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보이지 않는 손
(1)
석비룡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젠장, 지독하게도 어두운 곳이군."
다리를 움직여 걷고는 있었지만 응당 느껴져야 할 발에 닿는 딱딱한 대지의 감촉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구름 속을 거니는 듯했다.
"길을 잃어버린 건 확실한데……뭐가 보여야 나가는 길을 찾을 거 아냐?"
석비룡은 아연 긴장한 모습이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그의 눈에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석비룡은 앞뒤 잴 것 없이 빛을 향해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빛이 점점 밝아질수록 불어오는 한 줄기 모진 삭풍이 그의 얼굴을 때려왔다.
바람이 너무 매워, 그는 고개를 숙이며 손을 들어 삭풍을 막았다.
그리고 소매자락을 다시 내렸을 때 벌어진 광경은……
석비룡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가 본 빛은 비가 개인 후 먹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과 같은 서광(瑞光)이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석대 위에는 우람한 체구의 남자가, 그 아래에는 바로 석비룡이 사랑했던 여인 설혜가 깔려 있었다.
그녀의 옷은 갈가리 찢겨져 있었다.
석비룡의 가슴은 격하게 뛰었다.
"설혜! 설혜!"
입술은 떨렸고,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마음 속에서만 외칠 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설혜는 필사적으로 사내를 밀어냈지만 우람한 체구의 사내는 여유 있게 설혜의 허벅지를 좌우로 젖히고 그 다리 사이로 파고 들었다.
"흐흐흐! 설혜,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어, 이미 끝났어."
사내의 목소리는 분명하지 않았다. 마치 지옥 끝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처럼 둔탁한 저음. 귀에 익은 듯도 했고 전혀 낯설은 것 같기도 했다.
"안돼! 멈춰!"
고함과 함께 석비룡은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콰앙!
하늘에서 내리쬐는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든 석비룡의 몸을 가볍게 튕겨버렸다.
퍼퍼퍽!
그는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고, 그 파열음에 설혜도 그가 빛 밖에 있는 것을 보았다.
"비룡! 구해줘! 어서!"
설혜는 울부짖었다.
석비룡은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때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크크크! 네가 누굴 구해주겠다는 거냐? 어림없는 수작!"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두 눈만 유황불처럼 파랗게 이글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손바닥을 쫙 펼치자 장심에서 흰 빛이 쏟아져 나왔다.
"헉!"
석비룡은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발바닥이 마치 바닥에 달라붙기라도 한 듯 꼼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펑!
그의 신형이 빛에 휘말려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마치 전신을 칼날이 단도질 하는 듯한 고통과 아픔. 그러나 그의 가슴을 더욱 저미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설혜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크크크!"
사내는 웃으며 다시 설혜의 몸 위로 엎드렸다.
"안 돼요! 안 돼."
설혜는 몸을 뒤틀며 사내의 어깨를 깨물었지만 사내의 힘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구해줘. 비룡! 날 지켜준다고 약속했잖아!"
마지막인 듯 석비룡을 향해 애타는 손길을 뻗쳤지만 그 손길은 중도에 제지당했다.
"설혜, 너의 몸은 정말 아름다워. 날 마음껏 거부해도 좋아. 하지만……."
사내가 하체를 밀어 올렸다.
"아악!"
설혜의 전신이 작살 맞은 능어인 양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고 그녀의 얼굴은 참담한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사내의 몸이 설혜의 알몸 위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고 설혜의 눈이 흰 동공처럼 변한 채 그녀의 입술 새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석비룡은 두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아아! 신이여! 너무나 잔인하십니다! 신이여!'
"아아아악!"
석비룡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의 얼굴은 땀투성이였다.
"또 꿈이었어?"
꿈은 항상 그랬다. 너무나 생생해 현실처럼 가슴에 깊은 통증마저 느껴졌다.
그가 누워 있는 주위의 풍경은 낯설었다.
'그렇군. 설고웅에게 술을 사오라고 시키고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었지.'
석비룡은 힘없이 나뭇등걸에 등을 기댔다. 쓸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어 늦가을의 여위어가는 숲을 바라봤다.
'세월이 갈수록 악몽은 점점 더 심해진다. 그만큼 내가 초조해진 건가? 그렇군. 그러고 보니 며칠 후면 그 악몽이 시작된 지 꼭 삼 년째로군. 이번에는…….'
그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마차 한 대 분량은 족히 될 정도의 엄청나게 큰 보퉁이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연문성주 용운구가 구해준 약초들이었다.
'준비는 모두 갖춰졌다. 이제는 설혜를 깨우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잠시 후 설고웅이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헤헤……여기 술 사왔어요."
설고웅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술병을 내밀었다.
석비룡은 그가 내미는 술병을 받아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말이 없다.
설고웅은 괜히 뜨끔했던지 당황하며 말했다.
"난, 난 조, 조금밖에 안마셨어요. 정말이예요."
석비룡은 술병을 거꾸로 들어 콸콸 들이 부었다. 그의 눈가에 맑은 한 줄기 이슬이 맺혔다.
'그래…… 설혜. 내 인생을 모두 걸어서라도 너와의 약속은 지켜주마. 반드시!'
갑자기 설고웅이 외쳤다.
"자, 잠깐만요!"
"왜 그래?"
언제 눈물이 비쳤냐는 듯 석비룡의 눈은 어느새 맑아져 있었다.
설고웅의 얼굴은 잔뜩 굳은 것이 언뜻 보기에도 심상찮았다.
문득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싶은 순간,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잽싸게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석비룡은 오른손에는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술병을 꼬나 쥐고 왼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약초보따리를 붙잡은 채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동행을 한 이래 설고웅이 이처럼 날랜 동작은 보인 것은 기루를 찾아갔을 때뿐이었다.
"뭐, 뭐야? 대체 왜 그래?"
설고웅은 정면만을 직시한 채 말하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요!"
"뭐?"
석비룡은 되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설고웅의 짜증스런 목소리였다.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에 한 사람이 위기에 빠져있다구요! 빨리 가지 않으면 큰일 나요!"
석비룡은 멍한 표정으로 설고웅의 얼굴을 쳐다봤다.
황당했다. 오리 밖에서의 상황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상대는 초감각의 소유자인 무극탑신 설고웅이었다.
그리고 석비룡은 설고웅의 감각을 의심할 수 없었다.
"봐요, 내 말이 맞죠?"
그의 말마따나 정확히 오리(五里)가 떨어진 산 속 개울물에 하반신을 담근 채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여인의 모습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무겁지 않은 햇볕 아래 약간 그늘이 져 해쓱해 보이는 얼굴.
긴 속눈썹은 가지런하게 두 눈을 휘장처럼 덮었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입술과 코와 귀 등은 별로 치장하거나 다듬지 않았는데도 점점 그녀의 묘한 매력 속에 빠져들게 될 것 같았다.
석비룡과 설고웅은 땀을 닦지도 않은 채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마치 모이를 기다리는 참새처럼 앉아 여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근데 아우야."
석비룡은 여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고, 설고웅도 똑같은 자세로 대답했다.
"왜요?"
석비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눈에는 이 여자가 사람으로 보이냐?"
설고웅은 눈을 끔벅끔벅하며 고개를 숙여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내려다보고는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이 분명해요!"
석비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가 잘못 본 거야. 맹세코 이 여잔 사람이 아냐! 사람이라면 때려죽여도 이렇게 예쁠 수 없는 거라고!"
그 말에는 설고웅도 수긍했다.
"그건 그래요."
"내가 세상에 기루란 기루는 다 가보고 이쁘다는 여자는 기생은 물론 처녀, 유부녀 가리지 않고 만나봤지만 이런 미모는 처음이야."
그녀가 사람을 홀리는 여우든 귀신이든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답다는 점이다.
(2)
족히 사오십 명은 충분히 앉아서 노름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석실 바닥은 수백 가지 종류의 약초들이 좌악 깔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건 팔황숙(八蝗菽)이고…… 이건 삼목신초(三目神草)…… 구하기 어렵다는 백령삼(栢靈蔘)도 열 뿌리나…… 거기다 구지용근(九芝龍筋)까지……."
비슷비슷한 모양에 흔하지 않은 약초들을 어김없이 찾아내 정리하는 사람은 한 명의 노인이었다.
나이는 얼핏 짐작이 가지 않지만 온통 주름살투성이의 얼굴로 보아 거의 칠팔십은 된 것 같았다.
노인은 연신 허어, 허어! 감탄사를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록 진귀한 약초들을 어디서 이리도 많이 구했는지 참으로 대견한지고……."
그는 대견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의 등 뒤에는 석비룡이 공손하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서 헤벌쭉 웃고 있었다.
"헤헤, 아마 사부님도 이렇게 많은 약초를 한꺼번에 보신 적은 한 번도 없을 걸요?"
"예끼 놈!"
노인은 웃는 낯으로 주먹을 들어 석비룡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아무리 만약사가 한물 간 퇴물이기로 명색이 의원밥을 백 년 가까이 먹은 노부가 이보다 더한 약초인들 못 봤을 것 같으냐?"
그렇다.
이 노인이 바로 석비룡의 사부이며 화타와 편작 이후 최고의 신의(神醫)라고 불리워지는 만약사인 것이다.
"하여간 말도 마십쇼. 오직 사부님을 즐겁게 해드려야 한다는 일념에 끼니 거르길 밥 먹듯 하면서 발이 퉁퉁 부르트는 줄도 모르고 산 넘고 물 건너 온갖 고생을 다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거 아닙니까!"
석비룡은 목소리 끝에 은근히 힘을 주어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다.
만약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명색이 사부가 제자의 속을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설마 이 사부에게 내쉬는 숨조차 거짓으로 똘똘 뭉친 네놈의 흰소리를 액면 그대로 믿어달라는 건 아니겠지?"
"진짜라니깐요?"
석비룡은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약사는 태연히 말했다.
"보나마나 어떤 놈에게 온갖 협박과 공갈을 쳐서 갈취했을 테지. 안 그러냐?"
"절대 그렇게 하지는……."
이렇게까지 오해를 받다니, 누명도 이런 누명이 없었다. 연문성주 용운구가 그저 제 손으로 갖다 바쳤을 뿐인데.
"사부님이 제가 그동안 지내온 생활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 어떻게 지냈기에?"
"한 마디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죠. 무림에는 악인들이 협의지사보다 많고 그러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막 장광설을 풀려고 하는 찰나, 만약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도 네 소문 많이 들었다."
"그렇죠? 사부님도 제 눈부신 활약에 대해서 귀가 따갑도록 들으셨죠?"
석비룡은 속이 아주 켕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가다 중단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말도 있잖은가.
"어찌 귀만 따가웠겠느냐?"
다행히 만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안색은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치마만 둘렀다 하면 다짜고짜 옷부터 벗기려고 환장을 해서 덤벼드는 색광서생이라느니…… 무림맹의 살명부에까지 올라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부는 귀가 아니라 심장이 송두리째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석비룡은 한숨을 폭폭 내쉬었다.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군요. 사실 이 세상엔 남을 헐뜯고 비방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의인은 간데없고 그런 놈들만 들끓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고맙다."
만약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니 마침내 석비룡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핫하! 역시 사부님은 제 얘기를 믿어주시는군요."
"믿어? 허허허!"
만약사는 기가 막히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고…… 수십 년간 세상에 나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네놈 덕분에 이 만약사의 명성이 맛이 간 늙은 색마로나마 사해에 떨치게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다."
"그렇게 심한 말씀을……."
꾸중을 하는 건지, 칭찬을 하는 건지……
석비룡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난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사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후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근엄함이 있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방법이 부정하면 그 또한 옳은 길이 아닌 것!"
"……."
석비룡 역시 진반 농반으로 귀염을 떨던 자세를 바꿔 사부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을 희생시켜선 안되는 게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죄송합니다, 사부님."
석비룡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만약사는 빙긋 웃으며 기죽을 것 없다는 듯 그의 등을 툭 쳐주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너를 믿는다."
만약사는 두 손을 내밀어 석비룡의 두 손을 꾸욱 잡고 자상한 눈빛으로 제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가 알아. 누구보다도 의롭고 다정하며 뜨거운 열정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너라는 것을!"
석비룡은 민망한 듯 쑥스럽게 웃었다.
"에이, 또 왜 그러세요? 부끄럽게……."
"아니야. 백 년을 살아왔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맑고 뜨거운 눈빛을 본 건 팔년 전이 처음이었어. 그 눈빛의 주인은 바로 너였고……."
어느새 만약사의 눈빛은 아련한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만약사라는 이름 하나만을 믿고 찾아온 아이. 그때 석비룡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제발! 제발 설혜를 살려 주세요, 할아버지!"
그때 석비룡의 눈은 샛별처럼 영롱했다.
만약사는 손을 내밀어 설혜의 맥을 짚어보았지만 이미 가망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얘야, 네가 머나먼 길을 온 줄은 안다만 네 부탁은 도저히 받아줄 입장이 못되는구나. 다만 이 여자아이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인술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 그럼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석비룡은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허나 이번에도 만약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석비룡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대들었다.
"왜요? 그냥 눈 딱 감고 절 제자로 받아주시면 되잖아요!"
만약사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언제 죽을지 모른단다. 제자를 거두기엔 너무 늙었어."
석비룡은 그의 다리를 붙잡고 절규를 터뜨렸다.
"안 돼요! 전 무슨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에게 의술을 배워서 설혜를 살려야 한단 말예요!"
만약사는 여자 아이를 돌아봤다.
"설혜? 이 아이의 이름이 설혜?"
석비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지켜준다고 약속했단 말예요. 설혜를 살려야 해요. 설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아름다워요. 절대로 그냥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단 말예요."
만약사의 이마 주름이 깊게 파였다.
"허어, 이렇게 난감할 데가……."
석비룡은 죽음이라도 각오한 듯 굳은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힘을 주어 내뱉었다.
"제발 승낙해 주세요, 할아버지. 만약 거절하신다면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 * *
설고웅은 석실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는 여인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설고웅은 그녀를 간호한답시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머리맡을 지키고 앉아 있었지만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볼수록 점점 그녀의 묘한 매력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형님 말이 맞았어. 이 여자는 사람이 아니야.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예쁠 수는 없어. 맞아! 이 여자는 선녀야. 선녀가 틀림없어!"
이렇게 혼자 묻고 대답하기도 하고, 물수건을 갈아주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부르르르!
갑자기 여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설고웅의 눈이 커졌다.
"선녀가 움직였어!"
그녀의 몸은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팔과 다리가 중풍이라도 앓듯 부들부들 떨렸고, 침상과 석실까지 무너질 듯 흔들렸다.
"이크! 잘못하면 떨어지겠어."
설고웅은 그녀의 양 무릎을 두 손으로 꽉 눌렀다.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이마에는 열이 펄펄 끓었다.
"추, 추워…… 추워……."
여인의 몸은 점점 더 크게 떨렸고, 그녀를 누르고 있는 설고웅의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무슨 힘이 이렇게 세지?"
마치 자신의 손을 퉁겨낼 듯 강렬하게 반발하는 여인의 몸. 그의 힘으로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에잇! 그런다고 내가 놓칠 줄 알고!"
설고웅은 황급히 침상 위로 올라가 여인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맞잡아 깍지 끼고 하반신은 자신의 두 다리로 휘감아 고정시켰다.
쿠쿠쿠쿵!
그럼에도 여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침대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진동을 일으켰다.
급기야 침대는 빠지직! 소리를 내며 수수깡처럼 부서졌고 두 사람은 한 몸이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어느 순간일까?
여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와 함께 엄청난 기운이 설고웅의 몸을 퉁겨냈다.
파팡!
꽈꽝!
앞의 소리는 설고웅이 그녀의 몸에서 퉁겨나는 소리였고 뒤의 소리는 설고웅의 무거운 체중이 가볍게 붕 날아 그대로 석실 벽에 처박히는 소리였다.
"아구구! 선녀가 날 죽이는구나."
설고웅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벌떡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퍽!
이번엔 앞으로 폭 고꾸라지며 이마로 바닥을 찧었다. 누군가 일어서는 설고웅의 뒷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누구야?"
설고웅은 벌떡 일어서며 화를 냈지만 곧 머쓱해졌다.
자신의 뒤에는 형님 석비룡이 손을 허리춤에 올린 채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것이다.
"이 자식이 대체 석실을 부서뜨리려고 작정을 한 거야, 뭐야?"
아닌 게 아니라 석실 안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침대가 부서져 흩어진 나무 판자들이 사방에 뒹굴고 있었으며 설고웅이 날아가 부딪쳤던 석실 벽에서도 돌무더기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있는 것이다.
"그, 그게 아녜요! 전 정말 억울하다구요!"
설고웅으로서는 정말 억울한 노릇이었다.
"서, 선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 떠졌다.
여인은 언제 그렇게 발광을 일으켰냐는 듯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상황이 이러니 어디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 쓸 수밖에.
"앓는 사람에게 핑계를 대려고? 이제 보니 너 정말 혼 좀 나야 되겠군."
석비룡이 소매를 척척 걷어 올렸다.
부르르!
여인이 바닥 위에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석비룡과 설고웅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려 여인을 쳐다봤다.
"거봐요! 아까도 그랬단 말예요!"
떨림의 정도는 조금 전보다 더 심했다.
석비룡은 여인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보기엔 멀쩡한데 어째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가 여인의 가슴 앞으로 손을 뻗칠 때였다.
"물러서라, 비룡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 만약사가 여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석비룡은 여인 앞에 앉는 사부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제가 할 테니 사부님은 구경이나 하시죠."
그러나 만약사는 일언반구도 없이 여인의 가슴에 척,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그의 손바닥이 닿았다 싶었는데 일순간, 만약사의 손뿐만이 아니라 몸까지 폭풍에 휘말리듯 거세게 뒤로 퉁겨났다.
"위험해요, 사부님!"
뒤에 있던 석비룡이 얼른 만약사의 몸을 당기지 않았다면 필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우욱!"
만약사는 크게 낭패를 본 듯 안색은 해쓱하니 핏기가 가시고 있었고 입에서는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다치신 거예요?"
석비룡이 다급하게 물었다.
만약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두 눈만 크게 뜨고 진동을 일으키고 있는 여인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의 입술이 열렸다.
"옥구전(屋九轉)! 전설로만 전해지는 옥구전의 신공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있다니!"
"옥구전이요?"
설고웅의 물음에 만약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옥구전은 말 그대로 아홉 번의 내공전환을 통해 집의 모양이 변하는 것으로, 뱀이 껍질을 벗을 때마다 몸의 크기를 불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기류의 탈피를 통해 내공을 불려가면서 한 번 내공이 바뀔 때마다 무공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것이다."
쿠쿠쿠쿠!
이때 여인의 몸은 마치 강시(彊屍)가 제자리에 뛰는 것처럼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만약사는 말했다.
"지금 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역시 내공전환의 한 과정으로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일곱 번째의 전환단계가 틀림없을 것이다."
석비룡은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전환이 끝나면 내공이 엄청나게 강해지겠군요."
만약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휴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문제지."
"죽음이요?"
석비룡과 설고웅의 입에서 동시에 그 말이 터져나왔다.
만약사는 눈을 지그시 감고 침중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전환시마다 내공은 급증하지만 변환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내공의 운영이 빗나가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옥구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내 짐작이 맞다면 지금 저 아이도 절대 정상이 아니야."
마지막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석비룡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만약사가 제지했다.
"함부로 나설 일이 아니야. 만약 네 내공이 옥구전의 힘에 조금이라도 밀리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석비룡은 빙긋 웃었다.
"그렇다고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습니까? 의술은 인술이라고 말씀하신 사부님의 가르침을 잊었다면 모를까."
"녀석. 말이나 못하면!"
만약사는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곧 정색을 하며 말했다.
"칠종칠금(七從七擒)의 반혈대법(返穴大法)을 쓰면 기(氣)의 운용은 바로잡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인데……."
이때 설고웅이 불쑥 나섰다.
"제가 하면 안 될까요?"
만약사와 석비룡의 눈길이 설고웅의 얼굴로 쏠렸다.
네 능력으로 가능하겠냐? 라는 듯한 눈길을 받자 설고웅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내공이라면 형님보다 자신이 있거든요."
"뭐라고?"
"형님은 지난 백 년 이래 무림최고의 내공을 지닌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설마 그게 너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석비룡은 흥!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설고웅은 진지했다.
"바로 소림의 천률선사(天律禪師)예요. 저에겐 대사부님이 되시고요."
"오십 년 전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림제일신승 천률선사가 네 대사부란 말이냐?"
만약사는 깜짝 놀라 물었다.
설고웅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대사부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내 몸에 그분의 모든 내공을 넣어주셨어요. 그래서 내 몸에는 그분이 넣어주신 사갑자(四甲子)의 내공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구요."
"사, 사갑자씩이나!"
만약사와 석비룡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고웅이 여인의 몸을 덮치는 순간, 만약사와 석비룡은 석실 밖으로 몸을 피신했다.
우르르르……!
꽈과광!
한동안 석실 안에서는 꽈광, 우지끈! 천둥치는 듯 요란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만약사는 석실 입구 쪽으로 쳐다보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저 아이의 내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설마 했는데 정말 옥구전의 힘을 맨몸으로 막아내다니!"
석비룡은 한편으로는 설고웅이 무사할까 염려하는 마음에 초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기가 막혔다.
"새끼! 아무리 여자에 눈이 멀었기로 목숨까지 걸고 저렇게 무식한 방법을 쓰다니……."
만약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 그런 게 있어요."
석비룡은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 한 번 욕정이 발동하면 여자 열 명쯤으로는 양에 차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사부 앞에서 하겠는가?
(3)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침중한 안색의 석비룡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산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산마루까지 뻗은 길은 꽤나 높고 가팔랐다.
그의 걸음은 점점 빨라져 마치 몸에 날개라도 돋친 듯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산을 올라갔다.
산마루에 오르니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우뚝 마주보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두 거인이 씨름을 하는 것처럼 배를 맞대고 서서 산 아래의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두 개의 바위 사이는 시꺼먼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동굴 입구에는 양각(陽刻)으로 현빙별부(玄氷別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비룡은 주저하지 않고 발길을 안쪽으로 돌렸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입구는 점점 크게 벌어졌고, 깊은 곳에서부터 으스스한 한기(寒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늦은 가을철이긴 하지만 얼음이 얼기에는 아직 이른 철인데, 이상하게도 바닥은 완전히 빙판길이었다.
십여 장쯤 안으로 들어갔을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동굴 안에 신기한 세계가 나타났다.
동굴 양쪽은 반들반들한 얼음벽이었고 천정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종유석들이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닥에는 두꺼운 얼음이 깔려 있어서 차가운 기운에 등골이 시려왔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층층으로 사각형의 얼음을 쌓아올린, 높이가 사오 장은 족히 되어보이는 단(壇)이 세워져 있었다.
석비룡은 정면의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단 위에는 수정관이 있었고, 그 안에는 숨이 턱 막히도록 아름다운 여인이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잠들어 있었다.
눈썹은 그린 듯 아름다웠고 속눈썹은 매우 길었다. 입은 매우 조그맣고 콧날은 오똑 서 있었다. 그리고 살결은 눈처럼 희었으며 핏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새벽의 매화라 하더라도 지금 이 얼굴의 아름다움과는 견줄 수가 없었다.
"설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그 모습에 석비룡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손 끝이 그녀의 몸에 닿은 순간 움찔하면서 손을 거둬들였다. 마치 예리한 비수로 찌르듯 싸늘한 한기가 손가락 끝을 찔러왔던 것이다.
설혜가 살아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석비룡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도 넌 그렇게 말없이 누워있구나. 금새라도 일어나 내 품으로 뛰어들 것만 같은 모습이건만…… 벌써 삼 년째 넌 그렇게 말이 없구나."
그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밖으로 꺼내는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손바닥 크기의 동경(銅鏡)이었다.
추혼검객 천일기가 청룡보 보주 갈위량으로부터 회수하여 석비룡에게 주었던 그 신조경이었다.
석비룡은 엄숙한 모습으로 신조경을 설혜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신조경을 통해 설혜의 마지막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닥에 앉아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틀었다.
"신후대길공조태승광(神後大吉工曺太勝光)…… 등명년대(午登明年大)……!"
그의 두 손은 합장을 하듯 가슴 앞에 모아졌고, 입에서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신조경의 빛이여!
설혜의 뇌 속에 남아있는 잠재의식을 깨워라!
신조경의 위대한 힘으로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밝혀다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찌잉!
신조경의 거울 속에서 파도치듯 꿈틀거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윽고 어렴풋이 잡히는 하나의 그림, 그것은 설혜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잔상(殘像)들로 신조경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다.
석비룡은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신조경의 거울 속에 두 눈을 집중시키고 신조경의 주문을 외우는 목소리를 높여갔다.
거울 속 그림의 윤곽도 점점 뚜렷해졌다.
신조경 속에는 달이 떠있었다.
석비룡도 기억하고 있는 달이었다.
밤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달빛이 홀로 교교히 빛나고 있었다.
설혜의 발걸음은 석비룡이 앉아 있는 정자 앞에 이르렀다.
설혜는 그가 혼자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불쑥 나타나 그를 놀라게 하리라 생각하고 살금살금 뒤로 다가갔다.
"웬일로 나타나셨지?"
설혜가 정자에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석비룡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혜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짐짓 골난 표정을 지었다.
"피이! 재미없어."
"이런 내가 모른 척하고 있을 걸."
석비룡은 그제야 그녀의 속셈을 알아채고 머쓱하게 웃었다.
설혜는 여전히 골난 표정으로 석비룡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연못 쪽으로 돌렸다.
연못 속에는 팔뚝만한 비단잉어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설혜의 눈가에 갑자기 그늘이 깔렸다. 그러자 온 세상이 한 순간에 어두워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말이 없어.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것 같은 얼굴인데?"
석비룡은 장난스럽게 툭툭 그녀를 건드렸다.
설혜는 연못 속의 잉어들만 내려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석비룡을 바라봤다.
"나 비룡에게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
"고백?"
전혜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석비룡은 픽 웃고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헤헤! 우리 설혜가 날 사랑하는 거 다 알고 있는데 뭐 새삼스럽게……."
설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내리 깔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농담으로 받아들였을 그녀였는데……
'응? 어째 분위기가 좀 수상한데?'
그제야 석비룡도 지금의 설혜가 어딘가 달라 보이는 것을 눈치 챘다.
설혜는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얼마 전에……."
그 한 마디를 꺼내놓고는 벌써 수줍어 하며 두 볼을 홍시처럼 붉혔다.
"누가 날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왔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뭐, 뭐라고."
석비룡은 너무 기가 막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울컥, 화가 치솟았다.
"누구야? 어떤 자식이 감히 우리 설혜에게…… 그 나쁜 놈이 누구야!"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치자 설혜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러지 마. 비룡. 그는 좋은 사람이야!"
그녀가 편을 들자 석비룡은 더욱 열이 받았다.
"흥! 웃기는 소리군. 설혜, 너도 눈에 뭐가 씌였나 보군. 좋긴 뭐가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흥분하지 마! 난 고백만 받았을 뿐, 아직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단 말야."
"그래?"
그제야 석비룡은 침착을 되찾고 한결 누그러진 시선으로 설혜를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면 분명 비룡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설혜의 말 한 마디에 그는 웃고 울었다.
"내가?"
석비룡은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어림도 없어! 내게서 설혜를 뺏아가려는 놈이 어찌 내 마음에 들 수 있단 말이야!"
설혜는 맑게 웃었고 석비룡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좌묘종괴유해오좌등명미(座卯從魁酉亥午坐登明未)……!"
신조경의 거울 속에 몇 순간의 장면이 다시 흐르듯 스쳐지나갔다.
과거는 언제나 행복하고 아름답지만 그 추억이 석비룡의 가슴을 끊어질 듯 아프게 했다.
"아, 안 돼!"
석비룡은 신조경의 주문을 외우다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신조경의 거울이 흐려졌다가 다시 보여진 것이 바로 용봉배였기 때문이다. 신조경과 함께 현현교의 삼대신물 중 하나인 그것.
석비룡은 신조경의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두 눈을 부릅뜨고 계속 이어지는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혜의 방은 넓었고 꾸민 것도 매우 깨끗하고 우아했다.
방 한쪽에 금과 옥으로 만든 골동품이 서너 점 놓여 있었고, 벽에는 서화폭이 걸려 있었다. 탁자에는 용봉배와 술병이 놓여져 있었다.
설혜의 맞은편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설혜는 섬섬옥수로 용봉배를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
사내는 그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이 술 한 잔이…… 우리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요."
설혜는 흠칫하며 입술에서 술잔을 떼었다.
"그, 그건 무슨 말이죠. 나는…… 나는……."
고작 한 모금을 마셨을 뿐인데 머릿속이 몽롱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모, 몸이 이상해요. 당신 술에 뭔가 다른 것을……."
사내는 의자 위에서 일어나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용봉배의 힘을 빌어 이제 우린 하나가 될 거요. 이제 어느 누구도 우리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할 터…… 모든 걸 내게 맡기시오. 편안한 마음으로……."
"그럴 순 없어요. 내 마음은 이미 비룡에게……."
사내가 그녀의 손에서 용봉배를 뺏어들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마시오."
손목을 꽉 쥔 채 사내는 용봉배의 잔을 그녀의 입에다 갖다 댔다.
사내는 도리질을 하는 설혜의 머리를 붙잡고 입 속에 조금씩 술을 부었다. 술은 목으로 넘어가다 말고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는 용봉배를 들어 자신의 입 안에 탁 털어넣었다.
입 안에 술을 잔뜩 머금고는 설혜의 입에다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설혜는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했지만 그의 입술을 타고 술이 조금씩 입술 속으로 들어와 목젖을 타고 넘어가면서 점점 힘이 빠졌다.
술은 야릇한 향기와 함께 묘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직감적으로 이것이 보통 술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미 거부할 수 없었다.
사내의 입술은 설혜의 입술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자신의 입 속에 가득 들어있는 술을 조금씩 흘려 넣어주었다.
설혜는 이제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팔을 뻗어 사내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내는 자신의 입 안에 머금고 있던 술을 모두 쏟아냈고, 설혜는 입으로 들어오는 술을 마다않고 모두 받아 마셨다.
사내는 설혜의 어깨를 바짝 끌어당기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궁장의 옷깃을 좌우로 제쳤다. 그의 손이 벌어진 옷자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놀라운 것은 설혜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마치 남편에게 하듯이 부드럽게 팔을 벌려 그가 자신의 옷을 벗기기 쉽도록 해주는 것이다.
설혜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사내의 손이 젖가슴을 만졌을 때,
"흐윽!"
설혜의 입에서는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사내는 설혜의 두 뺨과 두 볼과, 이마와 귓볼에 차례로 입술을 비벼댔다.
사내는 달걀의 흰자위 같은 촉감의 입술과 길고 가느다란 목을 입술로 세심하게 더듬어갔다.
이윽고 낮고 동그스름한 어깨에까지 그의 입술은 다다르고 있었다.
사내의 입술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낮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우리는 이대로 영원히 맺어질 것이오."
그의 손이 허리를 묶은 체대를 풀고 치마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따뜻한 아랫배가 만져졌다.
그가 좀 더 손을 아래로 내리자 설혜는 으음, 신음소리를 내면서 스르르 다리를 벌렸다.
설혜는 이래선 안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뿌리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는 설혜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손놀림을 계속했다. 손 끝에 힘을 주거나 늦췄다 하면서 강약을 반복했다. 그러면
설혜의 호흡은 더욱 흐트러졌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가만히 손바닥으로 말아 쥐었다. 힘을 주어 쥐자 봉긋이 솟아오르는 젖꼭지를 입술 끝으로 살짝 물었다.
젖가슴을 마음껏 유린한 다음 사내는 얼굴을 더 아래로 내려 아랫배를 입술로 더듬어 내려갔다.
그의 애무는 더없이 달콤했다.
설혜는 자신이 욕망의 물결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감미로운 감각이 밀려오자 그녀의 온몸이 환희에 차올랐다. 흐음,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대담하게 사내의 어깨에 손톱을 깊이 박았다.
그것은 설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반응이었다.
그의 입술과 손길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깃털처럼 둥둥 떠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으흑!"
짜릿한 느낌이 격랑이 되었고, 격랑은 설혜의 몸을 공중으로 붕 띄워올렸다.
사내의 몸이 설혜의 몸 위에 깊이 가라앉았다.
사내의 무거운 체중이 느껴지는 순간 설혜는 더 이상 사내를 볼 수 없었다.
다만 몸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돌연 절정이 그녀를 꿰뚫었다.
"으윽!"
설혜의 허벅지가 푸들거리며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다음 순간 하복부를 찢는 듯 커다란 통증.
"아흑! 아파!"
설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마치 하복부가 닳아져 없어져 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악!"
설혜의 작고 보드라운 육체는 끊임없는 통증에 격하게 꿈틀댔고, 작은 주사빛 입술은 연신 밭은 고통을 호소했다.
"흐흐흐!"
사내의 웃음소리였다.
그는 격렬한 희열에 몸을 떨며 설혜의 몸을 마침내 자신이 소유한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살을 찢는 고통!
설혜의 몸은 배 째인 잉어처럼 퍼득거렸다.
"흐흐흐!"
그러나 사내는 고통의 괴소를 흘리며 숨가쁠 정도로 허리를 퉁겨올렸다.
놀랍게도 일그러졌던 설혜의 얼굴이 어느 순간 쾌락의 열정으로 들뜨고 있었다.
그 고통의 바다 속에서 열락의 소용돌이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사내의 움직임이 빨라지면 질수록 몸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쾌감은 한없이 증폭되어갔다.
설혜는 순식간에 쾌락의 파도에 휩싸이고 또 휩쓸렸다.
"하아악!"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극치의 쾌감에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었다.
그녀의 팔은 사내의 목을 끌어안았고, 두 다리는 뱀처럼 그의 허리를 칭칭 감았다.
두 사람의 살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설혜는 지금 이 사내의 가벼운 몸짓 하나에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리며 엉덩이로는 크고 작은 굴곡의 쉴새없는 율동을 이루고 있었다.
"해년승광전송종괴후(亥年勝光傳丑從魁後)……!"
설혜와 사내가 운우지락을 즐기고 있는, 신조경 속의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석비룡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턱 아래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고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신조경의 거울 속에는 안개 같은 기운만 넘실거릴 뿐 놈의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 신조경의 빛이여! 제발……제발 놈의 모습을 보여다오! 인년괴묘등명(寅年魁卯登明)!"
신조경의 주문을 외는 메마른 입술은 더욱 높이 주문을 외쳤지만 더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왜 유독 놈의 얼굴만은 보이지 않는 거야! 대체 누구냐? 안개처럼 얼굴을 숨긴 채 모든 음모를 꾸민 네놈은 누구란 말이냐!'
마침내 석비룡은 가슴을 움켜잡고 허리를 숙였다.
커억!
한 움큼 검은 피를 토해내고 가부좌를 튼 채 앞으로 털썩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는 희미해진 의식의 끝을 움켜잡으려는 듯 주먹을 꾹 쥐었다.
"나의 모든 걸 걸고 맹세한다. 기필코 네놈의 정체를 밝혀내 이 모든 한(恨)을 받아내고야 말겠다!"
고개를 들어 설혜를 쳐다보는 그의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약속하마! 설혜, 언제고 넌 다시 깨어나게 될 거야. 반드시……!"
(4)
만약사가 말했다.
"신조경의 힘이 통하지 않는 건 필시 놈이 설혜에게 술을 마실 때 사용한 용봉배 때문일 것이다."
석비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조경만 있으면 모든 비밀이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만약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용봉배와 신조경은 모두 현현교의 삼대신물에 포함된 것들이다. 강력한 용봉배의 영적인 힘이 신조경의 탐조능력을 방해하는 게야."
석비룡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결국…… 용봉배의 행방을 찾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겠군요."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석비룡은 고개를 들어 만약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용봉배 이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만약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혜를 부활시켜 직접 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다."
석비룡은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그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지난 삼 년간 나는 계속 방법을 연구해왔다. 이번에 네가 구해온 약초들을 통해 실험에 들어갈 것이로되, 확률은 삼할 정도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석비룡은 허물어지듯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어떤 것으로도 사부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룡아, 한 가지 네게 말해줄 것이 있다."
석비룡은 고개를 들어 사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나 만약사는 자신이 말을 꺼내놓고서도 다음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뭔가 비밀이라도 감추고 있는 듯 눈에는 깊이 생각하는 빛이 서렸다.
석비룡이 재촉했다.
"제게 말 못할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만약사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놀라지 말거라. 설혜의 몸속에서 놈의 씨가 자라고 있다."
석비룡은 그 말에 아무런 반문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의식을 차리지도 못하는 설혜의 몸에 아기라니? 이게 가능키나 하단 말인가?'
"바로 마지막 그 날의 관계 때문인 듯하구나. 벌써 태아가 상당히 성장한 상태이니라."
'그, 그럴 수가……!'
석비룡은 무표정을 가장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일이 벌써 삼 년 전인데 어찌 지금까지 태아가……?"
"삼 년 전, 그날 이후 설혜는 곧 바로 현빙별부로 옮겨져 만년빙관 속에서 냉동 가사상태로 빠져들었다. 만년빙관 속에선 모든 성장이 멈추지만 태아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삼 년 쯤 후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석비룡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왜 모든 일이 이렇게 꼬이기만 한단 말인가.
하늘이라도 원망해야 한단 말인가?
'신이여, 제가 당신을 저주하길 바라십니까? 신이여!‘
석비룡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 * *
동이 터오고 있었다.
발구름하며 산 너머 고개를 내미는 태양 아래 떠나야 할 사람은 석비룡, 그리고 남아 있을 사람은 설고웅이었다.
"꼭…… 혼자 가셔야 해요?"
설고웅은 혼자 남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 같았다.
석비룡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말했잖아. 매우 급한 일이라서 혼자 가는 거라고……."
"어디로 가는데요?"
석비룡은 손을 들어 해가 떠오르는 동녘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주 먼 곳. 최소한 열흘은 쉬지 않고 달려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설고웅은 입을 삐죽거렸다.
"우리 둘은 의형제이고, 어디든 함께 가고, 무슨 일이든 함께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혼자 가는 법이 어딨어요?"
"그건 사정이 없을 때 얘기고……."
이렇게 얘기를 늘어놓다보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석비룡은 설고웅의 두 손을 움켜잡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꼼짝 말고 있으면서 사부님을 도와드리도록 해라. 알겠지?"
그제야 설고웅은 석비룡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어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석비룡은 환하게 웃었다.
"좋아, 그래야 내 착한 동생이지. 그리고 네겐 지켜줘야 할 여인이 있잖아."
옥구전을 익혔던 여인, 설고웅이 선녀라 부르는 여인은 아직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죽은 듯 잠에 취해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석비룡은 일별을 하고는 갑자기 천길 절벽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렸다.
"아, 안돼요!"
설고웅은 깜짝 놀라 절벽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어 흰 옷을 입은 석비룡의 신형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처럼 수십여 장도 더 되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낙하하고 있었다.
무영비록의 경신술인 말리표풍이었다.
석비룡은 까마득한 아래쪽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휙 바꾸더니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설고웅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 투덜거렸다.
"아아! 난 싸움도 잘하고 내공도 무지 강한데 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재주는 못 배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