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그리스도의 편지 2022.7.31.
말 씀 : 설교제목 고린도후서 3 ; 1~5 설교자 ; 김동호목사
1.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있는 바라
3.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늘 하나밖에 없습니다.
너희들은 늘 기쁘면 좋겠어. 늘 만족하면 좋겠어. 감사하며 살면 좋겠어.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뜻과 소원도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잘 살려고 공부하고, 잘 살려고 돈 벌고, 우리는 잘 살려고,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잘 사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몇 사람에게 묻습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물었습니다.
무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을까요?
1등 그럭저럭 삽니다.
2등 마지 못해 삽니다.
3등은 무엇일까요? 죽지 못해 삽니다 잘 아시내요~ (웃음바다)
제가 여러분에게 물어 볼테니까 정직하게 대답해보세요
속으로 대답해도 됩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이게 절대로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행복하지요. 감사하지요. 천국에서 사는 것 같지요.
이게 좀처럼 쉬운 대답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잘 살려고 애쓰는데 우리는 물으면 그럭저럭 살아요. 마지 못해 살아요. 심지어 죽지 못헤 살아요. 밖에는 대답을 할 수 없을까요?
굉장히 중요한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잘산다는 개념 정리가 잘못되어서 그래요
여러분 절 살려면 잘 산다는 개념 정리가 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잘사는 것인데 저것을 잘 사는 것이라 착각하면 게임셋입니다.
잘살려면 이 길로 가야 하는데 착각해서 자꾸 저쪽으로 갈려고 하니까 여기로 가도 못사는 것이고 저기로 가도 못사는 것입니다.
저의 큰 아이가 초등학교 때 친구 집을 다녀오더니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이빠! 아빠! 우리 친구 집에 갔다가 왔는데 되게 잘 살아요” 하며 <되> 자에다 힘을 많이 주었어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자가용이 두 대야” 그 때는 자가용이 한 대 있으면 부자였을 때입니다.
“그리고 집에 풀장이 있고 집에 tv 카메라로 도둑을 경비해”
35 ~ 40년 전의 이야기이니까 놀래 가지고 되~게 잘 산다고 그랬습니다.
그 때 제가 굉장히 중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매우 중요한 말을 잘못 알고 사용하고 있구나
자가용이 두 대, 풀장, tv 카매라로 도둑을 경비하는 집을 보고 와서 우리 아들을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되게 부자예요~!” 부자라는 말을 써야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부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잘 살아요”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렇게 말을 하거든요
돈 많은 사람을 잘사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돈이 좋아요? 싫어요? 저는 목사인데도 돈 좋아합니다.
세상에 돈 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겁니다.
돈이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직한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돈이 뜻밖에 우리를 잘 살게는 못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돈이 있으면 잘 살고 돈이 없기 때문에 못산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고 돈이 없으면 불행할 것이라 생각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1951년생입니다.
전쟁 중에 태어난 피난민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할 때 태어났습니다.
가장 가난할 때 태어나서 이제 70이 조금 지나니까 이제 소득이 3만불, 4만불, 하는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들어섰습니다.
이렇게 살 줄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태어나서 세계 바닥이었다가 세게 10위권으로 올라간 경험을 한 세대는 한국의 저희 세대밖에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는 바닥이었는데 죽기 전에 세계 10위권에 올라간 이것은 세계 역사에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행복할까요?
구태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잘 산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 때문에 그랬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을 존귀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2005년1월달 독일에 집회가 있어서 인천공항에 깄는데 그 때 큰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공군 통역장교로 있을 때인데 계룡대에서 전화가 왔어요
뜬금없이 아버지! 축하드립니다. 무슨 좋은 일있느냐 물었더니 올해 할아버지가 되시겠습니다.
제가 외아들로 자라서 외로웠는데 손주가 생긴다는 말에 공중부양이 되더군요
부웅 떠서 발이 땅에 닫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독일 집회를 갔다 와서 아들 며느리가 초음파 사진을 가지고 와서 보여주었습니다.
보니까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를 2.8cm조그만한 사진이었습니다.
제가 그 날 홈페이지에다 글을 썼습니다.
우주보다 더크고 귀한 2.8cm!!
그 날 우주가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그 작은 사진을 보고 황홀해서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우주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얼마나 귀하게 창조하셨는가 하면 천하보다도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도 크고 귀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천하를 다 얻어도 채워 지지가 않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가 천하보다 크니까
행복하다는 말은 만족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내 삶의 크기를 천하보다 크게 만들어 놓셨습니다.
때문에 천하를 다 얻어도 채워지지가 않는 겁니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채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불만이 생기는 겁니다.
아무리 채워도 다시 목마르고 다시 배고프고 다시 채우고 싶은 것이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많다고 잘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떼 생활 환경조사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나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질문이 웃겼어요
너네 집에 라디오 있느냐? 선풍기 있느냐? 탤래비젼이 있느냐? 냉장고 있느냐?
뭐 있으면 부자 였을까요?
그 중 아무 거나 있으면 부자입니다.
선풍기 하나만 있어도 부자였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동네에 텔레비전 한 대밖에 없을 때었어요
그래서 김 일 레스링할 때면 그거 보려 가곤했습니다.
지금은 뭐 있으면 부자인가요?
지금은 뭐가 있으면 부자라고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전에는 선풍기 하나만 있어도 부자 소리 들었는데 이제는 자가용이 있다고 해도 그 자가용이 슈퍼카라면 몰라도 부자라 하지 않아요
자가용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이렇게 달라졌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우리의 생각처럼 특별히 행복하게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에릭 프럼 이라고 하는 분이 <소유냐, 삶이냐> 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보면 인간을 두 유형으로 나눕니다.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 ”having mode, being mode”그렇게 이야기해요.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to have” 소유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거기에 속해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하는 것, 그리고 돈 많은 것을 잘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형적인 소유형 인간의 특징입니다.
존재형의 인간은 어떤 인간인가? 하면
소유를 무시하거나 얕보지는 않는데 삶의 의미와 궁극적인 목적을 인간답게 to be 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존재형의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잘 사는 것은, 구원은, 소유 가치에 있지 않고 존재 가치에 있어요
나라는 존재가 가치가 있어질 때 행복한 것이고 잘 사는 것이고 구원을 얻은 것이지 내가 무엇을 먹느냐, 마시느냐, 년봉이 얼마냐, 강남에 사냐, 강북에 사냐, 하는 이것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부자일까요? 안 믿는 사람이 부자일까요?
사람 나름이예요 그것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부자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요?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예수 잘못 믿어서 그렇다고 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그것은 진짜 이단입니다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왜냐면 가난한 사람을 설명할 길이 없거든요.
자기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을 예수 잘못 믿어서 그렇다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성경적인 가치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부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 중에 부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나름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부자 되지 않습니다.
하나 또 물어보죠?
예수 믿는 사람이 건강해요? 안 믿는 사람이 건강해요?
예수 믿는다고 다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암이 세 개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 목사님은 무슨 죄를 지어서 저렇게 암을 세 개나 가지고 다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상당히 골치아픔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 중에도 건강하지 못한 사람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 중에도 백살 넘어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건강해진다고 잘못 생각하면 생사람을 잡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유가치에 속한 것하고 믿음하고는 꼭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를 무엇하러 믿지?
난 예수 믿으면 부자 되는 줄 알고 교회 나왔는데~
아니요, 예수를 믿으면 소유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가 높아져요
예수를 믿어도 가난할 수는 있지만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다 잘 살 수 있어요~
이것이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안 믿고는 절대로 잘 살 수 없어요~
예수 안 믿고 부자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 믿고 잘 살 수 없어요, 구원얻을 수 없어요, 항상 기뻐할 수 없어요
그러면 왜 예수를 믿어야 잘 살 수 있나요?
제가 소유 가치와 존재가치 란 말을 했습니다.
존재가치가 높은 것이 잘 사는 것인데 존재가지가 언제 높아지느냐 하면
존재 목적대로 존재할 때 존재가치가 높아집니다.
모든 존재는 목적이 있습니다.
존재 목적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마이크가 존재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작은 목소리를 크게 확장하는 거예요
이 마이크는 존재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장이 날 거예요
고장이 난다면 존재 목적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얘기하는 겁니다.
목적을 잃어버리는 순간 마이크는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존재가치는 존재 목적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잘 살려면 목적대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면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는데 한 번만 더 가겠습니다.
모든 존재의 목적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예외입니다.
모든 존재의 목적은 존재로부터 말미암지 않아요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마이크의 존재 목적은 이 마이크가 스스로 가지고 나왔습니까?
마이크를 만든 사람이 부여했습니까?
마이크를 만든 사람 부여했습니다.
시계는요? 시계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는요? 김동호의 존재 목적은 김동호가 결정하는 거예요?
김동호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신 것이 우리가 잘사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을 잘사는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입합니다.
저는 주기도문을 참 좋아합니다.
제가 주기도문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짧아서 입니다.
짧은 데도 완벽합니다.
완벽한 기도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 스케일이 아주 큽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중에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첫 번째 기도가 스케일이 너무나 커요
하나님의 나라를 달라고 해라! 나라를 통째로 달라고 그래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연봉이 아닙니다. 강남 아파트가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하고 비교가 되겠습니까?
왜 너희는 강남 아파트는 욕심을 내면서 하나님 나라는 욕심을 못내느냐?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해라!!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구원입니다,
거기는 항상 기쁘고 늘 감사한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해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존재 목적대로 존재하는 상황이니까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제가 77년도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한 일 년 가까이 연애를 했는데 그때는 이메일이 없을 때로 손편지 쓸 때입니다.
편지를 보내고 기다리고 하던 낭만이 있을 때였습니다.
편지를 쓰는데 저의 글씨가 악필에 가까웠습니다.
그래도 연애하기 전에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까 글씨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글씨 하나라도 예쁘게 써 보내고 싶었으나 그게 안 되어서 글씨 연습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편지를 쓰다가 “편지”라는 시를 쓰게 되었어요
그 시를 써서 보냈더니 아내가 그 시를 읽고 저와 결혼하게 되었어요
<편 지>
깨끗이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
진심이고파 아름답고파
썼다가 지우고 또 썼다가 지우고
마음 같이 써진 편지 마무리하다
그만 잘못 써진 편지 하나
쭉쭉 두줄 그어 지워버리고 계속 쓰면 될 것을
다시 손 씻고 와 처음부터 쓰는 편지
당신께 쓰는 편지
그 편지에 홀려서 저에게 시집왔습니다.
우리 아내가 인정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내 마음은 진심입니다.
지금도 목회하면서 어려운 사람이 많지만 우리가 목회할 때는 목사가 자가용 타고 목회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때였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가난은 각오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신 나한테 시집오면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줄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아무 것도 보장하고 약속할 수 없을 때, “열심히 살아서 삶의 열매가 맺히면 그것 당신 줄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게 그 편지입니다.
제가 실제로 우리 아내에게 연애편지 쓸 때 그런 마음으로 썼습니다.
손 씻고 와 두 줄 그어 지워버리지 않고 다시 손 씻고 와서 성경 필사하는 서기관처럼 경건하게 내 삶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 그 마음이 좋았습니다.
제가 신대원 졸업반이었을 때 아내에게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되고 내 삶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 때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가 있잖아요
같은 줄 알았더니 어느 날 보니까 한자가 틀립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한 것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제가 이야기한 것은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입니다.
둘 다 좋아요 그런데 어느 게 더 좋을까요?
그리스도의 편지가 더 좋은 것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가요?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는 내가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입니다.
쓰는 사람은 나, 수신은 예수님, 내용은 내 삶으로 그것이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는 내가 쓰는 편지가 아닙니다.
누가 쓰는 편지냐 하면 예수님이 쓰시는 편지입니다.
누구에게 쓰는 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에게 편지를 쓰시는데 그리스도 예수님이 쓰시는데 내용이 나입니다.
너 김동호 목서 알아, 김목사가 이랬어, 그래서 난 김목사가 좋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다 보면 어느날 드디어 마침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겠구나
돈 많은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것이 꼭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다면 그게 잘 사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서 이는 내 마음과 합한 자야, 내 마음에 꼭 들어,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잘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께 쓰는 편지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그리스도의 편지와 같은 뜻으로 표현된 것이 성경에는 또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라“
저는 기독교 교육을 공부했습니다.
저의 목회의 목표 중 하나가 학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은퇴하게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천안에 대안학교를 하나 세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으로 시작한 학교가 지금은 고등학생까지 있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대안학교는 학교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 해서 저는 ”높은 뜻 씨앗 스쿨“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뜻 씨앗 스쿨이 생겼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목회 사역의 목표를 거푸집에 두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거푸집 역할을 해야합니다.
거푸집이라는 것은 시멘트 콩크리트를 할 때 틀이 있어야 그대로 모양이 굳잖아요
이제는 내가 시멘트 노릇하면 안돼,
나는 거푸집하고 후배들이 자리 잡고 나아갈 수 있도록 나는 거푸집 역할을 해야지,
하고는 오십 넘어서는 제 목표를 거푸집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할 때도 개척교회를 했는데 부목사님을 데려가서 내가 담임목사를 2년동안 했는데 한달에 두세번 내려가 설교하는 것 외에는 모든 일체를 부목사님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삼 년 되는 첫 주일부터 부목사님이 담임목사입니다.
그렇게 바톤을 넘겨주었어요
지금까지 담임목사 목회를 잘 하고 있있습니다.
학교도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초대 교장이었지만 교감을 세워가지고 실제로 모든 일을 교감이 다 하게 하고 나는 거푸집 교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학교에 출근도 안 하고 딱 하나만 했습니다.
한 달에 두세 번 가서 아이들 안아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교육을 공부해서 조금 압니다.
사랑받는 아이들이 건강해집니다. 지능도 높아지고 마음도 건강해지고 튼튼해집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학교 오는 아이들을 안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 할아버지 왜 이러느냐“ 하며 밀치고 도망가고 했지만 갈 때마다 안아주니까 아이들도 진심으로 내가 자기들을 이뻐하는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게 와 매달리고 안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서 있으면 스쿨버스가 오다가 할아버지 교장이 서 있는 것을 보면 할아버지 왔다고 아이들이 뛰는 바람에 버스가 들썩 들썩했습니다.
이제 은퇴할 때가 되어서 할아버지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갈 때마다 아이들 키 높이 부분 가슴에 향수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내가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멋쟁이는 아닌데 아르마니 향수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안으면 아이들의 코가 닿는 부분이라서 가슴에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열심히 안아주었습니다.
몇 년 전에 학부모 한 분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목사님! 성공하셨네요
엘리베이트를 탓는데 ”엄마! 할아버지 냄새난다~”자기 아들이 그랬대요
아르마니 향수를 뿌린 사람이 누가 탓다 내린 모양입니다.
그 향수 냄새를 맛다가 제 생각이 난 모양이에요
그래서 내가 또 갔다 왔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 냄새가 나야하지 않겠어요?
예수님 냄새가 나는 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은퇴하고 나서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안하던 설거지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시장도 봐주고 하는데 솔직히 제일 하기 싫은 일이 있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은 아무리 깨끗이 한다 해도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평생 예수를 믿었는데 예수 냄새가 나야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 세상 냄새가 난다면, 마귀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헛산 것이 아니겠어요
돈 많으면 뭐해요, 출세했으면 뭐해요, 성공했으면 뭐해요,
예수 믿었으면 예수님 냄새가 나야지~
저는 소리에 아주 민감합니다. 좋은 소리 욕심이 많습니다.
음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97년도에 동안교회를 건축했는데 그 때 음향만 돈을 10억 썻습니다.
그 땐 음향에 10억 쓰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명필이 붓 가리냐~”하며 “그냥 설교하면 되지 10억씩 드리냐”고 했습니다.
음향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것이 좋은 소리가 나면 설교하는 사람이 쉽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이면 전달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굉장히 음향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건축할 때 건축비를 많이 안 쓰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예배당이 너무 호화로우면 가난한 사람이 불편하다 생각하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하면 되지 하며 정말 돈을 많이 드리지 않고 건축을 했는데 두 가지만 낭비하듯이 쏫아 부었습니다.
첫째는 설계비.
설계비 아끼면 안 된다 하며 최일류로 쓰자!
두 번째가 음향이었어요
그래서 10억을 썼습니다.
이처럼 소리에 민감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어떻게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소리라고 표현하셨을까?
저는 이 말씀이 탁 이해가 되었습니다.
목사, 선교사, 선지자는 스피커입니다.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전달하는 스피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좋은 스피커를 만나지 못해서 늘 못마땅해하셨습니다.
웅웅 거리고, 소리가 마음에 안 들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엉뚱한 소리가 나서 왠 스피커가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도 없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드디어 예수님이 마음에 딱 드는 스피커를 만났습니다.
”세례 요한. 저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
그래서 너무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세례 요한이라는 시를 썼어요
조금 황당한 시예요
<세례 요한>
김 동 호
그에게서는 소리가 났다 끝 웃음바다~~
그래서 제가 사전에 황당하다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그 글을 쓰고 저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제가 말로 하는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삶으로 하는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저를 아는 사람, 저를 보는 사람, 저를 가까이 하는 사람, 특별히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드릴 수 있는 스피커가 된다면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이제 제 삶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잘 살다가 예쁘게 죽고 싶습니다.
그게 살 사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로써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좋은 소리가 되었을 때, 우리가 잘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 될 줄 믿습니다. 아 멘!
예수 잘 믿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세상 것 욕심부리지 말고 예수 믿는 일에 생명 걸어서 예수 잘 믿는 사람 되어서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 사는 여러분 다 되실 수 있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