사가 재착공되자 생태와 환경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젠 터널공사로 인한 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환경치유적인 운동이 뒤따라야 할 텐데요.
▲법장=사패산 터널은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한 키워드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제논리를 앞세워 산을 파괴하고 있는데 조계종에서 그런 사실을 모른 채 덥석 대통령의 청을 들어주었겠습니까. 제가 ‘환경 총무원장’이란 소리를 듣는 만큼 장기적인 자연과 생명보호, 역사적 실천을 위해 계속 애쓸겁니다. 2천만 불자를 속일 수는 없잖아요.
▲윤=살아오면서 지난해의 마음고생보다 더 큰 시련도 있었겠지요.
▲법장=내 생각이 바뀔 때 가장 만족스럽고, 내 생각이 바뀌지 않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사실 출가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저는 구세군 교회신자였는데, 제비족처럼 까만색 맘보바지에 새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포마드기름 바른 머리를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출가 후 저는 고통을 주으러 다니면서 제 마음이 희로애락의 근원이기에 제 자신에 대해 엄격해져야 한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줄곧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상만사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으니 자신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1941년 충남 예산 출생 ▲속명 김계호(金界鎬) ▲60년 충남 예산 수덕사로 출가, 원담(圓潭)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음 ▲80년부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4선 역임 ▲조계종 중앙종회 사무처장(81년), 사회부장(82년), 재무부장(84년) ▲94년 수덕사 주지 부임 ▲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 ▲99년 한국불교선학연구원 설립 ▲2003년 2월 제31대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회장, 중앙승가대 이사장, 대한불교청년회 총재 ▲저서:‘세계일화’ ‘덕숭산 수덕사’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 ‘수덕사 중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