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2장: 절대적 신앙,(코로나도 이길수있다.예수께서는 너희 믿음대로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1-12절, 하나님만 두려워하라
[1절]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 . . .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는데,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그를 부정하고 그를 무시하는 것이며, 겉으로는 깨끗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미움과 음란으로 가득한 것이다. 외식은 ‘누룩’과 같이 조용히 많은 심령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며, 그래서 교회를 형식적이게 만들고 생명력을 빼앗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형식주의와 외식을 주의해야 한다.
[2-3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주께서는 다른 경우에 제자들이 예수께 개인적으로 배운 진리들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으시나(마 10:26-27), 여기서는 바리새인들의 감추인 악들이 다 드러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 감추인 악들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들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바리새인들의 은밀한 탐심과 미움과 음란 등은 다 드러나고 말 것이다. 세상에 은밀한 것이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추인 악들을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은밀하게 남을 비난하여 형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말고 밝은 데로 나아와 정정당당하게 충고하는 것이 옳다.
[4절]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 . . .
예수께서는 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몸의 죽음으로 사람의 생명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몸의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 단지 그것이 천국에서 안식을 누리는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가의 차이가 있다. 몸의 죽음 후의 영혼의 상태는 심판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더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5절]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죽인 후 그를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지옥은 불의 고통이 있는 곳이다. 지옥의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마 5:29-30; 막 9:43-49). 지옥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최종적으로 내리시는 공의로운 형벌이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정당하고 유익한 방편이다.
[6-7절]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은 데나리온 은전의 16분의 1의 값이 나가는 동전이다. 하나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참새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존재하고 또 잡혀 죽기도 한다. 인간은 참새보다 귀하다. 사람은 그 머리털까지도 하나님 앞에 다 세신 바 되었다. 그는 우리를 아시고 잊지 않으시고 귀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핍박이나 불안한 장래의 일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8-9절]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人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말씀은 그를 거부하고 핍박하고 죽이려는 이 세상 속에서 그를 인정하고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주께서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인정하실 것이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마음 속으로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적인 고백을 원하신다.
[10절] 누구든지 말로 인자(人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 . . .
예수께서는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人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그의 인성(人性)에 가리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잘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사람이 단순히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알고 거역한다면 그는 사하심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이 때때로 드러나고 그의 하신 일이 명백히 성령으로 된 것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 곧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일들을 보고도 그것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매우 완악한 자들이요 구원의 가망이 없는 자들일 것이다.
[11-12절]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초대 교회 시대는 예수님 믿는 일 때문에 핍박을 받았던 시대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제 시대와 같았고 공산 치하의 때와 같았다. 믿는 이들은 유대교 회당들에서도 심문과 핍박을 받고 세상 권세자들 앞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주께서는 그 일을 예견하시면서, 그들이 어떻게 또 무엇을 변명하며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그때에 마땅히 할 말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심문들을 통해 유대의 무지한 종교지도자들에게나 세상의 위정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증거되기를 원하셨다.
1절로 12절까지의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얻는다. 첫째로, 우리는 외식을 조심하자. 외식은 누룩과 같아서 다른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교회 안에 외식자들이 많으면 그런 교회는 심히 혼란할 것이다. 우리는 외식을 조심하고 항상 진실을 말하고 진실하게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사람들은 우리의 몸만 죽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지옥에 던지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할 때 시험에 빠지고(잠 29:25), 또 외식하게 되고 심지어 변절하게도 된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셋째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자. 우리는 기회 있을 때에 우리의 믿음과 구원을 입으로 간증하자. 또 예배당에 나올 때 성경책을 들고 오는 것이나, 식사 때에 기도하는 것이나, 전철에서나 직장에서 쉴 때에 성경책을 읽는 것이나 전도하는 것 등은 그것의 작은 실천이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자.
13-21절, 탐심을 물리치라
[13-14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 . . .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그의 형이 부모의 유산을 다 가지려 했던 것 같다. 율법에 의하면, 부모의 유산은 비록 장자가 동생보다 두 배를 얻지만(신 21:17) 동생도 나누어 가지도록 되어 있었다. 즉 유산의 3분의 1을 가진다. 그런데 형은 그 유산을 다 가지려 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요청을 거절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그는 그런 일에 관여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주께서는 마지막 날 인간의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에는 그 형이 유산을 정당하게 분배했는지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 그런 일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는 일과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는 일을 위해 오신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의 사명을 계승하는 것, 곧 전도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속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 일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든지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교회는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교회는 정당을 세운다든지 일반 학교나 병원이나 양노원 등을 만들어 경영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오직 전도하는 일과 전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을 해야 한다.
[15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형만 탐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동생도 탐심이 있었다. 그에게 탐심이 없었다면 주님께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탐심은 부자들에게만 있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탐심이 우리 속에 침입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다. 돈에 대한 애착은 탐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은 탐심이 있을 때 돈을 사랑하게 되고 부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경은 부하려는 마음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딤전 6:9-10). 실상 물질적 부요는 우리에게 큰 시험거리이다. 사람은 부요할 때 마음이 해이해지고 물질을 더 의지하기 쉽고 교만해지고 쾌락에 빠지기 쉽고 외도하기 쉽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
[16-19절]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 . . .
예수께서는 물질적 부요가 헛됨을 한 비유로 말씀하셨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므로 마음으로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생각하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 부자는 그가 맞은 그 풍년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비를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풍년 추수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의 관심과 생각은 물질적 부요와 그것을 즐기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20절]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 . . .
하나님께서는 그 농부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다. 그 부자는 그 물질적 부요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또 자신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행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에 대해 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물질만 많으면 자신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목숨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부자의 영혼을 그 날 밤에 불러가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주께서는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신다. 그가 죽고나면 그의 쌓아놓을 많은 곡식은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며 다른 이가 누리게 될 것이다. 그의 생명은 그의 소유의 넉넉함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물질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만 유익할 뿐이다.
[21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 . . .
주께서는 그 비유의 결론으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모을 줄은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길 줄 모르는 자들은 바로 이 어리석은 농부와 같은 자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는 이 비유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훈하셨다.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알며 사랑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에 힘쓰고 죄를 버리고 온유와 겸손, 사랑과 헌신, 인내와 절제로 자신을 단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에 충실하자. 교회는 전도와 개척교회들 설립과 바른 신학교 건립, 문서와 인터넷을 통한 말씀 사역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탐심을 버리자. 우리는 부하려는 마음과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려야 하며, 더러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부요한 자들은 그 부로 선한 일을 해야 하며, 우리 모두는 힘있는 대로 구제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 성경 읽기, 기도, 거룩, 온유와 겸손, 사랑과 헌신, 인내와 절제로 단장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주께서 주신 재능을 따라 하나님의 교회에서 각양 봉사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22-30절,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
[22-23절]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 . . .
예수께서는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의식주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필수적인 것들이다. 육신을 가진 우리는 먹을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이 필요하다. 사람이 그런 문제를 염려하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이다. 우리의 건강이나 경제를 보장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24-26절]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저장실]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그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하나님께서는 모든 새들을 먹이시고 기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새들보다 얼마나 더 귀한 존재인가?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보잘것없는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시지 않겠는가? 또 우리가 무엇을 염려한다고 우리의 생명의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할 수 있겠는가?
[27-28절]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자연만물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는 인간이 자기 지혜로 만든 그 무엇보다 뛰어나시다.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풀들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신다면, 하물며 자기 형상대로 창조된 백성들을 잘 입히지 않으시겠는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보면, 그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실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우리가 무엇을 염려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29-30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의식주의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모든 문제를 자신들의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염려하며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의식주의 필요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알고 계신다. 그는 영의 세계만 창조하신 분이 아니시고 물질 세계도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과 천국만 주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서 육신의 필요한 것들도 주신다. 그는 우리가 먹을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곳이 필요함을 아시고 주실 것이다.
우리는 먹을것과 입을 것과 거처할 것 때문에 염려하지 말자. 우리는 섭리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실 줄을 알고 오직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자.
31-34절,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31절]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 . . .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는 그의[하나님의]66)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오직’이라는 원어(플렌)는 강한 대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뜻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모든 불행의 근본 원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의 통치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사랑하고 그의 뜻을 즐거이 따르는 것이며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32절]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는 제자들을 ‘적은 무리[양무리]’라고 부르셨다. 그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 비해 너무 적은 수의 무리이다. 세상 안에서 그들은 위축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물질 만능의 시대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오늘 시대에 물질을 초월하며 사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위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복되고 가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국의 행복과 가치를 바로 안다면 우리는 결코 찬란해 보이는 이 세상의 영광으로 인하여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을 확신하고 기쁨과 담대함으로 주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33-34절]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은 구제하는 삶인 것을 가르쳐주셨다.
주께서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재산을 자기 행복을 위해 축적만 하지 말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이 세상만 아는 자들은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구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는 사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그는 주의 명령대로 구제의 일에 힘쓰며 살 것이다. 탐심을 버리는 자만이 주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성도는 이 명령에 복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구제의 대상은 우선 교회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이다. 초대 교회는 이것을 실천하였다. 구약의 십일조 규례의 모범을 따라 신약교회의 전임 사역자들은 세상 직업을 버리고 복음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한 자들인만큼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도와 구제의 일에 자신의 돈과 재물을 쓰는 것은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하늘나라에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는 우리 마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의식주의 염려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또 그런 자들은 주의 명령대로 이 세상에서 구제하기를 힘써야 한다.
35-40절, 예비하고 있으라
[35-36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당시 유대 나라의 결혼식은 밤에 행해졌고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밤 늦게야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므로 종들은 주인이 돌아오도록 깨어 기다려야 했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제자들이 그렇게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성실한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주인이 결혼식에 참여하고 돌아오듯이 자신이 돌아올 것을 말씀하셨다.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장차 주의 재림으로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주의 재림은 교회의 소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언제 오시든지 그를 맞을 수 있도록 성실히 그를 믿고 섬기며 따라야 한다.
[37절]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의 재림의 때에 깨어 있는 자들은 복되다. 주께서는 우리를 자리에 앉히시고 친히 띠를 띠고 우리를 대접하실 것이다. 이것은 너무 황송한 말씀이다. 어떻게 영광의 주께서 우리를 위해 그런 대접을 하신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분명히 그의 성실한 종들과 성도들에게 주시는 큰 복의 약속이며 위로의 말씀이다.
[38절]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유대인들은 해 질 때부터 해 뜰 때까지의 밤을 넷으로 나누어 일경, 이경, 삼경, 사경이라고 불렀다. ‘이경’은 오후 9시부터 자정까지를 가리키고 ‘삼경’은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를 가리킨다. 주인이 결혼식에 갔다가 한밤중에 올지라도 종들이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으면 복되듯이,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를 기다리다가 맞이하는 종들과 성도들은 복되다. 주께서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다(계 22:20). 그 약속은 신실하다. 그러므로 비록 그가 늦게 오신다고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깨어 있어야 하며 성실히 그를 믿고 섬기며 따르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에 충성해야 한다.
[39절]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그는 자신의 재림을 도적에 비유하셨다. 도적이 집주인이 알 수 없는 시간에 침입하듯이, 그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돌연히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준비하는 자가 재림의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40절]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교훈의 요지는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고 예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성실한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뜻한다. 주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그의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가 확실히 다시 오신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앙이나 해이함에 떨어지지 말고 주의 재림을 확신하고 예비하며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생활을 하자.
41-48절, 지혜 있는 청지기가 되라
[41-42절]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 . . .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말씀하셨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지혜 있고 충성된 청지기와 같이 신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설교하고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깨어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목사와 교인들은 함께간다. 목사가 어떠하냐에 따라 그런 유의 교인들이 모인다. 세속적인 목사들에게는 세속적인 교인들이 모여들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부패되어서 교인들이 부담 없는 신앙생활,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해이한 신앙생활이며 세속화된 신앙생활이다.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 성경은 우리가 주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더 권면하여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고 가르쳤다(히 10:23-25).
[43-44절]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 그는 끝까지 깨어 그를 기다리며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목사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며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들에게 맡기실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주께서는 그의 충성된 종들의 충성된 사역들에 대해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주의 약속을 믿고 세상에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충성해야 할 것이다.
[45-46절]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깨어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지 않고 오히려 교인들을 학대하고 먹고 마시고 취했던 종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엄히 때린다’는 원어(디코토메오)는 ‘여러 조각들로 자른다, 극히 엄한 벌을 내린다’는 뜻이다.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는 원어는 ‘불신자들이 받을 몫을 주리라’는 뜻이다. 악한 종들은 극히 엄한 벌을 받고 불신자들과 함께 취급될 것이다.
[47-48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주님의 심판은 공정할 것이다. 불성실하고 악한 일꾼들은 그들이 가진 지식의 정도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받은 책임의 정도에 따라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많이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자들은 잘 몰라서 행하지 못한 자들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큰 책임을 가지고도 충성치 못한 자는 작은 책임을 가진 자보다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직분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말과 행실에 있어서 일반 성도보다 더 나은 모범과 열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목사들은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처럼 신구약성경을 적절하게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주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항상 깨어 성실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49-53절, 불을 던지러 오심
[49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 . . .
예수께서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의미하신 불은 무엇인가? 주께서는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이 불이 아직 땅에 붙지 않았다고 암시하셨다. 이 불은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 운동의 불일지도 모르나, 문맥상 복음으로 인해 일어나게 될 분쟁의 불을 가리킨 것 같다.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나누며, 이 때 진리와 비진리, 의와 불의, 성령과 악령의 싸움이 있다. 그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또 이 싸움은 때때로 핍박으로 나타난다. 신자는 믿음 때문에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는다.
[50절]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 . . .
주께서는 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가 받으실 세례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켰다. 그는 성경 다른 곳에서 ‘세례’라는 말을 그런 뜻으로 사용하신 적이 있다. 마가복음 10:38,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의 답답하심은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그의 인간적 마음의 고통과 더불어 그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명하신 구원의 일을 이루시려는 그의 간절한 소원을 나타낸다.
[51-53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 . . .
주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평강의 왕이시며(사 9:6)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마 11:28) 주 예수께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고 분쟁을 주려 왔다”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가? ‘분쟁’이라는 원어(디아메리스모스)는 ‘분열, 불화’를 뜻한다. 그것은 진리와 비진리, 믿음과 불신앙, 구원과 멸망의 분열과 불화를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과 사탄, 의와 불의는 화합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면 항상 그 진리를 따르는 자와 그 진리를 거부하는 자로 나뉘는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적다(마 7:13).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을 것이다(막 16:16).
그것이 복음의 성격이다. 복음은 분열을 가져온다. 복음은 사람들을 둘로 나눈다. 그것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로 나누는 것이다. 복음은 때때로 집안 식구들을 둘로 나누며 신앙 문제로 서로 갈등하게 만든다. 그 나뉨과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다. 52절과 53절에 ‘분쟁하리라’는 원어(디아메리스데세타이)는 ‘나뉘리라, 불화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복음으로 인한 갈등은 가정복음화의 시작과 과정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 가족들이 결국 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며 구원을 받아 영원히 나누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다가 영원한 영광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가족적 구원이다. 사도행전 16:31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복음으로 인한 갈등은 사회복음화와 세계복음화를 이룬다.
주 예수께서 던지신 복음의 불, 구원의 불이 우리의 가슴 속에 불타오르기를 원하자. 이 불로 인해 갈등과 분열, 또 심지어 핍박이 우리와 우리 주위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그 싸움이 마침내 구원의 확장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자.
54-59절, 이 시대를 분별하라
[54-56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 . . .
주께서는 또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주께서는 사람들이 날씨와 기후를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를 분별치 못한다고 책망하셨다. 그것은 자신이 메시아로 온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함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본다.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증거되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주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중에서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한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말씀하셨다(눅 7:2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증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였고 그들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거리를 찾았고 죽이려 하였다. 그들은 메시아 시대의 징조를 분별치 못하는 무지한 자들이었다.
[57절]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주께서는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하나님의 진리는 ‘옳은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됨을 인정하고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떠나야 하며, 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믿고 의지해야 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증거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옳은 것을 알지 못하였다.
[58-59절]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 . . .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아펠라크다이)[놓여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官屬)에게 넘겨주어 관속(官屬)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조금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세상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지만, 특히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아직 우리의 목숨이 끝나기 전에, 아직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해야 할 것을 암시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갚기 전에는 영원한 감옥인 지옥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실상 이 말씀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는 자신의 죄값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러나 죄인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 지금은 아직 은혜받을 만한 때이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때이다.
54절로 59절까지에 나타난 주님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메시아 시대를 분별하여 성경에 증거된 역사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알자.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만한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증거하였다. 사람이 자기 마음의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지만 않다면, 그는 신약성경에 증거된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죄인들은 아직 길에 있을 때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아직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았고, 아직 구원의 문이 열려 있고, 아직 회개하고 믿을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간증: 어느 악귀에 잡힌자를 치유 기도하는데 그 환자의 입으로 성령께서 찬송가 202장 “죄에서 자유케함은” 찬송가 부르면 치유가 된다고 하여 치유를 받았다. 또한 성경책을 얼굴에 대면시킨바 떨면서 그 입으로 ‘내가 진화론 마귀인데 무저갱으로 들어간다면서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여주셨다. 그 진화론 마귀가 고등학교 대학교 등에서 수업할 때 들어와 정신을 혼미케 하여 그 인생에 대한 많은 부작용을 주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막아야 한다. 그렇치 아니하면 청소년 학생들에게 악한 마귀를 넣는 교육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옥을 보내기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마귀를 보내기위해서 만들었다고 하시고 그렇나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마귀에 미혹되어 따라간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을 통해서 주님께서 특별히 전도자 사역를 시작할때 영원한 하나님나라와 무저갱 같은 불속에서 고통하는 지옥이 있음을 알게해주셨어 너무나 감사합니다.(눅16:1-13) 2019.3.7.김목사)
(간증; 부흥강사로 같은 노회 회원으로서 목사님 영성이 대단하여 주변에서 “쪽 집게”목사라는 별명이 있는 부흥강사였다. 주님의 성령께서 꿈에 그 목사에 대한 주님의 경고의 계시를 보여주셨다. 즉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이재규) 중에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를 비유로 보여주셨다. 즉 그 목사님의 사역이 자기복음을 전하고 있으면 사기꾼과 같은 사역을 한다는 주님께서 경고를 보여주셨다. 처음에는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마귀에 미혹되어 사기꾼 사역하므로 그림 한장을 보여주시면서 회개하고 징계를 받지 말라는 경고 싸인을 보여주셨다. 즉 주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다.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권면한 사실이 있습니다. (2019.2.21.김 목사)
(간증: 주님의 성령께서 Wcc(세계종교다원화연합회)와 Wea(세계복음연맹)에대한정체를 꿈에 그림한장으로 가르쳐 보여 주셨다. Wcc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는 악한 마귀 사냥개 (시속 100키로 달리는그레이하운드 사냥개)로 비유해 보여 주셨다. WEA는 시장에서 금품을 갈취하는 조폭으로 보여주셨다. 또한 부산에서 Wcc 종교다원화 연합 대회시 주께서 그 정체에 대해 그림 한장으로 보여주셨다. 즉 올림픽 경기장에서 세계 각종교 단체들이 입장하는데 그 앞 선두에 시속 100키로를 달리는 ”사냥개 그레이 하운드개“가 앞장서고 그 뒤을 따라서 각종 단체장들과 한국 교회 (wcc 연합된 교회 단체장)단체장을 따라서 입장하는 귀신들의 올림픽 잔치라것을 주께서 그들의 정체를 가르쳐주셨다. 즉 그 단체들에 속한 교단는 그들로부터 물이든다는 것이다. 즉 그들 단체에 속한 교회(한국 7개 교단 가입.한국교단 통합등)는 마지막에는 그들과 같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요한계시록 18장5절에 악한귀신의 처소에서 주님께서 나오라고 하셨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양들을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019,3.9.김목사)
(간증: 주님께서 요한계시록3장18절에 일곱교회 중에 라오디게아교회 담임목사에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하게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고 주님의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종교다원화 (wcc)우상(귀신)단체 단합대회를 부산에서 하는데 Wcc가입한 한국교회와 정부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귀신들의 잔치한 결과에 징계를 받는것이 ”세월호“사건이다고 그림 한장으로 성령께서 보여 주셨다. 즉 ”고사리 나물(고사리 같은 학생 아이들) 한 아름이 바다에 빠지면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치는” 것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 죄에 대한 결과(징계)로 나치에게 6백만명이 죽었다. 그리고 다웟의 죄에(우리아 살인사건)대한 결과로 집안에서 칼부림의 사건이 일어났다. 즉 예수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이끌어 가면 둘 다 구덩이 에 빠진다고 가르쳐줍니다. 즉 지도층들이 세속에 빠져 인본주의로 영성이 어두워져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과공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해라고 하는데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며 너희 믿음대로 된다고 가르쳐줍니다.(2019.3.19.)
(간증) 대구에 있는 팔공산일대에 사찰과 암자 (500개)들 대하여 봉고 차량에 확성기로 노회 회원들과 같이 수차례 걸쳐서 “예수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날 꿈에 주님께서 칭찬하는 그림을 한장 보여주셨다. 즉 팔공산 일대를 봉고 차량에서 확성기로 하나님의 성경말씀으로 복음을 전했다. 즉 화물차량에 물(생명수)을 가득 싣고 도로 주변에 목이 말라서 죽어가는 가로수들이 생명수를 먹고 싱싱하게 새싹이 나고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셨다. 계속으로 노회 회원들과 함께 하나님을 선포하면서 복음전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지와 휴지 전도지를 나누어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꿈에 종이 전도지를 금덩어리로 보여주셨다. 일반 전도지는 구술의 크기 금덩어리로 휴지전도지는 주먹크기의 금덩어리로 상급으로 인정해 주시면 칭찬하는 그림을 보여 주셨다. 즉 고전3장 12-15절에서 두 임금을 섬기면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대형교회를 하면서 자기위하여 자아실현 자기왕국으로 교회사역을 하면 “그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가르쳐줍니다. 2019.3.24. 김 목사)
(간증: 몇 년전에 “이신칭의론“을 주장하는학파(개혁주의자)와 새 관점학파들이 “유보적인 칭의론”을 주장(김세윤)하는 학파들과 떠거운 감자가되어 논쟁이 가열된 적이있었다. 그때 그들의 주장이 헤갈리어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다.주님이 즉시로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간경화로 죽어가는 사람이 먹는 “약초인 인진쓱”을 보여주셨다. 인진쑥은 간에독을 뽑은 특효과가는 약초이다. 즉 이신칭의(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요한19:30)는 우리의 죄의독을 뽑는 효과가 있다고 주님께서 그림한장으로 가르쳐주셨다. 유보적인 칭의론자들은 이신칭의를 종교개혁 시대의 산물이거나 기껏해야 바울을 그 창작자로 봅니다. 그러나 칭의의 기원이 루터,바울, 아브라함을 거슬러올가 영원 전의 성부와 어린양 그리스도의 언약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신칭의 구조 안에서만 성령가 있고,믿음을 부정하는 유보적 칭의론자들에게는 성령이 유보된다고 지적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이신칭의론은 “간 경화”로 죽어가는 사람에서 죽음의 독을 뽑는 특효약임을 가르쳐 주셨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골”는 믿음(주 예수)이란 죽음(정죄의식)의 두려움에 대한 해독제라면서 비약신학을 가르쳐 준다.(롬8:1-2)아멘(2019.4.26., 김 목사)
(간증: 우한 코로나 전염병 대해 주님의 성령께서 증세와 죽음에 대하여 그림한장을 보여주셨다. 즉 모세시대 애굽의 마지막재양이 유월절 어린양피를 인방과 무설주에 발랐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죽음의사자 재양이 넘어가는 유월절 현상을 그림한장으로 보여주셨다. 즉 “사람의 폐가 검정색으로 변하여 호흡이 중지” 되어 죽는 것을 보여 주셨다.그렇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자 구원을 받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재양이 넘어가는 것을 보여주셨다. 즉 예수이름으로 죽음의 마귀의 세력이 넘어(유월)간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 어떤 성도가 얼굴이 검정색으로 변하여 독감에 걸려 심히 어려움가운데 있는데 안수기도하면서 예수이름으로 명령하였는데 “그 성도 입에서 나는 독감마귀이다 성령의불이 들어와 떠거워 못살겠다고 하면서 무저갱으로 들어간다”하면 빠져 나가는 현상을 보여주셨다. 즉 예수이름으로 명령하면 성령의 역사의 능력으로 독감의 죽음의 사자는 넘어갑니다. 출12:21-28. 성령수도원 김에스겔 목사.2020.1.29.)
(간증:우한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불안하고 있다. 즉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것을 가르쳐준다. 2020,2.2. 주님께서 이 재양에 대하여 꿈에 그림한장 보여주셨다. 즉 한 도시에 홍수가 나서 도시를 삼킬정도의황토물이 다리를 넘쳐 흘러가는데 경찰(파수꾼.두 증인 사역)들이 나타나 경계를 하는 것을 보여주셨다. 지금이 이처럼 나타나는 마지막때의 재양의 징조인 것 같다.
그렇나 창조주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사자들이 애굽의 장자를 멸할때에 어린양의 피를 안방과 문설주에 받으면 죽음의재양이 넘어가는(유월)것 비결을 가르쳐주셨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요한계시록7장 3절에 예수님께서는 여섯째 인을 떼실때에 온 지구가 온역과 큰 지진이 날때에 “이마에 인 맞은자를 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인이라는 것은 주님의백성이라는 것과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한 코로나로 인하여 온 세계가 불안하다, 예수 믿고 거듭난자, 주님의 백성들은 임마누엘로 보호해주신다는 성경적인 진리를 믿어야한다. 즉 하나님의 종말의 시간표가 어디쯤 왔는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부단장를 해야 합니다.(마태25:1-12.성령수도원 김 에스겔목사.2020.2.2.새벽)
(한국 대형 교회는 "자기의 배가 신이 되어 세습과 세속으로 하나님이 외 독립적인 자기의 뜻과 의지 와 견해 등으로 자기우상화, 자기왕국 건설에 주력"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을 가르쳐주셨다. 대형교회들이 자기 욕심에 만취되어 다웟과 같이 교만하여 인구조사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징계로 점염병 으로 고통을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넓은 길은 망하는 길이며 좁은 길이 천국 가는 길이다고 가르쳐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마귀에 미혹되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서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성경은 가르쳐준다. 그렇나 영적 지도자들이 눈먼 소경이 되어 지옥 가는 비 진리(사기)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지옥)에 빠진다고 성경에 가르쳐 주셨다.마태16:24-26.빌3;17-19.마태15:14.요일2장15-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