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3월 블랙야크 100명산 82좌를 위해 올랐던 청량산!
오늘은 블야100 어게인 41좌를 위해 다시 찾았다.
2018년은 10.16km에 4시간 49분
오늘은 10.09km에 5시간 07분 소요!!
청량산은 축용봉을 비롯하여 1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축용봉에서 바라본 좌측의 장인봉(의상봉)부터 우측의 탁립봉의 모습.
가을 단풍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청량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갈래이다
도립공원 안내소에서 우측의 축용봉으로 오를 수 있고
좌측의 장인봉으로도 오를수 있고.
차도를 따라 오마터널 방향으로 진행하다
청량폭로에서 청량사에서 입석에서 오르는 등 다양한 산행로가 있다.
청량산의 봉우리가 12개라 하여 육육봉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시대 이전의 청량산은 불심이 가득한 산이었다.
봉우리 이름도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원효봉 등으로 지어졌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식으로 고쳐졌다.
이후 퇴계 이황이 청량산 봉우리를 중국의 무이산과 연관시키면서
'육육봉'으로 부르는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 장인봉(丈人峯) : 청량산에서 가장 크고 긴 봉우리,
옛날 명칭은 대봉 주세봉이 중국 태산의 장악(丈岳)을 모방하여 명명함
2. 선학봉(仙鶴峯) 장안봉 동쪽에 위치하며 옛날에 학의 집이 있었다고 하여
선학이라 한다고 함
3. 자란봉(紫鸞峰) : 선학봉의 동쪽에 있는 봉으로 난세가 춤추는 형상을 본떠
명명 함
4. 연적봉(硯滴峰) :탁필봉의 서쪽 바로 옆에 있으며, 형상이 연적과 같다하여
붙여졌다고 함
5. 탁필봉(卓筆峯) : 자소봉에서 서쪽에 있는 봉으로 형상이 붓끝을 모아놓은 것
같다하여 명명하였다고 함. 옛이름은 필봉(筆峯)임
6. 자소봉(紫宵峰): 연대(連臺 : 현재 청량사 5층 석탑 앞)의 북쪽에 위치,
옛 이름은 보살봉(菩薩峯)이라 하였다고 함
7. 연화봉(蓮花峰) : 청량사 서쪽에 있는 봉으로 형상이 연꽃 같다하여
연화봉이며 옛 이름은 의상봉 이었다고 함.
8. 향로봉(香爐峰) : 연화봉의 바로 옆에 있는 봉으로 향로와 같다하여 명명 함
9. 금탑봉(金塔峰) : 일명 치원봉, 청량사 동남쪽에 있으며,
3층의 층암절벽으로 형성됨. 5개의 암자터와 어풍대, 풍혈대 등이 있음
10. 탁립봉(卓立峰) : 경일봉의 위 바깥 뒤쪽에 있으며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에 높이 솟아있는 봉우리
11. 경일봉(擎日峰) ·: 청량사 동쪽에 위치. 매년 춘분과 추분에
연대에서 보면 해가 봉우리 정상에 뜸으로 경일봉이라 하였다고 함
12. 축융봉(祝融峰) : 청량사 건너 산 남쪽에 있으며 주세봉이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남악 형산(衡山)을 모방하여 명명하였다고 함
대전을 출발한지 약 3시간 만에 도착한
청량산 도립공원 안내소 입구!
청량지문 입구에는 청량산 입석과 함께
낙동강 예던길이 눈에 들어오고
청량지문을 지나자 마자 퇴계 이황선생의 시비인
독서여유산 시비가 들어온다.
낙동강 예던길은 2016년 5월에 개방한 생태탐방로로
청량산 입구에서 명호면 낙동강시발점 테마공원까지의 9.5km구간으로
선비들이 거닐던 길이라고 한다.
퇴계 이황선생님의 독서여유산 시비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讀書人說遊山似(독서인설유산사) 사람들 말하길 글읽기가 산 유람과 같다지만
今見遊山似讀書(금견유산사독서)이제보니 산을 유람함이 글읽기와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공력진시원자하)공력을 다했을 땐 원래 스스로 내려오고
淺深得處摠由渠(천심득처총유거)얕고 깊음 아는 것 모두 저로부터 말미암네
坐看雲起因知妙(좌착운기인지묘)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 보며 묘미를 알게 되고
行到源頭始覺初(행도원두시각초)발길이 근원에 이르러 비로서 처음을 깨닫네
絶頂高尋免公等(절정고심면공등)높이 절정을 찾아감 그대들에게 기대하며
老衰中輟愧深余(노쇠중철괴심여)노쇠하여 중도에 그친 나를 깊이 부끄러워하네
산행 전 안전을 위해 준비운동을 간단히 하고 출발한다.
청량산 안내소에서 산행 들머리인 청량사 입구가 있는
선학정이나 입석까지는 이런 도로를 따라 거닐어야 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우측에 퇴계 사색길이 눈에 띄어
이곳으로 걸어본다.
이 길을 걷다보면 선학정과 다시 이어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약 1.5km걷다 보면 만나는 명상마당이다.
이곳에서는 청량산의 하늘다리를 볼수 있으며
정자와 넓은 데크에서 쉬어갈 수도 있다.
산길을 걷다 도로로 다시 나와 만난 선학정!
선학정은 청량사 입구이기도 하다.
이곳까지는 약 37분(2.1km)소요되었다.
선학정의 옛 이름은 '모정' 이었는데
앞산에 보이는 '선학봉'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그룹으로 나뉘어져 일부는 입석으로 향하고
일부는 바로 청량사로 올라갔는데
청량사에서 김생굴로 향하지 않고 바로 하늘다리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선학정에서 입석으로 향하는 도로에 펼쳐진 기암괴석!
지나가는 길손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50분(3.0km)만에 도착한 입석!
청량산 휴게소 바로 앞에 있는 입석을 두고 도로와 주차장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청량산 산행은 이곳으로 부터 시작이라도 해도 된다.
입석 앞에 있는 원효대가 구도의 길이다.
2년전에는 이곳까지 왔다가 낙석으로 인한 입산통제때문에
청량사로 하산해야 했지만 오늘은 이곳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
어풍대 아래 자그마한 동굴의 모습이다.
어풍대[ 御風臺 ] 는 청량산 금탑봉(金塔峯)에 있는 대(臺)로
청량산 금탑봉(646m) 중간에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정(鄭)나라 사람인 열어구(列御寇: 열자(列子)를 말함.)가
바람을 타고 보름 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어풍대는 순서대로 저마다 특색이 다른 치원대(致遠臺), 반야대(般若臺),
풍혈대(風穴臺), 요초대(瑤草臺), 경유대(景遊臺), 화암대(華巖臺),
채하대(彩霞臺) 등을 거느리고 있다.
청량산에는 상처를 안고 자라는 소나무를 종종 볼 수 있다.
V모양의 길게 패인 상처는 일제말기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군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하여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자국이라 한다.
이 소나무에는 누군가가 그 아픔을 달래기 위해
장승으로 목각하여 위안을 삼고하 했던 듯 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연화봉이 보인다.
1시간 15분(4.1km)만에 도착한
청량사 주변에 있는 청량정사와 찻집인 산꾼의 집!
청량정사는 조선중기에 안동부사를 지낸 이황의 숙부
송재(松齋) 이우가 청량산에 건립하여 조카인 온계(溫溪) 이해(李瀣),
이황을 비롯하여 조효연(曺孝淵), 오언의(吳彦毅)를 가르치던 곳이다
청량정사 앞에 있는 이 고목(느티나무)는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나무속에 한국 여성을 넣어서 불태워 죽인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한 600여던 나무로
2019년 7월에 내린 호우로 인해 쓰러졌다고 한다.
1시간 25분(4.5km)만에 도착한 청량사!
청량사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기 위해
연등으로 물들여 있다.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 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청량사의 법당인 유리보전은 창건연대가 오래되고 짜임새 있는 건축물로 인하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은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께서
입산수도 한곳이라 의상봉이라 불리며,
이곳을 비롯해 보살봉, 연화봉, 축융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금강대 등 12개의 대와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청량사에는 불교의 우수한 유적 건물이 많았으나
어느 때인가 소실 등으로 인하여 거의 없어지고 현재 신라시대
대찰의 모습은 없지만 망월암 등 33개 암자가 있었던 유지가 있고,
문수보살, 지장보살,16나한등이 봉안되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기도처로서
손색없는 도량의 모습을 띄고 있다.
청량사 좌측의 등산로를 따라 약 800m오르면 바로 하늘다리 아래
뒷실고개로 오를수 있지만 김생굴이나 자소봉을 볼수가 없다.
우측의 김생굴 방향이나 웅진전을 거치면 약 2시간 정도
더 소요되지만 12개의 봉우리중 전망이 제일 좋은
자소봉을 오를수 있는 매력이 있다.
김생굴을 향해 이동하던 중 본 돌덧널무덤
깬돌(割石) 또는 냇돌(川石)과 판돌(板石)을 섞어 쌓은 무덤으로
‘할석묘(割石墓)’ 또는 ‘석곽묘(石槨墓)’라고도 한다.
돌널무덤(石棺墓)의 하나로 분류하기도 하며 청동기시대 한반도 일부지역에서
조영된 무덤형태이고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나타나는 무덤이나
주로 청동기시대의 것을 지칭하고 있다.
돌덧널무덤(石槨墓)은 해발 5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대에 주로 분포하며
돌덧널 안에 나무로 짠 널(木棺)을 넣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반도 지역에서는 대전 괴정동에서 1967년에 발견된 것이 처음이다.
풍화암반층(風化巖盤層)에 움을 파고 괴석(塊石)을 쌓아
네 벽을 만든 구조로 바닥에서 나무조각이 발견되어 나무널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같이 돌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며,
돌덧널 안에 나무널을 넣었고, 청동유물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공통의 특징을 갖고 있다. 돌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세형동검 시기의 것들이 주류를 이루며 부장유물의 질과 양이
우수하다는 점에서 당시 상류계층의 무덤인 것을 알 수 있다.
돌덧널무덤은 한반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주 묘제의 하나로
고인돌무덤과 공존하면서 고인돌 무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소멸된 것으로 보고 있다.
1시간 44분(5.0km)만에 도착한 김생굴!
김생굴은 경일봉(擎日峰)의 아래, 환선봉(喚仙峰)의 동쪽에 있는데
굴속은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신라 명필 김생(金生, 711~791)이 10년간 이곳에서 글을 익힌 곳이다.
그러므로 김생굴(金生窟)이라고 부른다.
동쪽에는 돌 가운데 샘이 있는데 똑똑 물이 떨어져 내려와
물소리가 바위 사이를 울린다.
서쪽에는 탁필봉(卓筆峰)이 있어 뾰쪽하게 붓처럼 솟았는데,
비가 와서 새로 목욕을 하고 허공에 서 있는 듯하다.
세상에서는 김생이 그 모습을 보고 서법을 배웠다고 전한다.
굴 앞으로는 김생암 터가 남아 있으며, 굴 옆으로는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김생폭포가 있다.
김생폭포는 장마철에 여러 계곡의 물이 합류하여 폭포를 이루어
오산당(吾山堂)에서 바라보면 장관이라고 한다.
송재 이우(1469~1517)가 쓴 시의 한 구절인
‘옥홍횡음간중천(玉虹橫飮癎中泉)’ 이라는 표현에서
김생폭포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옥홍횡음간중천(玉虹橫飮癎中泉)은
폭포에 진 무지개가 거침없이 샘물을 마시는 듯한 모양으로
표현 한 듯 하다.
김생굴에서 바라본 청량사의 모습..
김생굴에서 경일봉 방향으로 이동하려다
입산통제 되어 있어 오늘도 경일봉은 가지 못하고
자소봉 방향으로 향한다.
자소봉 방향으로 오르는 구간에는
이미 계단이 설치되어 있는 구간도 있으며
설치하려 준비중인 곳도 있다.
어느 정도 오른 이곳에서 자소봉까지는 200m구간이지만
그 거리는 심적으로 무척이나 멀다.
계단을 설치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페인트 냄새가 코끝을 찡그리게 한다.
지난번 광덕산에서 보았던 딱다구리를 오늘도 볼수 있었다.
이 딱따구리는 청 딱다구리 인듯 하다.
자소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별로 오르고 싶지 않은 계단.
올랐다가 다시 내려 와야 한다.
청량산에서 가장 높은 자소봉
자소봉 전망대에서는 영양의 일월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을 제공해 준다.
옛 이름은 보살봉(菩薩峯)이라 하였다고 한다.
제일높은 봉우리른 실제 오를 수 없다.
그냥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자소봉을 내려와 장인봉으로 향한다.
장인봉까지 두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실제 한시간 이면 이동할 수 있다.
청량사에서 또한 이곳 까지는 1.5km의 구간이다.
트랭글과 이정표가 서로 상이하다.
자소봉 바로 옆에 위치한 탁필봉(卓筆峯) 은
자소봉에서 서쪽에 있는 봉으로 형상이 붓끝을 모아놓은 것
같다하여 명명하였다고 하는데 옛이름은 필봉(筆峯)이다.
형상이 연적과 같다하여 붙여진 연적봉(硯滴峰) 은
탁필봉의 서쪽 바로 옆에 있으며,
이곳에서의 전망또한 장관을 이룬다.
바로 앞에 있는 저 바위가 탁필봉이다.
연적봉에서 바라본 갈 수 없는 향로봉과 연화봉 일대의 모습.
저 곳또한 다리를 연결하여 갈수 있다면 나름 괜찮을텐데..
연적봉에서 자란봉을 가기 위해 내려와야 하는 철제사다리..
내려오는 경사도가 아찔하다.
3시간(6.8km)만에 도착한 뒷실고개(청량사 삼거리)
청량사에서 이곳으로 바로 오를수 있는 구간이다.
앞 팀은 위와의 거리가 약 2km(약 1시간 30분 정도) 단축한 셈이다.
뒤실고개에서 가볍게 자란봉을 오르고 나면
선학봉과 연결되는 하늘다리를 만난다.
이곳은 자란봉이고 앞에 있는 봉우리가 선학봉이다.
이 하늘다리를 건너 선학봉 아래 좌측으로 하산하는 길이
청량폭포로 이어지는 길이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폭 1.2m 높이 70m에 위치한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량으로
2007년 4월부터 시작하여 2008년 5월 설치하였으며
최대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선학봉에서 장인봉을 가기 위해서는
하산했다가 다시 올라야 한다.
급경사인 이 철제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데
내려오시는 분들을 보니 금강대에서 오를때의
고생함이 스쳐 지나간다.
3시간 35분(7.6km)만에 도착한 장인봉!
높이 870m로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솟아 있다.
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다.
1982년 8월 봉화군과 안동군 일대 48.76㎢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며
2007년 3월 13일 명승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선학봉·자란봉·자소봉·
탁필봉·연적봉·연화봉·향로봉·경일봉·금탑봉·축융봉 등
12봉우리(육육봉)가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으며,
봉우리마다 어풍대·밀성대·풍형대·학소대·금가대·원효대·반야대·
만월대·자비대·청풍대·송풍대·의상대 등의 12대(臺)가 있다.
산속에는 신선이 내려와서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
선녀가 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으며,
27개의 사찰과 암자 터가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청량사유리보전(내청량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에는
약사불을 모시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리고 신라시대에 창건한 외청량사(응진전),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공민왕당(恭愍王堂),
공민왕이 쌓았다는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4호) 등 역사적인 유적지도 많다.
장인봉의 글씨는 서예가 김생의 글씨라고하며,
뒷편은 조선중기의 문신 주세붕 선생님의 시 라고 한다.
블랙야크 명산100 어게인 41좌!!
산행을 같이한 18명의 산우님들..
오늘 처음 명산 100도전을 하신 산우님도 계신다.
장인봉에서 전망대로 하산하는 길에 설치된 301개의 철제계단.
내려가는 길도 힘든데 이곳으로 올라오는 길은 더욱더 힘들듯 하다.
그래서 안내소에서 금강대로 오르는 코스는 정말 권하고 싶지 않다.
노부부의 전설이 있는 할배 할매송
좌측이 할배송이고 중간의 구부러진 나무가
할매송 이라고 한다.
어르신들의 새우 같이 휘어진 등을 연상시킨다.
나무의 전설은
옛날 청량산에 약초를 캐며, 비록 자식은 없으나 금슬 좋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병들어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약초를 캐러 간
할머니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할아버지가 아픈 몸을
이끌고 한참을 찾아 혜매었지만 결국 찾지 못하다가
금강대 절벽에 매달려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막 떨어지려는 할머니 손을
겨우 잡았으나 할아버지는 힘에 부쳐 결국 노부부는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하늘도 이를 안타깝게 여겨 노부부가 떨어진 자리에 그들의 모습을 닮은
애틋한 소나무 한쌍이 자라게 되엇다고 한다.
할배할매송으로 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금강굴.
금강굴 주변은 금강대 이다.
금강굴은 수십명을 수용할 수 있고, 비바람을 면할 수 있으며,
그윽하고 고요하여 독서하며 수양할 수 있는 장소로
퇴계의 급문제자였던 성재 금난수가
1566년 한 달간 이굴에서 공부한 바 있으며,
정안이라는 승려가 수도하며 머물럿던 곳이라고 한다.
금강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지금도
구들장과 기와 조각이 있다고 한다.
1579년 청량산을 유람했던 갈봉 김득연의 기록에서
당시 금강굴과 금강암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전해진다.
금강굴 주변에 있는 연리지.
통상 연리지는 두개가 합쳐지는 것인데
여기는 세개의 줄기가 합쳐져서 삼부자송(三父子松)이라고 한다..
청량산 장인봉 아래에 있는 금강암에 어떤 부부가 세상의 풍파를 피해
들어와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었는데, 부부는 금강암 아래에 있는
엽광동(葉廣洞, 입너비)의 산비탈을 옥토로 바꾸면서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혼인한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였는데
어느날 엽광동으로 가는 길목에 세 갈래로 뻗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고 밭일을 하러 오가며 자식을 바라는 열망을
소나무에게 지극정성으로 빌어 쌍둥이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부부는 이 소나무의 이름을 '삼부자송'으로 명명하고
정월 보름과 칠월 백중을 맞아 정성스레 당산제를 올리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제 거의 다 내려온 듯 하다.
이 계단을 보는 순간 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봉화군을 상징하는 탑으로 원점회귀하면서 산행을 마친다.
가을날 단풍을 보러 다시 와야 할 듯 하다.
오늘도 클린산행과 함께^^
뒷풀이는 청량산 상가주차장내 있는 쉼터민박에서..
맛집 이라고 소문난 곳인데
약선 비빔밥이라 해서 그런지 일반 비빔밥과 차이가 난다.
산나물전 또한 새로운 맛이지만
지역을 찾은 기념으로 맛볼 만한 정도이다...
모두를 허기가 왔는지 한그릇의 비빔밥을 뚝딱 하시고
산나물 전에 젓가락이 분주히 움직인다.
비빔밥의 양이 적은 것일까?
가을 날 다시 와야 할 청량산의 모습을 뒤로한채
산행기록을 마친다..
#명산기행 #봉화_청량산 #청량산도립공원 #청량산_하늘다리
#청량산_산행코스 #낙동강예던길 #청량산_퇴계사색길 #청량산_어풍대
#청량정사 #청량산_청량사 #돌덧널무덤 #청량산_김생굴 #청량산_하늘다리
#청량산_금강굴 #청량산_삼부자송 #청량산맛집
#블랙야크명산100 #클린산행 #블랙야크셰르파 #마운틴셰르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