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예배자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일터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앞뒤 좌우 계신 분들과 축복의 인사, 사랑의 고백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에게는 성령 충만하여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자들로 하여금 마치 바닷물의 성난 파도처럼 그들의 마음을 심히 요동치게 했던 것이죠. 즉 그들은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서 도저히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막 흥분되고 이거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감정이 막 속 사 오른 것이죠. 더 이상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인해서 베드로와 요란사도가 서 있는 그들을 향해서 이들이 일제히 외칩니다.
형제들이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죠.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서 담대히 선포합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패역한 세대 가운데 그대로 있지 말고 구원받아야 된다. 그러면서 주셨던 말씀,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38절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읽어보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미루어뽀건데, 성령은 누가 받는 것입니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구원받은 사람 이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죠. 회개라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불신앙의 죄, 이곳에서 전적으로 돌아오는 상태를 우리는 회개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고 살았던 불신앙의 삶을 떠나서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인생이 되겠습니다고 돌아오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이죠. 그러니 회개하고 주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회개했다면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마땅한 삶이다. 저 회개했는데요. 그런데 저 주님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말이 맞지 않다는 얘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으셨습니까? 회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당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즉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받은 백성이요. 무려 3천 명이 되었다는 거예요. 놀랍죠. 3천 명이 회개하고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3천 명은 지금 무엇을 선물로 받은 거예요?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이 성령 받은 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순절에 성령 강림 사건과 더불어서 이 3천 명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건, 즉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 인해서 비로소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자랐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처음 세우신 초대교회의 삶,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보시고 우리도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를 꿈꾸며 함께 세워가는 기쁨과 감사가 우리 안에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42절을 한번 보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한번 보도록 합니다. 42절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느라
여러분 이 42절을 쭉 읽어보면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 교회가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구나. 그렇죠 앞에 있는 가르침 교재, 떡대는 거는 다 지워지고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 힘썼구나 라고 느껴지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이 구절을 원어 성경이라든지 영어 성경으로 보시면 초대교회가 힘썼던 것은 기도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죠. 42절의 원문 서두는 이렇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힘썼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힘썼습니다. 무엇을 가르침을 받는 것, 교제하는 것, 떡을 떼는 것, 기도하는 것 이것들을 다 함께 전신전력해서 감당했다는 거예요. 따라서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전심전력했다. 서로 만나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여기지 않고 전심전력했다. 서로 떡을 떼는 일에 대해서 놓치지 않고 힘써서 했다. 함께 기도하는 일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감당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 4가지 기둥, 이 기둥을 잘 세워서 아주 균형 있는 성장을 해갔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흥교회도 이 4가지 기둥이 균형 있게 성장하여서 이렇게 기울어지면 안 되잖아요. 그죠? 교회가 좀 든든하게 평안하게 세워지는 은총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 누구냐는 거예요.그들 전념을 다했던 네 가지 일에 전념을 다했던 그들이 누굽니까? 바로 앞서서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그 해답을 찾아서 회개하여서 성령 받은 사람들이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 그리고 이 사람들에 대해서 44절 서두에는 뭐라고 표현했냐면 믿는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 예수를 믿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분 회개와 믿음, 구원과 성령을 빼놓고서는 초대교회를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떤 변화의 삶을 살았는지 우리 네 가지를 좀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 받은 신도들이 사도의 가르침 받는 데 전념했다는 여러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먼저 사도가 전심으로 전력을 다해서 가르쳐야 돼요. 그래야 되죠. 또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있어서 그들도 그 사도의 가르침 앞에 전심전력으로 나아가야 되는 것이죠. 그래야 가능한 거예요. 가르치는 자가 없는데 가르침 받겠다고 해서 가르쳐지는 게 아니잖아요. 가르치는 자가 있는데 가르침 받는 자가 없다면 그것도 문제 아니겠어요 이처럼 이들은 성령 받고 우리가 배워야겠다 가르쳐 주십시오.
또한 사도들은 야 이들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그러한 마음이 막 솟아오르는 것이죠. 이처럼 초대교회는 가장 중심이 되고 중요시 여겼던 것이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왜 수많은 것 중에 특별히 이제 4가지 기둥 중에 왜 가르침을 첫 번째로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대사명을 주셨죠.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하시죠? 사도행전 28장 19절, 20절에 보면 기록되어 있는데 띄워드릴 테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어떤 대사명을 주셨는지 한번 읽어보실까요? 마태복음입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를 삼기 위해서 세례를 베풀고 그다음에 뭐 하고 있어요? 가르쳐 가르치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죠. 왜 가르쳐야 됩니까? 그 뒤에 나오죠. 지키기 위해서 지켜 행하기 위해서 즉 주님의 말씀을 잘 배워서 그 말씀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이 제자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을 향해서 잘 가르쳐야 된다. 세례를 받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이 열려서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들을 잘 가르쳐서 바르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쳐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셨던 것이죠.
여러분 그러면 가르침이 왜 중요합니까? 이 가르침을 통해서 바른 방향 바른 행동, 바른 삶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말씀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그리고 잘못 이해하게 되면 잘못된 길을 가면서도 그것이 마치 옳은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여러분 유대인들이요.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흡족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예수를 죽이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그 모습이 하나님이 원치 않았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열심은 분명히 있는데 잘못 배운 거죠. 그래서 이 가르침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 이단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달을 이 끝 단 처음은 다 같아요. 여러분 가서 신천지 들어보십시오. 아까 들어보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넘어가니까 처음은 같아요. 다 똑같이 시작해. 근데 끝이 달라 이거지 그래서 처음에 들으면 야 그래 그래 맞아 맞아 그러면서 거기에 이제 빠져든 다음에 나중에 탁 틀어버리니까 벗어날 수가 없는 거 올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바른 길을 가는 것 같은데 끝에 가서는 다른 길에 빠지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직면하게 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교회가 교회 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죠.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그 정체성대로 살아갈 것 아니겠어요? 논문에 보시면 사도는 복수형으로 돼 있고요. 가르침은 단수형으로 돼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12 사도가 가르쳤지만 가르침의 핵심은 한 가지였다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일까요? 따라합시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여러분 그래서 사도행전 초반에 보면 예수님께서 40일을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뭘 가르쳐주셨어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예수님이 이 땅에서 33년 계시면서 3년 사역할 동안 제자들을 불러서 뭘 가르치셨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 가르침 받기 위해 열심을 내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대한 갈증이 좀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생명의 삶 2기 성경 공부 2기 수료식이 있는데 목회자로서 참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성경 공부하자니까 별로 반응이 없어요. 너무 잘 아시는가 봐요.
성경에 대해서 여러분 성경 공부가 앞으로 계셔야 되는 시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든 바른 길, 바른 생명의 길을 가기 위해서 조금 더 성경을 보고 같이 나누는 그 자리에 함께 동참하는 그러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초대교회가 가장 먼저 신경 쓰고 힘썼던 것이 바로 가르치는 사역이었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고 바로 세워졌다. 이것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 신흥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첫 번째 기둥인 이 가르침의 열정인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하실 때 우리 교회 목사님 또한 교육자들이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내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시고 우리도 하나님이 가르침 앞에 가까이 나아가서 함께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독하고 그 진리의 말씀을 알아가는 은혜가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늘 말씀드리잖아요. 우리가 신천지와 대면해서 성경을 가지고 논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예수 믿고 어느 직분이 되었다면 신천지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의 말씀은 가지고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대면해서 싸우지 않더라도 그 정도의 성장과 성숙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여러분 그래서 이 가르침에 배움에 앞장선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서로 교제하는 일에 힘썼다는 거예요. 여러분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죠? 이 교제라는 단어인데 이 코이노니아가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는데 교제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사귀다는 의미이고요. 헌금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정하다는 뜻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성령 받고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들은 먼저 같은 신앙 안에서 서로 영적 교제를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을 서로 나누며 도는 일에도 등한시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44절에 기록된 대로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었다는 거예요. 다 함께 있었다. 성령 받은 신도들이 교제하기 위해 모이기를 힘썼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초대교회는 적어도 이들이 주일만 모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성경에 말씀하죠. 46절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어요? 날마다 마음을 같이 날마다라고 해 날마다 이들은 생활 영역을 끊어낸 거 아니에요 생활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면서 그들의 삶 속에서 구별하여서 날마다 모여 함께했다는 것이죠.
함께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날마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일을 놓치지 않았던 거예요. 날마다 함께 모여 참여하는 일을 놓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즉 이들의 교재 가운데는 예배 공동체, 기도 공동체로 말미암아 영적 교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그래서 건강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모였을 때 영적 교제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본문 44절 45절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어떤 일을 했는가? 시작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았다는 거예요. 토지와 기타 소유물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죠. 이런 것들을 팔아서 필요한 자들과 함께 나누며 서로 공동의 마음을 가졌다는 거예요. 특별히 이것은요. 단회적이거나 특정인만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같은 마음으로 했다는 것이죠. 많은 성도들이 함께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공동체였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에게 함께하시어 성령의 마음이 그들을 주장하신, 야 내가 가진 것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필요를 채워주고 이러한 마음들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서 솟아오른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 바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인용해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설교합니다. 뭐라고 설교했냐면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우리 한번 해보실까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우리 누가복음 6장 38절을 한번 읽어보실까요? 16장 38절 시작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이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주라 그러면 누가 주신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 당시 곡물 시장이 흔히 볼 수 있는 매매 장면을 통해서 남에게 관용을 베푸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상급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이 곡물 거래를 할 때 우리도 돼라는 걸 쓰잖아요. 그때 여러분 시장 가서 대에다 이렇게 담으면 다 깎아서 주는 분 있고 이렇게 풍성하게 넣어서 주는 분 있잖아요. 그리고 막 이렇게 중간중간에 좀 비게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그때 당시 유대 사회에도 죄를 깎아서 불량을 또한 속여서 파는 것들이 일쑤였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눌러요. 막 꾹꾹 눌러서 차고 넘쳐서 흐르게 그렇게 해주시겠다. 누구에게 죽는 자에게 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 그 이상의 것으로 채워주시겠다. 그러기 때문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자문 19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잘 읽어보십시오. 시작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주시리라.
여기 보시면 가난한 자 불쌍히 여기는 것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만 누구에게 꾸어준다고요? 여호와께 꾸어주는 거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죠. 하나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의 후원자가 되어주신다는 거예요. 외면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약을 보면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이삭을 다 거두지 말게 떨어진 거 다 수습하지 않도록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후원하는 후원자시다.
또 다른 하나는 구제는 단지 돌려받지 못할 돈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확실한 대상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여러분 투자해 보시죠. 저는 투자라는 걸 잘 모르는데 들어보면 투자 안 하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고요. 왜요? 이익을 얻기 위해서 투자하잖아요. 그 이익을 얻기 위해서 투자하는데 그 투자는 사실 손해 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 투자하는 거는 손해가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께서 꽉꽉 채워서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이들이 알았기에 이 복음의 삶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이들은 그냥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 도움을 베푸는 것으로 가난하고 연약한 자 실제 필요를 그들이 서로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것들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같은 구제 행위가 오늘 조금 전에 보았던 말씀처럼 하나님께 꾸이는 것으로 해석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빌려준 거 하나님이 갚아주실 때 동생하게 이자를 막 넉넉하게 채워서 보상해 주시겠다. 이게 약속의 말씀이라 그러면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 상금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것만을 위해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될까요? 혹시 이러한 상급이 없다면 이러한 은혜가 없다면 여러분 우리는 아무 의미가 없을까요? 남을 돕는 것에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해줍니다. 히브리서 13장 16절 말씀인데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여러분 뭐하고 지금 연결이 돼요? 제사 어려운 이웃을 베풀며 나누어 주고 사는 것은 소와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8절을 통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 같이 읽어보실까요?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음으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재물이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이요. 사역하는데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받게 되었어요. 사역할 수 있는 그러한 풍성한 자금을 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이것은 향기로운 재물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받아서 자기를 위해서 겠어요? 아니죠. 복음을 위해서 쓰는 그 놀라운 일에 하나님은 기뻐받으시는 재물과 같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담은 진실한 구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와 같다라는 것을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다라고 기록하고자 필요를 따라 이들이 성령 받기 전에는 누구의 피로를 보지 못했던 자들이에요. 자기만을 위해서 내 필요를 위해서 살았던 자들이죠.
그런데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고 나니 이들의 시야가 열리는 거예요. 이 사람의 피로가 있구나 이 사람의 이러한 피로가 있구나 이것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필요를 나누는 일에 그들의 마음속에는요. 막 부담이 고 힘든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누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들의 나눔은 누가 강요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발적인 희생을 통해서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죠. 어쩌면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던 삶을 실제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5장을 통해서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시라 하시며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해주셨어요.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을 하죠.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의 나라를 상속받아라. 하나님께서 예비한 그 나라를 상속받으라. 그러니까 이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줄일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낙은에 되었을 때 영접했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노라.
그러자 의인들이 대답합니다. 아니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때 임금이 이야기하죠.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야. 이 말씀을 이 공동체는 그냥 겉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나누면서 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누군가를 위해서 섬길 때 이들은요. 기쁜 마음과 죽게 하듯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골로새서 3장 23절에 말씀하죠.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라.
에베소서 6장 7절에도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죽게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서로가 어떤 필요가 있는지를 좀 바라보고 그 필요를 서로 채울 수 있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사귐은요. 일방적이지 않았어요.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만 부어줬던 것이 아닙니다. 동반자의 사귐이었어요. 성도들 상호 간에 기쁨을 나누며 슬픔을 나누고 감사를 나누고 말씀을 나눴던 믿음의 동반자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 공동체가 좀 이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기쁨을 나눔으로 인해서 막 배가 되고 할렐루야 슬픔을 나눌 때 막 점점 줄어들어서 그 슬픔이 사라지고 할렐루야 우리의 감사가 나누어짐을 통해서 이곳저곳에서 감사한 일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할렐루야 감사할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있으면 좋잖아요. 여기에서도 감사, 저기에서도 감사 여러분 말씀을 나눌 때 말씀을 살아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한 주간을 보내면서 저에게 기쁜 소식과 좀 마음 아픈 소식이 동일한 날에 찾아왔습니다. 기쁜 소식은 여기 있는 분들 제가 카톡방에 올려놨으니까 다 아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 안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우리 희운 학생이 전국 중학생 야구대회에서 대회 MVP를 탄 거예요. 여러분 그건 굉장한 거죠. 여러분 134개 팀 4,700명이 모여서 시작을 한 거예요. 거기에서 1등한 겁니다. 이거는 어떻게 보시면 되냐면 수능에서 1등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까 야구 선수 중에 답이 됐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데 정말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죠.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교회 성도 중에 그러한 일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
여러분 이 기쁨을 함께 나누시고 축하해 주시고 또한 이 기쁨이 더 큰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우리 신은교회가 다 같이 메이저 리거 할 줄 압니다. 함께 기사하면서 응원하는 거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화요일 날 갔거든요. 선교사님하고 같이 준결승 좀 보러 갈게요. 시작부터 제가 마음이 졸려가지고 앉아서 보는데 제 마음 가운데 내가 그래도 응원하러 왔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이겼으면 좋겠다 하는 말이 제 마음이 간절하더라고요. 근데 이 게임이 참 재미있게 진행되면서 연장까지 가게 됐어요. 1회에 굉장히 큰 위기였는데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연장까지 가게 됐는데 제가 연장 그 순간에도 하나님 이기고 가야 됩니다. 저 이렇게 왔는데 하나님 제가 그래도 기도하면서 이 자리에 있는데 제발 좀 이기게 해 주십시오. 제 마음이 막 졸려가지고 그래서 제가 오면서 선교사님께 선교사님 제가 사실은 그냥 이렇게 보고 응원하러 왔는데 제 마음 가운데 기도가 되더라고요. 그래도 담임 목사가 왔는데 이 집을 가야지 지구 가면 얼마나 서로 좀 서먹하고 어색하고 그러겠나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랬더니 선교사님이 한 얘기가 그 얘기 저도 그랬어요. 목사님하고 선교사 둘이 와서 앉아서 응원하는데 이왕이면 이기고 가야지 같은 마음이 공유가 되더라고요. 하여튼 그렇게 해서 돌아왔는데 참 기쁜 일이었죠.
근데 돌아와서 그날 저녁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들렸는데 우리 우걸정 안수 집사님이 숙소로 사용하던 그곳이 불이 나서 전소가 돼버렸어요. 연소가 됐습니다. 안 계실 때 불이 났으니까 몸하고 차는 이상이 없는데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 거죠.
연락이 왔길래 말씀을 하시더라. 내가 참 막막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러네요. 저도 막막하죠. 이게 도대체 어떻게 아는 것이 인지 그래도 하나님께서 분명히 또 길을 열어주실 거니까 우리 믿음으로 이깁시다 이렇게 말씀하면서 제가 말씀을 준비하는데 그래 믿음의 공동체인데 우리가 이런 것들을 나누고 함께 공유하고 함께 돕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공동체인데 그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흥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누군가가 아파할 때 그들의 피로를 바라보고 함께 세워가는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사도행전에 보면요. 여러분 이들의 코인노냐가 외부를 먼저 향하지 않았어요. 그들 안에 있던 자들에게 서로 나눔이 시작이 되었던 거예요. 그들의 필요를 먼저 채웠던 거예요. 그것이 더욱 확산이 되어서 그다음에 세상을 향해서 흘러갔던 것이죠. 저희 교회가 앞으로 이 구제의 일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그런데 여러분 이게 잘 생각하셔야 돼. 구제한다고 해서 내가 교만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받을 때에도 이거 부끄럽다 생각할 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받아야 돼. 그래야 이것이 아름답게 되는 이것이 교만이나 어떤 자존심이나 이런 것으로 형성이 되면 굉장히 마음 아파지고 속상해집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이땅의 것을 보 그러니까 그러한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건강한 교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마음으로 어디를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이제 흘려보내는 거야 야 저 죽어 있는 저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내가 구제라도 더 해야겠다. 이것이 형성되어질 때 진정한 교회로 발돋움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섬김이 앞으로 우리 안에 서로의 섬김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이루어지고 더불어서 세상으로 흘러가는 그러한 섬김이 있는 우리 신흥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요. 떡을 뗐다라 하는 거예요. 떡을 뗐다 이게 단순히 그냥 만나서 교제하고 나눴다 이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이 떡을 땜에 교제를 시작하면서 어디까지 이르렀냐 성찬의 자리까지 이르는 성찬의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다락방에 모여서 떡을 떼고 피를 나누면서 그러면서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죠. 즉 과거에 주님과 함께했던 그 자리를 기억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우리 주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는 것을 그들의 모임 가운데는 날마다 고백되어졌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모이면 부동산 얘기할 수도 있고요. 연예인 얘기할 수도 있고 세상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모여서 교제할 때 떡을 떼면서 해야 되는 건 무엇입니까? 그래 주님이 나와 함께하셨어. 나에게 복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어요.
그런데 그건 과거뿐이 아니라 오늘에도 이어지며 앞으로도 함께하시는 은혜가 있을 거야. 이러한 고백들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떡을 떼는 그들의 모습. 예수님께서 칠리 떡을 떼시면서 이 떡은 네모한다. 말씀하셨던 그것을 기억하는 여러분 애찬 성찬은요.
그냥 단순히 야 맛있는 거 먹고 즐기자. 이것으로 끝나면 안 돼. 잘 먹고 그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를 하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네 번째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라는 거예요. 여러분 초대교회가 역동성 있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기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인 것이죠. 이들이 모여 기도할 때 그전에는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성령 충만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런데 성령 충만을 받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기도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먼저 성령의 은혜가 없다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이 되어지면요. 여러분 말하지 않아도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게 되는 거예요.
성령 충만했기 때문에 이들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여러분 예수님도 공세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뭐 했어요? 기도하셨어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그 순간을 위해서 뭐 하셨어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잖아요. 이 자리를 내게서 옮겨주십시오. 예수님의 사역 중간중간 힘들고 어려운 순간뿐만 아니라 때를 따라 주님은 그때그때마다 기도하면서 그 사역을 이어가셨다 뿐만 아니죠.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셨어요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오.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기도에 대한 말씀이죠. 또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지막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에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죠. 또한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시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님은 항상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시고 그 기도의 사역들을 이어 가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할렐루야 아닌 것 같으세요 기도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 시는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교회를 움직이는 동력은요. 기도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금요 기도회를 자꾸 강조하는데 저는 이 금요기도회가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엔진이 활동을 안 하면 무용지물이죠. 그림의 떡이에요. 그렇잖아요. 엔진이 돌아가야 그 차의 기능을 하죠. 여러분 아무리 교회가 교회 같아 보여도 엔진 같은 기도가 없으면요. 뭐와 같습니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얘기하잖아요. 마치 그런 거예요. 여러분 뚝배기도 장맛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 기도를 통해서 교회가 어떤지를 세상이 보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교회에 내가 엔진이 되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금요일날 꼭 오십시오. 토요일 날 조금 더 쉬셔도 되잖아요. 금요일날 오셔서 같이 기도의 물을 붙이십시오. 그래서 교회가 역동적 있게 좀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가 이 금요기도회를 통해서 회복되고 이루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내가 기도에 참여해야 되는데 이런 마음이 생긴다면 그냥 자꾸 생각을 자꾸 넓혀가지 마시고 그래 그럼 가야지 하고 오시면 돼요. 이것 하나 재고 저것 하나 재기 시작하면요. 여러분 동참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이렇게 교회들을 좀 살펴보시면 어느 교회는 진짜 막 가르침만 몰두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래서 제자 훈련이 중요하다 이렇게 외칩니다. 어느 교회는 날마다 교재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구제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죠. 어느 교회는요 이 떡을 떼는 즉 거룩한 예식을 강조하는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요 기도만 강조해요. 그래서 기도하면 됐지 기도만 만사통이야라고 말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우리 교회는 이 네 가지가 골고루 잘 생겨하여서 지금보다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발돋움하는 그러한 우리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며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