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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어이없어 죽겠어요!!!!!
일본 정말 왜그런대요-_-!!! 짜증나, 정말;;;;;
왜 자꾸 억지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되네 정말로;;;
뻔히 독도가 우리땅인 증거까지 있는데.. 머리가 그렇게 안돌아가나?!
일본이 아무 말 할 수 없게끔 해야겠는데,
정말 독도가 확실하게 우리 나라 땅인 이유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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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cafe.daum.net/jhlee4926/LmjY/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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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도 읽어보세요^^ 1.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가수 정광태가 불러 너무도 유명해진 ‘독도는 우리땅’?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1945년 한국의 광복과 함께 독도는 한국 영토로 귀속되었고, 따라서 1952년 1월 18일에 포고된 '인접해양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한국 정부는 독도를 포함한 한국 영토의 한계를 명백히 하였고, 또 1954년 8월 독도에 등대를 세워 세계 각국에 통고하는 한편 독도 주변 영해 내의 수자원을 확보하였다. 이와 같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일본이 1952년 1월 28일 한국에 항의하며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옴으로써 독도문제가 일어났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독도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성종실록(成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등의 문헌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어 있었다. 특히, 17세기에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문제가 야기되었을 때는 민간외교가 안용복(安龍福)의 외교활동으로 1696년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2. 일본은 왜! 틈 만나면 독도문제를 거론하는가? 독도를 영유권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으로선 어차피 남의 땅이니 자꾸 들쑤셔 국제이슈로 부각시키면 대성공이다. 시간을 두고 분쟁지역이라는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미국의 주요언론과 통신사들 모두가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부르는 판에 일본해에 떠 있는 작은 섬이 당연히 일본 것이 아니겠느냐는 믿음을 제3자에 심어주는 것이다. 독도가 이슈가 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우리의 대응 방식때문이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건 일본도 잘 알고 있다. 무수한 역사자료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만일 독도가 일본땅이었다면 그들은 절대로 소극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영토를 잃고도 교과서 표기조차 상대국의 눈치를 본다는 게 말이 되는가. 벼룩도 낯짝이 있겠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명분쌓기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3.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도 대신 대마도를 애기해야 한다 일본의 전략에 넘어가선 안 된다.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우긴다고 부르르 떨고 흥분할 필요가 없다. 아닌 말로 울릉도를 일본땅으로 주장한다면 날강도나 미치광이의 헛소리로 코웃음밖에 더 치겠는가. 그들이 쳐놓은 덫을 묵살하고 공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대마도가 있다. 가수 정광태는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불과 50km 떨어진, 맑은날 육안으로도 보이고 대마도 주민들은 “새벽에 귀기울이면 부산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할 만큼 가깝다. 반면 일본 홋카이도에선 그 세배인 150km나 떨어져 있다. 일본말 상당수가 고대 한국말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특히 대마도 방언에는 한국말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 있다. 이남교의 ‘재미있는 일본말의 뿌리’를 보면 대마도에서 ‘초그만‘이란 말은 ‘키가 작은 사람’을 말하고 ‘높퍼’는 ‘키가 큰 사람;, ‘양반’은 그냥 양반(兩班), ‘바츨’은 ‘밭을 매는 줄’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다고 한다. 대마도의 일본말인 ‘쓰시마(對馬)’도 ‘두 섬’이란 말의 ‘두시마’에서 ‘쓰시마’로 변한 것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대마도 주민들의 증언이다. 고대 한반도의 도래인들이 거센 현해탄의 파도와 싸우며 쓰시마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 품안처럼 물이 잔잔한 항구의 이름을 ‘어머니’항으로 불렀는데 이 말이 한자어로 ‘엄원(嚴原)’이 되었고 이를 일본어로 읽어 ‘이즈하라(嚴原)’항구가 됐다는 것이다. 12세기말 일본의 승려가 지은 ‘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에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해 기른 곳이다.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심지어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을 위해 만든 지도인 ‘팔도전도’에는 독도는 물론, 대마도도 조선땅으로 표기해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니 응당 찾아야 할 우리 땅이 아닌가.
4. 우리의 전략? 어찌 할 것인가. 방법은 간단하다. 일본의 수법을 그대로 취하면 된다. 틈만 나면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국제기구에 제소해, 분쟁지역화 하는 것이다. 없는 것도 지어내는 일본인데 조선시대까지 관리를 파견한 한반도의 부속도서 대마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얘기를 왜 못 하는가. 이미 일본땅인데 너무 억지는 아닐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선포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있다. 바로 이승만이다. 지난 3일 일본 NHK방송은 1948년과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이 두차례에 걸쳐 대마도가 한국령이라고 주장을 펼쳤지만 일본 정부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 일본 정부는 커다란 위기감을 가졌으며 “만일 유엔이 승인하면 (대마도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며 대응책을 모색한 외무성 극비문서의 존재가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만일 전후 한국 정부가 좀더 국제이슈화의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이 지금의 한국 정부처럼 냄비소리 요란한 대응을 했더라면 대마도는 이미 오래전 우리 땅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독도를 일본이 떠들 때마다 더 큰소리로 외치자. “우리의 땅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고. 도움되시길... |
내용출처 : 본인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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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부터 독도는 우리나라와 가까워서 |
일본 사람들도 참,,,,, 일본 사람들 대부분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도에 살던 강치가 자취를 감추게 된것도 일본사람이 다 잡아가서 보기 어렵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을 원망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나라에서 한 짓은 생각도 안합니다. 일제 강점기때는 간도를 중국에 팔아먹더니 이젠 독도를 가질려고 합니다. 참 일본사람들 무슨 근거로 독도가 자기내 땅이라고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제발 독도에 대한 사랑을 분발하시길 |
내용출처 : 본인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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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내력은 일찍부터 기록에 오르내린 울릉도와 관련지어 살펴보아야 한다. 본토 유민들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울릉도의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된 것은 6세기 초(512)였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지증왕 13(512)년에 "6월에 우산국이 신라에 속했다. "는 기록에서 있다.
이후 울릉도라는 명칭이 정착돔에 따라 그 부속 도서인 독도로 우산이라는 명칭이 이동하게 되었다. 조선 1432년 세종에 편찬된 지리지 강원도 울진현 조에서도 "우산,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 "하여 동해상에 무릉과 우산의 두 섬이 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1531년 중종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강원도 울진현 조에 우산도,울릉도현의 정동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지리지의 뒤를 있고 잇다.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을 담은 릉도사적기-를 펴냈다. 이것은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르키는 말이장한상울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입증하는 것이다. 18세기 에 나온 정상기의 동국지도 에 리르러서는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와 크기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조선후기의 지도첩에는 울릉도 옆에 우산도 또는 자산도를 표기하고 있다.
-고려사-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와있는데 독도가 우산국 영역임을 밝혔고 고려 고종때 최우가 우산국에 사민정책을 실시 하였으나 풍랑으로 실패한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울릉도와 독도를 별개의 섬으로 하여 그림으로 그려놓은 최초의지도
일본측문헌 -은주 시청합기- 1667년 일본에서 기록한 사서로 울릉도와 독도가 고려의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한ㄱㅖ는 은기도를 한ㄱㅖ로 한다고 명시 하였다. -통항일람-1853년 일본에서 기록한 사서로 안용복에게 독도가 조선땅임을 인정하는 사료가 기록
근현대의 독도 인식 -연합국의 구 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에는 '독도는 한국영토라고 명기' 1952년 4월에 발효된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 누락을 일본은 중요한 근거로 하여 자기영토 로 주장하고 있다.
-외국의 독도인식- 1855년 영국의 중국파견함대 소속 호넷함의 해군 중령 라르시스의 지휘하에 독도를 측정 관찰하여 호넷롯스라고 명명, 오늘날 독도를 리앙쿠르라고 표시하는 국가들이 있다. 이것은 한일간의 분쟁지역으로 인정하는 셈이며 한일 독도 분쟁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계산임을 간파하여야 한다.
출처 정재준 맥락한국사 ^^
국제법상 으로 선점에 의한 영토 취득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그 지역이 무주지역이어야 하고 , 그 지역을 영토로 취득하겟다는 의사와 함께 그 의사를 대외적으로 공식적으로 표명하여야 하며, 그 지역의 실효적 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구비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국제법에도 해당도 안 된다.
핵심반박1 - 독도는 울릉도와 더불어 512년에 한국 영토가 된 후 계속하여 한국의 영토였고 1905년까지 한국에의해서 포기된 적도 없고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로 부터 영유권 도전을 받은바 없으므로 독도가 무주지 지역이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핵심반박2 - 일본은 영토 취득의사를 1905년 지방 자치단체 의 고시를 통해 대외에 공표했다고 하나 , 이를 국가의대외적 의사표시로 볼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독도는 1900년(칙령 제41호)에 이미 한국정부의 행정 구역 개편을 통해 한국 정부의 관할 하에 있었다.
핵심반박3 - 일본은 독도의 현지 측량, 토지 대장에 기입, 해산물 포획 면허제등을 채용하였다고 하나, 객관적으로는 국가 영역으로서 계속 실효적 으로 지배 했다는 증거가 없다. 반면에 한국은 6세기 이래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 항상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재해 왓다. 출처 정재준 맥락한국사
독도의 명칭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 왔으며, 오늘
독도,서기 512년부터 한국 영토
독도(獨島)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
울릉도와 함께 독도(우산도)가 조선 왕조의 영토라는 사실은 일본 등에는 물론
일본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
일본 정부가 독도를 일본에서 처음 기록했다고 지적한 1667년의 일본 관찬 고
17세기 말 일본 정부,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
일본이 1592~98년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왜군은 독도를 거쳐 울릉도에도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
일본에서 1868년 1월 도쿠가와 막부정권이 붕괴되고 새 메이지(明治)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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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본인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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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empas.com/hongsungmog/20515783 => 들어가시면 영어 번역본도 있습니다. - 후반부는 위 출처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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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 : http://blog.empas.com/hongsungmog/205157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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