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리더의 표상 위대한 리더 이순신(3)
- ③ 혁신 또 혁신하라
임 원 빈(해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전 해사 교수부장)
이순신 제독(이하에서는 ‘이순신’으로 약칭)은 일당백 하는 무협지 주인공 같은 리더가 아니었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10:1, 20:1, 30:1의 우세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운 탁월한 리더였다. 또 한편 이순신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무기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임진왜란 당시는 전쟁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 활, 창을 위주로 한 재래식 무기에서 이른바 조총, 대포, 화포, 총통 등으로 상징되는 화약무기로 전환하는 대변혁의 시대였다. 다행히 조선 수군은 고려 말 이래 대형 화약무기인 총통을 함선에 장착하여 총통(함포)포격 전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온 반면 일본 수군은 원거리에서는 조총이나 활을 쏘다가 근접하여서는 상대편의 배에 기어 올라가 자신들의 장기인 백병전을 벌이는 재래식 해전 전술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였던 총통(銃筒)의 장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총통의 피사체를 일본 함선의 선체에 명중시킬 수만 있다면 해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총통의 명중률이었다. 당시의 총통은 오늘날처럼 터지는 포탄이 아니라 철환 또는 대장군전, 장군전과 같은 피사체를 쏘아 적선을 당파(撞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명중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순신은 총통의 명중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격선인 거북선을 창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을 혁신하여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당대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아래에서는 이순신의 혁신 사례를 거북선의 창제와 거북선의 근접포격 전술 그리고 집중포격 전술인 학익진 전술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이순신은 왜 돌격선 용도의 거북선을 창제했을까?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시기에 조선 수군은 이미 주력 함선인 판옥선에 총통을 설치하여 총통포격전술로써 적을 제압하는 첨단 해전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조선 수군은 원거리에서는 활이나 조총을 쏘면서 접근하다가 상대편 배에 뛰어올라 칼싸움을 벌이는 이른바 등선백병전술(登船白兵戰術)을 채택하고 있던 일본 수군에 비해 적어도 질적 전투력 측면에서는 압도적인 경쟁우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왜 총통으로 무장한 판옥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북선을 창제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판옥선의 단조로운 총통포격만으로는 부족한 그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문제는 바로 판옥선에 설치된 총통의 명중률이었다. 천자총통, 지자총통의 경우 대장군전이나 장군전, 철환과 같은 피사체가 800m 이상 나아 가지만 그 정도 거리에서 20〜30m 정도밖에 안 되는 일본의 함선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명중률을 높이자면 가까이 접근하여 총통을 쏘아야 하는데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할 경우 자칫 칼싸움에 능한 일본군의 등선백병전술(登船白兵戰術에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여 총통을 쏘아 명중률을 높이고 또 그 배에 타고 있는 조선의 수군 장병들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배가 없을까?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임진년(1592년)의 이순신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해전이 벌어지면 곧바로 적의 대장선이나 주력 함선을 향해 돌격한다. 근접 포격을 위해 상당히 가까운 거리까지 적선에 접근하게 되는데, 이때가 거북선이 가장 취약한 시기이다. 만에 하나 불발탄이 나오거나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 못했을 경우 일본군의 등선백병전술에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북선에 거북 등 모양의 덮개를 씌운 것은 칼싸움에 능한 일본 병사들이 배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거북 등 모양의 덮개는 일종의 방호벽이었던 셈이다.
일본 측 자료를 보면 그들은 거북선을 맹선(盲船), 이른바 ‘장님배’라고 불렀다. 조선의 병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조총과 활을 마구 쏘아도 꿈쩍도 하지 않고 돌진해 오는 거북선! 장님처럼 눈이 없는 것 같은 데도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천자, 지자, 현자총통을 쏘아대는 거북선! 그야말로 거북선은 일본 수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거북선은 ‘근접충돌용 돌격선’이 아니라 ‘근접포격용 돌격선’이다
거북선이 돌격선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전이 벌어지면 적의 대장선이나 주력 함선을 향해 가까이 돌진하여 총통을 쏘아 격파하는 것이 거북선의 중요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거북선의 돌격 전술은 적선을 향해 돌진, 충돌하여 격파하는 충돌 전술이라고 소개되곤 하였다. 2022년 상영된 영화<한산: 용의 출현>에서도, 2023년 상영된 영화<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도 거북선은 좌충우돌하며 수많은 일본 함선들을 충돌하여 격파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과연 그런가?
거북선이 충돌 전술을 사용했다는 근거로 널리 알려진 자료는 임진년(1592년) 제2차 출동 후에 올린 장계인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이다. 내용을 확인해 본다.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 밑으로 직충(直衝)하게 하여 용(龍)의 입으로 현자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자·지자총통과 대장군전을 쏘아 그 층루선을 당파하자, 뒤따르던 여러 전선들도 철환과 화살을 번갈아 쏘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단어가 ‘직충(直衝)’이다. 해방 이후 초기 연구자인 이은상, 조성도 등은 모두 ‘직충(直衝)’을 ‘근접하다’, ‘돌진하다’라는 뜻으로 제대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후 일부 연구자들이 ‘직충’을 ‘충돌하다’, ‘들이받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거북선의 충돌 전술을 기정사실화 하였으며 급기야 영화 <한산>, 영화 <노량>에서처럼 대중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런데 위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직충(直衝)은 충돌이 아니라 근접 또는 돌진의 의미로 쓰였으며, 거북선이 층루선 밑으로 돌진하는 것은 충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접하여 선수의 용의 입에 설치된 현자총통과 현측에 배치된 천자·지자총통을 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거북선의 근접 돌격은 충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근접 포격’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순신 스스로는 거북선의 용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다음의 자료는 이순신이 직접 거북선의 모양과 구조, 무장, 전술 등을 설명한 유일하고도 가장 자세한 자료이다.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중략)…… 비록 도적의 배 수백 척 가운데라도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으므로…… (중략)……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도적의 배 가운데로 돌진하여 천자·지자·현자·황자 등 여러 가지 총통을 쏘게 하였습니다.”
위의 인용문은 임진년(1592년) 제2차 출동 중의 첫 번째 해전인 사천해전의 상황을 기록한 장계인데, 여기서 이순신은 거북선의 역할이 적의 함대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 근접거리에서 총통포격을 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른바 거북선은 ‘근접충돌용 돌격선’이 아니라 ‘근접포격용 돌격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거북선의 돌격 전술 또한 충돌 전술이 아니라 총통의 명중률 문제 해결을 위한 ‘근접포격 전술’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2016년 4월, 미국해군연구소((USNI)에서는 미국의 군 관계자와 군사 전문가, 일반 독자 등 2만 6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토대로 세계 7대 명품 군함을 선정하였는데 1500년대 말에 활약한 우리의 거북선이 그중에 하나로 포함되었다. 150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재래식 해전 전술인 등선백병전술이나 화공술(火攻術) 그리고 첨단 해전 전술인 함포(총통)포격전술이 혼용되던 시대였다. 포함 거북선은 근접포격을 통해 명중률 문제를 해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북 등 모양의 덮개를 씌워 일본 수군의 장기였던 등선백병전술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으니 공격과 방어에 모두 경쟁력을 갖춘 당대 최고의 군함이라 하여 손색이 없다.
학익진(鶴翼陣) 전술은 ‘집중포격 전술’이었다
학익진은 이순신이 한산해전 때 사용하여 승리하였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전술 진형(陣形)이다. 한산해전은 조선의 함선 55∽58척과 일본의 대·중·소선 73척이 벌인 대해전(大海戰)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떤 목적으로 학익진은 펼쳤을까? 구체적인 해전 국면에서 학익진이 언급된 자료는 이순신이 조정에 보낸 장계인 <견내량파왜병장(見乃梁破倭兵狀)>이 대표적이다. 그 내용을 확인해 본다.
“먼저 판옥선 5, 6척을 시켜서 선봉으로 나온 적선을 뒤쫓아서 습격할 기세를 보였더니 여러 배의 적들이 일시에 돛을 달고 쫓아 나왔습니다. 우리 배가 거짓으로 물러서 돌아 나오자 적들도 줄곧 쫓아 왔습니다. 바다 가운데 이르러 다시 여러 장수들에게 학익진(鶴翼陣)을 벌일 것을 명령하고 일시에 한꺼번에 진격하여 각각 지자·현자·승자 등의 여러 총통을 쏘도록 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선두의) 2, 3척을 격파하니 여러 배에 타고 있던 일본 병사들이 사기가 꺾이어 도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여러 장수와 군사들이 이긴 기세를 타고 용감하게 뛰어나가 앞다투어 돌진하며 화살과 철환을 번갈아 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뢰 같아 적의 배를 불태우고 적을 사살하여 일시에 거의 다 없애 버렸습니다.”
이 장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산해전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기술되어 있다. 한산해전의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순신은 제일 먼저 ①판옥선 5, 6척을 견내량에 들여보내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②여러 배의 적들이 일시에 돛을 달고 쫓아 나왔다. ③바다 가운데 이르러 이순신은 여러 장수들에게 학익진(鶴翼陣)을 벌이도록 명령하고, 일시에 한꺼번에 진격하여 각각 지자‧현자‧승자 등의 여러 총통을 쏘게 하였다. 그리고는 ④가장 먼저 (선두의) 2, 3척을 격파하였다. 그러자 ⑤다른 여러 배에 타고 있던 일본군들이 기세가 꺾이어 도망하였다. 이렇게 되자 ⑤(판옥선에 타고 있던)여러 장수와 군사들이 이긴 기세를 타고 앞다투어 돌진하며 화살과 철환을 번갈아 쏘아대었다. 결국 ⑥그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아 적의 배를 불태우고 적을 사살하여 일시에 거의 다 없애버렸다.
이렇게 볼 때 한산해전에서 사용한 학익진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함선 73척을 모두 포위하여 섬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학익진은 선두에서 접근해 오는 일본의 함선 2, 3척을 학의 날개 모양으로 에워싸고 각종 총통의 화력을 일시에 집중하여 격파하기 위한 목적에서 채택한 ‘집중포격 전술’이었던 것이다.
정리해 보면 앞에서 살펴본 거북선의 창제와 돌격 전술은 ‘근접 포격’을 통해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학익진 전술은 ‘집중 포격’을 통해 총통의 명중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안된 해전 전술이다. 이순신은 거북선 창제와 해전 전술의 혁신을 통해 당시로서는 최첨단 화약 무기인 총통의 명중률을 극대화시켰다. ‘혁신 또 혁신하라’, 이순신이 전승무패의 승리 신화를 창출할 수 있었던 비밀 아닌 비밀이었던 것이다. 이순신 같은 리더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꼭 눈여겨볼 대목이다.<끝>(월간 <자유> 5월호 게재)
첫댓글 감사합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이배사의 종군기자를 자처하시는 군평선이님의 헌신, 희생에 박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해 올립니다....짝짝짝!...감사..감사..감사....ㅎ
혁신하라 ! 또 혁신하라 !
430여년전의 말씀이 지금도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며
화두일 것입니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옥고 잘 읽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 가치도 중요하지만....어떻게 승리했나...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 승리의 요인...중 중요한 것이 혁신이구요. 혁신없는 승리는 없다....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영원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앞으로도..주욱...원임 회장님으로 잘 모실테니...회장님...힘내세요....홧팅!
혁신 또 혁신하라!
오늘날에도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지요~~
일심님의 글이 목소리가 되어 귀를 울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배사님들은....언제부터인가...종종 들어온 이야기이지만...일반 국민들은...아직도 택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혁신..전략..전술, 리더십 등 아직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이순신 장군이 실력있는 리더였다...이 부분도 균형있게 전파해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언제나...응원...감사드려요...ㅎ
"일심"님의 옳으신 말씀 고맙습니다!
혁신을 주저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자! 조국과 후손들에게 불행의 그림자만 다가올 뿐입니다...
절이도님이 안계서서...다행..다행입니다. 아마도 계셨으면...아직도...회복이 안되어서...고생했을 것 같아요. 이제..이틀이 지나니..조금 회복되네요. 오늘..격군님이..방문하신다 하니....실력을 보이셔서....제 정신으로...집에 못돌아가시게...만들어봐유....ㅎ
@일심 ㅎㅎㅎ 네 잘 모시겠습니다~~
여수 여해재단 이순신학교에서 울려퍼진 일심님의 쩌렁쩌렁한 강의는 학생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겁니다~저도 복습이 되어서 아주 좋았습니다~감사합니다~
일심님 강의의 특징입니다.
뇌리에 콕!콕!..박히게 만드는 마력..
목소리도 그렇고..말의 힘도 있고요..
아마 강의 들으신 분들은 고개가 절로 끄덕거렸을 겁니다..ㅎ
혁신혁신 또혁신
인류 역사를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인데...이순신 장군 관련...이제까지 이런 부분이 ..제대로 정리되어..소개되지 못한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얼마전부터 아예 작정을 하고...이야기하고 있답니다...ㅎ
@일심
이배사..!
그 속의 진실을 쫓는 연구와 학문에의 열정 덕분에 많은 공부의 덕을 입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이 있으니...새로운 연구 결과물이 있으면...이배사에 가장 먼저...소개하는 것이지요. 감사..감사....ㅎ
늘
잘읽고 덕분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파이팅입니다.
백의종군보산원님도....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