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봄비
송용숙
봄비가 너무 치근대며 내리고 있다
봄꽃이 그렇게 좋을까
피지 못한 꽃 활짝 핀 꽃
모두 주둥이가 한 발씩 나왔네
내일은 비라는 놈
멀리 멀리 장가라도 보내어
상처받은 마음 달래줘야지
기도
여인숙과 같은 삶
날마다 손님이 찾아온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따뜻한 햇살 내리는 아침에
기쁨 절망 슬픔 깨달음
생각지도 않은 방문객 들어올 때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야하나
반갑고 설레임만 있을까
두려움 절망도 뒤따르는데
기도 주머니는 매일 색깔이 바뀌며
의심 많은 나에게 확신을 주네
지혜와 지식은 아버지 안에 있고
거짓은 진리를 이길 수 없슴을
매달리지 말자
변하는 마음 상처가 되는 과거
착한사람 좋은 사람 평가에 매달리지 말자
마음이란 늘 출렁이며 바뀌는 것
오가는 인연과 지난일은
사람의 마음이라 영원한 것이 아니다
좋고 싫음에 따라 변하는 것이 본질이며
지난 일에 상처로만 받아들이면
인생에 짐으로 남는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소중한 현재는 쏜살 같이 간다
경험으로 받아 드리면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존재임을
알기에 내가 성장한다
함정
겉과 속이 다른 꾸밈과 거짓 겸손
나를 높이려는 교만이 찾아 왔네
성숙하지 못한 자가 중심 속
허망한 생각 옛날을 기억하며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었건만
삶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자존감은 깊은 수렁 속에 잠들고
육신의 정욕 방탕과 안목의 정욕 소욕물이
자랑으로 과시하고 있다
깊고 어두운 동굴에 헤엄치고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돌고 있네
세상으로 뛰어 나오고 싶은 마음
간절하니 가로막힌 벽을 향해
두 팔 벌려 날개 짓으로
살아있는 땀을 흘리고 있다
감사
기쁨과 행복을 주는 자녀
삶을 치료해 준 신앙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믿음
현명한 배우자를 얻는 지혜
자식이 잘 되며 평강의 복이 온다
육체적인 평안이 있다
생각 할수록 감사하면 복이 온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 것으로 만들자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인생은 새롭게 변화된 능력자로 이끌어 간다
겉과 속이 알찬 사람이 되자
회복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낼 때 온다
다른 것과 가치를 비교하지 마라
그래
우리는 감사하는 삶을 살자
수필
봄꽃
송용숙
새싹이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갇혔던 마음도 활짝 열고 햇살 기운 받은 봄 향기 서로에게 사랑을 보내고 자연 속 숲에서도 활력이 넘치고 있다.
아름다운 계절이 왔다고 여기저기에서 봄 축제가 한창이다. 부푼 마음으로 그곳에 갔지만 며칠 전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에 시샘하는 꽃 추위로 아직 세상에 나오기가 두려운지 꽃망울은 솜이불 속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다.
꽃향기는 없지만 맛있는 음식 냄새는 봄 색시 구경나온 가족, 연인들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들뜬 마음은 발걸음만 바쁘게 움직이고 예쁜 미소와 함께 사진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 시원하게 달리는 자전거 부대, 건강하고 행복해 보이는 젊은 그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낀다.
테크 길에 천천히 걸어오시는 노인 부부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하얀 머리에 조용히 이야기 하시며 미소 짓는 할머니는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닮았다. 꽃과 책 읽기를 좋아하시던 울 엄마! 봄이면 진달래꽃을 상처 나지 않게 조심조심 씻어 하얀 찹쌀가루 위에 살짝 올려 화전을 붙이고 아카시아꽃으로 튀김을 해주시던 모습은 어느 봄 향기에 비하랴.
늘어져 피는 개나리꽃을 보면 생각난다. 세월이 지나갔어도 봄은 오고 개나리꽃은 피었는데, 젊은 나이에 떠나버린 남동생이다. 같이 있을 때에는 몰랐던 마음, 무엇이 바쁘다고 먼저 천국열차를 탔을까? 혼자 계신 어머니의 슬픔도 헤아리지 못하고 내 곁에 형제가 없다는 것으로 슬프기만 했다.
누나는 하얀 얼굴이라 노란 개나리꽃이 어울린다고 머리와 가슴에 꽃을 꽂아주던 동생이다. 들에는 개나리가 만발했지만 해맑은 노란 꽃이 싫어 몇 해 동안은 외면해 버렸다. 초등생이었던 조카가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둔 불혹 나이에 가까이 오니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그 가정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니 개나리꽃은 아픔 보다 이제는 평안으로 다가온다.
꽃이 아름답게 피는 계절! 신랑 각시로 결혼한 4월이다 어려운 일도 많았고 슬펐던 일도 있었지만 되돌아보면 다 감사한 일뿐이다 그동안 단단하고 굳은 마음 교만과 아집으로 살았고, 길가 밭에 씨를 뿌려 환난과 핍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세상염려, 재물의 유혹, 욕심으로 결실을 못 보는 가시떨기 밭을 밟기도 한 결혼생활이었지만 이제는 작고 좋은 밭을 일구어서 결실을 보는 노년에 이르니 남편과의 계절은 봄이 아닐까 생각 된다. 가족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생활을 실천하고자 다짐한다.
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 핸드폰 속엔 꽃들이 많이 담겨있다. 젊을 땐 말이 없고 얌전하기만 했는데 나이 칠십이 넘고 손자 손녀를 본 그녀는 말도 예전보다 많아지고 웃음도 큰 소리 내어 웃어 제친다. 그런 모습은 아직 낯설지만 그래도 친구라서 좋다. 꽃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사춘기 소녀를 연상시킨다, 멋진 남자를 보면 설레는 마음이 있고, 시집을 항상 갖고 다니는 내 친구는 영원한 소녀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며 열정을 가지고 사는 마음이 아름답고 예쁘다.
작은 화원의 프리지어 꽃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한 묶음 사서 화병에 꽂아 놓았다. 서방님은 눈길도 안 주는데, 10년을 같이 살아온 오월이와 꽁꽁이는 꽃이 신기한지 냄새도 맡고 꽃잎을 살짝 입에 물고 힘을 주니 화병은 엎어져 방바닥에 시냇물을 만들어 놓았다. 꽃잎과 함께 흐르는 물, 냥이의 놀란 눈이 예뻐 혼내지도 못하고 함께 물놀이를 하고 있는 내가 있다.
내가 원하는 봄의 삶은 무엇일까? 모든 길을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세상 속에서 지혜와 분별력과 인내를 간직하고자 한다. 올 해도 소리 없이 찾아온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며 그 향기 속에 나를 눕히고 싶다.
6월이 오면
송용숙
며칠 후면 5월 달력을 넘기고 6월을 맞이하겠지. 가기 싫은 5월은 오늘도 눈물의 비를 뿌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은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이제 조금 숨통이 튈까 바라는 마음으로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한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변이 오미크론 출현과 함께 이제는 기후 변화로 사막에 눈이 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우리 모두는 혼란스런 과정을 겪고 있다.
고난도 감사하라는 말이 있다. 고난이 있어야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고 내 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우울하고 내 스스로 우울증인가 하며 자신을 자책하던 시절이 있었다. 묵묵히 지켜 보아주신 엄마가 6월이 오면 또 생각날 것 같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었던 친정어머니 회복을 위해 매일 기도했다. 꼿꼿하시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돌아가신 지 30년 되는 아버지가 아직 들어오시지 않았다고 기다리시며 대문 잠그지 마라 하시는 엄마가 한심하여 울었다. 치매를 앓으신 지 2년 후 건강이 아주 나빠져서 어쩔 수 없이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6개월 지나 본향으로 가시는 엄마의 길은 편안하셨는지 모르겠다.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 6월에 퇴직을 하시고 논을 구입하셨다. 다른 농부들보다 더 열심히, 모르는 것은 일일이 물어가면서 벼 농사를 지으셨다. 그해 가을 추수 타작 후 쌓아 올려진 쌀가마를 보시며 좋아서 활짝 웃는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쌀을 살 때마다 “언제 우리는 쌀을 쟁여놓고 살 수 있을까” 하며 한숨 쉬시던 모습! 그때는 어느 가정이나 다 어려웠지만 엄마의 속상한 말을 듣고 미안해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 엄마가 밉고 싫기까지 했다.
아침 식사 때에 아버지는 어제 저녁 남았던 국수를 드셨다. 친구들에게 나는 “우리 아버지는 국수를 너무 좋아하셔서 어제 저녁 먹고 남은 퉁퉁 불은 국수로 아침 식사를 하신다.” 말하며 정말 국수가 좋아 드시는 줄 알았다. 불은 국수를 내가 성장하여 먹어보니 그 맛없는 것을 식구를 위해 드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이 아파 그 마음을 왜 몰랐을까 자책도 하였다.
양식이 떨어지는 봄철에 정부에서는 서민들에게 대여하는 밀가루가 있었다. 이스트 대신 막걸리를 넣어 빵을 쪄서 간식으로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저녁은 대부분 칼국수였다, 반죽 밀가루를 긴 방망이로 밀어 넓은 원형을 만들고 착착 접어 썰어 나오는 칼국수. 엄마들의 솜씨는 보고 또 봐도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마지막 밀가루 꽁댕이를 얻어 아궁이 숯불에 구워 먹었던 맛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저녁 먹으라고 엄마들이 부를 때 옆에 있던 아이는 큰 소리로 “형 엄마가 대양곡 먹으래” 한다. 어른들이 대여양곡을 타다 저녁 식사 준비를 했으니 저녁 먹자가 아니고 대양곡 먹자로 말이 바뀌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잔치국수를 만드는 국숫집은 언제나 바빠 보였다. 지금은 다 없어진 국숫집에 길고 긴 하얀국수가 걸쳐 있던 옛날이 생각난다. 국수를 삶아 간장과 참기름만 넣었지만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 그 맛을 잊지 못해 내 손으로 만들어서 먹어 보지만 어릴 적 맛이 아니다. 그러나 맛있는 국수를 삶아 대접하려고 해도 곁에 계시지 않고 6월이면 생각나는 아버지다.
살아 있어서 숨 쉬고 있지만 만질 수 없고 보이지도 않은 부모님을 불러본다. 불어오는 바람을 알고 있듯이 항상 내 곁에 계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이젠 울지 않고 우울해 하는 마음도 날려 보낼 것이다. 엄마 아버지 딸이었던 것을 감사하며 두 손을 모아본다.
나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죽음은 끝이라고, 삶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어 끝나는 인생, 그러나 이승에서는 헤어졌지만 본향으로 돌아갔으니 출발이라고 개운한 한숨을 내 쉬어본다.
-사랑하는 아버지 엄마! 평안히 몸과 마음을 쉬었다가 때가 되면 우리 만나요. 이별할 줄 아는 딸이 5월 달력을 넘기며 두 손 모아 6월에는 얼굴 잊지 않게 찾아와 달라고 입술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