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 장애인이 찍은 사진 *
시각 장애인이 사진을 찍을 때는 파도는 찍지 않고 바다만 찍는다 능선은 찍지 않고 산만찍는다 나뭇잎은 찍지 않고 나무만 찍는다 인간은 찍지 않고 사랑만 찍는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사진을 찍을 때는 그저 웃는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을 보면 온통 웃는 풍경뿐이다
골목도 웃고 지붕도 웃고 하늘을 나는 새도 웃고 골목의 개도 웃는다 보이지 않던 아기 부처님도 슬며시 골목
에 나타나 미소지으신다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신을 보면 비어 있는 하늘만 충만하다 흘러 가버린 구름이 꽃을 피운다 침묵의 그림자가 노래를 부른다 달 그림자기 따뜻하다
*아래를 먼저 보새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위로 받을 때가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배고플 때는 나보다 더 배고픈 자를 생각하고,내가 외로울 때는 나보다 더 외로운 자를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버릴 때는 사랑하는 애인에게 버림 받은 자를 샐각하게 하고, 누가 나를 배밴할 때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배반당한 아버지를 생각한다. 나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끝내 갖지 못한다.
이것은 아주 이기적이 방법이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위를 보고 살지 말고 아래을 보고 살아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늘 돼새김질해야 하루하루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 한번은 서울 지하철 교대역 승강장 안에서 약속 시간이 어긋나 오랫동안 아버지를 기다린 일이 있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를 기다리던 바로 그 승강장 통로 기둥 앞에 시각장애인들 몇 명이 모여 있었다. 한 명은 흰 지팡이를 접어 깔개인양 엉덩이에 깔고 앉아 있었고, 또 한 명은 흰 지팡이를 짚은체 상체를 비스듬이 기둥에 기대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요즘 누가 아픈지 통 나오지 않는다면서 다른 이들에게 이러저런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무심히 보아 넘기다가 차츰 그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곳은 지하철을 오가며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집합 장소였다. 승객들이 붐비는 시내 중심지를 통과한 뒤 약간 외곽으로 빠져나왔다가 다시 시내 중심지로 들어가는 지하철로 갈아타는 반환점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피곤한 육신을 조금 쉬기도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시각장에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살아가는 아야기도 나누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서행 전동차가 교대역에 도착하면 전동차 맨 앞칸에서 꼭 한두 명씩 시각장애인들이 내렸다. 그들이 내리면서 톡톡 지팡이를 두드리면 미리 와 쉬고 있던 시각장애인들이 지팡이을 두드려 자기들이 모여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었다. 그리고 미리 와 있던 시각장애인들은 수서 쪽에서 구파발행이나 대화행 열차가 들어오면 기다린 순서대로 차례차례 다시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은 순서를 꼭 지켰다. 먼저와서 기다린 이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거의 한 시간을 지켜보았는데도 그들은 순서를 어기지 않다. 아마 그들 사이의 불문율인 것같았다.
나는 그런 그들이 마치 서울의 성자聖者처럼 느껴졌다. 어둠침침한 지하철 승강장 통로 한끝에 흰 지팡이를 짚고 꾸부정하게 서서 오가는 모든 열차와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그들에 의해 비로소 서울이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들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한 시각장애인이 어깨에 멘 낡은 비닐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아마 집에서 아내가 준비해준 것인듯 김밥의 굵기가 일반 감밥의 두 배는 되었다.
그는 밥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비닐봉지 안에 김밥을 넣어 조심스럽게 감싸 쥔 채 물도 없이 꾸역꾸역 씹어 먹었다. 혹시 남들이 볼까 봐 기둥에 살짝 기대어 외롭게 등을 돌린 채. 그는 내가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나는 그가 김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를 지켜보다가 그만 울컥 눈물이 솟았다. 그것은 그가 내개 주는 무언의 위안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저 김밥을 먹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어떨 것인가, 나는 눈물에 목이메어 그 사내처럼 그렇게 외롭게 흰 지팡이를 들고 서서 김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김밥을 다 먹고 자기 차례가 되자 다시 구파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김밥을 꺼냈던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지팡이를 두드리며 전동차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나는 전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자 그가 내게 '나의 불행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느냐고 자꾸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습니다. 당신의 불행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불행이 당신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척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지금 서울 교대역에 모이는 시각장애인들을 한번 찾아가보라. 그들은 우리를 위안하는 위안의 성자다.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불행이 남을 위로하는 일보다 남의 불행이 나를 위로하는 일이 더 많았다. 불행한 이들에게 많는 빚을 지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샘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