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주 드디어 결전(決戰)의 탁자를 베다.
노숙이 물러난 뒤에도 한동안을 홀로 앉아 있던 손권은
이윽고 몸을 일으켜 안채로 들어갔다.
워낙 중대한 결정이라 그것이 매듭지지 않았으니
밥맛이나 잠자리가 제대로 일 리가 없었다.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이부자리에도 길게 누워 있지 못했다.
그러나 낮에 공명에게 잘라 말할 때와는 달리
마지막 결단은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선택의 길이 있다는 게
손권에게는 오히려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함부로 변화에 기대를 걸지 말고
아홉의 낙관보다는 단 하나의 비관에
더 많은 배려를 보내는 그의 성격으로 보면
조조와의 결전은 참으로 피하고 싶은 모험이었다.
자기 한 몸의 굴욕으로만 끝난다면
항복의 형식이라도 못할 게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역시 부형(父兄) 3대에 걸쳐 이룬 대업이
그의 대(代)에 이르러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들면
조조와의 화친은 천리 만리 생각에서 멀어졌다.
거기다가 형주 유종(理琢)의 운명도 그에게는 섬뜩한 경계가 되었다.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해 어두운 얼굴로 뜰 안을 오락가락 하는 손권을 보고
작은어머니인 동시에 이모이기도 한 오국태(臭國太)가 물었다.
"너는 마음에 무슨 걱정이 있기에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이리 서성거리느냐"
"지금 조조는 강한(江漢)까지 군사를 거느리고 와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강남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문무의 관원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던 바,
어떤 이는 싸우자 하고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여 주장이 갖가지로 어지럽습니다.
저도 맞서 싸우자니 힘이 모자랄까 걱정되고,
가서 항복하자니 조조가 끝내는 지금대로 우리를 놓아두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 일을 얼른 결정하지 못해 이리 마음이 무겁습니다"
손권이 마음속의 일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
그러자 오국태가 손권을 깨우쳐 주듯 말했다.
"너는 어찌 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당부한 말을 잊었느냐?"
그 말을 들은 손권은
문득 술에서 깨어난 듯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걸 한번 더 분명하게 해주려는 오국태가 말을 이었다.
"네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적에 나라 안의 일은 장소에서 물어서 하고
바깥일은 주유에게 물어서 하란 말씀을 남기셨다.
조조에게 항복하고 안하고는
안에서 문신(文臣)들의 말 몇 마디만 듣고 정할 일이 아닌 성싶다.
어찌하여 주공근(周公볕)을 불러들여 물어보지 않느냐?"
손권은 오국태의 말을 기꺼이 따랐다.
깜박 잊고 있었지만 주유라면 옳은 결정을 내려 줄 것 같았다.
그날로 사람을 파양(飜陽)으로 보내 주유를 불러오게 했다.
그러나 그때 이미 주유는
파양을 떠나 손권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수군을 훈련하고 있다가
조조의 대군이 한수(漢水)가에 이르렀단 말을 듣고
밤길을 달려 시상으로 온 것이었다.
조조의 뜻을 짐작하고 군사에 관한 일을 손권과 의논하고자 함이었다.
손권이 사자를 미처 떠나보내기도 전에 시상에 이른 주유는 먼저 노숙을 찾아갔다.
여럿 중에서도 노숙과 가장 가까운 사이라
그로부터 일이 돌아가는 형편을 알아 둔 뒤 손권을 만나려는 생각에서였다.
☆☆☆
노숙은 조금도 숨김없이
그간에 있었던 일을 주유에게 자세히 일러주었다.
다 듣고 난 주유가 조용히 말했다.
"자경(子敬)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 주유에게도 생각이 있소이다.
될 수 있으면 그 공명이란 사람이나 빨리 만나게 해주시오.
먼저 그를 만나본 뒤에 주공을 뵈어야겠소"
그 말을 들은 노숙은 그 자리에서 말에 올라 공명에게로 달려갔다.
주유가 그 동안이라도 좀 쉴 양으로 몸을 편히 쉬려는데.
장소, 장굉, 고, 보질 네 사람이 주유를 만나러 왔다.
주유와 손권의 사이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이라
주유가 어느 쪽을 편들지를 미리 알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주유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들을 맞아들여 자리를 마주했다.
오래 떨어져 있다가 만난 사람들끼리의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장소가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는 이번 일이
우리 강남에 이롭고 해로운 점을 모두 알고 계십니까?"
"잘 알지 못합니다"
주유는 자기 속마음을 조금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그 같은 어조를 아직 주유의 뜻이 굳혀지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 장소가
은근히 끌어들이듯 말했다.
"조조는 백만 대군을 이끌고 한상(舊上)에 이르러 우리에게 격문을 보내 왔소이다.
주공께 강하에서 모여 함께 사냥을 하자는 내용이었소.
설령 이 땅을 삼키려는 뜻이 있을지 모르나
아직은 전혀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우리는 주공께 항복을 권했소.
그렇게 하여 잠시 화친이라도 맺어지면
강동이 화를 입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여겨서 였소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경(子敬)이
강하로 건너가 유비의 군사(軍師)인 제갈량을 데리고 왔소.
그는 우리의 힘을 빌려 조조에 대한 분함을 씻어 볼 양으로
우리 주공을 격동시켜 강동을 조조와의 싸움에 끌어넣으려 하고 있소이다.
거기다가 자경 자신도 곁에서 그를 도우니
아직 주공께서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시오.
아마도 도독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려
이 일을 매듭지을 작정이신 것 같소이다. 그래. 도독의 뜻은 어떠시오?"
☆☆☆
그러나 주유는 대답 대신 모두를 돌아보며 물었다.
"공(公)들의 뜻도 모두 여기 이 자포(子布)와 같소?"
"그렇습니다. 의논해 본 바
일시 항복하는 체라도 하는 것이 강동을 보존하는 길이라 여겼습니다"
고옹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러자 주유는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리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실은 나 또한 항복을 생각한 지 오래외다. 공들은 이만 돌아가시오.
내일 아침 주공을 뵙고 의논을 정하겠소이다"
장소를 비롯한 네 사람은 주유의 그 같은 대답에 힘이 났다.
이제 일은 자기들의 주장대로 매듭지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주유에게 감사하고 물러났다.
☆☆☆
한참 있으려니 이번에는
정보, 황개, 한당 셋을 앞세운 한 떼의 장수들이 주유를 찾아왔다.
모두 강동(江東)의 손가(孫家)를 위해 피 흘리며 싸운 사람들이었다.
주유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들여 좋은 말로 그들의 수고로움을 위로했다.
주유의 위로가 끝나기 바쁘게 정보가 물었다.
"도독께서는 이 강동 땅이 오래지 않아 남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시오?"
적지 않게 격해 있는 목소리였다.
그 뜻을 짐작하지 못할 바 아니나
주유는 짐짓 낯빛을 고치지 않고 대답했다.
"모르오이다"
"우리는 손장군께서 창업의 기초를 다질 때부터 그 뒤를 따르며
크고 작은 싸움을 수백 번이나 치러 겨우 강동 여섯 고을의 성과 땅을 차지할 수 있었소.
그런데도 지금 주공께서는 모사(謀士)들의 말만 듣고 조조에게 항복하려 하니
이는 참으로 부끄럽고도 애석한 일이오.
우리들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욕을 보아가며 살지는 않겠소.
바라건대 도독께서는 주공께 권해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 쪽으로 계책을 정하도록 해주시오.
우리들은 다만 죽도록 싸워 더럽힘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뿐이외다"
무장에 가까운 주유에게는 찌릿한 감동까지 주는 비장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그러나 주유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정보를 따라온 나머지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장군들의 소견도 모두 같으시오?"
"이 머리는 자를지언정 조조에게 항복할 수는 없소!"
그들 가운데서 황개가 나서서 손으로 이마를 치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황개와 뜻을 같이 했다.
"우리도 모두 항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주유는 또 장소의 무리를 내보낼 때와 같이
그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체했다.
"나도 지금이 바야흐로 조조와 한바탕 결전을 치러야 할 때라 여겼소.
항복이라니 어디 될 소리요? 그러니 장군들은 이만 돌아가 주시오.
이 주유는 주공을 뵙는 대로 장군들의 생각에 따라 의논을 정해 보도록 하겠소"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한 입으로 두 소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
정보를 비롯한 장수들이 물러가자
이번에는 또 제갈근과 여범을 앞세운 한 떼의 문관들이 주유를 찾아왔다.
주유는 그들도 반갑게 맞아 들였다.
오랜만에 만난 예가 끝난 뒤 제갈근이 입을 열었다.
"제 아우 제갈량이 한상(漢上)으로부터 와서 유예주가 우리 동오와 동맹을 맺고
함께 조조를 치고자 한다는 말을 전하기에
문무의 관원들이 모여 그 일을 의논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우가 바로 사신이 되어 온 터라 감히 여러 말을 하지 못하고
다만 도독께서 오셔서 이 일을 매듭짓기를 기다렸습니다.
도독께서는 뜻이 어떠하신 지요 ?"
이미 장소를 비롯한 문관들의 주장과
정보를 앞세운 무관들의 주장을 고루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주유는 또 시치미를 쨌다.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양 오히려 제갈근에게 물었다.
"공론은 어떠합니까?"
"항복하면 쉽게 평안함을 얻을 수 있으나
싸운다면 지키기조차 어려울 것이라 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제갈근이 들은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주유는 가볍게 웃으며 여전히 자신의 속마음을 밝히기를 미루었다.
"이 주유에게도 먹은 마음이 있소. 내일 모두 함께 모여 일을 매듭짓도록 합시다"
결국 제갈근을 비롯해 함께 찾아왔던 사람들 또한
주유의 속뜻을 모르는 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있으려니 또 한패의 사람들이 주유를 보러 왔다.
여몽과 감녕을 앞세운 젊은 장수들이었다.
주유는 그들도 반갑게 맞아들이고 앞서와 다름없이 속을 떠보았다.
어떤 이는 항복하자 하고 어떤 이는 싸우자고 뻗대는데 모두 나름대로 근거를 내세웠다.
그들이 시끄럽게 서로의 주장을 펴는 걸 듣고 있던 주유가 이윽고 말했다.
"여기서 이러니 저러니 여러 말로 떠들 건 없소이다.
내일 주공을 모시고 함께 모여 결정하면 될 것이오"
그렇게 되니
여몽을 비롯한 젊은 장수들도 하릴없이 주유 앞을 물러났다.
☆☆☆
주유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연신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위기를 만나서도 확고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의지의 오만인지
또는 혼란되어 우왕좌왕하는 동료들에 대한 비웃음인지 모를 냉소였다.
노숙이 공명을 데리고 주유를 보러 온 것은
여몽 감녕의 무리가 나가고도 한참 뒤였다.
주유는 중문까지 나가 그들을 맞아들였다.
예를 마치고 주인과 손님이 각기 자리를 정해 앉은 뒤
노숙이 먼저 주유에게 물었다.
"이제 조조가 무리를 모아 남으로 밀고 내려오니
화친하자는 쪽과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어 주공께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장군의 뜻을 한번 듣고 결정을 내리시려는 바,
장군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그러자 주유는
앞서 동오의 문무 관원들을 만날 때와는 전혀 달리 대답했다.
"조조는 천자의 이름을 빌고 있으니 그 군사에 맞서서는 안 될 것이오.
거기다가 그 세력까지 커서 가볍게 맞서 싸울 수도 없소이다.
다시 말해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이고 항복하면 평안할 것이오.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내일 주공을 만나 뵙고
급히 사자를 보내 항복을 받아들이게 할 작정이외다"
뜻밖의 말에 노숙은 놀라 입이 절로 벌어졌다.
다 생각이 있다더니 그게 겨우 항복하자는 뜻이었던가 싶어
자신도 모르게 격한 목소리를 냈다.
"그대의 말씀이 틀렸소.
강동의 기업은 이마 3대(代)를 지난 것이거늘 어찌 하루아침에 남에게 내줄 수 있겠소?
지난날 백부(伯符=손책의 자(字))께서 돌아가실 때
바깥일은 장군께 당부하시는 말씀을 남기셨소.
강동은 이제 장군을 의지하기를 태산 의지하듯 하여 나라를 보전하려 하는데
장군께서 어찌 그런 소리를 하실 수 있단 말이오?
무슨 까닭으로 겁쟁이들의 의견을 쫓아
이 땅을 역적에게 들어다 바치려 하는 거요?
☆☆☆
그러나 주유는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차게 들릴 만큼 낮고 또렷하게 노숙의 말을 받았다.
"강동 여섯 고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숨이 깃들이고 있소.
그런데 이 땅에 싸움을 끌어들여 그들의 목숨을 해친다면
원망도 모두 내게로 돌아오지 않겠소?
그 때문에 항복하는 계책을
주공께 권하기로 결정한 것이오"
"그렇지 않소.
장군 같은 영웅이 있고 또 적을 막기 좋은 지세의 험난함이 우리 동오에는 갖추어져 있소.
조조는 결코 쉽게 그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
노숙이 한층 혈기 어린 목소리로 주유의 말을 받았다.
그래도 주유는 여전히 제 뜻만을 고집했다.
따라서 자리는 한동안 주유와 노숙의 입씨름으로 이어졌다.
☆☆☆
공명은 소매에 손을 집어넣고 차게 웃으며
그런 주유와 노숙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선생은 어찌하여 웃고만 계시오?"
주유가 문득 그런 공명을 자기들의 얘기에 끌어들였다.
"양(옹)은 다른 사람을 비웃은 게 아니라
바로 자경(子敬)이 어두운 걸 웃었소이다"
제갈량이 그렇게 대답했다.
노숙이 들으니 또 알지 못할 소리였다.
마땅히 자기를 편들어 줄 줄 알았던 공명이
자기더러 오히려 세상물정에 어둡다니 기막히지 아니한가.
이에 이번에는 공명에게 따지듯 물었다.
"선생은 무슨 까닭으로 오히려 나를 시무(時務)에 어둡다 하십니까?"
"공근(公舊)께서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것이 심히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이외다"
제갈량이 눈 한번 깜박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노숙이 기가 막혀 입만 벌리고 있는데
주유가 넉살좋게 공명의 말을 받았다.
"공명은 실로 시무를 아는 분이오. 틀림없이 나와 뜻이 같겠소이다"
원래 주유가 노린 것은 노숙이 아니라 공명이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공명을 격동시켜 볼 양으로
겉과 속이 어긋난 소리를 짐짓 해대는데
공명은 걸려들지 않고 노숙만 핏대를 세우고 있어
할 수 없이 제 쪽에서 공명을 끌어 들여본 것이었다.
하지만 공명이 걸려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를 편들고 나서니 은근히 속이 켕겼다.
(역시 녹록한 무리가 아니로구나......)
주유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모르는 노숙이 뒤늦게 야 공명에게 대들었다.
"공명, 그대가 어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단 말이오?"
적지 않게 분이 오른 목소리였다.
그러나 공명은 조금도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주유를 보고 제 할 말만 했다.
"조조는 매우 군사를 잘 부려 천하에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소.
지난날 여포 원술 원소 유표 등이 감히 그에게 맞섰으나
지금은 모두 조조에게 멸망당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소이다.
다만 유예주 혼자 만이 세상물정을 모르고 강한 조조와 맞서 싸우다가
지금은 강하에서 외로운 몸이 존망조차 기약 없이 되어 있을 뿐이오.
그런데 이제 장군께서는 조조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했다니
넉넉히 처지를 보전하고 또 부귀도 잃지 않게 되겠소이다.
나라가 바뀌고 망하는 거야 천명에 달린 것이니
굳이 애석해할 게 무엇이겠소?"
거꾸로 주유를 격동시키는 소리였다.
주유가 맘에 없이 항복하기를 주장하는 체했다 해도
그 말을 듣고는 불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먼저 성난 소리를 내지른 것은
주유가 아니라 노숙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대는 우리 주인에게 역적 앞에 무릎 끓는 욕을 권할 작정이었던가! "
정작 노리는 주유는 가만히 있는데
노숙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공명은 생각을 달리했다.
예삿말로는 주유를 격동시킬 수 없다 여겨
진작부터 주유를 겨냥하고 마련해 간 오진 말을 슬며시 꺼냈다.
"꼭 그렇게 생각하실 건 아니외다.
어리석으나마 내게 한 계책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만 주신다면
구태여 양을 잡고 술을 걸러
진채 땅과 인수(印經)를 바치러 강을 건너실 필요가 없소.
사자 한 사람을 뽑은 뒤
조각배에 두 사람만 싣고 강을 건너가게 하시오.
조조가 만약 그 두 사람만 얻게 된다면
그의 백만 대군은 절로 갑옷을 벗고 기치를 싸말아 물러날 것이외다"
대답은 노숙을 보고 한 것이었으나 과연 먼저 나선 것은 주유였다.
주유는 공명의 그 엄청난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급한 물음을 던지고 말았다.
"그 두 사람이 누구요?
누구기에 그 두 사람만을 써도 조조의 군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오?"
"강동으로 보면 그 두 사람이 간다 해도 큰 나무에서 잎새 하나 떨어지고
너른 창고에서 좁쌀 하나 집어내는 격밖에 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조조가 얻으면 크게 기뻐하여 반드시 군사를 돌릴 사람들이지요"
공명은 얼른 두 사람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고 그렇게 주유의 오고증만 돋우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두 사람이 누구 누구란 말씀이오?"
주유가 한층 달아 공명에게 거듭 물었다,
그제야 공명은 못 이긴 체 대답했다.
"양(흠)이 융중에 있을 때 조조가 장하(潭河) 가에다 새로 동작대란 대를 쌓았다는 말을 들었소.
몹시 크고 화려하게 치장한 누대인데 그 안에는 천하의 미녀들을 가려 뽑아 채웠다 했소.
조조가 원래 여자를 좋아하는 무리라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특히 그 일을 말씀드리는 것은 이곳 강동과 무관하지 않기 때 논이외다.
조조는 오래 전부터 강동의 교공에게 두 딸이 있어
큰딸은 대교(大喬)요. 작은딸은 소교(小舊)라 불리는데,
한가지로 고기가 물에 잠기고 기러기가 모랫벌에 내려앉는 것 같은 자태에
달이 빛을 잃고 꽃이 오히려 부끄러워할 만한 얼굴을 지녔다는 말을 들어 왔다 하오.
그래서 서원(를願) 하기를
{나의 큰바람 하나는 사해를 쓸어 제업(帝業)을 이루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강동 교공(喬公)의 두 딸을 얻어 동작대에 두고 만년을 즐기는 일이니,
이 둘만 이루어진다면 죽은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하였다는 것이오.
지금 조조는 비록 백만의 무리를 이끌고 강동을 노려보고 있으나
실은 그 두 여인을 얻고 자 함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외다.
장군께서는 어찌 교공을 찾아 천금을 주고
그 두 딸을 사서 조조에게로 보내지 않으시오?
조조는 그 두 여인만 얻으면 원래 마음속에서 구하던 바를 다 얻은 셈이라
반드시 군사를 돌려 물러갈 것이외다.
이것은 바로 지난날
범려(舊舊=월왕 구천<句辣>의 모신<認토>)가
오왕에 비 서시(西施=월의 미녀<美女>)를 바친 것과 같은 계책이니
될 수 있으면 빨리 시행하도록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