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학교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시급한 교육적 사안으로 인식되어,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결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약칭: 학교폭력예방법) 제정 이후, 지속적인 법률 개정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교육부 및 시도 교육청을 중심으로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방안들을 모색하여 왔다.
학교폭력예방법상의 사안처리는 피해자의 보호와 치유, 가해자의 선도와 교육이라는 본질적 목표를 중심으로 수년간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안처리 과정에서는 학교폭력 관련 학교 구성원 간의 회복과 치유보다는 심리적 상처와 갈등 심화만을 남기고 법적 처리상의 종결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학교폭력은 예방적 노력을 강화하여 사안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나,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에 관한 해결의 철학과 관점, 접근방식에 대한 교육적 성찰과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학교 공동체의 치유와 성장을 위하여 학교폭력 처리방안은 어떠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몇 가지 논의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초등학교 학교폭력 사안처리의 방향
첫째, 초등학생의 발달적 특징을 고려한 맥락적이고, 탄력적인 학교폭력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학교폭력 사안의 특징은 저연령화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교폭력 양상은 계획적이거나 집단적인 양상보다는 우발적 형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오인수 외, 2016). 물론 어린이들의 갈등 사례 또한 학교폭력의 전조양상으로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하여 지속적인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초등 저학년(초등 1~2학년) 학생들 간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관계적 갈등상황을 학교폭력으로 규정하여, 사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어린 학생들 스스로 인간관계 내의 건강한 갈등 해결 과정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발달과정상 사회성 발달과 문제해결력을 키워야 하는 시점에 작은 갈등 상황마저 부모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해 학교폭력 사안으로 처리되는 사례는 교육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학교폭력 사안 발생 시, 교육적 해결에 관한 중재 과정 없이 행정적인 절차만을 강조하는 학교 문화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학교폭력 사안 발생 시, 담임교사의 회복적 생활교육 철학에 의한 교육적 접근이나 화해 시도는 학교폭력 규정 상 은폐나 축소 등으로 몰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학교 측에서는 이러한 오해의 여지를 차단하고자 무조건 학교폭력 전담기구를 통해 사법절차에 의한 사안처리를 진행하게 된다. 회복적 교육기능을 보완하기 위한 학교폭력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소개되고는 있으나, 이 또한 양측의 관점 차이로 무산되거나 교육현장의 공감대 형성 부족으로 원활하게 운영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학교폭력 전담기구에서 수행하게 되는 사안조사와 관련한 업무는 가해, 피해학생에 대한 신문조서(訊問調書) 업무에 해당된다(권혜정, 이선영, 2022). 이는 사법적인 형식과 절차 자체를 교육 현장에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학교 고유의 기능인 관련 학생들의 분쟁조정과 교육적 기능을 상실하도록 만들고 있다. 학교폭력의 해결 종착점은 처벌 중심의 응보적 접근이기보다는 학생들의 치유와 회복, 인간관계 내 문제해결 역량 강화가 중심이 되는 성장중심 접근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 학교폭력으로 인한 갈등 해결의 주체는 관련 학생과 교사가 되어야 하나, 학부모의 과도한 요구와 간섭에 의해 주체가 주객전도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학생들 간의 학교폭력 문제해결의 본질이 ‘학생들 간의 화해와 반성, 치유와 성장’이 중심이 되어야 하나 학부모 간의 다툼으로 비화되어 고소 등 법정분쟁으로 심화되는 경우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교육제도 안에서 해결가능한 갈등문제를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변호사 선임을 통해 사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례가 최근에 많아지고 있다. 오히려 관련 학생들끼리는 갈등 사안에 대한 원만한 화해가 이뤄졌으나, 관련 학부모 간의 심리적 갈등 심화로 해결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한다. 물론, 학교폭력 사안의 성격에 따라 처리방식이나 학부모의 개입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경미한 사안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주체적인 의지와 생각을 존중하고 해결의 주체가 관련 학생들과 학교공동체가 되어, 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에 의해서 모두의 회복을 위해 해결 방향성을 찾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넷째,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담당교사와 담임교사가 경험하는 직무외상은 교사 소진과 학교교육력 약화로 이어지므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외상(trauma)이란 충격적인 스트레스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심리적 상처이며, 학교폭력 또한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외상사건 중의 하나이다(서영석 외, 2012). 직무외상은 외상과 관련된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하는 증상으로, 외상 사건을 직접 경험 및 목격하거나 외상 경험 대상자들을 지원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외상에 노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직무외상의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교사들은 관련 학생들의 학부모들로부터 받는 교권침해 등의 비난과 수치심, 이로 인한 분노와 원망, 업무에서의 혼란과 부담, 동료 교사의 암묵적 냉대와 무관심, 관리자의 책임전가로 인한 고립과 소진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최명희, 김진숙, 2016). 더불어, 교사 개인에게는 생활지도의 무능함과 담임교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암묵적 비난으로 죄책감 등 부정적 정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폭력 사안은 인간관계로 얽혀있는 모든 집단에서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일상의 문제이며, 이는 해당 담임교사나 학교폭력 책임교사, 그들만의 역할로 치부하는 문화를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해당 관련학생의 피해, 담당교사의 직무외상에 대한 이해와 관심으로 모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 삼공(三共) 프로젝트를 꿈꾸며
언론 매체에서 수없이 반복 보도되는 학교폭력 이슈들을 지켜보는 교육자의 마음은 늘 안타까움으로 점철된다. 인간은 더 나을 것도 더 못날 것도 없이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명제 하나만을 똑똑히 새기면 된다. 그래서 필자는 ‘함께’의 의미를 담은 삼공(三共)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고 싶다. 공감(共感), 공유(共有), 공존(共存)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나누고, 어우러져,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된다.
생각이 다른 인간이 복잡하게 얽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관계적 갈등의 발생과 해결과정은 수없이 이어짐이 마땅하고,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인 것이다. 학교폭력은 분명 철저히 예방되어야 하고 발생한 즉시 명백한 해결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해결은 모든 교육공동체의 회복과 치유, 성장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초등저학년 학생들은 발달적 특징상 우발적 형태의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무조건 사법적 절차로 발전하지 않도록 신중한 사안검토와 관리, 학교폭력 사안처리 절차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폭력 관계회복 프로그램의 이해와 확산을 통해 학교 안에서 학교폭력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보완‧개선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학교폭력 회복지원센터’ 설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학교폭력 처리 과정에서 사안처리의 어려움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여 담당교사 및 담임교사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으므로 이를 밀착형으로 상담하고 지원할 수 있는 단위학교 내의 학교폭력 전담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넷째, 노르웨이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올베우스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처럼 학교폭력의 예방적 접근뿐만 아니라 가해자 및 피해자를 위한 실제적이고 치유적인 접근이 이뤄질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및 정착이 내실화되어야 할 것이다.
- 필자 : 김지혜(경기도광주하남교육지원청 장학사)
- 출처 : 교육정책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