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읍 쓰개 ‘나까오리-벙거지’에 얽힌 사연들
(작성 중 ; 쓰개 시리즈 3회)
삭제된 것을 조금 수정하여 다시 게재합니다. 친애하는 카페 회원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참으로 수고들 많았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온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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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향 외동읍(外東邑)에는 ‘나까오리’라는 ‘쓰개’가 있다. 요즘 군부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찰모(偵察帽)나 등산모로 활용되고 있는 ‘나까오리’가 아닌 1940∼60년대에 유행했던 중절모(中折帽)의 별칭으로서의 ‘나까오리’를 말한다.
‘나까오리’는 일본어 ‘なかおれ(中折れ)’를 말하는데, ‘나까오리 보시(ナカオリボゥシ- ; 中折り帽子)’의 준말이다. 모자 상단부분의 가운데를 일자(一字)로 접는 중절모(中折帽)를 말한다.
그 시절 ‘나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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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나까오리’라는 말을 경상도(慶尙道) 사투리로 인식하기도 하나, 이는 일본인(日本人)들이 만들어 우리나라에 갖고 들어 온 일본말일 뿐이다.
중절모(中折帽)란 한자어(漢字語)도 우리글이 아니다. 일본식 한자 ‘中折り帽子’의 한자를 그대로 옮겨놓고 발음만 우리말로 바꿔 놓은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나까오리’를 ‘벙거지’ 또는 ‘벙거지 모자’라고도 한다.
지금의 여성용 ‘나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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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예로부터 복장(服裝)은 남성과 여성의 것이 엄격(嚴格)히 구분되어 왔지만, 현대사회에 와서는 성차별(性差別)의 권역이 무너지면서 옷가지까지도 남녀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다.
그만큼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성의 전유물(專有物)인 바지와 모자가 이제는 거의 여성화(女性化) 되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운동모(運動帽)와 중절모(中折帽)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중절모는 옛적의 중절모가 아닌 지금의 것을 말한다.
운동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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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운동모(運動毛 ; CAP형) 쓰기가 여성 연예인(演藝人)과 스포츠맨들에게서 시작하더니 지금은 일반여성들에게까지 연령층(年齡層)을 가리지 않고 유행을 타고 있고, 요즘은 신형 ‘벙거지’까지 합세하고 있다.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더 많거나, 한 항렬(行列)이라도 높은 친척(親戚), 그리고 사회적(社會的)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당연히 벗어들거나 허리 뒤로 숨기던 모자를 이제는 초상집에 문상(問喪)을 가서도 그대로 쓰고 절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가장 신성시(神性視)해야 할 교회 예배(禮拜)시간에도 벗지 않는다.
여름용 나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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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신형벙거지’란 요즘 젊은 층에서 많이 착용(着用)하고 있는 남녀 중절모(中折帽)를 이르는 말이다. 대신 옛적의 ‘벙거지’는 낡아서 버린 헌 ‘나까오리’를 말하는 것으로 거지들이나 각설이, ‘넝마주이’들이 주로 착용하였다.
일제말기(日帝末期)와 해방을 전후하여 유행하던 중절모(中折帽) 즉 ‘나까오리’는 당시의 경우 이 모자를 쓰지 않으면 신사(紳士) 축에 들지 못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절모를 쓰고 양복을 걸치고 스틱을 짚고 나서야 신사다운 남성으로 보여지던 시대이기도 했었다.
극장 앞 ‘나까오리’ 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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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시골의 촌부(村夫)들도 남의 집 길흉사(吉凶事)에 갈 때나, 오일장 나들이를 할 때는 ‘나까오리’를 착용(着用)했었다. 가세가 어려워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이웃집의 것을 빌려 쓰기도 했었다.
큰돈을 들여 장만한 것이라 시렁이나 선반 위에 신주(神主) 모시듯이 얹어두었던 ‘나까오리’를 내려 구둣솔로 먼지를 쓸어내고 반듯하게 정제(整齊 ; 격식에 맞게 바르고 가지런하게 함)하고 나들이를 했었다.
촌부들의 ‘나까오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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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村夫)들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나까오리’는 저승사자와도 같았던 면서기(面書記)는 물론 ‘술 추러’ 나오는 세무서(稅務署) 직원과 술도가 사장도 썼고, 대통령(大統領)도 썼다.
겨울철에는 주로 두꺼운 고동색(古銅色) ‘나까오리’를 썼고, 여름철에는 얇고 가벼운 백색 중절모 또는 ‘파나마모자’를 착용하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나까오리’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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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원수와의 담소장면)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중절모(中折帽)를 썼기 때문에 중절모 전문 세탁소(洗濯所)까지 있었다. 일류 기술자가 운영하는 중절모세탁소에는 때에 절어 더러워지거나 담뱃불 같은 것에 흠집이 난 중절모를 맡겨 손질하면 새것 같이 복원(復元)되기도 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나까오리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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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절모자(中折帽子)가 비에 젖거나 오래 쓰게 되면 챙이 힘없이 아래로 축 늘어져 빈 자루와 흡사하게 되어 볼품이 없게 되는데, 이때도 중절모(中折帽) 세탁소에 맡겨 세탁하고 모자형틀에 얹어 다림질과 손질을 하면 새것 같이 만들어 진다.
‘나까오리’를 너무 오래 동안 착용(着用)하여 수선(修繕)할 수 없도록 헤어지면 버리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넝마주이’들이나 거지들의 몫이 된다.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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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은 신사들로부터 퇴역(退役) 당한 이 ‘나까오리’를 눈이나 얼굴이 절반 이상 가릴 정도로 눌러쓰고 다녔는데, 이때부터는 ‘나까오리’가 ‘벙거지’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위에서 말한 ‘넝마주이’란 헌 종이나 ‘넝마’ 따위를 모으는 것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못 쓰게 된 폐지나 빈병 같은 것을 ‘추렁’이라는 큰 망태기에 담아 수집(蒐集)하여 고물상에 팔아 생업을 유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넝마’란 위에서 말한 대로 오래되고 낡고 헤어져 입지 못하게 된 옷이나 폐지(廢紙), 빈병 등 고물(古物)을 이르는 말이다.
넝마주이 추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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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가 '벙거지'다)
지난 1960년대에는 웬만한 동네에는 ‘넝마주이’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 커다란 ‘추렁’을 어깨에 걸머지고 집게를 들었다. 걸친 옷은 그야말로 ‘넝마’ 수준이고, 씻지 않은 거무튀튀한 얼굴에 ‘벙거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고개는 푹 숙였다.
더러운 쓰레기더미를 뒤져 ‘넝마’를 줍는 일이 창피하기도 하고, 호욕(혹시) 자식들이나 이웃사람들을 만날까봐 ‘벙거지’를 더욱 눌러 쓸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끝난 후 ‘넝마’를 줍는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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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쓰레기더미를 뒤지느라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집게로 넝마를 ‘추렁’에 담을 때마다 일어나는 먼지가 목덜미와 얼굴에 쌓여 세수(洗手)를 할 필요도 없었고, 세수할 물도 없어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거무튀튀했었다.
때문에 그 시절의 ‘넝마주이’들은 어른에게서나 아이들에게서나 그대로 ‘넝마’ 취급을 당하면서 천대(賤待)와 멸시(蔑視)를 받고 살아야 했었다.
6.25가 만들어 낸 어린이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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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한 ‘추렁’은 ‘넝마’를 집게로 주워 담는 커다란 대나무 소쿠리를 말하는데, 주로 가벼운 대오리를 결여 만들었다.
당시에는 이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넝마주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 때 서울에는 1만여 명의 ‘넝마주이’들이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추렁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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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솔 파는 아낙 뒤에 진열된 것이 추렁이다)
‘넝마주이’들은 하루 종일 주택가(住宅街)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면서 ‘넝마’를 수집했는데, 특히 집 대문 옆 콘크리트 쓰레기통 안팎을 꼼꼼하게 뒤져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수집(蒐集)했었다.
이들을 호칭(呼稱)하는 말은 주로 ‘넝마주이’라고 했고, ‘양아치’나 ‘씨라이꾼’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양아치’는 이들에게 맞는 말이 아니다.
초라한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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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는 ‘동냥아치’에서 온 말로 거지의 다른 표현(表現)이라 하겠는데, ‘넝마주이’는 쓰레기에 가까운 잡동사니를 줍더라도 어디까지나 구걸하는 게 아니라 자력으로 생계(生計)를 영위했다는 점에서 양아치는 아니었다.
거리를 다니며 ‘넝마’를 줍는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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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두들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는 ‘넝마주이’ 생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빈병이나 폐지(廢紙), 고물 따위가 생기면 버리지 않고 엿이라도 바꿔 먹는 시대였기 때문에 ‘넝마주이’들이 주워 갈 물건이 거의 없을 때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넝마주이’가 나타나면,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긴급경보(緊急警報)를 발령하는 등 상종하기를 꺼렸다. 시커먼 얼굴에 걸레 같은 ‘넝마’를 걸친 ‘넝마주이’가 골목입구에 들어서면, 엄마들은 아이들의 손을 이끌면서 다그치기에 바빴다.
“빨리 들어가! 저런 사람들은 소쿠리에 애들을 담아서 잡아간단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일러준다. 호기심(好奇心) 많은 아이가 왜 잡아가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저 사람들은 아이들을 잡아가서 밥도 안 주고 때리면서 넝마주이 일을 시킨단다.”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공부를 게을리 할 때도 “너 이렇게 말 안듣고, 공부 안하면 저 ‘넝마주이’처럼 된다”라고 경각심(警覺心)을 일깨우기도 했었다.
‘넝마주이’가 되면 안된다고 타이르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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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나까오리를 기워서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5.16 군사정변(軍事政變) 직후 정부에서는 이들 ‘넝마주이’들을 이른바 재건대(再建隊)라는 군대식 조직을 만들어 편입시켰는데 반발도 많았다.
많은 ‘넝마주이’들이 재건대 편입을 거부하고 단독(單獨)으로 활동하거나, 속칭 ‘조마리(거지 왕초)’가 관장하는 ‘넝마주이’ 공동체(共同體)에 들어가 일을 하려했지만, 정부는 결국 이들을 경찰서(警察署)별로 재건대를 조직하여 강제로 편입시켜 별도의 장소에 수용시켰다.
그 시절 ‘넝마주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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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警察署)마다 검거 할당량(割當量)이 내려지면 일제단속기간을 설정하고, 호소할 곳 없는 ‘넝마주이’들을 잡아들여 할당량을 채우기도 했었다.
젊은 시절 한때 ‘넝마주이’ 생활을 했던 시인(詩人) 서정주는 그의 시 ‘넝마주이가 되어’에서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었다.
넝마주이가 되어
서정주
하루 종일 주은 걸 팔아도
이십전 밖에 안 되는 날은
아침은 오전짜리 시래기 국밥
점심도 오전짜리 호떡 한 개
저녁만 제일 비싼 십전짜리 밥을 사먹었네
정동의 영국공사 뒤 풀밭에서 쉬노라니
분홍비치 장미 같은 앵키 소녀가 지나가며
유심히 보고는 얕잡아 외면하는 눈초리
그것에만 부끄럼도 화끈히 솟으며(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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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냉대(冷待)와 질시와 착취 속에서도 끈질긴 생활력을 보여준 ‘넝마주이’들 가운데는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어 자활(自活)에 성공한 이들도 있다.
‘벙거지’ 뒤집어쓰고 커다란 ‘추렁’을 메고 집게를 휘두르고 다니던 ‘넝마주이’들이 트럭을 끌고 재활용품(再活用品)을 수집하거나,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신종’ 넝마주이로 변한 지도 오래다.
넝마로 만들어진 산(난지도 쓰레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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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또 다른 신종 ‘넝마주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도심의 지하철(地下鐵)에서 새벽마다 열차 선반을 뒤지며, 승객(乘客)들이 버리고 내린 신문을 수거(收去)하는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이 그들이다.
지금의 지하철 신문수거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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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바닥을 아예 신문지 선별작업장으로 차지하고 있다.
장애인의 '휠체어'를 고정시키는 공간까지 차지하고 있어
장애인이 '휠체어'를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피하고 있다))
‘넝마주이’ 얘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쯤에서 줄인다. 여기에서 잠시 ‘벙거지’를 주제로 하는 전래동요(傳來童謠) 가사 하나를 소개한다.
벙 거 지
백창우 작곡
노래 : 작은 굴렁쇠와 어른들
엇 추워라 춥대장 엇 추워라 춥대장
춥지 않아 무첨지 불알이 덜덜 떨린다
엇 추워라 춥대장 춥지 않아 독도령
이빨이 딱딱 떨린다
아이고 추워 벙거지 아이고 추워 벙거지
가을 대접 놋대접 칼로 찔러 피나무
아이고 추워 벙거지 돌캐 꼭지 새 꼭지
뜨건 국을 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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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오리’ 얘기로 돌아간다. ‘나까오리’에 대한 이름에 대하여 조금더 알아본다. 일본인(日本人)들이 만들어 우리나라에 보급한 ‘나까오리’라는 말이 왜 지금까지, 그것도 백령도와 연평도를 지키는 우리나라 해병대(海兵隊)와 특전부대(特戰部隊)에서까지 그대로 쓰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다 ‘나까오리’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使用)하고 있으면서도 모자의 형태는 엉뚱하게 변해 버렸다. 때문에 이제는 이 모자에 대한 호칭(呼稱)을 달리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특전사 나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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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대한민국 해병대와 특수부대의 전투모(戰鬪帽)가 36년간 우리나라를 식민지(植民地)로 지배해 왔던 일본말로 일컬어져야 하겠는가. 비록 내부적(內部的)으로 사용되는 용어라 해도 지체 없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병대 나까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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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옛적부터 ‘벙거지’를 쓴 거지들은 쪽박을 차거나 들고, 남의 집 대문과 잔칫집 마당을 찾아다니며 각설이타령을 구성지게 부르며 ‘벙거지’를 구걸과 동냥을 하는 도구(道具)로 활용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벙거지’ 하면 본래의 ‘벙거지’의 뜻과는 관계없이 거지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로 인식(認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어느 시기에서는 적절한 기성용어(旣成用語)가 없어 거지들이 쓰는 ‘폐(廢)나까오리’를 ‘벙거지’라고 했지만, ‘벙거지’라는 모자는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
‘벙거지’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짐승의 털을 다져서 일정한 틀에 넣어 만든 모자 또는 ‘전립(戰笠)’이나 ‘병립(兵笠)’이라고도 한다.’라고 적고 있다.
전립(戰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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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거지’는 ‘폐(廢)나까오리’가 아니고, 조선시대(朝鮮時代) 때 궁중 또는 반가(班家)의 군노(軍奴)나 하인 또는 농악(農樂)의 ‘잽이’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였다.
이들 벙거지의 경우 무장(武將) 또는 군졸들이 썼던 것은 공작(孔雀)의 꼬리를 달았으나, 농악(農樂)의 ‘잽이’들이 쓰는 벙거지는 종이나 깃털로 상모를 길게 만들어 달았다.
‘벙거지’를 쓸 때에는 머리에 수건을 동이는데, 장식하기 위하여 속에 청목수건을 동이고 겉에 고운 빛깔로 물들인 명주수건을 매듭지어 매는데 이를 ‘꽃수건’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의 전립(戰笠)은 신분이 높은 무관이 쓰는 전립은 ‘안올림 벙거지’라고 하여 겉은 품질 좋은 검정 색 모직물(毛織物)로, 안은 남색 운문단(雲紋緞)을 사용했고, 장식으로 공작 깃털, 상모(호수), 정자를 달고 밀화(蜜花)구슬로 끈을 달았었다.
농악꾼의 전모(轉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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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군인(軍人)이나 관가(官街)에서 일하는 사람의 전립(戰笠)은 ‘벙테’라고도 했고, 농악꾼이 쓰는 ‘전모(轉帽)’는 ‘돌모’라고도 했다. 전립에는 공작(孔雀)의 꼬리를 달고 끈도 구슬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일부에서는 미군(美軍)들의 ‘부니햇(Boonie Hat)’을 ‘벙거지’라고도 한다. ‘부니햇’을 우리나라 말로 ‘벙거지’ 또는 ‘방서모(防暑帽)’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해병대(海兵隊)와 특전사 등 특수부대에서는 이를 정찰모(偵察帽) 또는 ‘나까오리’라고 부르는데, 전투복(戰鬪服)과 같은 재질의 천으로 만든 군용모자를 말한다.
헌 나까오리(벙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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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나까오리’는 일반 사제품과는 달리 미군규격(MIL SPEC)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원단은 ‘립스탑’ 원단을 사용하여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강하다. 모자의 양옆에는 통기성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공기구멍이 각각 2개씩 뚫려있다.
모자의 분실(紛失)을 방지하기 위해 턱 끈이 부착(付着)되어 있기도 하다. 모자의 앞부분(이마부분)은 낮고 뒤쪽은 높은 구조로 되어있어 착용감(着用感)이 좋다.
미군의 부니햇(Boonie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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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니햇(Boonie Hat)을 원문인 영어로 풀이해보면, Boonie는 속어로 ‘촌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아마도 미국(美國) 농촌에서 농부들이 일을 하면서 따가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쓰던 챙 넓은 모자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부니헷’과 비슷한 것으로 미국 해군수병(海軍水兵)들이 쓰는 ‘세일러햇(Sailer Hat)’과 선원들이 악천후(惡天候) 시 갑판에서 작업할 때 우의와 함께 착용하는 챙이 넓은 모자도 있다.
‘부니햇’이 군용 지급품이 된 것은 월남전(越南戰) 때 미군의 ‘그린베레’들이 이를 착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미군은 2차대전 때 동남아시아의 영국군(英國軍)이 더위를 피해 철모대신 쓰던 방서모(防暑帽)와 비슷한 디자인의 모자를 보고 그들 중 누군가의 아이디어에 의해 ‘부니햇’을 만들어 착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니햇’은 월남전에서 특수부대원(特殊部隊員)들이 은밀하게 침투작전을 펼칠 경우 투박한 철모(鐵帽) 대신 가볍고 머리카락의 광택(光澤)을 가려주고 햇빛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세계 각국 특수부대(特殊部隊)의 패션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이툰부대 사파리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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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해병대(海兵隊)와 특전사(特戰司)에서 ‘정찰모’와 ‘나까오리’라는 명칭으로 착용하기도 하고, 이라크전에 파병(派兵)된 자이툰부대에서는 ‘사파리햇(Safari Hat)’ 스타일로 만들어서 착용해 왔다. 시중에서는 등산용품(登山用品)으로도 비슷한 제품들이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많이 시판(市販)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해 온 바가지형 방서모(防暑帽)는 2차세계대전 중의 독일(獨逸)과 영국, 프랑스의 아프리카군단에서 주로 사용했었던 군모(軍帽)였다.
프랑스 아프리카군단의 방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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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프리카 열대지방에 파견된 선교사(宣敎師)들이나, 식민지 관리(官吏), 의료진으로 봉사하는 의사들, 탐험가(探險家)들도 이 모자를 착용했고, 우리나라에는 해방이후 한 때 경찰모(警察帽)로도 사용되었다.
해방전에는 일본인 관리들이 주로 사용했고, 조선인관리와 지주, 친일파(親日派) 유지들도 유행처럼 쓰고 다녔다.
덕수궁 앞 방서모 쓴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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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통치 반대 데모를 저지하고 있다)
바가지형 방서모(防暑帽)는 6.25 전쟁이 발발되면서 경찰모가 철모와 작업모로 변경되자 그때까지 쓰던 방서모를 민간에 불하(拂下)했는지 농부(農夫)도 쓰고, 상인(商人)도 쓰고, 가람모자로도 사용되었다.
농부들의 경우 밀짚모자나 보릿짚 모자가 있었으나, 오일장(五日場)에 방서모가 등장(登場)하자 얼마 전까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일제 출신 조선인 경찰들이 쓰던 권력의 상징에 따른 매력(魅力)으로 다투어 구입하여 쓰고 다녔다.
처음에는 사랑방 선반위에 모셔두고 명절에 쓰기도 하고, 오일장이나 친척집 길흉사(吉凶事)에 참석할 때 착용하였으나, 때가 묻고 헤지기 시작하면 논매기 때도 쓰고, 벼 베기 때도 착용(着用)하였다.
미해병의 카키색 방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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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에는 ‘밀짚모자’를 ‘밀벙거지’라고도 했었다. 박재홍이 부른 ‘비에 젖은 주막집’에서는 “우장(雨裝) 없는 나그네가 비에 젖은 주막집 둥글 목침(木枕)이 그리워 ‘밀벙거지’를 움켜쥐고 달려간다”는 가사가 실려져 있다. 가사를 소개한다.
비에 젖은 주막집
작사 고려성
작곡 이재호
노래 박재홍
비에 젖네 비에 젖네
전라도 길 일천리가 비에 젖네 비에 젖네.
김제(金堤) 만경(萬頃) 넓은 벌에 점찍은 듯 돌아앉은
아주까리 그 주막이 비에 젖네 비에 젖네.
달려가네 달려가네
우장(雨裝) 없는 그 나그네 달려가네 달려가네.
비에 젖은 그 주막집 둥글 목침(木枕) 그리워서
밀벙거지 움켜쥐고 달려가네 달려가네.
웃어주네 웃어주네
그 주막집 그 아줌마 웃어주네 웃어주네.
밤새도록 비야 오라 술잔에다 빌어빌어
더운 가슴 만지면서 웃어주네 웃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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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군의 방서모
![](https://t1.daumcdn.net/cfile/cafe/1927194E4D08C5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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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모르겠으나, 예전엔 군부대(軍部隊)에서 ‘나까오리’와 ‘나까오리 세탁소’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답부터 먼저 말하면, ‘나까오리’는 남자의 성기(性器)를 말하고, ‘나까오리 세탁소’는 ‘창녀촌(娼女村)’ 또는 기혼여성의 성기를 말한다.
남자의 ‘거시기’가 어떻게 보면 ‘각설이’들이나 ‘거지’들이 푹 눌러 쓴 헌 ‘나까오리’ 같이 생긴데다 헌 ‘나까오리’를 푹 눌러 쓰면 그 모습이 페니스의 귀두(龜頭)처럼 보여 이런 말과 노래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 병영(兵營)에서는 이런 내용의 노랫말이 지어져 모든 장병들이 열창(熱唱)하기도 했는데, 여성회원님들 때문에 원형(原型)을 그대로 소개하기는 어렵고, 일부만 게재한다.
그 시절 ‘나까오리’ 노래(2절)
○○○가 부엌에서 군불을 때는데
○○○으로 들여다보니
○○이 ○○네.
그것이 무엇이냐 ○○○이냐
그것은 아저씨의 ‘나까오리’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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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 우리들의 선대(先代)에서는 앞서 소개한대로 겨울이면 주로 두꺼운 ‘나까오리’를 쓰고 다녔고, 여름에는 삼으로 짠 ‘파나마모자’를 착용(着用)하곤 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파나마모자(Panama hat)’는 본래 ‘파나마풀’의 어린잎 섬유(纖維)를 소재로 하여 손으로 짜서 만든 것으로 주산지는 에콰도르·콜롬비아·페루 등이다.
‘에콰도르’의 ‘파나마모자’ 상회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D02494D08C5CC2F)
만들기는 남미(南美)에서 만들었지만, 수출은 ‘파나마’ 항구(港口)에서 이루어진데다 19세기에 들어 ‘파나마운하’ 공사(工事)가 한창이던 시기에 운하 개설공사(開設工事)를 하던 일꾼들이 주로 착용했다하여 ‘파나마모자’라는 이름이 생겼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여름 이면 ‘모던보이’들이 한껏 멋을 내는 경우 ‘파나마모자’를 걸치는 경우가 많았다. 모자 테도 검정이 보통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붉은색, 청색(靑色)도 있었다.
파나마 모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6F0484D08C9B106)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기 때문에 여름 모자로는 가장 인기를 끌던 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機械)로 짜는 것이 대부분이며 원료(原料)도 화학섬유(化學纖維)·볏짚·종이노끈 등 모조품(模造品)이 대부분 이라고 한다.
‘파나마모자’ 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모자가 있어 화제(話題)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것도 무늬가 전혀 없는 깨끗한 흰색의 중절모(中折帽)다.
100% 핸드메이드로 유명한 ‘에콰도르’의 이 ‘파나마모자’는 최고급(最高級) 품질의 토킬라(Toguilla) 나무껍질을 이용해 제작했는데, ‘파나마모자’의 최고 장인(丈人)인 ‘시먼 에스피날’이 5개월가량 이 모자 하나를 만드는데 투자(投資)했다고 한다.
무게는 불과 30g이며, 모자를 구매(購買)하는 사람의 머리 사이즈에 맞추려고, 최종 제작단계(製作段階)를 남겨둔 상태라고도 한다. ‘파나마모자’사가 공개한 가격은 무려 10만 달러. 한화(韓貨)로 1억 2,3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高價)다.
최고의 장인이 최고의 재료를 엄선(嚴選)해 만들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가격이 책정됐지만, 100% 수제명품(手製名品)을 고집하는 전 세계 ‘셀러브리티’와 부호(富豪)들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파나마모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125AF8484D08C5FD38)
옛적에는 중절모와 비슷한 모자로 ‘캉캉모자(カンカン帽)’라는 것이 있었다. 이름에서 보시다시피 일본(日本)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캉캉모자’는 ‘밀짚모자’의 일종으로 주로 남성들이 사용했던 모자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캉캉모자’는 미국(美國) 등 서양에서 도입되어,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시대 말부터 쇼와(昭和)시대 초기까지 유행했던 모자인데, 두드리면 ‘캉캉’하는 소리가 날 만큼 단단한 모자라고 말해서 ‘캉캉모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캉캉모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114047474D0A25272A)
(좌측의 신사가 쓴 모자가 ‘캉캉’이다)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日帝時代) 때 들여와서 유행되기도 했었는데, 해방 이후에는 주로 ‘모던보이’들이 착용했고, 방송국(放送局) 무용수들이 착용하고 무용을 하기도 했었다. 특히 발음상의 유사성(類似性)으로 ‘캉캉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착용하여 인기를 끌곤 했었다.
우리나라 신사의 ‘캉캉’모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F60494D08C8AB37)
(‘삿갓모자’를 쓴 상주 뒤쪽에 걸어가는
아저씨의 모자가 당시의 ‘캉캉모자’다)
중절모(中折帽) 그리고 ‘나까오리’, 어린 시절 방안 시렁위에 얹힌 선친(先親)의 ‘나까오리’를 끄집어내려 쓰고 다니다가 호되게 꾸지람을 듣던 일이 주마등(走馬燈)이 되어 스친다.
배경음악은 앞 파일에서 소개한 목장아가씨를 제외(除外)하고는 모자에 관한 노래가 없어 ‘밀벙거지’라는 말 한 마디만 들어간 가수(歌手) 도미의 ‘사랑의 메아리’를 게재(揭載)하여 음미하기로 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앞에서 소개한 박재홍의 ‘비에 젖은 주막집’을 게재하여 들어보기로 한다. 아래 가사에 등장(登場)하는 ‘밀벙거지’란 ‘밀짚’으로 짜서 만든 ‘벙거지’ 즉, ‘밀짚모자’를 말한다.
사랑의 메아리
작사 : 반야월
작곡 : 박시춘
노래 : 도 미
맑은 하늘 푸른 물은 우리들의 마음인가
새파랗게 젊은 가슴은 슬기롭고 정다웁고나
가죽배낭 걸머지고 손에 손을 마주잡고
노래 불러 꿈을 불러 꽃을 피우자
앞산 메아리도 산울림이 야호 야호 야호 산울림이
첫사랑의 꿈을 실은 산메아리가 들려만 온다.
찰랑대는 호수위에 꽃 무지개 번져 갈 때
짝을 지은 물새 한 쌍이 조잘조잘 정다웁고나
밀벙거지 카메라에 모란같이 피는 미소
노를 저어 달려가자 청춘보트야
푸른 물줄기도 강울림이 야호 야호 야호 강울림이
무지개를 다리 놓는 강메아리가 울려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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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외동향우회 카페 회원여러분!
연평도의 비극을 영원히 잊지 맙시다.
(대한민국 예비역 해병 : 도 미)
![](https://t1.daumcdn.net/cfile/cafe/1947334C4D0A24EE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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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에 요오님이 신나는'사랑의 메아리'를 배경음악으로 모자예기를 다시 올렸군요! 사라졌던(?) 이야기를 복구해 놓았네요... 댓글로 영안모자 소개글을 올렸습니다.
나까오리 모자.....우리 아부지도 즐겼쓰고 다니셨지요...바같 출입이 많으셨던 아부지는 그 나까오리가 최고의 멋이기도...
지금도 좀 쓰고 싶기도 하여 백화점에 가서 찾아 봤는데..어찌나 비싸던지....감히 엄두가 안나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