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3:6~12
마술사와의 한판 승부
최 현우란 마술사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마술이 감쪽같고 신기한 게 많으니 자연히 대중들의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 현우 씨가 젊을 때 마술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는데 얼마큼 들키지 않고 속임수로 마술을 보여주느냐가 재미의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술은 속임수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마술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마술사는 최 현우 씨와 다른 마술사입니다. 엘루마, 혹은 엘리마 불리는 사람인데 번역을 하니 마술사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최 현우라고 하는 마술사처럼 속이는 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속여서 재미있게 해주는 마술사가 아니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현혹하는 영적으로 상당한 악한 자로서의 마술사입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바 예수라고도 불리는데 거짓 선지자이며 마술사로 소개됩니다. 아랍어로는 엘루마라고 하는데 alim(알림) 즉 “배운, 현명한”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마고스 즉 마술사라는 의미로 불리게 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즉 영적으로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로서의 마술사인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람이 복음 증거를 가로 막고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이란 자가 사울로부터 복음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어떻게든 듣지 못하도록 힘을 쓰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서 나옵니다.
7절에서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자라 소개하면서 사울에게서 복음을 상당히 듣고 싶어 했음을 부각시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복음을 듣게 되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질까 봐! 방해하는 것입니다.
만약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듣고 변화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7절에서 서기오 바울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혜를 발휘하여 사도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상당히 선한 영향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사탄이 어떻게 하던지 마술사 바 예수, 즉 엘루마를 악용해서라도 복음을 듣지 못하게 방해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며, 하나님께 큰 영광이 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방해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내가 아는 그 어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믿게 되면 얼마나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될까! 얼마나 영광을 돌리고 쓰임 받게 될까? 사탄은 너무나 잘 알지요.
그러기에 할 수 있으면 믿지 못하게 방해하고 신앙생활 못하게 철저히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안이 열려 깨달아야 될 믿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바로 영적 싸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이구! 속 터져!’ 로 끝내고 방치할 일이 아닙니다. 눈물 흘리고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할 싸움입니다.
어거스틴 한 사람이 바뀌니 당대 중세시대의 젊은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서는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루터 칼빈등이 사실 이 어거스틴의 회개와 변화에 대한 열매로 맺어진 종교개혁자들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변화가 엄청난 파장과 역사의 변화를 가져올 것을 안 사탄은 할 수만 있으면 아버지 파트리키우스가 섬기던 마니교에 심취하게 만듭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이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인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점점 더 쾌락, 학무에 심취하게 사탄은 교묘하게 그를 유혹하고 이끕니다. 보십시오. 사탄의 전략은 우리가 한 번 하고 마는 그런 식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17세부터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지 않나, 마니교의 매력에서 싫증나자 신플라톤주의자로 빠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 실증 등 허탈감은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의 열매로 맺어져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암브로시우스란 성직자의 강연을 들으면서 심정적 변화를 느끼던 차에 집어 읽으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롬13:13~14절을 읽고 그 날로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서는 결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롬13:13~14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러므로 기도는 쉴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울과 바나바에게 이러한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 성령께서 이들을 선교사로 내 보내기 전에 먼저 금식과 기도를 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떠한 형태이든 ‘기도를 쉰다. 힘들다.’ 하는 것은 영적으로 정말 위험한 일이며, 배부른 짓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유리방황하고 있습니다. 젊음과 청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아야 할 존재들이 한 탄 살다가 사라질 세상만을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들로 돌아서게 하고, 다시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데 눈을 뜨게 해 주는 일은 어머니 모니카와 같이 기도하는 일입니다. 30여년의 세월을 하루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한 결과로 얻은 열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해 보지 않는 사람은 기도의 맛을 모르기에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뜨고 살고 있는 현재의 삶 배후에는 치열한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오직 세상, 지옥, 그리고 형벌을 향해 가도록 사탄은 돼지에게 사료 몇 모금 주면서 도살장으로 이끄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을 돈, 성공, 쾌락이란 사료로 점점 더 지옥을 향해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세월이 불과 100여년이에요. 누구에게나 세월은 공정하게 지나가고 있으며, 때가 되면 젊었던 제가 60대 초반이 된 것처럼 어느 날 노인이란 수식어가 붙게 될 것이고, 나아가 세월은 어느새 우리를 삶의 끝인 죽음의 선상에 갖다 놓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엄정한 심판대 앞에 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히9:27절은 이렇게 엄중히 경고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기에 먼저 믿고 영적 세계를 알고 있는 우리가 이 부분을 침묵하고, 남모른 체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불과 100여년이에요. 앞으로 먼 미래에 일어날 일 같지만 죽음의 끝은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을 이야기해야 되고 삶의 마지막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듣기 싫어합니다. 그리고 엘루마처럼 전하지 못하게 방해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지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안타까운 종말을 맞이하도록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이날 이렇게 방해하는 엘루마 앞에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호되게 야단을 칩니다.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아멘
사도바울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결국은 서기오 바울을 건지게 된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복음이 순수하게 편하게 전해 진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방해와 핍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과 같은 포기 하지 않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결국은 건지게 합니다.
마술사와 한 판 승부에서의 승리는 영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권 안의 진짜 영권은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없이는 끊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날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전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도하고 자 하는 마음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는 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중심이 사울 같은 심정으로 하는 자여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유교와 불교로 찌들어 있고 가난으로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때 진정으로 복음을 들고 예수 심정으로 온 진짜 복음 증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로 인해서 한국은 급속도로 복음화가 이뤄지게 되었고 지금의 선진국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중의 이름도 없는 한 여성이 있었는데요. 그 분의 이름은 한국식으로는 서서평, 본 이름은 엘리자베스 쉐핑 (Elisabeth J. Shepping, 1880-1934)입니다.
1912년에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간호사로 조선에 들어와 1934년까지 22년 동안 병자와 여성들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입니다. 그 유명한 소록도에 나환자 요양시설을 만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십니다.
독일출생이요, 미국서 공부한 간호사로 32살의 젊은 나이에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 광주 기독병원에서 22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전도한 이면에는 단 하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예 한국인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어 가며 직접 나환자를 찾아가고 고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집에 재우면서 교육시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환자 아이를 직접 양아들로 삼았고, 버려진 14명의 아이들을 양아들과 양딸로 삼았습니다. 1년 중에 100일을 나귀를 타고 전라도와 제주도까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병자들을 돌보았고, 여성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당시에 쓴 그녀의 일기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한 달간 500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하나도 성한 사람이 없이 굶주리고 있거나, 병이 들어 앓고 있거나, 소박을 맞아 쫓겨났거나, 다른 고통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이일학교 여학생들과 함께 농촌으로 가서 매년 3-4만 명의 여성들을 교육시켰다.
그렇게 살았던 서서평은 결국 자신을 돌보지 않아 몸이 약해져, 만성 풍토병과 과로와 영양실조로 54세의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담요 반 장, 동전 7전, 강냉이 가루 2컵 뿐이었다고 하니 진짜 한국인으로 살다가 간 것입니다. 왜 담요 반장이냐고 하는 분도 있는데 반으로 찢어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자신은 반으로만 덮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시신도 유언에 따라 의학연구용으로 기증되었습니다.
그녀의 장례는 광주시민사회장으로 거행되었는데, 장례식에는 수많은 나병환자와 걸인들이 상여를 메고 뒤따르면서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며 애도했습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달려간 친구들은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걸려 있는 좌우명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 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서 서평을 조선으로 보낸 것이 바로 이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에 와서 그런 삶을 살게 했던 것이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모르고 있다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가 커 보일 때 그리고 그 사람의 소중함이 느껴지게 될 때 그 사람은 우리 가운데서 진정 섬김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 마음,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이 예수님의 마음, 사울의 마음, 서 서평의 마음을 이어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이번 12월 마지막 달에 또 한 분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1) 나로 인해 누군가 또 한 명의 영혼이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2) 결코 전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그 영혼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증거를 멈추지 않게 하시고 전도를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첫댓글 아멘.
넘넘 감사합니다
와 최선교사님 오랫만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