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북일보 청송객주문학대전 단편소설부문 당선작] 방성식 외
■대상
란더노티카 / 방성식
브래드포트의 폐저택에 도착했을 때 현관은 반쯤 열려 있는 채였다. 정원이 앞뒤로 뻗은 이 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다. 꽤나 부유한 가족이 살았을 것처럼 번듯한 건물이었지만, 오래간 방치된 세월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갈라진 벽 틈에선 이끼가 돋아났고 마당의 잡초는 사람의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아귀를 벌린 어둠 속은 그저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쾌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오지였음에도 릴리는 회심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를 인도한 건 앱스토어에서 구매한 네비게이션 어플이었다. 그 이름이… 그러니까
“란더노티카?”
“그래. 공연 장소 찾아 헤매는 것도 슬슬 지쳐가잖아?”
처음엔 분명 그런 이유였다. 우리는 런던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이 인조 버스킹 팀이었다. 나는 기타를 치고 릴리는 노래를 불렀다. 장르는 글쎄… 브릿팝 사운드로 어렌지한 K-pop 댄스곡이라는 설명이 가장 비슷할 것 같지만, 음울한 기타 팝에 강남스타일을 올려놔 봤자 치즈 넣은 된장처럼 이도 저도 아닌 맛만 났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린 여섯 명으로 구성된 팝펑크 그룹의 일원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팀이 해체되어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도통 어울리지 않는 장르 간의 결합도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강구책 중 하나였다. 한류 붐에 편승해 보자는 얄팍한 계산이었기에 릴리가 단박에 수긍했을 땐 정말 괜찮은 거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녀는 심플하게 대답했었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길일지도 모르잖아?”
밴드의 해산은 뼈아픈 일이었다. 성과가 궤도에 오르는 상황이었기에 실망감이 더 컸다. 그래도 좌절할 일까진 아니었다. 밴드란 본래 온갖 자질구레한 이유로 와해되기 마련이며 기타와 보컬만 있으면 어떻게든 계속해나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밴드 명의로 받은 버스킹 허가증마저 취소되었다는 점이었다. 런던에선 담당 관공서가 주최하는 오디션에 합격해야만 번화가에서 공연할 자격이 생긴다. 어중이떠중이의 소음 공해를 방지하려는 의도라지만 우리처럼 안타까운 사정에 처한 음악인들에겐 생계를 위협하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본래 서브보컬 겸 베이스 포지션이었고, 나는 스쿨밴드 때부터 로큰롤만 연주해온 외골수 기타리스트였다. 하루아침에 K-pop 뮤지션으로 탈바꿈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한 일이었다.
이래 봬도 난 홍대에서만큼은 꽤나 이름을 날렸었다. 해외 유명 밴드의 내한 공연 오프닝에 오른 적도 있었는데 지금도 종종 그날의 실황 영상을 돌려 보곤 한다. 수만 관중의 환호를 받는 순간은 무대의 주인을 질투하게 될 만큼이나 짜릿했다. 내게도 기회가 돌아올 때를 기다렸으나 쥐똥만 한 K-indie 판에선 그만두지 않는 것이 곧 성공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십 년 넘게 제자리만 돌다 보니 희망고문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멀고 먼 영국까지 찾아온 이유도 록 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 전공인 록 넘버라면 오디션을 패스할 수도 있었겠지만, 릴리는 K-pop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꺾으려 하지 않았다. 슬쩍 의견을 개진해도 “Rock is dead”라며 구닥다리 취급을 할 뿐이었다. 보컬이 노래하지 않겠다 버팅기면 연주자 입장에선 당해낼 방법이 없다. 마침 생활비도 조금씩 떨어져가는 상황이었기에 단속에 걸리지 않는 장소를 찾아 게릴라식 공연을 감행하기로 했다. 무작정 악기를 메고 걷다가 적당하다 싶은 자리가 나오면 곧바로 판을 까는 방식으로, 엄연한 불법인 만큼 쉬운 길은 아니었다. 상가 주인이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민원이 들어가 경찰이 출동한 날도 있었다. 그럭저럭 돈이 벌리는 때도 있었지만, 단속을 피해 택시를 탔다가 지출만 생긴 날도 있었다. 기타와 앰프, 마이크와 스탠드, 이펙터 페달을 합한 무게는 무려 20kg이 넘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메고 정처 없이 헤매는 건 그 자체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일이었다.
“차라리 누가 장소를 정해주면 좋을 텐데.”
무작위라도 좋았다. 확실한 지점이 정해지면 한결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앱 마켓의 내비게이션 카테고리를 뒤져봤다. 티맵, 카카오, 아이나비, 구글맵… 대기업 네비를 지나 한참을 스크롤 한 뒤에야 독특한 이름의 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유럽 쪽 언어로 해석하면 걸어서(Rando) 항해한다(Nautica) 정도의 의미인 것 같았다. 캐치프레이즈 역시 의미심장했다.
<도심의 일상 속 미스터리한 모험을 선사합니다>
이 앱엔 퀀텀 에너지의 분포를 지도에 표시해 주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에서의 양자(퀀텀)를 의미한다기보단 동양 철학에서의 기(氣)와 유사한 초자연적 개념이었는데, 퀀텀의 농도가 높아질수록 비일상적 사건을 경험할 확률이 높아진단다. 사용자 커뮤니티엔 란더노티카를 이용하다가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후기가 수천 편 넘게 등록돼 있었다. 난도질당한 엘크 사슴의 사체를 발견했다거나, 사이비 종교 단체의 비밀 시설을 엿보았다거나, 정신질환자의 이상 행동을 관찰했다는 등의 사연과 함께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과 영상도 올라와 있었다. 란더노티카를 사용하던 청소년들이 토막살인 사체를 발견했다는 번역 기사도 있긴 했으나 원작자인 미국 언론사의 도메인은 만료된 지 오래였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보았던 양자역학 관련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상자 속의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죽어있기도 한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등의 말장난 같은 내용이었는데, 수백 개 넘게 달린 댓글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지구의 모든 현상을 수치화하는 고전역학에 비하면 양자역학은 차라리 인간적이라는 주장이었다. 개소리이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떤 관점에서 인간의 삶이란 양자와 마찬가지로 불확정의 공간 속을 떠도는 셈이니 말이다. 우리가 의미 불명의 수수께끼에 빠져드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엉터리에 불과한 앱을 수천만 명이나 다운로드한 사실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수도권 안에서만 검색해 보면 어때? 또 모르는 일이잖아. 우리에게 좋은 일을 물어다 줄지도.”
나는 릴리의 제안을 가벼운 장난 정도로 받아들였다. 고작 휴대폰 따위로 양자를 측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퀀텀이란 콘셉트만 그럴싸하지 실상은 랜덤으로 좌표가 찍히는 방식일 것이 뻔했다. 결국엔 우연과 우연이 서로 뒤섞이며 모든 일이 결정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밴드를 시작했다가 록 음악에 빠져 런던까지 흘러온 과정에서도 의지를 갖고 결정한 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하필 록이었던 이유조차 알아낼 수 없다. 무작위로 결합된 인생의 조각들이 지금의 나 자신을 구축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릴리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언제나 지금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밴드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좋은 가정에서 자란 책벌레 스타일의 아가씨였는데 불과 일 년 만에 눈두덩을 검게 칠한 그루피가 되어 있었다. 뮤지션보단 매춘부가 먼저 떠오르는 패션이었으나, 나는 내심 그녀의 변화를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동양인 특유의 단정한 외모보단 거칠고 퇴폐적인 이미지가 록 음악에 걸맞았기 때문이었다.
매트로로 한 시간 이내 거리 안에서 퀀텀 수치를 측정해 봤다. 비컨트리 인근의 산업단지가 23.8%로 가장 밀집된 농도를 보였다. 역 주변만 해도 평범한 주거 단지처럼 보이던 거리가 고속 차도 몇 군데를 지나자 황무지에 늘어선 컨테이너만 남게 되었다. 도로변엔 담장 높이로 뻗은 철조망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너머는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식료품 재가공 공장이었다. 수십 명 넘는 인부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 둘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들 그을린 갈색 피부에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었고, 개중엔 이슬람 율법을 외우며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구간만 뚝 떼어 놓으면 런던 한복판이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친 한 명에게 부지로 들어가는 길을 물으니 진입로를 따라 반 바퀴는 돌아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빠른 걸음으로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인부 대표로 보이는 사내가 철조망 앞으로 다가왔다. 우드르어 억양 탓에 알아듣기 어렵긴 했으나 대충 어딜 가는 중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자, 릴리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우리는 버스킹 할 장소를 찾고 있어요.”
사내는 그녀의 매끄러운 발음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노래를 부르시겠다고요? 이 공장에서?”라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이번엔 주변에 있던 인부들까지 불러 속닥속닥 귓속말을 나누었다. 의견을 취합하는 덴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콧수염을 매만지며 돌아온 사내가 그럴듯한 제안을 던졌다. 철조망 앞에서 버스킹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공장에 들어와 봤자 관리인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껏 당신 같은 사람들이 찾아온 적은 없었거든요. 음악이라면 철조망 너머로도 감상할 수 있잖아요.”
릴리와 난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가 멈춰 선 장소는 고속 차도 옆으로 난 두 줄짜리 인도였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협소한 데다 바로 옆으로 사 차선 아스팔트까지 붙어 있어 화물차와 버스 지나가는 소음이 만만치 않았다. 떨떠름한 반응을 감지한 대표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저희가 문화생활이란 걸 해본 지가 오래됐거든요. 런던 브리지 테러 사건 이후로 다들 저희가 살인마인 것처럼 두려워해요. 경찰 검문도 끊이질 않고요.”
그러고 보니 번화가에서 중동계 이주민과 마주친 적이 드물긴 했다. 그들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뉘햄 거주지 외곽에서만 머물렀다. 오래 머물기 좋은 동네는 아니었다. 어두컴컴하고 낡은 골목에 건물은 지저분하고 녹지는 부족했다. 경계와 경계 사이 빈 공간에 머물 곳 없는 자들이 모여서 생긴 거리였다.
“괜찮지 않아? 우리도 괜히 힘 뺄 필요 없잖아. 팁은 철조망 사이로 받으면 되고.”
릴리도 곁에서 부추겼다. 그새 소문이 돈 건지 인파까지 모여들었다. 계속 사양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라 점심시간 끝나기 전 한 시간 동안만 공연하기로 약속했다. 릴리의 음성이 스피커에 울리자 관중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철조망에 매달린 관중을 보니 1969년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지미 핸드릭스가 아니고, 릴리 역시 제니스 조플린이 아니다. 철창 너머 관중들도 히피 사상과는 정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다. 잠시나마 가슴이 설렌 이유는 러브 앤 피스를 모사하고 있다는 자의식 때문이었을 거다. 지금 이곳은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마저 멈춘 도시이니까.
*
수입으로만 따지면 대성공인 날이었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 동안 무려 185파운드나 되는 현금을 벌었다. 관객 수가 기벽명이다 보니 동전 몇 개씩만 받아도 두둑한 목돈이 쌓였다. 평소의 세 배가 훌쩍 넘어가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관객의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한 공연이었다. K-pop의 인기가 세계적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쁜 저임금 노동자에게까지 해당되는 말은 아니었다. 피 땀 눈물을 외치는 첫 소절에서부터 황당해 하던 인부들은 두 번째 곡의 도입부에 이르자 하나 둘 객석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경청해 준 사람들도 공연의 후반부에 가서는 대놓고 하품을 연발했다. 그들의 냉담만을 탓할 순 없다. 우리 역시 파키스탄 가요를 들으면 똑같이 반응했을 테니까.
“그래도 절반의 목표는 달성했잖아? 좀 더 퀀텀 수치가 높은 장소를 찾아보자.”
사용자 후기에 따르면 60% 이상부터 본격적인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녀 딴에는 더 많은 관중 앞에서의 공연을 기대했을 테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K-pop이 뭔지도 모르는 집단에 투자해 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백인 중산층을 타깃으로 인기를 모아야 한다.
“아무래도 도시는 퀀텀이 쌓이기 어려운 환경인가 봐. 50%가 넘는 곳은 죄다 런던 외곽에 있는데?”
주구장창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릴리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도 몰래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살인범이 사람을 죽이면 어디에 숨길 것 같냐? 숲이나 강일게 뻔하잖아. 그런 오지에 잘도 관객이 모여들겠다. 너는 생각이란 게 없냐?”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날카로운 모서리가 날아들었다. 릴리가 집어던진 아이돌 그룹 브로마이드 화보집이었다. 잽싸게 피하긴 했으나 책과 부딪힌 벽면엔 푹 파인 흠집이 남고 말았다. 조금만 늦었다간 이마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릴리는 무시당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못한 인간일 경우엔 더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그녀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는 건 다름 아닌 나일 때가 많았다. 권력의 최하층이었기 때문이다. 탈퇴한 인원은 모두 런던 토박이인 앵글로색슨족 남성들이었고 릴리는 홍콩계 이주민 집안의 3세대 자녀다. 영어도 완벽하고 신원 문제 같은 것도 없다. 반면에 난 관광비자로 영국에 입국한 토종 한국인에 불과하다. 인디 레이블 명의로 발급되었던 예술 활동 비자는 현지인 멤버들의 신원 보장을 전제로 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소속이 사라진 지금으로선 비자 만료 전 체류 자격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유일한 팀원인 릴리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다음날, 우린 다트포트 지역을 지나는 템스 강변에 도착했다. 거의 런던의 끝자락이나 다름없는 지역으로 밖으로 더 나가면 슬슬 바다가 보일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사람이라곤 개미 새끼 한 마리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끈적끈적한 모래밭 저 멀리 화물 운송용 선박만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퀀텀 농도는 58% 수준으로 도심 내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 했으나, 버스킹 무대로 삼기엔 빵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연습이나 하다 갈까?”
딱히 빈정대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우리가 지내는 숙소는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낡은 벽돌 건물이었는데, 기타 전원을 꺼놓고 연주해도 옆집에서 바로 항의가 들어올 만큼 방음이 안 됐다.
“역시 멤버를 추가해야 할까 봐.”
릴리는 어쿠스틱 편곡을 못마땅해 했다. 본래 EDM이던 댄스곡을 기타로만 소화하려니 느낌이 잘 살지 않긴 했다. 그렇다고 드럼과 베이스 주자를 뽑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쪽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DJ나 FX등 전자 음원을 다룰 줄 아는 인원을 영입하자는 의도였을 거다. 월급 줄 돈이 어디 있느냐며 논의를 회피하긴 했으나 사실은 겁이 났던 탓이 더 컸다. 일렉트로닉 그룹에서 기타리스트는 반드시 필요한 멤버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시사이저용 가상 악기로 실재와 다름없는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을뿐더러, MR을 완성한 뒤엔 굳이 라이브 할 필요성마저 사라진다. 게다가 난 미디 기반의 작곡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도 모른다. ‘진짜’연주자가 소외당하는 현실에 쯧쯧 혀만 찼을 뿐이다.
릴리는 마이크 스탠드에 스마트폰을 거치했다. 미처 외우지 못한 한국어 가사를 띄워두기 위해서였다. 한창 연습을 하던 도중 휴대폰의 팝업 사운드가 앰프를 통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간섭현상이 발생하며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가 울렸다. 미처 짜증을 내기도 전에 릴리가 먼저 들뜬 톤으로 재촉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 퀀텀 에너지가 상승하고 있단 말이야.”
그녀의 휴대폰에 떠오른 건 란더노티카의 팝업창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60%를 넘지 못하던 농도가 70% 중반까지 증가해 있었다. 입을 벌린 채 기뻐하고 있던 릴리는 기타 소리가 멈추자마자 거의 경멸에 가까운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뭐 하고 있어? 빨리 뭐라도 치라니까? 퀀텀 수치가 줄어들고 있잖아.”
릴리는 내 곁으로 다가와 이펙터 노브를 최대치로 올렸다. 디스토션과 오버드라이브, 옥타브와 플랜저가 엉망으로 뒤엉키며 기타 앰프에 과부하를 걸었다. 스피커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고, 출력을 벗어난 마이크에선 비명 같은 하울링이 울렸다. 사포로 긁어내는 듯한 입자의 공명 속에서 릴리는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제자리에서 풀썩풀썩 점프를 뛰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그녀의 안에서부터 부푸는 것 같았다.
“떴다. 떴어. 보인다. 보여!”
혼이 나간 듯이 중얼대던 릴리가 손에서 마이크를 놓치고 말았다. 깡! 하고 깨지는 소리가 음향을 오가며 무제한으로 증폭됐다. 청력이 손상될 만큼의 강렬한 소음이라 더는 그녀의 광기에 맞춰줄 수가 없었다. 두 귀를 틀어막은 채 발끝으로 케이블을 감아 전원 단자에서 뽑아냈다. 모든 장비가 침묵한 뒤에야 다시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릴리는 템스강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 시기의 템스강은 종종 익사자가 나올 만큼 유속이 빠르다. 안전장비 없이 들어갔다간 순식간에 물에 밀려 떠내려갈 수 있다. 강둑까지 달려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앞으로 더 나가면 정말로 위험해진다고. 그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릴리는 고개 한 번 돌려보지 않았다. 999에 응급 호출부터 해야 할까? 억지로라도 끌고 나오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그러다 나까지 강물에 딸려 가면 어떻게 하지? 일단은 수면 떠 있으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잖아?
일단은 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고 강물에 발을 담그려다가 신발과 양말이 그대로라는 걸 깨닫고 천천히 운동화 끈을 풀었다. 팔이 덜덜 떨리는 탓에 몇 차례나 헛손질했지만 맨발이 되고 나니 아까보다 조금은 현실감이 생겼다. 이것이 내 삶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예감 탓이었다.
얼마나 오래 멈춰있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릴리가 눈앞에 앉아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어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채로 한 손에는 물비린내 나는 보스턴백을 움켜쥐고 있었다. 가방 안엔 둘둘 말린 비닐 뭉치가 들어 있었는데, 이삿짐을 포장할 때 쓰는 질긴 소재의 투명 시트였다. 침수를 막는 용도로 채워 넣은 모양이었다.
시트를 한 장씩 벗겨낼 때마다 반투명하던 내부가 점차 선명하게 드러났다. 50파운드 지폐 다발이 벽돌만 한 묶음으로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한 뭉치 당 천 장 정도의 수량으로 한화로 치면 8천만 원이 넘는 거금이었다. 가방 안엔 같은 크기의 돈뭉치가 총 여섯 단이 들어 있었다. 무려 5억 원 상당의 현금이 수중에 들어온 거다.
마지막 다발 밑엔 수상한 물체 하나가 눌려 있었다. 네모반듯했던 현금과 달리 기역 자로 굽은 형태의 덩어리라 처음엔 피스톨 종류의 총기인 줄로만 알았다. 비닐을 전부 걷어낸 뒤에야 우리의 예상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트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깔끔하게 잘린 인간의 발목이었다. 발가락에서부터 복숭아뼈까진 완벽한 형태가 남아있으나, 종아리 위쪽은 날카로운 물체에 경골까지 잘려 있었다. 피를 빼어 손질한 것처럼 냉한 감촉에 빛깔마저 창백했다. 아직 부패하지 않은 싱싱한 상태였다.
릴리는 강변 근처 땅이 무른 곳에 잘린 발을 묻었다. 진흙으로 구멍을 덮은 뒤 마른 모래를 뿌려 겉보기에 표가 나지 않도록 했다. 경찰엔 신고하지 않기로 했다. 조사에 불려 나가다 보면 30만 파운드에 대해서도 해명해야 할 테고, 괜히 강력 범죄에 연루되었다가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릴리 입장에서도 나는 아직 곁에 둘 필요가 있는 인물이었다. 부족한 정체성을 메우기 위한 포장인 동시에 K-pop 뮤지션을 자칭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기도 했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일단 돈부터 숨겼다. 침대 밑 마루에 돈을 집어넣고 그 위에 다시 못질을 해 막았다. 함부로 낭비하지 않도록 사용처를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투자 이민으로 사업 비자를 얻는 쪽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 같았다. 20만 파운드로 음반사나 기획사를 차리면 거취에 대한 고민 없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릴리의 우선순위는 달랐다. 내내 다물고 있던 입술에서 둔탁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이 돈으로 오디션을 열자.”
그녀가 말하는 오디션에서 우린 참가자가 아닌 주최자의 입장이었다.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 모집 글을 올려 파트별로 선발하겠단다. 경찰이나 마피아가 추적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지 그러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결국엔 그녀의 뜻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존 레넌, 짐 모리슨, 시드 비셔스와 커트 코베인 등등…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커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느 날의 꿈속에서 난 모든 사건의 이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밴드를 떠난 멤버들과 병맥주를 홀짝이는 중이었는데, 올리버와 지미, 해리와 제이콥. 그리고 릴리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팀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클럽 오디션과 음반사 미팅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고, 새로 발표한 곡도 라이브에서 탄력을 받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인디신에 발붙이는 것도 어렵지 않은 단계였다.
멤버 간의 유대가 깨어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지나치게 가까워진 탓이었다. 누군가의 격의 없는 농담이 누군가에겐 분노의 도화선이 되었다.
“나의 인생 목표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거야.”
누가 먼저 꺼냈는지 모르겠으나,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록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건 뮤지션에게 가장 빛나는 성취 중의 하나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대화의 주제가 엉뚱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술 취한 제이콥이 낄낄대며 말했다.
“무리야 무리. 애네 둘 데리고 가봤자 출입 금지 안 당하면 다행일걸? 역대 헌액자 중 중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나와 릴리를 차례로 지목했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헌액 조건을 달성하려면 첫 음반 발매 후 25년이 경과한 베테랑이어야 하는데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아시아 시장에서 로큰롤은 주류 장르가 아니었다. 후보에 오르는 동양계 뮤지션 자체가 소수인 데다 선정을 위한 투표권마저 영미권 전문가 집단에 편중돼 있으니 시스템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동양인이라서 선정이 안 된다는 발언은 차별을 위한 비약에 지나지 않는다.
구구절절한 텍스트의 첫마디를 떼기도 전에 해리가 먼저 제이콥의 말을 받았다. 인종차별로 화제가 됐던 이스라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의 발언이었다.
“우리가 이해해야지 뭐. 중국인에겐 노래하는 DNA가 없다고 하잖아. 유전자 단계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걸 어떻게 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며 반박하려는 찰나, 이번엔 지미가 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태국인이건 다 똑같아. 저항과 창조, 평화에 대한 갈망을 너희 동양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겠어? 기껏해야 공장에서 찍어 만든 아이돌 그룹만 양산해 내겠지. 남들 눈치 보느라 바쁜 인간들이잖아?”
난 그들의 무례한 언사에 화를 내지 못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일종의 밈(meme)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논리적 가치판단의 대상이라는 그들의 사상은 기준에 미달한 모든 타자를 가벼운 농담거리로 전락시켰다. 정색하고 대들어봤자 속 좁은 동양인이란 편견만 재생산할 것이다. 유쾌한 조롱이 그나마 현명한 축에 드는 대응이긴 했으나 상대는 유럽 선진국의 중산층 백인 남성들이었다. 뭐라고 그들을 놀려야 할까? 피부가 왜 그렇게 희냐고? 세상의 변방 취급을 받아본 적은 있냐고? 아프리카 후진국이 가난한 게 너네 때문인 걸 알고는 있냐고? 퍽이나 상처가 되겠다.
그 자체로 기준이나 다름없는 모델을 좌절시킬 방법은 없다. 차라리 그들 눈에 걸친 색안경을 수용하는 편이 나았다. 집단에 순응하는 모범적 동양인을 연기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린 파키스탄 이주민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배부르게 먹고 좋은 시계를 차지만 사회적 영광과 명예에서 배제되는 마이너리티 모델로서,
이럴 때 선을 못 지키는 병신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 지금껏 맞장구만 치고 있던 올리버가 다 끝나가는 판에 불씨를 던졌다. 미친 새끼. 적어도 릴리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록 밴드에서 최악은 눈 찢어진 계집들이지. 조지 해리슨이 오노 요코를 싫어한 이유가 있다니까? 동양 여자가 멤버인 팀 중 기억나는 밴드 있어?”
그러면서 릴리의 광둥어 억양을 흉내 내기까지 했다. 홍콩 출신인 그녀를 영국인인 척하는 중국인이라며 조롱한 것이다. 도움을 청하는 시선에도 난 모르는 척 딴청 피우기에 바빴다. 동양인인 내가 영국에서 활동할 방법은 백인이 이끄는 팀의 일원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헤헤, 헤헤 비굴한 웃음으로 난처한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릴리의 맥주병이 올리버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때까지.
브래드포트까지 가는 덴 차가 필요했다. 렌터카 업체에서 빌려온 해치백에 릴리가 구해온 오디션 장비를 실었다. 신시사이저 두 대와 10채널 오디오 믹서, 음역대별 분배가 가능한 앰프와 녹화용 비디오카메라. 여기에 소형 디제잉 장비도 한 대 챙겼다. 어떻게 보아도 밴드 음악에 필요한 구성은 아니었다. 모든 짐을 트렁크에 넣자 뒷바퀴가 납작해질 만큼 무게가 쏠렸다.
폐저택의 위치는 브래드포트와 리즈를 가르는 경계선 인근이었다. 런던에서 차로 네 시간 넘게 걸릴 만큼 거리가 멀었다. 광활한 구릉은 탁 트여 시원하다기보단 조난 영화의 배경처럼 황량해 보였다. 해가 지고 나면 등잔불 하나 켜지지 않을 것 같았다.
현관은 나무로 덮인 플로어와 맞닿아 있었다. 카펫조차 깔리지 않은 마루에선 끼기, 끼기 나무 삭은 소리가 났다. 비교적 보존이 잘 된 벽면을 따라 앰프와 믹서, 악기를 배치하고 전원까지 연결하니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사운드 테스트는 내일로 미루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릴리는 일층의 가장 큰 방을, 나는 이층 구석의 다락을 골랐다. 딱히 마음에 들었다기보단 유리창이 온전하게 남은 방이 그 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에 들기 전 란더노티카 앱을 체크해 봤다. 폐저택 주변은 퀀텀 농도는 87%로 런던 근교와 오크셔험버 지역을 통틀어 가장 수치가 높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생판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오디션을 여는 건 그야말로 정신 나간 계획이었다. 참가자들도 정상인은 아닐 거다. K-pop에 미친 십 대 청소년이거나, 사회에 적응 못한 진성 오타쿠, 동양계 여자들만 노리는 변태들일 수도 있다. 이제는 정말 릴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 문제로 아등바등하는 것도 지겹고 괜한 피해의식 갖는 것도 싫다. 내가 가진 자격만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곳에 돌아가고 싶었다.
침낭의 지퍼를 열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스산한 새소리와 함께 유리창 너머에서 달빛이 들어왔다. 울고 싶을 만큼 불안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적막을 이겨내려면 라디오라도 틀어야 할 것 같았다. 휴대폰의 잠금을 풀자 알림 창 하나가 액정에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모험가님의 퀀텀 수치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세요.>
새로운 세상이라고? 웃기는 말이다. 나야말로 미지를 탐험하는 모험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흘러가듯 살아온 이유 역시 무작위로 결정된 나만의 운명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연과 우연의 결합이 완벽한 플롯으로 완성되길 기대했으나, 현실에서 마주친 건 습작조차 어려운 좌절의 연속이었다. 록 스타를 꿈꾸지도 못하는 세상 따위 마분지로 쌓아올린 조잡한 무대나 다를 게 없다. 버텨봤자 소용없다. 이제 그만 내려가야겠다.
그때 아래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플로어를 오가는 발소리였다. 처음엔 릴리가 밤잠을 설치는 거라고만 생각했으나, 리듬감 넘치는 굽 소리엔 아무래도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현관과 거실, 주방을 거쳐 계단까지 이동한 기척은 반 박자만큼 제자리서 머물다 벽면 모서리 앞에서 빙그르르 턴을 돌았다. 한 사이클이 끝난 뒤엔 처음의 위치로 돌아가 같은 경로를 되풀이했는데, 마지막 단계의 끽하는 마찰음마저 횟수를 세듯 규칙적이었다.
돈 가방에 들어있던 새파란 발목이 떠올랐다. 손질된 고기처럼 차가운 감촉이 명치 위에서 달리는 것 같았다. 불유쾌한 심장 박동을 참지 못한 난 계단을 따라 플로어로 내려가 보았다. 코너를 돌자마자 어둠 위로 떠오른 릴리의 윤곽이 보였다. 그녀는 현관 옆에 등을 기댄 채로 돌아서 있었는데 이곳으로 이동할 때와는 옷차림이 달랐다. 허리가 드러나는 크롭 기장 티셔츠에 테니스 스커트를 걸치고 두 발엔 니하이삭스와 하이힐을 신었다. K-pop 아이돌 패션을 한 그녀가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걸 그룹 커버 영상에 나올 법한 포인트 안무로 팔다리의 근육을 풀더니 허리와 하반신을 튕기면서 그럴싸한 웨이브까지 만들었다. 맨바닥에 주저앉아 허벅지를 드러내는 동작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몸에 익지 않은 동작이 다소 우스워 보이기도 했으나, 어설픈 몸부림에 담긴 각오만큼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백인도 아시안도, 영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그녀는 무대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동양계 여성 뮤지션을 의심하지 않는 장르는 K-pop 아이돌 음악 정도가 고작이었고,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롤 모델에 순응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릴리가 심약한 인물인 건 아니었다. 몰락한 장르의 불안만 만지작거리는 나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의연한 여성이었다. 마음 깊숙이 혐오하는 남자를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로 곁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그만 아집에서 벗어나야겠다. 우선 낡아빠진 기타부터 버리고 큐베이스니 로직이니 하는 작곡 프로그램을 배워 그녀가 바라는 음악을 만드는데 동참해야겠다. 작곡이 안 받쳐준다면 프로듀서로, 그마저도 재능이 없다면 로드 매니저나 스텝으로 전락해도 괜찮다. 어차피 예술가의 대다수는 창작과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생을 마치기 마련이다. 딱히 나만 불행한 건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괴롭힘을 방관해서 미안하다고,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전처럼 한 팀이 되어 성공을 향해 달려보자고, 그러니 제발 새로운 그룹에서 배제하지 말아 달라고.
그러나 릴리는 응답하지 않았다. 플래시에 비친 실루엣만 빛줄기에 녹아내렸다. 흐느적대는 몸통 뒤에서 가느다란 그림자가 뻗더니 천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릴리의 목을 허공에 매달아 버렸다. 플래시의 조도를 높일수록 음영의 깊이는 더욱 도드라졌고, 나중엔 릴리 본인의 형체보다도 선명한 질감을 갖게 되었다. 상(象)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섬뜩함이 한 발짝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 쳤나 보다. 발밑에서 마룻바닥이 삐거덕댔다. 릴리는 고개를 꺾어 벌벌 떠는 나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어딘가 멀리, 결정되지 않은 중첩된 차원 속을 떠도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그림자는 나의 목을 움켜쥐어 온갖 비참한 환상을 떠돌게 했다. 그곳에서 난 아무런 형체를 갖지 못한 새하얀 덩어리에 불과했고, 주변의 다른 덩어리와 나 자신을 구분하지도 못했다. 자의식 바깥으로 드러난 무방비한 속살에 나는 공포심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연약한 채로 으깨어져 형태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이대로 그림자에 끌려갈 순 없었다. 등 뒤를 더듬자 볼록 튀어나온 문고리가 잡혔다. 그 뒤편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가시덤불 자란 정원을 지나 주차장까지 왔을 땐 온몸 곳곳에 상처가 덮여 있었다. 밤새 런던을 향해 차를 몰아 도망쳤다. 릴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떠올리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릴리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그녀의 번호에선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안내 메시지만 끝도 없이 반복되었다. 실종 신고를 넣지도 못했다. 30만 파운드의 행방에 대해선 함구한다 치더라도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실까지 덮어둘 순 없었다. 더군다나 그 저택은 십수 년 전 일가족이 살해당한 미제 사건의 현장이기도 했다. 괜히 엉뚱한 혐의만 덮어쓸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만 죽이는 사이 비자 시한은 만료되었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발급받아야 했다. 쓰고 남은 현금은 침대 밑에 그대로 숨겨두었다. 어차피 세관에 걸려 가져갈 방법이 없는 돈이었던 데다, 릴리를 포기한 것에 대한 사과도 하고 싶었다. 아무런 불행 없이 정말로 되고 싶은 자신을 발견해나가길 기원했다. 우연히 손끝에 닿은 꿈의 조각이 아닌, 사지를 뻗어 붙잡고 싶은 최종적인 무언가를 향하여.
귀국과 거의 동시에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다. 해외여행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글래스톤베리를 위시한 국내외 대형 페스티벌도 줄줄이 취소 소식을 알렸다. 스타디움이나 클럽 공연은 물론 버스킹마저도 대중의 눈총을 받게 됐다. 세션 알바나 기타 학원 일자리도 사라져 배달 대행과 택배 알바로 생계비를 벌어야 했다. 조촐한 수입이긴 했으나 음악만 고집할 때보단 형편이 나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치킨도 뜯을 수 있었다.
릴리를 발견한 건 펜데믹 선포 이후 일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홍대 앞 호프집에서 아는 형과 치맥을 하는 중이었는데, 매장에 걸린 티브이에 런던 시가지의 모습이 비쳤다. 백신 접종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었다는 보도였다. 카메라가 위치한 곳은 쥬빌리 가든 인근의 빈티지 상가로 런던에 있을 적 버스킹 하러 들르던 장소 중의 하나였다. 마스크 없이 자유로운 행인들의 모습에 괜시리 부아가 치밀었다. 차가운 맥주로 쓰린 속을 달래려는데, 뉴스의 다음 꼭지가 귓가에 닿았다. 영국인으로만 구성된 K-pop 그룹이 런던에서 데뷔했다는 소식이었다. 백인 둘에 흑인 하나, 홍콩 출신 한 명으로 구성된 사 인조 걸 그룹이었다. 그들의 길거리 공연 실황이 핫 클립으로 방영됐다.
전반적으로 완성도에 문제가 있는 팀이었다. 전 멤버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빼면 중소 기획사에서 만든 댄스 팀 수준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유치한 가사에 가창력은 미숙하고 안무조차 날림이었다. 멤버 간 조합에서도 불안함이 엿보였는데 누가 보더라도 백인 멤버 둘이서 이지메를 주도하고 있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상을 아는 형이 대신해 줬다.
“서양인들이 아이돌 댄스 추는 거 보면 토 나오지 않냐? 애교 떠는 것도 징그럽고 춤 선도 애매해. 체형부터가 K-pop 과는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한류가 유행하니까 별게 다 깝친다 그치?”
화면 속 릴리는 새로운 예명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얼굴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사람 자체도 내가 알던 그녀와는 달라진 것 같았다. 발랄한 팀 사인을 마주하기 힘들어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을 변기 위에서 심호흡하던 난 오랜만에 란더노티카를 실행해봤다. 화면에 표시된 농도는 –37%였다. 폐저택에서 도망친 이후 퀀텀 수치는 마이너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앱의 오류나 서버 관리 미흡으로 치부해서는 안 됐다. 미스터리한 변화의 의미를 직시해야만 했다.
중첩된 채로 존재하던 양자는 측정과 동시에 고정된 위치가 결정된다. 불확정성의 영역으로 넘어간 릴리와는 달리 나는 차원을 건널 만큼의 용기를 내지 못했다. 확고부동한 패배자의 삶에 정착한 것이다. 그건 내가 피하려 했던 삶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축에 드는 선택지였다.
■금상
산책자들 / 유재연
나는 작은 백팩을 매고 당신에게 가는 중이다. 바퀴달린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손님이 거의 없고 소파가 푹신해 보이는 공항의 구석진 카페로 들어간다. 크로와상은 푸석푸석하고 커피는 맛이 없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조용한 장소가 필요하다. 육 년 만에 서울에 간다는 것, 그리고 육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비행이 겨우 한 시간 남짓 걸린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초조하다. 붉은 앞치마를 입은 카페의 여직원이 빗자루로 빵가루를 쓸기 위해 의자를 끌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는다. 철과 콘크리트가 마찰하는 소리.
“시끄러워 제기랄 아 더러운 것들.” 큰소리로 그 말을 내뱉은 것은 구석진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자이다. 내 자리에선 여자의 뒷모습만이 보이는데, 병아리 색 코트를 입고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있다. 머리끈에는 빨간 플라스틱 체리가 달려 있다. 여자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은 정상인의 범주에 벗어나 있는데, 나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여자는 앞사람에게 말하듯 정면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욕설과 상스러운 말을 뱉는다. 직원은 청소를 중단하지만 여자에게 용서를 구하진 않는다. 카페 안의 또 다른 손님인 중년 남자도 여자를 힐끗 보더니 다시 경제 잡지를 읽는 척 한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치 채고 있다. 여자의 정신이 심연의 어느 틈새에 박혀 있다는 것을, 여자의 정신이 속한 장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여자의 표면에 살짝 드러난 어둠마저도 현실의 빛에 닿아 희석되지 않고 타르처럼 검고 진득한 말이 되어 내 팔뚝의 살갗에 흘러내린다.
나는 이 장면을 이미 보았다고 느낀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한 꿈에서. ‘제발’ 나는 생각한다. ‘제발 뒤를 돌아보지 말아요.’ 타인을 위해 표정을 짓는 법을 잊은 얼굴은 어떤 얼굴도 될 수 있다. 여자의 얼굴은 거대한 괘종시계일 지도 모른다. 분침과 시침이 제멋대로 돌아가는...... 어릴 때부터 나는 괘종시계를 무서워했다. 괘종시계는 자정까지 깨어있는 아이들을 남김없이 꿈으로 몰아넣는 파수꾼이며, 시간의 관이니까. 아니면 여자는 s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화제 속에 종종 등장하는, 당신 학원에서 일하는 혼자 중얼거리는 습관을 가진 외로운 노처녀 말이다. 아니다. 여자가 뒤를 돌아본다면, 그 얼굴은 내 죽은 얼굴일지도 모른다. 나는 커피를 반 이상 남긴 채로 서둘러 일어선다. 내 의자 밑에는 빵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다.
‘한번 입장하면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장소로 나는 들어간다. 평소의 나는 그 문장이 의미심장하고 약간은 위협적이라고 느꼈지만, 그 순간 나는 문장의 단호함에 의지하고 싶다. 줄을 서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다시 줄을 서고, 수하물이 엑스레이를 통과하고,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내 신체의 주위를 곤봉으로 휘젓는 일련의 과정들이 날 안심시킨다. 카페에서 본 여자처럼 수상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색출될 것이다. 애초에 공항에 있을 이유도 없는 여자다. 처음부터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을까. 대합실의 통유리 너머로 비행기들의 뭉툭한 코가 보였고, 멀리서 푸른색 비행기가 활주로를 서서히 거닐고 있다. 통유리는 어째서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을 모두 풍경으로 만드는 걸까, 생각하다가 아마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 생겼기 때문에, 투명하고 단단한 막이 두 공간을 가로막기 때문에...
당신에게 나는 풍경에 속한 사람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나는 쑥색 개량한복을 입고 땋은 머리에는 댕기를 매고 있었다. 나는 전통 찻집의 직원이고, 손님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차를 따르는 일을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으로, 통유리 밖에는 대나무 수로를 통해 물이 연못으로 졸졸졸 떨어졌고, 연못을 둘러싼 야트막한 돌담 너머로 억새밭이 펼쳐졌다. “연희 씨가 들어왔을 때 나는 연희 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지요.”라고 당신은 빙긋 웃으며 회고한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찻잎이 담긴 다기를 소중히 옮기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군요.”라고 중얼거렸다고. 그 말에 내가 얼굴을 붉히며 방석 위로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냐고. 당신이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웃기만 했지만, 사실 그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내가 차실로 들어왔을 때 당신은 창 너머 풍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억새에 숨어있던 저어새들이 하늘로 빨려 들어가듯 날아올랐고, 당신은 “아름답군요.”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것은, 내가 이 주 째인 수습 직원이어서 뭐든 서툴고, 한복의 치맛자락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쑥색 한복을 입고 엉덩방아를 찧고선 얼굴이 붉어진 여자로서 서른다섯 해를 살아왔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당신이 나를 알아차리기 전에는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나는 당혹감을 감추고 다도 교육을 시작한다. “이 주전자는 다관입니다. 옆에 있는 그릇은 숙우입니다. 물식힘 잔이라고도 합니다. 이 자리에 앉아 차를 끓이는 주인을 팽주, 대접받는 쪽은 팽객입니다. 끓일 팽 자를 씁니다” 당신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 것은, 내가 숙우에 뜨거운 물을 붓고 “물 식히는 시간 동안 잠시 침묵과 고요를 즐기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두 눈을 감았을 때이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유발된 당신의 웃음은, 몇 분 동안 참고 참다가, 또 그 참음을 의식하며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침묵과 고요’라는 단어가 주는 빈 방에 놓인 방석 같은 안정감과,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내 경망스런 동작이 주는 격차에서 도무지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어 터져 나온다. 나 역시 그 웃음에 전염되어, 그 다음부터 다도 수업은 그저 쿡쿡거림과 빨개진 얼굴, 웃음을 참으려는 노력이 전부이다. 다음 날 당신은 다시 왔다.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고, 나는 모시풀차를 내온다. 여름의 숲처럼 싱그럽고 짙은 맛의 차이다. 당신은 외국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학원을 운영하고,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지려고 섬에 왔다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당신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나는 집에서 바다로 가는 이키로 남짓한 길이라고 대답한다. “산책은 이른 아침에 하는 게 좋아요.” 나는 조금 들떠서-당신이 온 것이 기쁘다- 말한다. 해가 아직 하늘이 아닌 땅에 속해 있는, 그래서 땅에 자리 잡은 것들도 신성함을 나눠 갖는 시간. 간밤의 어둠에서 빠져나오며 생긴 허물을 긴 그림자로 끌고 있는 나무들. 오렌지 빛의 투명한 공기 속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새소리. 산책길은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높낮이와 커브가 있고,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식생이 변한다. 삼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바다가 보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면, 무꽃과 배추꽃으로 가득한 들판이 나타나고, 그 다음엔 대나무 숲을 지나친다. 바다 가까이에는 길고 가느다란 야자수들이 서 있는데, 그 아래는 지붕이 없는 폐가가 담쟁이에 감겨있다. 그 길을 함께 걸어도 되냐고 당신은 묻는다. 나는 그 길이 실은 섬의 여느 길과 다를 것이 없는, 그냥 내가 매일 산책하는 길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 길을 걷고 싶은 겁니다.”라고 당신이 말했을 때, 나는 여름의 하오처럼 환해진다.
며칠 후 아침 일곱 시 십오 분, 나의 집 앞에 있다. 외제차의 운전석에서 빠져나온 당신은, 청바지에 검은 잠바 차림이다. 길을 걸으며 나는 식물과 새에 대해서만 말한다. 배추꽃은 유채꽃만큼이나 보기 좋은데, 왜 관광객들이 천 원씩 입장료를 내고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관광객들은 둘을 구분하지도 못한다고, 실제로 배추꽃을 보고 유채꽃이라며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을 본 적도 있다고. 그리고 무꽃. 나는 당신에게 그 연보라색의 청초한 꽃을 가리키며 저게 무의 꽃이라고, 그렇게 투박한 뿌리를 갖고 있는 게 믿겨지냐고 묻는다. 보리밥나무, 소철, 로즈마리, 털머위, 개구리발톱, 장딸기꽃... 어떻게 이름을 모두 아냐고 당신은 묻고, 나는 “이 섬을 좋아하니까요.”라고 웃는다.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쳐 다각거리는 소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바람이 없네요.”하고 나는 말한다. 그러다 다그닥다그닥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당신이 대나무 두 그루를 부딪치고 있다. 귤밭에서 들개 두 마리가 나타났을 때 당신은 긴장한다. 내가 섬의 개들은 귤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당신은 믿지 않는다. 나는 귤나무에 매달려 있는, 썩기 직전의 쪼글쪼글한 귤을 까서 개들에게 던져 주고, 개들은 펄쩍 뛰어서 귤을 받아먹는다. “그 날의 산책 이후로 나는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지요.”라고 나중에 당신은 말했다.
일 년 후 당신은 내게 청혼을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다실에서, 당신과 나는 모시풀차를 마시고 있다. 사계절을 겪어보고 결혼을 결심하란 말이 있지요, 하고 당신은 조금 진부한 방식으로 말을 꺼낸다. “그것이 단순히 일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미묘하게 다른 성격을 보여줍니다. 도시의 계절은 온도가 낮아지거나 높아지는 것, 가로수로 심어둔 벚꽃이 만개하거나 은행잎이 노랗게 변하는 것 정도가 전부지요. 도시인들의 삭막하고 냉혹한 성격은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의 사계는 풍부하고 깊이가 있어요. 그리고 연희 씨는 그 깊이에 감응할 줄 압니다. 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연희 씨가 전부 좋습니다.”
풍경 앞에서 하이쿠를 읊는 일본인처럼, 당신은 자신이 하는 말에 조금 취해 있다. 당신은- 당신은 통유리 너머로 내다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나는, 당신이 들고 있는 흑유 찻주전자의 손잡이고, 구석에서 태우는 인센스 스틱의 매화향이고, 연못에서 긴 꼬리를 흔드는 주황색 금붕어이다. 언젠가 당신은 내 방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미니멀리스트의 방이라고, 이 방에서 사치스러운 것은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풍경뿐이라고. 창밖으로는 워싱턴 야자수의 가장 높은 잎사귀들이 갈퀴처럼 바람을 긁어모으고, 멀리 들판과 숲, 바다가 보인다. “가까운 바다보다 먼 바다가 좋아요.” 이 킬로 남짓한 길을 걷는 동안 바다를 예감한다고, 그래서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더 큰 기쁨을 느낀다고 나는 말한다. “우리 사이의 거리 때문에 관계가 좋은 걸 수도 있겠군요.”라고 당신은 단정한다. 나를 만나기 위해 매달 바다를 건너서 섬으로 오는 나의 연인. 우리는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 호지차를 마시는 중이다. 당신은 가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고, 내 손을 어루만진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살갗을 마주하고 있을 때조차도 당신은 늘 유리 너머로 나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 거리감을 기꺼워한다는 것을. 통유리 너머 당신의 시선으로 나를 관조하며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큰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당신은 방구석에 있는 라탄 바구니에 담긴 커다란 피리를 가리키며, 저 악기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건 인디언 플루트예요. 네이티브 아메리칸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지요.” 당신은 한곡만 불어달라고 요청하고, 나는 서너 번 거절하다가 스카보로 페어를 연주한다. 내 연주는 서툴지만 낮고 멀리 울리는 피리소리는 그 자체로 듣기에 좋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당신이 내 방에 오기 한 달 전부터 하루에 두어 시간씩 피리연습을 했다든가, 장롱에 있던 피리를 바구니로 옮겨 두었다든가, 당신과 처음으로 산책을 하기 전날 사진을 찍으면 식물의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로 산책길의 모든 식물들의 이름을 알아두었다는 것을. 내가 당신을 만났을 때 찻집에서 다도를 가르친 것이 이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 전에 일했던 리조트에서 내 등을 어루만지는 과장에게 항의를 했다가 해고당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내 인디언 친구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는 다섯 개의 이름이 있고,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나는 ‘난다말라’라는 이름으로 불러요. 오년 전 명상센터에서 난다말라를 처음 만났어요. 그 명상센터는 논밭과 돼지 농장밖에 없는 전라도의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어요. 아는 사람이 당시 제가 앓고 있는 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추천해줘서 가게 된 거죠. 오십 여명의 코스 참가자는 열흘 동안 새벽 네 시부터 밤 아홉시까지 명상을 해야 하죠. 모두 독방에서 지내며 아침과 점심만 먹죠. 휴대전화와 책, 노트를 소지할 수도 없어요. 가장 힘든 것은 침묵의 계율을 지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 눈짓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넸지만 대화를 나눌 순 없었어요. 그곳엔 대여섯 명의 외국인들이 있었지만 난다말라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죠. 허리까지 내려오는 한 줄로 땋은 난다말라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흘렀어요. 광대가 튀어나오고 눈이 찢어진 얼굴은 몽골인을 연상케 했지만, 서구화된 인디언답게 키가 크고 골격이 넓었죠. 마침내 열흘이 지나고 침묵의 계율이 풀렸을 때, 참가자들은 모두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어요. 그때 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거리의 소음 속에서도 음악이 귀에 들어오는 것처럼, 난다말라의 목소리는 특별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성대가 아니라 더 깊숙한 곳, 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았어요. 난다말라와 나는 코스가 끝난 후에도 일주일 동안 남아 꽃밭을 가꾸는 봉사를 했습니다. 그가 인디언 피리를 불어줬을 때, 나는 이 피리소리는 너의 목소리와 흡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다고. 누이여, 그런 동굴은 조심해야 합니다, 라고 난다말라는 말했습니다. 라오스에서 한 서양인 젊은이가 그런 동굴에 혼자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그대로 굶어 죽은 적이 있는데, 몇 년 후 그 서양인 젊은이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은 동굴 탐험을 하던 난다말라와 그의 일행이었다고 했습니다. 헤어질 때 난다말라는 붉은 천에 감싸인 피리를 선물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깊숙하고 어두운 곳에서 길을 잃더라도, 자신의 목소리가 나를 동굴 밖으로 이끌 것이라며. 명상센터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유튜브를 보며 피리를 연습하다가 섬으로 이주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어쩌면 그 인디언이 내 은인일지도 모르겠군요.”라고 당신은 말한다. “연희 씨가 명상센터에 간 것도, 인디언을 만나 피리를 받은 것도, 섬으로 오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가 만날 운명이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럴 지도요.”하고 나는 미소 짓는다. 그때 내가 신경과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종종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든가, 대학 때부터 만난 남자친구에게 도무지 너를 감당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별을 통보받은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나는 모호하고 막연하게 말했다. “당시의 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원칙을 정했어요. 지금의 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보자, 두 가지 선택지가 나오면 언제나 내가 하지 못할 쪽을 선택하자, 라고요. 지금도 이 원칙은 유효해요.”
“연희 씨는 스스로가 얼마나 용감하고 자유로운지 모를 겁니다.”라고 당신은 선언한다.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내 또래의 한국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말한다. 당신의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대부분이 삼십 대 여성이며, 자신의 학벌이나 영어실력에 묘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루이비똥이나 구찌 가방을 들고, 한 명을 배척하기 위해 무리를 짓고, 원장인 자신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를 깎아내리며, 어쩔 때는 자신의 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계속 일을 해온 독신 여성과 결혼 후 육아를 하다 복직한 여성 사이에는 알력 싸움이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기엔 지극히 사소한 이런 문제 때문에 유능한 강사가 어학원을 그만둘 때도 있다. 그리고 학부모들. 아이를 명문대학에 보는 것과 부동산, 재테크를 가장 큰 관심사로 두는 엄마들. “연희 씨는 그런 여자들과 달라서 좋아요.”라고 당신은 덧붙인다. 화장을 하지 않고, 브랜드 상품에 관심이 없으며, 인디언 피리를 불고, 유채꽃과 배추꽃을 구분할 수 있는 여인.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 신비로운 섬의 여인은 누구냐고 친구들이 물으면, 당신은 나를 그렇게 소개한다고 했다.
그러나 물건이 적은 것은 자주 이사를 다니기 때문이고, 화장을 하지 않은 건 피부가 예민해서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뾰루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찻집에서 일해서 받는 돈으로 브랜드 상품을 사긴 힘들다. 그리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지만, 나 또한 영어학원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사 년 동안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실패했으며,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수험을 병행한 시기도 있다. 나는 학원에서 다른 강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예전 지인들과 연락을 끊었다. 당시 나는 흰 벽으로 이루어진 미로를 통과하는 중이었고, 모든 관계는 덫과 같았다. 흰 벽을 지나가기 위해 나 또한 흰 벽이 되었다.
당신이 학원 강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s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나는 즐겨 들었다. 사십대 중반의 s는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땅딸막한 여자로, 암막 커튼처럼 앞머리를 길게 내렸고, 눈빛을 알 수 없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다. 교무실에서는 다른 강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일거리가 없을 때는 혼자 이어폰을 끼고 미국드라마를 보며 키득거린다. 드 라마에 무척 몰입해서 “오, 챈들러, 포기하지 마.”하고 영어로 중얼거릴 때도 있다. 그 미드는 이십년 전에 유행이 지난 것인데, s는 매일 그 미드를 본다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볼 것이라고 다른 강사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다. s는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무감각해서, 노메이크업에 브랜드 가방도 들지 않고, 스파 매장에서 구매한 촌스러운 감색 블라우스와 베이지색의 긴 치마만을 입는다. 당신이 그녀를 해고하지 않는 것은 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완벽한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며, 지난 육년 간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어학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강사이기에, 만약 그녀가 해고된다면 다른 강사들도 자신들이 나이를 먹으면 해고될 것이라 믿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내가 s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한 남자 중학생을 편애한다는 것이지요.”하고 당신이 한숨을 쉰다. 둘이 맥도날드에서 따로 만나 영어 회화 연습을 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s가 총애하는 중학생은 여드름투성이의 남자애로, s는 햄버거 세트를 두 개씩 시켜주고 자신은 입도 대지 않은 채 소년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다고 한다. 그 소년은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다가 무엇을 시키든 “이걸 왜 해야 하나요?”하고 대들어서 다른 강사들에게 심술궂고 머리가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작적으로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틱 장애가 있어서 혼낼 수도 없다. 당신은 부원장을 통해 학원생과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 것을, 아니면 해고의 가능성이 있다고 s에게 암시한다. 부원장은 삼십대 후반의 매력적인 남자이고, 당신은 곤란한 일은 모두 그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자 s는 당신에게 긴 문자를 여러 번에 걸쳐 보낸다. s는 자신의 남자 중학생을 ‘그 천사 같은 아이’라고 부르며, ‘천성적인 우아함, 당신들이 틱이라고 부르는 새의 날갯짓 같은 경쾌한 몸짓’을 길게 묘사한다. A4용지 두 장 가량의 그 문자는 소년을 찬양하는 미문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항변이나 변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오직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새소리를 녹음해서 반복해서 듣거나 나비를 핀에 꽂아 액자에 넣고 몇 시간씩 바라보는 식의 강박적인 즐거움이 담겨 있다. 문자의 말미에서야 s는 부원장이 자신에게 품은 부적절한 감정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는 걸 원장님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쓴다.
그 후로 s는 수시로 당신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자신이 영어강사와 같은 시시한 일을 하는 것은 단지 생계를 위한 것이고, 시를 쓰는 것이 진짜 직업이라고 한다. 당신은 그녀가 등단이나 공모전 같은 공식적인 검증 없이 스스로를 ‘시인’으로 여기고 있는 점을 의아하게 여긴다. “어쩌면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 같은 숨겨진 시인일지도 모르지요.”라고 나는 웃는다. 당신은 s가 자신의 여성적 매력을 오판했듯이, 자신의 시적 재능도 제대로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또한 어느 날 강사들의 주소록을 보다가 그녀가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걸 알았다고, 그 나이의 여자가 혼자 고시원에 사는 게 의아하다는 말도 한다.
당신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 역시 오랫동안 고시원에 살았다. 산책길에 있는 담쟁이덩굴에 감긴 폐가는, 나의 정신이 한 때 황폐한 장소에 머물렀음을 일깨운다. 난다말라와 함께 그 폐가 근처를 지나며 내가 살았던 고시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내 방에는 창문이 있긴 했지만 보이는 것은 옆 건물의 벽과 에어컨 실외기 뿐이었고, 그곳의 복도는 희고 얇은 벽들로 벌집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꼭 미로 같다고. 사람들은 뒤통수로만 존재하다 복도의 어느 모퉁이에서 사라지곤 했고, 나는 복도에서 자꾸 길을 잃어버렸다. 흰 복도에는 늘 김치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고시원의 부엌 겸 휴게실에서 밥과 중국산 김치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모든 끼니를 김치찌개와 김치 부침개, 김치볶음으로 해결했다. 밥을 먹을 때는 부엌의 테이블에 놓인 냄비 받침대로 쓰이는 낡은 여행 가이드북을 훑어보았다. 제목은 <환상의 섬 여행하기>였다. 당시로부터 출판된 지 이십 년이 지난 그 가이드북은 흑백의 페이지들 사이에 빳빳하게 코팅된 페이지가 한 장씩 있어 총천연색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들은 구도나 색감으로 볼 때 전문 사진가의 솜씨가 아니었는데, 초점이 맞지 않거나 관광객의 얼굴이 절반으로 잘려 있는 등 무성의하기까지 했다. 관광객들은 유행이 지난 선글라스를 끼거나 촌스러운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해안 폭포나 용암 동굴, 동백 군락지 앞에서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네 번째로 임용 시험에 떨어지고 얼마 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이드북의 모든 사진-총 오십 한 장-에 똑같은 중년 여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뒷모습으로만 등장하는데, 매번 다른 옷을 입고 헤어스타일도 묶거나 땋는 등 자주 바뀌었지만,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어깨 때문에 같은 여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그 여자는 고시원의 어느 방에서 소름끼치게 들리는 웃음을 터뜨렸고, 복도 모퉁이를 돌며 사라지곤 했다. 이 이야기를 하자 안경을 낀 젊은 남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복용하는 신경과 약을 바꿔보자고 권유했다. <환상의 섬 여행하기>는 내가 다섯 번째로 임용고시에 떨어진 날 고시원에서 사라졌다. 가이드북이 없어지고 그곳에 머문 마지막 반 년 동안 나는 일을 하지도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방 안에서 내가 뭘 하며 지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말을 듣고 난다말라는 볼펜으로 내 이름을 자신의 손바닥에 썼다. “이제 나는 누이의 이름을 손에 쥐고 순례를 떠날 것입니다. 추위와 굶주림은 당연한 일이며 들개와 적들이 여정을 방해할 것입니다. 나무 밑에서 자는 일이 허다할 것이며 나의 외투는 밤이슬에 젖어 축축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그대는 이 커다랗고 단단한 손바닥 안에서 보호받을 것입니다. 지금의 그대 뿐 아니라 과거의 그대도 데리고 갈 것인데, 가장 고귀한 순례길에는 그 하얀 무덤 같은 방에 갇혀 있었다는 그대가 동행할 것입니다. 그러니 누이여, 그대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때 누이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허튼소리였지만, 나는 잠시 울었다.
나는 비행기로 연결된 통로를 걷고, 오직 내보이기 위해 표정을 짓는 승무원들을 지나쳐 B 45번 자리에 앉는다. 비행기 창문 바로 옆이다. 오후 다섯 시.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떠오르는 순간, 나는 언젠가 당신과 산책을 하다 꿩을 만난 것을 기억한다. 당신은 꿩은 날아갈 때 푸드득거리는 소리며 몸짓이 요란해서, 다른 새들의 자연스러운 비행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꿩이 허공으로 솟구치는 순간도 ‘만삭의 임산부가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어딘지 애를 쓰는 느낌이라고. 나는 어릴 때 날아가는 꿈을 꾸곤 했다고 말한다. 꿈속에서 나는 날기 위해서는 부단히 걸어야 한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지만, 나는 태연한 척 걷는다.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 한 걸음이 오 센티 정도 바닥에서 떠오르고, 그 다음 걸음은 십 센티... 그 과정은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처럼 느릿하고 고단하다. 서른 걸음이 지난 후에는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지만, 나는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꿈속 비행에서 나는 점점 높이 올라가지만 마음대로 내려갈 수는 없다.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은 한 가지, 추락뿐이다. 땅에 닿는 순간 둔탁하고 생생한 타격감을 느끼며 내 두 무릎이 꺾이고 몸은 바닥에 뒹굴고, 나는 추락과 동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당신은 내게 좋은 잠자리를 선물해주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푹신한 잠자리를 원하는 건, 꿈의 세계에서 무사히 현실로 착지하기 위한 완충장치가 필요해서지요.” 며칠 후 정말로 두툼한 라텍스 매트리스가 내 방으로 배달된다. 당신은 내게 많은 걸 선물했다. 향수와 화장품, 전자기기, 브랜드 가방. 파리에서 온 그 가방은,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내 월급보다 비쌌다. “당신이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없는 건 알지만, 내 허영심이 당신에게 이런 물건들을 선물하게 합니다.”라고 당신이 말한다. 당신의 선물들은, 독일동화에 나오는 오누이가 숲속에 흘린 빵처럼 나를 어딘가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정표이다. 그 동화는 한때 고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고 숲속으로 들어간 여자가, 돌아올 길을 영영 잃어버린 이야기가 아닌가. 반짝이는 사탕 집을 짓고 혈육도 아닌 아이들을 기다리는 외롭고 추한 늙은 여인. 그 여인의 마지막을 알고 있나. 당신은 결국 s를 해고했다.
“연희 씨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 거예요. 그게 좋아요.”라고 당신은 종종 말했다. 내가 섬에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행복을 증명받기 위해 나는 나의 행복감을 사랑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은 도시에서 온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덧 도시는 나에게 멀고 아득한 곳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하지 못할 법한 일을 하고 있다. 도시로 가는 것. 당신의 청혼에 대한 대답을 손바닥에 쥐고서.
내 발바닥이 구름보다 높아졌을 때, 나는 작은 비행창 너머로 혹시 난다말라가 있는지 살펴본다. 언젠가 난다말라는 자신이 어릴 적 날아다니곤 했다고 고백했다. 나는 웃으며 너는 날 때 수영을 하듯 두 팔과 다리를 휘젓는가, 아니면 바르게 선 채로 움직이는가 하고 물었다. 그런데 난다말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하늘을 나는 사람에게 자세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태아가 어머니의 몸속에서 취하는 자세가 제각기 다르듯이, 라고 그는 덧붙였다. “누이여, 나는 미친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세상과 완전히 연결된 인간만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태아들은 기이한 추락으로 세상에 닿을 때까지, 어두운 하늘을 날아오는 중인 것입니다.”
난다말라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틈틈이 내게 이메일로 소식을 전했다. 그는 오키나와에서 평화 시위에 참여했고, 캄보디아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미얀마에선 잠시 스님이 되었다. 당신은 난다말라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마치 그가 당신의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언젠가 섬에 오면 함께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그러겠노라고 말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년 전 다툰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난다말라와 만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긴 메일을 보내지만 나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그는 종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순례는 종말을 저지하기 위한 발걸음이며, 그가 아시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곳곳의 땅에 축복을 내려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백인은 모두 악마이며, 그렇기에 자신은 미국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란 말도 했다. 나는 난다말라의 정신상태를 걱정했지만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그가 충청도를 여행하다가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아는 스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난다말라가 템플 스테이를 하던 서양인 노부인을 악마라고 욕할 줄은, 품속에서 칼을 꺼내는 시늉을 해서 노부인이 돌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생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서양인 노부인은 전치 이 주를 진단받았고 난다말라는 구치소에서 며칠을 보냈다. 이런 얘기를 나는 당신에게 하지 않았다. 난다말라가 할렘 가에서 자란 것도, 알콜중독인 인디언 아버지에게 혁대로 맞은 날이면 하늘을 나는 망상에 빠져들곤 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외국인 부랑자가 아닌 순례하는 인디언을 친구로 둔 사람이고 싶었다.
난기류로 비행기가 흔들릴 것을 예고하는 방송이 나왔을 때, 나는 휴대전화로 난다말라의 메일 중 하나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읽지는 않으면서 그의 메일을 모두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누이여, 나는 서울의 혼란 속에서 완전히 탈진해버렸습니다. 한국에 왔지만 더는 누이를 찾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나는 약간의 식물이 있는 한 공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오랫동안 명상을 했습니다. 날벌레가 콧구멍에 들러붙었지만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 한 작고 상냥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희미한 아일랜드 악센트가 있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집이 언젠가 누이가 말한 고시원이란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희고 얇은 벽으로 나누어진 벌집 같은 구조... 그녀의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옆 건물의 벽 뿐이었습니다. 침대는 관처럼 좁았고 침대 위에는 옛날에 유행했던 미국 드라마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나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에게 더 친밀감을 느낀답니다.”하고 그녀는 미소 지었습니다. 책상 옆에는 갈색 스프링 노트들이 쌓여 있었는데, 내가 무엇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는 그게 자신이 쓴 시라고,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한글을 읽지 못하지만 혹시 그 시들을 보아도 되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그녀의 스프링 노트 중에 하나를 골라 찬찬히 쓰다듬다가, 가장 마음을 끄는 장을 펼쳤습니다. 나는 그녀가 훌륭한 시인이며, 이것은 내가 읽어본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한국어를 모르잖아요.” 내가 “이것은 새에 대한 시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요, 그것은 새에 대한 시죠. 하지만 새라는 단어는 나오지도 않아요.” 나는 이 노트를 만질 때 새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가로지르는 연두색 새가 보인다고. 새는 자신의 날개로 나는 게 아니라 나무와 바람의 의지에 순응하고 있다고. 그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같다고. “당신은 실은 한국어를 아는 게 아닌가요?” 나는 내가 아는 한국어는 내 이름 밖에 없다고, ‘난다말라’라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노트에 썼습니다. 그녀는 ‘난다’는 fly이고 ‘말라’는 don’t라며, 순서를 바꾸면 날지 말라는 뜻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날지 말라. don’t fly. 나는 그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나는 아직 날아갈 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메일은 난다말라의 망상으로 이어지고, 나는 더는 읽지 않는다. 창밖의 구름은 주황빛을 띠기 시작하고,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는 놀이기구처럼 덜컹거린다. 고도는 22000피트, 시속 820킬로, 김포까지 남은 비행시간은 26분. 당신에게 들고 가던 대답이 어느 순간 바뀌었음을 나는 안다.
첫댓글 산책자들... 참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좋네요. 신선하면서도 삶을 향한 진지한 의문과 자세가 와 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