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강아지에 관한 시모음 3)
유일한 계획 /김용택
이사를 가면
개를 키우겠다.
큰물이 나가면
물가에 나란히 앉아
물구경하다가
아내가 마당에 서서
밥 먹자고 부르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나보다 먼저 일어서는
개를 한 마리 키우겠다.
개 꿈 /한재만
인간답게 살겠다고
노동쟁의를 하다가 목이 짤린
친구가 목이 셋 달린 바람에*
평화시장을 미친개처럼
이리저리 쓸려
다니다가
봄날이 온다던 광화문사거리에서 벤츠차에 깔려죽었네
*3선개헌
개밥바라기별 /김용화
개장수 줄에 묶여
끄-을려가던
복실이
울음빛 노을 속에
산모롱이
돌아갈 때
찬찬히
뒤따르던
개밥바라기별
개 두 마리 /이동순
지난 여름 장에 가서
암수 강아지 한 쌍을 사왔다
이놈들이 커서 이젠 제법 개 구실을 한다
어느 날 과자 하나씩을 주었더니
제각기 자기 과자 앞에서 과자를 지키며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한다
두 시간이 지나고 오전이 다 가도록 서로
눈치만 보며 먹지를 못한다
등털 곤두세우고 침만 질질 흘리는
이 어이없는 긴장!
나는 늦게사 그걸 알고
가서 과자를 멀리 던져버림으로써 팽팽한 긴장을 깨뜨렸다
이놈들은 그제사 고개 들고 하늘도 보고
또 서로 핥아주기도 한다
개새끼 /하영순
옆집개가 자동차에 치여
잘숙잘숙 절더니
어느날새끼를 낳았다
개가 새끼를 낳았으니
개새끼
눈 떨어지자
꼬물꼬물
온통 개판이다
이젠 꼬리를 잘래잘래
제법 귀엽게 놀고있는 너
개자식인가
개새낀가 묘한 이름
개새끼
푸~우
개똥 밭에 굴러도 /김내식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함은
우리의 선조들이 반만년 살아온
경험과 생활 철학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삶이 제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살아있는 자체가 축복이니
기쁨과 만족을 가지고 살라는
용기입니다
겨울철, 산비탈의 외로운 나무들
혹한의 면도칼로 제 몸을 자르고
역경을 나이테로 다지는 것은
진리입니다
삶이 시련과 고통을 주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을 주는
은혜일 것입니다
갈대 /고영민
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
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
살랑살랑살랑
고개를 처박고
텁텁텁,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서 들렸다
빈 그릇을 핥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마른 들판 한가운데 서서
얼마나 허기졌다는 것인가, 나는
저 한가득 피어 있는 흰 꼬리들은
뚝뚝, 침을 흘리며
무에 반가워
아무 든 것 없는 나에게 꼬리를 흔드는가
앞가슴을 떠밀며, 펄쩍
달려드는가
똥개 /최길준
별 속에 두고온 고향
춤추는 겨울 나비 그리움이 하얀 눈꽃에 젖는다
하얗게 변해버린 은빛세상 감격에 겨운 몸부림
안으로 억눌린 상실된 비애 허공 속 컹컹 소리 내 짖는다
말은 없어도 눈빛 속에 담은 슬픔
오직 순종하는 마음 인간 속에 들어와 삶을 공유하네
꿈을 펼쳐 날개를 달고 하늘을 비상하고 싶은데
아직 피지도 않은 얼어버린 매화꽃 등걸에 기대어 운다
자유를 구속당한 설움
목에 매어진 갈고리 같은 견고한 밧줄
용맹을 나타내는 상징 인가 골목길 발걸음 소리에
온 정성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똥개 거룩한 천사의 후예일까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두 귀를 쫑긋 세워 밤을 지켜주는 불침번
깊은 사랑 안에 품어 흘러넘치는 강물 같은 기쁨을 주리라
사랑스런 누이 같은 똥개.
우리는 개보다 행복할까? /槿岩 유응교
소유 한다는 건
오히려 큰 짐이라고
물 한잔 마실 컵만 가지고 다니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그도 어느 날
한 소년이 손으로
물을 받아먹는 걸 보고
컵마저 버렸다.
그런데 만일 개들이
디오게네스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손까지 필요하다고요?
우리는 평생을
너무 커서 입에 물 수 없는 건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고
개들은 때가 되면
그냥 길에다 두고 오고
집으로 가져오는 법이 없다.
많은 걸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개들은 칭찬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으며
자신을 남과 비교 하지도 않으며
놓아야 할 때를 안다.
배신을 모르며 늘 기뻐하며
쉽게 용서하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고
매트 와인스타인은 말한다.
사람이 이보다 더 행복 할 수 있느냐고
그는 애완견 블루가 세상을 뜨자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이곳에는 아름다웠으나
허영심이 없었고
강했으나 사납지 않았으며
인간의 악덕은 알지 못했으나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던
고귀한 영혼이 묻혀있다“고
- 병술년 원단 보신탕집을 바라보며 이 시를 쓰다-
나이 든 개 /고영민
나에게는 나이 든 개가 있어요*
잘 먹지 않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 1년이
개에게는 왜
7년인지
나는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나에게 늙은 개가 있어요
부르면 천천히
눈을 떠주는
*미야가와 히로의 동화 「나에겐 검둥이란 개가 있어요」를 변용함.
개새끼 /반기룡
사전을 찾아보니
개새끼와 개자식은 똑 같은 말이라 쓰여있다
"개새끼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저런 개새끼 같은 놈이 있나 "
"저런 개자식이 있나"라며
손가락질을 받을 때가 올망졸망 있다
흔히 성질이나 행실이
못된 사람을 일컬어 개새끼라고 부른다
그럼 난 개새끼 축에 드는 걸까
개의 새끼인 강아지 축에 드는 걸까
사람과 밀접한 관계있는 개를 보며
왜 하필이면 개새끼라고 할까 의문이
실타래처럼 펄럭거렸다
그리고 병술년은 "술"자가 있고 "년"자가 있으니
이중으로 욕을 얻어 먹는 나쁜 년(年)같다
어떤 이는 병술년은
술을 병술로 먹는 년(年)이라며
언어도단 같은 개똥철학으로
수캐 사정하듯 침을 튀긴다
저 멀리 뜨락에 쭈그려 앉아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개새끼 한마리가 컹컹컹 울부짖는다
이 개새끼들아
고물상집 개 /한도훈
이월의 붉은 저녁해가
고물상집 집게차 위에 걸리면
고물상집 털 빠진 개는
한무더기 똥을 싼 뒤
세상을 달관한 표정으로
막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
저녁해는 그 개의 무념무상한 모습을
넋나간 얼굴로 지켜보다
연방 흔드는 개꼬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녁해가 고물상집 개가 되고
고물상집 개가 저녁해가 되는
이 기막힌 풍경 앞에
집게차만 무거운 몸을 뒤틀며
길게 하품을 해댄다
유성식당(遊星食堂)에서 개고기를 먹고
이쑤시며 돌아온 주인이
해탈한 개 옆구리를 냅다 차면
깨갱깽깽 고물상집 개의 비명이
울림과 동시에
저녁해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우우우 비명 소리를 지구위로 올려 보낸다
밥그릇 경전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조주선사와 어느 학인과의 선문답.
미친개에 물리다 /우공 이문조
미친개에 물린 셈치고
잊으라고들 한다
미친개에 물린 기분
얼마나 더러운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미친개에 물린 상처
얼마나 큰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미친개에 물린 셈 치라는 말
쉽게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개 /오하룡
컹, 컹, 컹
개는 짖어 주인을 반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인은 황급히
입막는 시늉
철없는 개는
꼬리 살랑 살랑
컹, 컹, 컹
더욱 크게 짖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뒷집 창문 여는 소리
주인은 사색되어
입막는 시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