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의 2011년 연출작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던 2009년 [렌트]에서 유일하게 돋보였던 최재림)
11. 최재림 : 데뷔작 [렌트] 한전아트센터 2009년
2009년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렌트]는 2년 뒤 충무아트홀에서 공연된 박칼린 연출 버전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최악의 [렌트]였다. 두 프러덕션은 [렌트]란 작품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는것처럼 엉망이었다. 설마 2007년 프러덕션보다 최악의 작품이 나올까 싶었는데 그런 작품이 계속 나왔다. 2011년 [렌트]는 연출가의 과대망상 재해석이 빚어낸 참극이었고 2009년은 파격적으로 기용한 신인 배우들이 더 문제였다. 신시컴퍼니는 2002년 토월극장 공연 때처럼 [렌트]란 작품에서 김호영이나 정선아 같은 잠재력 풍부한 신인배우를 기대했겠지만 2009년 [렌트]는 최재림 외에는 건질만한 배우가 없던 공연이었다. 2009년 [렌트]에서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연기와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보여준 배우는 콜린 역의 최재림 뿐이었다.
이 작품에서의 가능성에 신시컴퍼니는 [헤어스프레이]두번째 공연에서도 최재림에게 흑인 배역을 맡겼고 그때까지만 해도 최재림은 모처럼만에 등장한 괜찮은 신인 배우였다. 그러나 최재림의 가능성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듬해 스승인 박칼린의 보조로 참여한 '남자의 자격' 출연 이후 대외적으로도 알려진 최재림은 같은 시기 [남한산성]재공연에 참여했지만 배역에 흡수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넥스트 투 노멀]이나 [스프링 어웨이크닝][어쌔신]같은 작품에서 주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기 그릇에 맡는 역을 맡았음에도 [렌트]이상의 가능성은 아직까진 본의아니게 유보된 상태다.
(급기야 뮤지컬에도 출연했던 이주노)
12. 이주노 : 데뷔작 [코러스 라인] 코엑스아티움 2010년
2010년 공연된 [코러스 라인]에서 단장을 맡은 이주노는 공연 중간에 합류했다. 개막하고도 작품을 재정비한답시고 휴지기를 가진 작품이었다. 그만큼 문제가 많은 기획이었다. 그런데 이주노까지 참여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을 기겁시켰다. 대체 이주노가 뮤지컬에, 그리고 [코러스 라인]에서 할 게 뭐가 있는가. 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지만 [코러스 라인]이란 작품에서 이주노가 할 수 있는건 없었다.
결과적으로 [코러스 라인]을 통해 시도한 이주노의 뮤지컬 데뷔는 실패했고 공연도 실패했다. 이주노가 뮤지컬에 참여하면서 대단한 포부를 가진것도 아니지만 [코러스 라인]도 이주노에게 큰걸 바란건 아니었다. 2010년에 오랜만에 국내 공연된 [코러스 라인]이란 작품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주노는 그 중 일부였으며 작품이 망가지는 과정을 좀 더 앞당긴 도화선일 뿐이었다. 이주노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망가진 작품이 회복될 길은 요원했다. 이주노가 참여를 안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주노 참여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문제였던것이다. 그리고 이주노에게 생애 첫 뮤지컬 참여로 남은 [코러스 라인]은 그의 숱한 연예계 실패 경력에서 또 하나의 오점일 뿐이었다.
(뮤지컬 데뷔작에서 노출 연기를 시도한 정준하)
13. 정준하 : 데뷔작 [풀 몬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06년
정준하의 뮤지컬 출연은 2006년을 시작으로 7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활동도 꾸준하다. 그래서 이제는 제법 많은 출연 편수를 보유하고 있다. 화제성으로는 그가 운영했던 술집에서 접대부 고용으로 불법 자금을 끌어모았냐, 아니냐로 한참 시끄러웠던 때에 참여한 2007년작 [헤어스프레이]였지만 스트립댄스를 추며 노출 연기를 시도한 [풀 몬티]도 정준하 출연 덕분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준하가 [풀 몬티]에서 맡은 배역은 비만으로 의기소침한 데이브 역이었다. 정준하 캐스팅과 그의 용감한 연기 덕분에 이 작품은 예매율 자체는 탄력을 받진 못했어도 공연 홍보에는 연예인 캐스팅 덕을 크게 봤다.
(무비컬 유행의 시초가 된 [싱글즈]로 뮤지컬 데뷔를 한 이현우)
14. 이현우 : 데뷔작 [싱글즈]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2007년
2007년 초연된 창작뮤지컬 [싱글즈]엔 화제의 깜짝 캐스팅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 당시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었던 가수 출신 연기자 이현우의 뮤지컬 데뷔였다. 지금은 이현우가 늦장가를 가고 난 뒤라 여성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당시엔 실장님 역 전담의 탈랜트로서 인기가 아주 좋았다. [S다이어리]같은 졸작에서도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신부 역을 했었고. 이현우는 [싱글즈]초연에서 극과 전혀 섞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뮤지컬이 공동 작업의 산물이라는것을 망각하고 개인주의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이다.
2007년 동숭홀에서 연장까지 석달 동안 공연된 [싱글즈]에서 이현우의 출연 회차는 빠른 속도로 팔려나갔다. 지금의 무비컬 유행의 시초였던 이 작품은 창작 초연 치곤 완성도 있게 만들어져서 호의적인 입소문도 탔다. 오나라는 로맨틱코미디 뮤지컬 장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고 [천사의 발톱]으로 인지도를 높인 다음 이 작품을 선택한 김도현의 연기 변신도 성공적이었다. 이현우의 뮤지컬 연기는 연예인의 단발성 이벤트용일 뿐이었다. 어색하고 뻣뻣한게 그의 매력이라지만 극과 융화되지 못한 모습은 민망했다. 그래도 이현우는 이 작품을 하면서 뮤지컬이 공동 작업의 산물이라는걸 깨달았고 공연이 끝날 무렵엔 참여 의지를 보였다. 그는 4년 뒤 [맘마미아!]의 해리 역에 전격 합류하면서 뮤지컬로 복귀했고 [싱글즈]의 실수를 만회했다.
(뮤지컬 [소나기]에서 해맑고 순수한 소년을 연기하여 칭찬을 받은 승리)
15. 승리 : 데뷔작 [소나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008년
본명이 이승현인 승리는 그가 속한 아이돌 그룹 빅뱅에서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 멤버였다. 황순원 원작의 [소나기]에 승리가 2008년 참여했고 그 해 가을엔 대성이 [캣츠]에 참여했다. 아이돌 그룹 빅뱅이 국내 십대 소녀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지금보다 막강했을 때 승리는 본인에게 잘 맞는 [소나기]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다. [캣츠]에서 럼텀터거 역을 맡아 무리수를 두었던 대성과는 다른 노선이었다. 3주 남짓한 공연 기간 동안 더블캐스팅으로 출연한 승리는 기대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고 그가 출연한 회차는 알뜰하게 팔아치웠다. 작품 자체로도 대체로 호평이었다. 서울시뮤지컬단에서 기획한 이 작품은 2008년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이듬해 봄에도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특선 공연으로 재공연됐다. 재공연 때는 FT아일랜드 소속의 이재진도 참여했는데 초연 때 만큼의 열기를 끌어내진 못했다.
(김무열 언더스터디 였다가 김무열의 중도하차로 메인이 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의 주원)
16. 주원 : 데뷔작 [스프링 어웨이크닝]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초연은 철저히 브로드웨이 시스템을 따랐다. 전 배역 원캐스트로 6개월 장기 공연을 약속했고 주원은 주인공 멜키어 역을 맡았던 김무열의 언더스터디였다. 주원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참여하기 전 무대 경력이 보잘것 없었던, 공연계에서도 생소했던 이름이었다. 비록 멜키어 언더스터디였긴 했지만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당시 23살이었던 주원에겐 그때까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큰 배역이었고 그만큼 주목 받은 작품에 출연한것도 처음이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라이센스 공연 자체가 2009년 하반기 기대작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런 작품에 언더스터디라면 경험 삼아 참여해볼만은 했다.
원래는 김무열이 6개월 동안 멜키어 역을 하기로 했던 배역이었다. 처음 약속은 그랬다. 그런데 우려한대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약했던 이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고 중소형 극장 공연 정도는 쉽게 매진시킬 수 있었던 김무열과 조정석이 동반 출연한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겹치기 잘 하던 김무열은 영화와 드라마 준비로 중도하차를 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2009년 6월 30일 개막했고 종연일은 2010년 1월 10일이었다. 김무열은 개막 공연부터 2009년 10월 4일 무대까지만 올랐다. 그 사이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도 받았지만 중도하차 계획을 번복하진 않았다. 결국 6개월 공연 중 반만 참여하고 말았다. 그리고 김무열 대신 멜키어 역은 주원이 연기했다. 언더스터디에서 단독 주연으로 격상한것이다. 언더스터디였음에도 주원은 김무열이 서지 못한 나머지 석달 공연의 일정을 소화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언더스터디라고 하는것도 어색했다.
김무열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끝내고 sbs일일드라마 [아내가 돌아왔다]촬영에 들어갔고 김무열 대신 배역을 맡게 된 주원은 이 작품으로 뮤지컬 시상식 신인상 후보에도 오르며 서서히 공연 팬들의 눈에 들어왔다. 일부에선 김무열보다 주원의 멜키어가 배우와 더 잘 맞았다는 호평도 많았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무대극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주원은 다음 출연작을 궁금하게 하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그는 무대를 떠나 방송으로 진출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끝내고 선택한 kbs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방송사의 기대작은 아니었으나 예상 외로 대박이 나면서 그해 방영한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로 기록 됐다. 주원은 [제빵왕 김탁구]에서 서브 주연을 맡아 방송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으며 이후 출연한 [오작교 형제들]이나 [각시탈]등도 모두 성공했다. 영화 출연작인 [특수본]과 [미확인 동영상]의 성적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스타덤에 오른 주원의 무대 복귀작은 신시컴퍼니의 야심작 [고스트]이다. 4년 만에 무대로 복귀한 주원이 [고스트]에서 맡게 된 배역은 당연히 샘 역이다. 김우형, 김준현과 트리플 캐스팅 됐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주원이 가장 높다.
([명성황후]초연에서 왕후를 맡은 윤석화와 왕을 맡은 홍경인. 둘의 나이차는 20살이나 난다. 아들뻘 되는 배우와 상대역 하기를 즐겼던 윤석화)
17. 홍경인 : 데뷔작 [명성황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1995년
1995년 홍경인은 방송, 영화계에서 최대 기대주였다. 그 나잇대 남자 배우 중 그만큼 잘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래시계][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젊은이의 양지]가 모두 이 해에 나왔다. 그리고 모두 성공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같은 사회적인 영화에도 출연하자 운동권 쪽에선 집회 참여 의뢰도 왔다. 약관의 나이에 참여하는 작품마다 작품성과 흥행은 물론이고 연기까지 인정 받았다. 홍경인에게 1995년은 배우 인생 중 최고의 해였다. 그가 그 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작품은 뮤지컬 [명성황후]였다. 이 역시 출연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문열의 원작 희곡 [여우사냥]이 부제로 쓰였던 [명성황후]초연은 1995년 12월 30일이었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간신히 맞춘것이다.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이 되면서 1995년은 명성황후 재조명에 열을 올린해였다. 그전까진 민비라 격하되었다가 대략 1994년, 1995년을 기점으로 [명성황후]로 격상됐다. 뮤지컬 [명성황후]전에도 [명성황후]재조명, 재평가 운동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수광의 7권짜리 역사 소설(2000년도에 5권으로 묶여 개정판이 출간)[나는 조선의 국모다]가 1994년 출간되어 떨어지는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명성황후 재조명에 일조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았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해 광복절 특집 단막극에선 지수원이 [영화만들기]란 작품에서 명성황후 역을 연기해 혹평을 받기도 했다.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에 대한 기대치라고 할 것도 없었던 시절에 윤석화 같은 스타와 홍경인이 나온 대작이었으니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창작 초연 치곤 잘 만들었다는 평가와 함께 흥행에도 성공했다. 홍경인을 고종 역에 캐스팅한건 실수였지만 초연 당시엔 크게 흠은 아니었다. [명성황후]가 지금과 같은 오페라틱한 뮤지컬로 자리 잡힌것은 이 작품이 이태원을 기용하여 해외 진출을 모색했던 1997년 재공연 때부터였다. 1995년 초연과 1996년 재공연엔 윤석화가 올랐으니 그만큼 각 넘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떨어졌다. 그래도 초연 때 홍경인이 고종 역으로 출연한 덕분에 조승우가 21살 나이에 [명성황후](2000년, 2001년 출연)에 출연해 고종 역을 연기할 수 있었던것 같다. 실제로 명성황후와 고종은 한살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뮤지컬에선 꼬마신랑과 신부처럼 구성했다. 홍경인이 [명성황후]에 출연했을 당시엔 뭘 해도 주목을 받았고 성공했기 때문에 화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어찌됐든 뮤지컬 [명성황후]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기념비적인 기록를 세운 작품이고 창작뮤지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런 작품에 참여한 초연 출연진이라는것도 홍경인의 뮤지컬 데뷔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다.
* 센세이셔널했던 국내 뮤지컬 데뷔무대 - 여우들 편을 다시 보시려면,
1. http://cafe.daum.net/musicalmania/NDZ/16279
2. http://cafe.daum.net/musicalmania/NDZ/16280
첫댓글 최재림, 김무열,김우형(응??),홍경인.....특히 홍경인 진짜 안타깝다 ㅠㅠ 키..키가 문ㅈ...아니, 아니다 ㅠㅠ
고1때 본 그 아름다운 영화, 전태일을 보며 울던 아름다운(??) 마음의 나를 되새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