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월 10일(화) 역대하 32:24-33 찬송 159장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였더라
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3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개역 개정)
29-31장까지 일국의 왕으로서의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다루고
32:1-23에서 정치·군사적인 치적을 기록한 데 이어
24-26절에서는 히스기야의 개인적인 사건을 다룬다.
즉 불치의 병에 걸린 히스기야가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치유함을 받고
수명이 연장되는 장면과 그럼에도 교만하였음을 소개하고 있다.
히스기야는 중병으로 죽음이 임박해지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15년이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병행구인 왕하20:1-7을 보면 병으로 인한 히스기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필연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
한편 이 히스기야의 생명 연장 사건은
앞서 언급된 앗수르의 침입 직전의 사건이다.
그러나 기록자의 의도에 따라 사건 발생 순서와 관계없이 편집 기록된 것이다.
본문에 언급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신 이적이란
히스기야의 병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도 응답의 징조로
해 그림자가 십도(十度) 물러간 사건을 가리킨다.(왕하20:8-11)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간구와 기도를 드릴 때에
응답되지 않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스8;23, 눅11:9, 요15:7)
이와 같이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신 최대의 무기요, 승리의 비결이다.
한편 25-26절은 이와는 대조되는 히스기야의 연약한 모습이 소개되는데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의 완쾌함을 듣고 사신을 보냈을 때에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음을 겸손히 증거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왕궁과 나라 안에 있는 보물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병행구인 왕하20:12-19에는 이런 히스기야의 범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징계 선언 그리고 히스기야의 회개하는 모습,
이로 인한 징계의 유보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본문에는 히스기야의 신앙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이상의 내용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오히려 히스기야가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 받았음을 강조한다.
이렇듯 기도로 인해 기적까지 체험한 히스기야도
교만으로 범죄한 사실을 볼 때에 하나님을 잠시라도 잊는 인간은
누구나 죄악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경건의 연습을 날마다 행해야 한다.
27-33절은 히스기야의 사적을 끝맺으며 히스기야가 유다 왕국을
번영으로 이끈 사실과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 교만했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죽음을 맞은 사실에 대하여 소개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을 받아 많은 부와 영광을 누렸고
심지어 불치의 병에서 소생하여 15년간의 수명을 연장받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런 형통한 가운데서도 히스기야 역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
하나님의 시험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31절)
히스기야의 기적적인 병고침에 대해서 묻는 바벨론 사신에게
겸손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교만하게 자랑하였기 때문이다.(왕하20:12-15)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히스기야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영광을 돌리기 원하였지만
그의 교만한 마음은 후대에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생활이라는 비극의 화근을 자초(自招)하게 되었다.(25절)
그러나 히스기야는 이 사건을 통하여 다시 자신을 겸손케 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었고
계속적인 축복도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그의 생전에 보지 않을 수 있었다.(26절)
따라서 역대기의 저자는 히스기야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다’고
그의 탁월한 신앙과 생애를 명예스럽게 평가하면서 소개한다.
26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히스기야의 회개 및 그로 인한 심판 연기를 말씀한다.
역대기 기록에는 드러나지 않으나 열왕기 기록을 보면
히스기야가 자기 행위에 대해 회개하게 된 이유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왕하20:16-18)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회개 과정은 다윗의 회개 과정과 동일하다.
다윗 역시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까지 죽인 후
스스로 죄를 덮어버리려 하였으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심판 메시지를 듣고나서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는 것처럼(롬10:17)
자신의 범죄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미암는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구약 시대 예레미야와 이사야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자들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것이며, 후에 세례 요한 역시 그렇게 하였다.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는 자만이 참된 회개를 할 수 있다.
‘뉘우치고’로 번역된 단어는
다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굽히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 표현은 자신의 힘이 약한 것을 인식하여 항복하거나(삿3:30)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지는 것(시107:12)등 비유적 의미를 나타낸다.
본문에서는 ‘스스로를 겸비케 하였다’는 의미이다.
비록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에게 자신의 강성함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잠시 교만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즉시 그 교만함을 낮춘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참 겸손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던 자신의 거만한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 모든 뜻을 철저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메시지를 들은 히스기야의
‘당신의 전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왕하20:19) 라는 말은
그의 겸손을 잘 보여준다.
히스기야 및 예루살렘 백성들의 철저한 회개를 보신
하나님은 심판의 집행을 이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주전 707년으로부터 약 100년 후로 연기하셨다.
물론,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앗수르 군대에 의해
바벨론에 끌려가기는 하였으나(33:11)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왕위에 앉았으므로(33:13)
왕하 20:17-18의 예언의 본격적 성취는
주전 605년 여호야김 왕 때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공격하여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과 귀족을 포로로 잡아간 제 1차 바벨론 포수 사건과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과 방백들과
군사들과 많은 기술자들을 끌고간 제2차 바벨론 포수 사건(왕하24:10-17)
그리고 주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시드기야 왕과 왕자들 및 빈천한 하층민들을 제외한
모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제 3차 바벨론 포수 사건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28:13)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3: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