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수련으로 빙의를 치료하는 여자분의 몇가지 사례들 2

[사천왕]

1.

빙의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뒤 상미(22)의 삶은 판이하게 변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완전히 사라졌고 말수마저 크게 줄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이제 온통 허무 덩어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매사 의욕이 생겨날 리 없었다. 의욕이 없으니 욕망도 사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게 됐다. 타인과의 만남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자극도 없는 그저 멍한 나날이 계속됐다. 보다 못한 친구는 끌다시피 해서 그녀를 수련원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수련도 마지못해 하는 것인 양 도무지 활기라고는 없었다. 처음 수련을 위해 손을 올리는 동작부터가 사뭇 억지스럽기만 했다. 그러던 그녀는 수련을 시작한 뒤 30분쯤 지나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수련을 마친 뒤에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쉴새없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선생님, 정신은 또렷한데 마치 눈물보따리를 준비한 사람처럼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눈물이 나오니 이게 어찌된 셈이죠? 도무지 멈출 수가 없이 계속 눈물이 흐르니 이게 왜 이러는 거죠?

“빙의란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빙의에 대해 조심스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빙의된 사실을 놀랍거나 두렵기보다는 자신이 수련 중에 울었다는 사실에 더 기가 막혀 했다. 무감하던 자기가 왜 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던 것이다.

이튿날부터 그녀는 날마다 수련원에 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에 홀려 이렇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다는 그녀 나름대로의 오기가 발동한 것이었다. 수련이 끝날 때마다 그녀는 차음 말이 늘어갔다. 빙의에 대해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퍼붓더니 차츰 질문의 범주를 넓혀갔다. 나로서는 나날이 변해가는 그녀 모습이 흐뭇할 따름이었다.

며칠 동안 수련을 해 나가니 빙의된 영혼이 그녀의 몸을 통해 점차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혼과 교감을 해 보니 빙의된 영혼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고속도로에서 삼중 추돌 사고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앞서가던 유조차를 들이받은 뒤 곧바로 뒤따라오던 다른 트럭이 아버지를 덮친 것이다. 아버지는 두 트럭 사이에 끼인 채 차가 폭발하는 바람에 불길에 휩싸였으니 실로 참혹한 죽음이었다.

영혼이 표출되자 그녀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팔과 다리는 심하게 뒤틀렸고 입에서는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날 수련이 끝난 뒤에 그녀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간 빙의에 대해 아무리 얘기를 들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 확실히 알겠어요. 선생님, 제가 사고 당시의 아버지 고통을 그대로 느꼈지 뭐예요. 코끝으로 매캐한 냄새가 났고, 의식이 가물가물 꺼져 가는 것도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난 뒤 그녀는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몸을 휩싸는 매캐한 냄새 때문에 자다가도 몇 번씩 소스라쳐 깨어나곤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몸속의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아버지의 영혼을 마땅히 가야 할 곳에 보내드려야 한다는 도리 사이에서 그녀는 심하게 갈등했다. 그 때문인지 천도재를 지내는 동안 영혼은 한사코 그녀 몸을 빠져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 때일수록 천도를 주관하는 나도 힘들지만 당사자도 진땀을 흘리기 마련이다.

천도재를 지내면서 그녀는 뱃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토해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뱃속에서 쿨렁거리던 차가운 습기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몸속에서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2.

최신의학으로도 고칠수 없는 질병  

병이란 예방이 최선이고 완치가 차선이다. 예방이든 완치든 우선 병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아야 나름대로 대처가 가능하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진 탓일까.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병, 그러니까 '증후군'이란 애매한 말로 대변되는 병이 차츰 늘어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만성피로 증후군'. 이 병 또한 몇 가지 증세가 늘 따라다니나 그 원인이 모호하고 복합적이다.

김수미라는 22세의 여자. 그녀의 불행은 고2 때 처음 시작됐다.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선생님으로부터 단체기합을 받다가 그만 정신을 잃었다. 그 일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병원에서는 단순한 탈진이라고만 얘기했다. 하지만 그 뒤부터 그녀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억지로 먹자면 곧잘 토해버리곤 했다.

얼마 뒤에 한의원을 찾아갔다. 한의사는 진맥을 해도 맥이 잘 짚이지 않는다며 특별한 병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장기의 기능이 조금씩 저하돼 있는 상태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녀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몸은 날마다 축이 났다. 겨우 등교를 했다가도 금방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기 일쑤였다. 결국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요양을 한 뒤, 그녀는 호주 유학을 결심했다. 가족의 배려가 자신을 더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마인드컨트롤을 이용한 끊임없는 자기암시를 통해 필사적으로 학업에 매달렸지만 생활이 안정될 즈음에는 다시 무기력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낮이나 밤이나 웬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하루 종일 정신을 가누지 못할 만큼 잠이 쏟아졌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녀는 늘 비몽사몽의 상태였고, 병원에서는 여전히 ‘만성피로 증후군’이란 모호한 진단만 내렸다. 이제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길도 곱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년간 병원신세를 졌지만 도무지 차도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 그녀는 자신을 차분하게 되돌아보았다. 의지로 되지 않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자신을 휩싸고 있다는 것을 이림짐작했다.

“처음에는 혹시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기 전에 앓는다는 무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미쳐버릴 것 같았죠. 그러던 중에 선생님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며칠 동안 수련에만 임하던 그녀는 자신의 몸에 빙의돼 있던 영혼의 존재를 확인하고서야 저간의 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녀에게 빙의된 영혼은 12세된 남자아이였다. 급하게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여 비명횡사했다.

“어릴 때부터 누나를 따라다녔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들어왔어. 공부만 하려는 누누가 싫었어.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를 공부하는 누나가 갈수록 미웠어.”

빙의된 아이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그녀가 대신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몇 년간 앓던 고통의 원인이 비로소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천도재를 지낸 뒤부터 그녀가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최신 의학에 기대어 병을 고치는 것을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한번쯤 정신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아직도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신비가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3.

기수련으로 낙태아 영혼 표출

학준(19)은 중학교 때까지 수재 소리를 들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학준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더니 성적이 끝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1 때는 그나마 중간은 유지했는데 2학년이 되면서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어머니는 크게 상심했다. 까닭을 물으면 그때마다 학준는 "책을 봐도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집중도 안될뿐더러 어쩌다 책을 펼쳐도 멍하니 글자만 읽을 뿐, 내용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학준은 없던 버릇까지 생겨났다. 밤에 잠을 자면서 이빨을 심하게 갈아대는 것이었다. 어찌나 심하게 가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아팠고, 견디다 못해 마우스피스를 낀 채 잠을 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성적이 떨어지다 보니 학준은 고2 때 자퇴를 했다. 자퇴가 근본 처방은 아닐지라도 마냥 추락하는 성적을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다가 최면치료를 받게 했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최면치료가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최면치료로 유명한 모 교수를 찾아간 학준. 몇차례 최면치료를 받고 난 어느날, 그 교수는 학준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변성의식 상태에서 어떤 영혼이 표출됐는데, 나는 빙의를 치료할 능력이 안된다"며 한 퇴마사를 소개해준 것이다.

학준은 퇴마사 밑에서 100일 동안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학준은 그 기간 중 어떤 변화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학준 말고도 여러 사람이 빙의 문제로 와 있었는데, 학준의 눈에는 그들 또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지 않았다.

　
한번 의심이 들자니 "지금 네 몸에 있던 많은 영혼이 나갔고, 아직 나가지 않은 영혼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 정리될 것이다"는 퇴마사의 말도 공허하게 들리기만 했다.

　
학준 모자는 이런 방황의 나날에서 나를 찾아왔다. 학준에게 기를 수련시키니 태아 영혼이 표출됐다.

　
"너는 누구니? 학준이 형이니?" 내가 묻자 영혼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얘 누나야."

　
태아 영혼이 표출되고 난 뒤 학준의 어머니는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결혼 당시 그들 부부는 제약회사의 연구원 신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유학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를 갖게 되면 유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지라 별 생각 없이 아이를 지웠다고 한다.

　
"그때 너를 가지면 아무것도 못 할까봐…. 그때는 엄마가 참 몰랐어. 아무것도 몰랐어…."

　
학준에게서 영혼을 빼내던 날, 어머니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참으로 많이 울었다. 그 뒤로 학준은 이 가는 버릇도 없어졌을뿐더러, 요즘은 수련에 심취한 상태다.
　

최면은 물론 기타 수행을 통해 무의식의 상태로 들어가면 빙령이 표출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다. 그럴 때 주위에 인연 닿는 영능력자가 없으면 당사자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4.

천도재 지낸후 고통 씻은듯

마음을 닦는 수행 중에 빙의된 영혼이 절로 표출될 때가 있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영혼이 천도의 인연을 바라고 수행자에게 들어오거나 혹은 오래 전에 들어온 영혼이 수련을 통해서 그 존재가 드러나는 경우다. 이렇듯 빙의된 영혼이 표출될 경우, 만약 주위에서 그 사람을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면 당사자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다가 폐인이 되기 쉽다.

얼마 전 나와 인연을 맺은 송 여인(48)도 그런 경우였다. 그녀는 산에서 도반들과 명상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에게서 빙의된 영혼이 표출됐다.

사실, 빙령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빙령의 에너지가 강하게 표출될 경우, 장정 여럿이 달려들어도 여인네 한 사람의 힘을 감당 못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때 주위에서 빙의된 영혼과 교감하면서 이끌어줄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빙령은 더욱 난폭해지기 마련이다. 빙령이 표출되긴 했지만 스스로도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한다. 그렇게 어리둥절한 가운데에 있자면 영혼도 함부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십상이고, 그러면 또 빙의된 당사자는 영혼의 휘둘림 탓에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송 여인도 그날 꽤나 다급한 상황이었다. 어찌어찌 내 소문을 듣고는 새벽 여섯 시에 전화를 해왔다. 빙령이 표출됐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때 회원들과의 하계야외수련 때문에 막 집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선 중간에 송 여인을 만나서 야외 수련장소로 데려갔다.

수련 장소에 도착한 뒤 바로 송 여인에게 기를 불어넣으며 수련에 들어갔다. 그러자 빙령이 막바로 튀어나와서는 고래고래 악을 써댔다. 빙령을 겨우 달래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빙령은 자기 이름을 '묘화'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어느 대감 집의 시녀로 있었는데 동료의 모함에 의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나중에 송 여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 산에서 빙령이 표출될 때 무척이나 머리가 아프고 손으로 자기 목을 직접 조르기까지 했다는데, 아마 이런 영혼의 한 때문인 듯싶었다.

다행히도 이야기를 나눠 보니 영혼은 사람 몸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했다. 그리고 한 가지 재밌었던 점은 천도재를 앞두고 영혼이 나와 함께 시장에 가자고 부탁을 해온 것이다.

"나, 저 옷 사고 싶어."

영혼은 시장을 돌면서 자기가 떠나갈 때 입을 옷과 신발을 직접 고르던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송 여인과 동행하지만 송 여인 몸에 있는 영혼이 그렇듯 수시로 나와서는 그녀의 입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다. 시녀였던  그녀는 예쁜옷 한번 입어보는게 소원이었다고 한다.

아무쪼록 천도재는 무사히 치러졌다. 그러나 내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마음을 닦다가 뜻하지 않은 영혼의 표출로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게 현실이라니. 당부하건대 마음공부는 어떤 돌발 상황도 능히 감당해 줄수있는 , 그런 사람 옆에서 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할 따름이다.

5.

빙의된 영혼끼리 원한을 품은 부부

경기도 이천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며 자신을 소개하던 박사장(46)은 한참을 머뭇거린 뒤에야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박사장의 고민은 몇달 전 벌인 푸닥거리에 있었다. 장사도 시원찮고, 고등학생인 아들도 속을 썩이는지라 푸닥거리를 한번 행했던 것인데 그때 들은 무당의 말이 날카롭게 귓전을 때렸다.

무당은 푸닥거리 도중 별안간 길길이 날뛰면서 박사장에게 "귀신이 씌었으니 액막이를 하지 않으면 가게도 망하고 아들에게도 큰 화가 미칠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요즘 들어 박사장이 아내에게 가하는 폭력도 심각한 상태였다. 결혼하고 두어달 지나면서부터 손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아이를 셋이나 유산시켰고, 지금도 술만 먹으면 아내를 두들겨 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박사장은 무당의 말이 심란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아 아내한테 가하는 폭력부터 다잡자는 결심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수련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안되었을 때 그의 몸에 빙의돼 있는 영혼이 드러났다. 그에게는 자신이 유산시킨 아이들 셋이 줄줄이 빙의돼 있었다. 아이들의 영혼은 번갈아 튀어나오면서 박사장의 입을 빌려 원망을 쏟아냈고, 급기야 그에게 별짓을 다 시켰다. 배냇짓을 하게도 만들고, 때때옷을 사 달라고 앙탈을 부리게도 했으며, 사탕을 서너알 입에 넣고 빨게 만들기도 했다. 본인이 확실히 빙의된 걸 자각한 박사장은 2주 뒤에 천도재를 지내게 되었다.

천도재를 지내면서 그는 마치 아이처럼 수련실 바닥을 기어다녔다.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준비한 때때옷은 억지로 입느라 솔기가 다 터졌고, 손에 쥐어준 사탕 한 봉지도 거의 비워졌다. 한참 응석을 부린 뒤에야 영혼들은 아버지의 몸을 빠져나갔는데 그런 것쯤이야 뭐 대수랴. 진짜 문제는 천도재를 지낸 뒤에 찾아왔다.

천도재를 지내고 한달쯤 지난 뒤 박사장에게서 이천의 자기 식당에 한번 들러 달라는 전화가 왔다. 저녁이라도 먹을 생각으로 며칠 뒤 그 식당에 찾아갔는데 식당 문을 열자마자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악다구니가 쏟아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웬일인가 싶어 안을 들여다보니 그의 아내가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릇을 내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의 박사장은 그런 아내를 말리느라 쩔쩔매는 중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둘러 문을 닫고 말았다.

"천도재를 지낸 다음날부터 마누라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죽어지내던 여자가 마구 대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나한테 워낙 당한 것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사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무엇 하나 마누라한테 잘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애써 참았지요."

그런데 그녀의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고 한다. 사사건건 말대꾸를 하고 시비를 걸더니 마침내 그에게 물건을 내던지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마누라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내가 아무런 힘도 못 쓴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런지 마누라가 몰아세우면 전신의 힘이 쏙 빠져버리는 거예요."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그의 아내도 심하게 빙의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고분고분했던 것은 그녀에게 빙의된 영혼이 그간 아이들의 영혼에 눌려지냈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남편 속에 있던 아이들 영혼이 천도되자 그녀 속에 숨어 있던 영혼이 외화돼 이제 내 세상이다 싶은 마음으로 그동안 눌려지냈던 온갖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빙의된 영혼끼리 서로 원한을 쌓게 되면 화해하기 쉽지 않다. 한 사람만 유독 싫어지는 경우에는 이런 영혼끼리 맺힌 원한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은 천도를 해서 자기 본래의 성품을 되찾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