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로 나와 100m 정도 걸어 KT매장과 기업은행 사이 골목을 따라 좌회전하면 압구정동까지 좌우에 은행나무가 늘어서 있는 680m 길이의 대로가 나타난다.
이 곳이 최근 강남 상권에서 보증금과 월세가 가장 많이 뛴 신사동 가로수길이다. 아기자기한 패션몰과 갤러리,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카페가 즐비해 2000년대 중반이후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를 누르고 ‘패션1번지’로 통한다.
가로수길은 최근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독특한 색깔의 소규모 가게와 카페가 즐비했던 이곳이 국내외 대형 패션 브랜드 매장이 너도나도 몰리는 대기업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일모직의 패션 브랜드인 에잇세컨즈(8seconds)와 다국적 패션 브랜드인 자라의 2층 매장이 나타난다. 조금 더 걸어가면 포에버21, 라코스떼, 스파이시칼라 등 20여곳의 국내외 패션 매장이 하나둘 눈에 띈다. 모두 최근 1~2년 사이 가로수길에 새로 자리를 잡은 대기업 패션 매장들이다.
새로 문을 열 대기업 브랜드도 많다. 청바지 브랜드로 유명한 ‘디젤’과 신세계인터내셔널의 브랜드 매장 등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신사동 우리공인 서기순 대표는 “현재 이 일대에서 공사중인 대기업 패션 매장도 10여개가 넘는다”며 “너도나도 입점을 하려고 해 가로수길은 대기업 브랜드 전시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증금 1년간 최고 9억원 뛰어
대기업들이 브랜드 홍보 등을 이유로 건물주에게 거액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보증금과 임대료가 폭등하고 있다. 대로면 99㎡ 매장 기준 보증금은 최근 1년간 최고 6억원에서 15억원까지 올랐다. 월세는 3700만원에서 4500만원으로 뛰었고, 권리금은 2억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상승했다.
한 매장은 2년 전과 비교해 월세만 800만원에서 3000만원까지 치솟았다.
건물주들은 보증금과 임대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부동산 컨설팅 전문회사를 통한 기업간 임대차 계약을 선호한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종합부동산서비스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김성순 이사는 “최근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계 패션 기업들이 너도나도 매장을 내고 싶어 하는 첫번째 지역이 가로수길”이라며 “적당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외국 명품 패션 브랜드가 많아 현재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유지되거나 더 뛸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신사동 가로수길에 대기업 패션 매장이 늘어나면서 보증금과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가로수길에 최근 문을 연 자라 매장
특색있는 점포, 외곽으로 밀려…'세로수 상권' 형성
이런 분위기가 소규모 점포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작은 점포를 운영해서는 건물주가 요구하는 수준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로수길 대로변 주요 건물을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 차지하면서 특색 있고 독특한 패션 아이템을 파는 작은 점포와 색다른 커피숍 등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가로수길 곳곳에서 매장 이전을 알리는 표지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예컨대 가로수길 중간 즈음에 위치한 보세의류점 건물은 최근 지오다노가 입점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지오다노는 이 보세의류점과 옆 건물을 합해 대략 180㎡ 정도 크기 점포를 보증금 10억원에 월 5000만원에 계약했다. 기존엔 두 점포를 합해도 보증금 2억원에 월세 1000만원 정도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소점포는 점차 밀려나는 추세다. 서기순 대표는 “가로수길 대로변 상가는 더 이상 개인들이 빌려서 임대료를 지불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다”고 말했다.
가로수길에서 밀려난 점포가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가로수길 이면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세로수길’ 상권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작은 의류 상가와 음식점이 새로 생기면서 지난해부터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00㎡ 크기 신축 1층 상가는 보증금 5000만~6000만원에 월세는 3.3㎡당 30만원 정도 수준으로 조금씩 시세가 오르는 중이다.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안민석 연구원은 “일본, 중국 등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세로수길도 조금씩 보증금과 임대료가 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로수길이 아직 가로수길 만큼 집객효과는 떨어진다. 임차인의 수익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상가투자컨설팅 경국현 사장은 “유동인구가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권이 확대되면 결국 기존 파이를 나눠먹는 꼴밖에 안된다”며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로 수익을 내지 못하면 곧 공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상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가로수길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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