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시대’ 원동력은 진정성의 리더십 |
자유, 연대, 정의는 메르켈이 가진 굳건한 신념-박근혜 대통령과의 비교 |
기사입력: 2015/01/29 | ⓒ 매일종교신문 |
문윤홍 |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고 모든 형태의 반(反)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50만여 명이 숨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을 하루 앞둔 2015년 1월2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인은 수백만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기념식 연설에서 “아우슈비츠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다”며 “또한 독일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이민자들)을 적대시하는 구호를 따르지 말 것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최근 독일 사회에서 세를 넓히고 있는 극우 단체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메르켈은 독일 내 반유대주의에 대해서는 “독일의 수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독일에 유대인 10만명이 거주하는 사실을 거론하며 “유대인이나 이스라엘 출신이란 이유로 모욕당하고 공격받거나 위협받는 것은 독일로서는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는 항상 각성과 헌신을 요구하며 독일 사회는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메르켈이 과거사를 사과하고 이에 대한 오늘날 독일인의 연대 책임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9월 유엔 총회에서 독일의 역사적 과오를 공개 사과한 메르켈 총리는 2년 전에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2013년 8월에는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 뮌헨 남부 다하우 나치 수용소 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2차 대전 당시 20만명이 수감됐고 이 가운데 4만명 이상이 숨진 곳이다.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 하지 않고 반성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독일은 경제적으로 유럽 최강국이다. 그리스를 비롯, 재정위기에 몰린 남유럽 국가에 빌려준 돈도 가장 많다. 힘이 강해지면 교만해질 수 있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다. 침략의 상흔을 가진 주변국가는 그런 독일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친구로서, 함께 미래를 열어갈 이웃으로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메르켈 총리의 말에서 독일이 유럽의 지도국가로 부상한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와 전혀 다르다. 오는 8월 패전(敗戰)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아베 담화’에서 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표현을 뺄 것이라고 한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발표할 이른바 ‘아베담화’에서 일제(日帝)의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의 핵심을 뺄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에 관해 일본 내에서도 우려가 퍼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아베담화의 문안을 검토할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 회의를 2월초부터 열기 시작할 것이라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1월27일 보도했다. 이에 일본 언론은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사설에서 “놀라운 발언”이라며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논의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식민 지배나 침략이라는 일본의 행위를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도적인 마이니치(每日)신문도 “무라야마 담화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자세를 설명하는 외교적 자산”이라며 “핵심 단어를 뺀 담화는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다”고 했다. 도쿄(東京)신문도 ‘전후(戰後) 70년 담화, 반성 빼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극우 외길’을 달리는 아베 총리는 메르켈 총리의 반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일본 주류 언론의 비판은 어찌 보는가. 일본을 아시아의 지도국으로 만들고 싶다면 메르켈 총리를 거울삼아 자신이 가는 길을 비춰 보기 바란다.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를 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지도자는 단연 메르켈 독일 총리다. 그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으며,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가운데 1순위로 그를 지목했고, 2014년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평화상심사위원회 이철승 위원장은 2014년 9월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선정결과를 발표하며 "제12회 수상자로 과거사 사죄를 통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각성시키면서 이를 통해 전쟁의 폐해를 알리고 국제 평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메르켈 총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속적으로 강조, 전 세계적으로 과거의 만행을 부정하고 있는 국가와 인권을 유린하는 현존 독재 국가들에 경종을 울렸다"고 메르켈 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제12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은 메르켈의 방한(訪韓) 계기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며 그에게는 상장과 상패, 20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출판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는 2013년 3선(選)에 성공하며 정치 지도자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메르켈의 신념과 리더십을 담은 전기(傳記)이다. 메르켈은 통일 독일이 선택한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의 총리다. 자유, 연대, 정의는 메르켈이 가진 굳건한 신념이다. 이 신념은 그녀가 정치에 입문하고 통일 독일의 총리가 되기까지 큰 힘이 됐다. 언제나 자유의 가치를 수호했고, 유연하고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편적 정의를 구현했으며, 이성적 판단과 숙고로 위기를 돌파했다. 또 끊임없는 토론과 타협,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으로 가장 합리적인 승리 방식을 추구한다. 특히 메르켈은 침묵과 무심함의 가치를 아는 정치인이다. 멋진 말로 대중을 설득하기보다 침묵과 행동으로 자신의 정책을 하나씩 관철시켰으며 특유의 무심함으로 권모술수의 정치인들을 제압했다. 논쟁의 자리에서는 일방적인 승리 대신 연합 정치를 통한 ‘반걸음’의 진전을 선호했다. 메르켈은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러시아 대통령과 적대적 관계였지만 자국의 이익과 보편적 정의라는 관점에서 외교 정책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통렬히 성찰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독일 내에서 메르켈에 대항할 수 있는 정치적 적수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기여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위기의 시대는 메르켈을 호출했고 메르켈은 ‘자유, 연대, 정의’의 리더십으로 응답했다. 이제 우리도 메르켈과 같은 정치인을 열망한다”고 토로했다. 메르켈과 박근혜의 인연과 유사성 메르켈 총리는 2012년 8월17일 전당대회가 한창이던 새누리당에 서한을 보냈다. 대선 승리를 기원한다는 내용의 서한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대선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메르켈과는 실제로 만나는 등 특별한 인연이 있다. 서한을 보내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2005년 독일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에 오른 메르켈.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시켰다. 집권 2년차에 일자리를 확대해 실업률을 약 3% 낮추었고, 기술 개발에 대한 과감한 지원으로 2011년에는 독일 역사상 최대 수출액인 1조 4756억 달러를 기록했다. 독일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등 27개국이 모인 EU에서도 실질적인 좌장이다. 2011년부터 2차까지 진행된 그리스 구제금융 등도 메르켈의 최종 결단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하며 메르켈이 유로존(EU의 단일화폐 유로(EURO)를 사용하는 국가를 일컫는 말로, ‘유로에리어(EUROAREA)’ 또는 '유로랜드(Euroland)'라고도 함) 위기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지 집중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메르켈은 박근혜 대통령과 겹치는 면이 적지 않다. 먼저, 우파적 성향이 그러하다. 메르켈이 당수로 있는 독일 기민당은 성장 우선의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보수당이다. 공대생 출신이라는 것, 분단의 나라에서 자라난 것도 닮은꼴이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의 딸로 태어난 메르켈은 그해 부모 품에 안긴 채 동독으로 이주했다. 박 대통령이 태어난 1952년은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아버지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교회를 위해서라면 아프리카 오지라도 달려갔을 선교사였다. 물론 공산당 정부의 서슬 퍼런 감시가 따른 동독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메르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어떤 것 하나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회고하지만, 고집이 보통이 아닌 아버지로부터 교리적 신념을 물려받았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비난받을 행동을 해서라도 안락함을 누리기보다 차라리 채소를 키웠다. 궁핍한 생활을 신을 경외하는 표식으로 여겼다.(중략)… 목사관의 정서는 오늘날까지도 메르켈 총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하요 슈마허, <독일을 바꾼 기다림의 리더십>중에서) 박근혜와 메르켈의 리더십 비교 “정부를 궤도에서 이탈시킨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영국 총리 해럴드 맥밀런은 이렇게 답했다. “사건! 사건이죠.” 최근 출간된 메르켈의 공식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 나오는 이 구절은 ‘세월호’ 참사라는 대사건으로 위기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에게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설 것이다. 정권 출범 이후 고공행진을 지속하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세월호 참사라는 암초에 걸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번 위기를 국가대개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까지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의 리더십 개조에 대한 성찰부터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2013년 독일 언론인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저술한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를 읽다보면 박근혜와 메르켈의 공통점이 먼저 눈에 띤다. 이공계 출신으로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지만 인생 전반부가 베일에 싸인 여성 보수정치인. 권력게임을 즐기는 남성정치인과 달리 문제해결 자체에 집중하는 ‘탈정치적 정치가’. 언론에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고 무대울렁증도 심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겐 싸늘한 침묵으로 주눅 들게 만드는 얼음공주 등이 그러하다. 물론 차이도 있다. 박근혜에겐 ‘한강의 기적’을 일군 아버지라는 든든한 정치적 자산이 있었던 것과 달리 메르켈은 폴란드계 동독 출신 개신교도로 생애 대부분을 정치적 아웃사이더로 살아야했다. 또 박근혜는 일찍부터 여성정치인으로서 매력에 눈을 떴지만 메르켈은 딱딱한 외모와 패션으로 자주 풍자의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환경과 조건의 차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요소라고 평가 할 순 없다. 중요한 것은 두 여걸의 리더십 차이이다. 박근혜는 홀로 심사숙고해 결단을 내리는 반면 메르켈은 측근과 열띤 토론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을 즐긴다. 박근혜가 원칙을 강조한다면 메르켈은 타협을 중시한다. 박근혜가 각 부처의 과장인사까지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의 리더십을 선호한다면 메르켈은 측근에게 권한을 적절히 위임해 믿고 맡기는 믿음의 리더십을 실천한다. 이를 놓고 단순히 우열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리더십이 빛을 발하느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보통 박근혜의 리더십은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1인자의 고독한 결단과 과감한 추진력이 놀라운 돌파력을 발휘할 떄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메르켈의 리더십은 관리와 유지가 필요한 수성의 리더십으로 간주된다. 시간이 더디게 걸리더라도 여러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사회통합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는 오히려 메르켈의 리더십이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한다. 메르켈은 집권 초기만 해도 경험 부족과 언론대처능력의 부족으로 ‘어리버리하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나 이후 잇따른 위기상황에서 빛을 발하면서 유럽 최고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세계경제 위기와 유로존 붕괴 위기에서 보여준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역대 어느 독일 총리도 누리지 못한 장기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안정감 높은 리더십으로 높은 지지율과 국민의 기대를 모았으나 세월호 참사와 이후 정국운영의 미숙함으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최근 지지율이 다시 반등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선전 때문이 아니라 야당의 판단착오와 패착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포브스가 최근 선정한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가운데 메르켈 총리가 1위에 오른 것은 뉴스도 되지 않을 정도이다. 지난 10년 간 8번이나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국축구가 분골쇄신하기 위해서 독일의 축구전략을 벤치마킹해야할 필요가 있듯이 한국의 국가대개혁을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 또한 메르켈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소통과 설득, 토론과 협상, 권한의 적절한 분산, 위기가 곧 기회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는 비단 박 대통령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바로 현대 민주주의체제하의 유권자라면 누구나 정치인 일반에게 바라는 덕목이기도 하다. 정치인으로서 메르켈의 힘은 진정성 메르켈의 학창 시절을 보면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흥미롭다. 수학 영재로 꼽힌 그는 명문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23세가 되던 해 대학 친구와 결혼해 4년 뒤 파경을 맞았지만, 전(前)남편의 성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졸업 후 동독의 한 물리화학연구소에 취직한 메르켈은 12년간 원자핵 관련 연구에만 집중했다. 정치에 눈을 뜬 것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다. 격동기의 통일 독일에서 과학적 변혁보다는 사회적 변혁을 갈망한 것이다. 민주변혁당의 평당원에서 시작해 환경부 장관 등을 거치며 총리에 오른 메르켈은 대학 전공처럼 세상을 합리적으로 본다. 감정적 호소보다 논리적 관계를 더 중시하는 편이다. 메르켈의 50세 생일잔치는 그러한 성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시끌벅적한 축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메르켈은 생일잔치에서 뇌 관련 학문 강연을 했다. 위르겐 클린스만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시절에 “여성 총리가 각 국가대표 선수의 포지션과 기능 그리고 서로 간의 상관관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 메르켈이 가진 힘은 진정성이다. 환경부 장관 시절인 1996년 그는 그로부터 10년 전에 원자력 폭발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의 옛 도시 체르노빌을 방문했다. 폭발 사고 피해자들이 수용된 아동병원에 갔을 때 메르켈을 따라다니던 기자들은 허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정치인이 사고 지역을 방문했음에도 기념 촬영을 위한 아무런 모양새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촬영할 새도 없이 수용소 내 10대 소녀와 러시아어로 짧은 대화만 하고 자리를 떴다. 메르켈은 한국식으로 말해 시장에서 생선을 들어 올리는 식의 ‘쇼’를 하지 않는다. 메르켈은 최초의 여성 총리임에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이른바 페미니스트는 아닌 셈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선 ‘부모휴직수당’ 제도를 2007년부터 시행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부모휴직수당 제도란 주 3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에 한해 육아를 위한 휴직 기간 동안 월급의 67%를 지급하는 제도다. 한마디로 육아 때문에 등골이 휘는 걱정을 줄여준 셈이다. 메르켈의 또다른 덕목은 ‘인내’이고 화합형 지도자 메르켈이 가진 또 다른 덕목은 여성 특유의 인내이다. 달리 말해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2002년 기민당 당수로 있던 메르켈은 여성 총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당 분위기를 간파하고 총리 후보 자리를 다른 남성 정치인에게 넘겼다. ‘아름다운 양보’라며 당 안팎으로 열렬한 환호를 받은 데다 2005년 총선 때까지 뒷심을 발휘한다. 기민당 내부와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7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한 배경이다. 메르켈은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다. 원칙에 어긋났다고 판단할 때다. 정계에서 자신을 밀어준 헬무트 콜 전 총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총리 시절 콜이 비리 구설에 휘말렸을 때 메르켈은 진상 규명과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평소 측근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비리 등을 저지른 인사는 단호하게 경질한다. 무엇보다 메르켈은 화합형 지도자다. 2012년초 영국 등에서 주변국으로 여파를 미칠 것을 우려해 국가 부도가 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메르켈은 결국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선택했다. 지금 살 길보다 앞으로 함께 사는 미래를 지향한 것이다. 지난 ‘EUFA 유로 2012’(2012 EUFA, European Football Championship: 2012년 6월8일부터 2012년 7월1일까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가 공동 개최했고 총16개 팀이 본선에 참가했음.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진출권을 자동으로 획득하여 우크라이나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 첫 출전했음.)의 한 풍경이 떠오른다. 독일 국가대표팀이 선전하자, 메르켈은 관중석에서 들썩이며 박수치고 환호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유럽의 1인자’ 답지 않게 서민적이었다. 권위보다는 합리를 내세우고, 허황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묵묵히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 최근 정치 리더십의 실종으로 혼돈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면 메르켈 리더십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히 크다. 같은 여성 정치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일까? <精吾 문 윤 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