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
민진홍
새참 반주에 술이 거나하다
소변이 마려워
논두렁에 섰는데
저쪽 풀숲 깊은 곳
꽃 한 송이 보인다
술기운의 오기가
군 생활 기억을 잡아당겨
일발 장전
웬걸 총알은 반도 못 가고 피식
이런 내가 판각되는 것 같아
고개를 저으며 너스레를 떤다
잘려 나간 벼 밑동 곧게 서 있다
(김포문학 39호 198쪽, 사색의 정원 2022년)
[작가소개]
민진홍 월간《시사문단》시등단, 김포문인협회수석부회장역임, 김포예총예술인김포시장상수상, 《통진문학》《풍경문학》회원, 〈빈여백〉동인으로활동중
[시향]
민진홍 시인의 시는 자연을 보는 듯 평화롭다. “새참 반주로 거나해”진 시인은 논두렁에 서게 된다. “저쪽 풀숲 깊은 곳 //꽃 한 송이”를 향한다. “술기운의 오기가//군 생활 기억을 잡아당겨//일발 장전”,“이런 내가 판각되는 것 같아//고개를 저으며 너스레를 떤다”. 대자연 속 자연으로 조금씩 사라져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시인은 고개를 젓는다. 고개를 젓는 일이 너스레를 떠는 일이라고 유쾌한 어조로 시를 마무리한다.
이미 오래전 일이다. 자녀들을 군대나 대학쯤 보낸 여남은 명 엄마 직장인들이 토요일 퇴청 후에 송추계곡으로 달려간다. 한적한 가을 산길을 오른다. 요의는 무거워지고, 들쥐 오줌 싼 가을의 마른 풀 섶이 무섭다는 유행성출혈열 주의보는 떠오르고, 그리하여 길옆 조붓한 오솔길로 들어선다. 몸을 돌려 모두 숲을 바라보며 한 뼘 좁은 길 위에 한 줄로 쪼그려 앉는다. 일제히 가랑잎을 조준하던 일. 시인은“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지만, 그날의 유쾌하고 비밀스럽던 자유와 해방감, 카타르시스는 오늘같이 평화로운 날 가끔 다녀간다.
삶에 깊이 빠져드는 어느 날, 모든 것은 사라져 희미해져 갈 때 우리는 소멸을 받아들인다. 오직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는 소멸이기를 바란다.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연애도 (- 시 영화에서의 詩)’라는 시처럼, 몰락이 있어 신생은 달려온다. 언젠가 올 초인을 위하여 머무를 집을 짓고 장미 넝쿨을 올리고, 사과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큰 나무 그늘도 마련해 둔다. 그리하여 볍씨나 기장 같은 씨 갑 씨 켜켜이 갈무리해 두고, 닭 오리 소 떼를 해가 지도록 몰아가는 것이다.
글: 심상숙 (시인)
첫댓글 농부시인은 역시 다르네요. 민진홍시인의 시 세계는 온통 자연 속에서 묻어나는 시심 가득하지요. 그래서 언제나 맑고 잔잔한 울림이 있고 그리움이 있지요. 오늘 그 시인의 들녘을 바라보며 소주잔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심상숙시인님의 시평이 있어 더 돋보이는 시향 덕분에 오늘 하루 향기롭게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