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비전과 목회철학
![](https://t1.daumcdn.net/cafefile/pds12/32_cafe_2007_06_04_17_44_4663d0f8bd789) 조 용 기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회 현장에서 많은 수고를 하시고 고생을 하시다가 이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것도 목회요, 하려면 일이 끝없이 많은 것도 목회입니다. 저는 금년 5월 18일로 목회 4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온 것 같은데 40년 목회 경험을 여러분과 함께 무릎을 맞대고 진솔하게 서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저의 제1기 개척기는 1958년도부터 1961년도까지였습니다. 그리고 1961년도부터 1973년도까지가 성장기였습니다. 그리고 1973년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발전기였습니다. 이 세 단계를 통해서 제 목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발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1958년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순복음 신학을 졸업하고 개척지를 물색하는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당시 불광동 건너편에 있는 대저 마을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 30호, 찢어지게 가난한 초가집이 모여있는 시골, 거기에서 조금 지나 불광동에는 경상도, 전라도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살 곳이 없어 모여서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판자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58년도는 한국전쟁이 지나간 이후 한 5년쯤 된 시기로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왔다가 군사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IMF가 왔다고 하더라도 저력이 있고, 희망이 있고, 꿈이 있는데 그때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좌절과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돈이 없었기 때문에 대저 마을 산비탈 깨밭을 빌려 미국 사람이 쓰다 내버린 23인용 천막을 5천원 주고 동대문 시장에서 사서 지게에 짊어지고 가서 천막을 쳤습니다.
저는 원래 그런 솜씨가 없는데 있는 힘을 다해서 나무를 세워 천막을 쳐놓고 가마니를 사서 잘라서 20장을 땅 위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나무로 십자가를 엮어서 세워 놓고 그 다음부터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지도 상거지였습니다. 보통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거지 움막집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 밑에는 초가집 30호가 사는 마을이 있고 상당히 떨어진 곳에 판자촌이 있었는데 제가 열심히 기도를 하고 전도를 해도 한 사람도 안 왔습니다. 마을로 가서 아무리 예수 믿자고 해도 모두 다 비웃고 그래서 한 5~6개월 동안 교인이라고는 다섯 명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섯 명도 나의 신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최자실 전도사님하고 아들 둘, 딸 하나, 젖어머니까지 다섯 명을 데리고 한 5개월 설교를 하고 나니까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너무 생활이 급박했습니다. 교단에서 도와 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미국 선교사에게서 받은 것도 없고 그냥 “믿습니다”로 나갔는데 제일 처음에 “믿습니다”로 나가니까 하나님께서 밥도 안 먹여 주셨습니다. 요사이는 기도하면 응답이 참 잘 오는데 그때는 왜 응답이 안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배가 고파 못 견딜 지경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 먹고 기도는 많이 했는데 신령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없어서 했습니다. 갈 데도 없고 심방 오라는 데도 없고 전도해도 안 받아주니 천막에 엎드려서 하루에 다섯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목이 콱 쉬도록 하루에 다섯 시간씩 매달려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서 교회가 설립되기를 기다리는데 그때 제가 정황을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고 어려우니까 모두가 죄인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을 보니까 전부 도둑질하고, 훔치고, 사기치고,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은 뒤로 제쳐놓고 어떻게 해서든지 먹고, 마시고, 살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희망도 없었습니다. 내일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직업도 없고, 직장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날품팔이로 살면서 어쩌다 돈 좀 생기면 술 먹고 도박하고 치고 싸우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병이 들어도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어린아이를 낳고 죽는데 페니실린 한 대만 맞으면 엄마도 살고 폐혈증에 걸린 어린아이들도 살겠는데 그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어린아이를 낳고 엄마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기도를 하다가 목회를 끝내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았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전도를 해도 누구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 급박한 현실에 전할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느낀 것은 함경북도 북청에서 피난 내려온 한 가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그 가족이 살았는데 이북에서는 잘 살았습니다. 남편은 유하문 씨고 부인은 옛날에 아주 인물이 잘생긴 이초희 씨라는 분이었습니다. 아들만 열 명입니다. 조그만 세 평쯤 되는 움막집에 이 열두 식구가 살았습니다. 거기에 이불도 딱 하나가 있었는데 가보니까 얼마나 때가 묻었는지 제가 이름을 “한라산, 백두산 이불”이라고 붙여주었습니다. 솜이 모여서 하나는 백두산이고 하나는 한라산인데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열두 식구가 덮고 잡니다. 이것은 거지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제가 왜 전도를 하러 갔느냐 하면 그분이 10년 동안 알코올중독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동리에 술 먹고 드러누워 있기 일쑤였습니다. 옛날에는 서울에 있는 모든 화장실 오물을 불광동 대저동에 큰 구덩이를 파놓고 거기에 전부 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가면 똥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술을 먹고 난 다음에 그 똥 속에 들어가서 목욕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새끼줄로 묶어 가지고 끌어내곤 했습니다.
그 집에 제가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가서 “주인 계세요?”그러니까 그 부인이 문을 딱 열더니 “누구요?” 그럽니다. “저는 요 건너 산등성이에 있는 교회 전도사인데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눈에 불이 번쩍 하더니 “나는 천당 안 가!”그럽니다. “왜 천당을 안 갑니까?”그러니까 강한 함경도 사투리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느냐? 당신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천당에 가면 그렇게 아름답게 좋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아름다운 천당을 주는 하나님 같으면 지금 이 땅에 살 동안에 우리에게 아부자리나 하나 주고 입을 옷이나 주고 먹을 양식이라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살아 있는 우리가 현재 이렇게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데 지금 우리를 못 도와 주는 하나님이 무슨 죽고 난 다음에 천당이냐? 웃기를 소리 하지 말아라. 우리는 그런 것 안 믿는다. 가난하고 헐벗은 우리들을 모욕하지 말아라”하는 것입니다. 손톱도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하러 갔다가 그 말을 듣고 내가 설득을 당했습니다. 나도 천막을 치고 가마니에 엎드려 너무 배도 고프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천당 가기 전에 여기에서 굶어죽지 않겠나, 또 하나님이 천당의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지금 주셔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좀 안 도와 주시나’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겁이 나서 말로 표현은 못했는데 이 부인은 담대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반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했더니 “지옥? 지옥 좋아하네. 당신 지금 내가 지옥에 살고 있는 것 아느냐? 우리 남편이 10년 동안 알코올 중독에 쌀 한 톨 안 벌어오기 때문에 10년 동안 쌀 한 톨 먹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열 명이 모두 밖에 나가서 슈샨 보이로 구두 닦고 남의 물건 훔치는 도둑놈이다. 우리는 이북에서 자랄 때 그렇게 안 살았다. 피난 나와 아들 열 명이 모두 다 구두 닦고 물건 훔쳐서 온다. 그러면 저 아이들 아버지가 그것을 다 훔쳐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 마셔버린다. 우리는 10년 동안 밥을 구경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심장병에 위장병이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는 형편을 보아라, 이것이 지옥이지 뭐라고 생각하느냐? 세 평 남짓한 것에서 이불 하나 가지고 장판도 없이 열두 식구가 사는데 지옥이 아무리 뜨거워도 지금 지옥보다 뜨거울 수 있느냐? 지금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다. 다음 지옥이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가 현재 지옥에 살고 있는데 무슨 더 무서운 지옥이 있느냐”하면서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나가라”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 말을 들으니까 또 참말입니다. 보니까 죽은 지옥이 아니라 생지옥입니다.
그래서 제가 천막 교회에 들어와서 가만히 엎드려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는 증거할 메시지가 없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하나의 신학적이고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것이지 현실은 내가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너무나 죄가 많고, 너무나 배고프고, 너무나 헐벗고, 너무나 병들고, 너무나 처참합니다. 여기에 내가 무슨 말을 전합니까? 천당을 가자고 해도 안 가겠다고 하고 지옥으로 협박해도 겁 안 내고 이 처절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제가 무슨 메시지를 전합니까? 여기에 제가 사랑하라는 말을 하겠습니까? 의롭게 살라고 말하겠습니까? 충성스럽게 살라고 말하겠습니까?”하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운 신학은 현실생활에 전혀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엎드려서 “하나님, 저는 아무래도 목회의 부름을 받지 않은 것 같으니까 목회에서 떠나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계시나 지시를 주시지 않는 이상 저는 떠나겠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하는데 제가 상당히 현실적인 상황 속에 있으니까 더 리얼하게 성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우리가 전한 복음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신학적인 복음을 전하고 미래적인 복음을 전하는데 예수님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현재의 죄인을 용서하시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도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 짓지 말아라”고 하시며 다 죽이려고 하는데 구원하시고 현재의 귀신을 쫓아내고, 현재 병을 고치시고, 현재 배고픈 사람을 수천 명씩 먹이고, 현재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어와서 건져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제가 가만히 그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복음이라면 안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렇게 죄인 많고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이라도 여기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이 동리가 전부 예수 믿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따라오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주님이시라 현실의 각박한 문제를 다 해결하실 수 있고 병자를 다 일으켜 버리고 환난당한 자의 풍파를 잠잠케 해주시고 배고픈 자를 먹여 주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는데 안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상당히 심각하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까지 읽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도 똑같은 복음을 전한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도 똑같이 죄인을 용서하고, 귀신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물질을 모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고, 구제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시대의 목회자들은 전도하고 가르치는 것만 하지 않았습니다. 전도하고 가르치고 그 다음에 반드시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구제사업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기적을 행했지만 바울 선생 같은 사람은 온 유럽에 다니면서 돈 모아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에서도 과부들 모아놓고 구제해 주고 현실적인 생활에 밀착된, 현재의 필요를 채워주는 복음을 증거하지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추상적인 신학적, 철학적인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 내가 하고 있는 목회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다. 이 동네에 와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내가 이 동네 사람들의 고통과 소외와 절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 영혼 속에 불을 당기는 성경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그것을 읽자 하늘에서 들려오는 청천벽력같이 제 영혼을 두들겼습니다. “바로 이거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해져야 한다.” 그래서 그때 제가 “삼박자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것 이외에는 안 된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도 잘되고 강건해져야 한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굉장히 흥분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성경이 꿰뚫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지었을 때 그들의 삶은 영혼이 잘 되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없이 교통하고 범사가 잘 되었다. 그들에게는 헐벗고, 굶주리고, 배고픔이 없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강건했다. 그들은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뭐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짓고 버림을 받자 그들의 영혼이 잘 안 되었습니다.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고 범사가 저주를 받아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가난과 저주가 꽉 들어찼습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대로 흙으로 돌아가야 되니까 병들고 늙고 죽게 되었습니다.
원래 에덴에서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것이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인데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함으로 영적으로 부패하고 범사에 저주받아 병들고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영혼이 잘 되게 하고, 범사에 잘 되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삼중 축복의 역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피를 흘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죄악의 담을 헐어버리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고통이 있어 영혼이 잘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3:13~14)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지신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하셨고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의 병까지 짊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를 사복음서에서 자세히 보니까 예수님은 그의 생의 삼분의 일을 병 고치는 데 보냈습니다. 치료에 대해서 주님은 과하다 할 정도로 집착을 가지고 병 고치는 데 열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하고는 병 고치고 70인의 제자를 둘씩 둘씩 보내면서도 “천국이 가까웠다” 하면서 병 고치게 했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죄 용서와 구원과 동시에 치료에 대한 굉장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천국 복음은 언제나 질병 치료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 머리 속에 번쩍 떠오른 것이 “아, 천국의 기초는 치료에 있다. 메시아는 치료자고 천국의 속성은 치료에 있다. 내가 그러면 천국 복음을 증거하고 메시아인 예수님을 증거하면 항상 거기에서 치료가 따라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제가 굉장한 흥분을 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실천목회 신학이 정립되었습니다. 저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천사론, 마귀론, 말세론을 신학교에서 다 배웠지만 실제로 목회 현장에서는 하나도 쓸 수가 없었는데 처참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속에 들어와서 보니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신학이 정립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삼박자 구원입니다. 에덴에서 삼박자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기에 삼중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혼도 버림을 받고 생활도 저주받고 육체도 병들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셔서 다시 한번 삼중축복을 십자가에서 넘치게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절망의 세 줄기 강이 흘렀다면 십자가에서 그 강물을 막아버리고 세 줄기 희망의 강물이 넘치게 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와 구원과 치료와 축복이 넘쳐납니다.
이러한 실천적인 신학이 정립되니까 용기와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전까지는 설교를 해도 천방지축으로 했습니다. 어제는 칼빈주의로 설교했다가 오늘은 알미니안주의로 설교를 하고 나도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사람을 끌어들이려고 하니까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수요일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섰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야, 이제 되었다. 아주머니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래서 아주머니 들으라고 있는 힘을 다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인사를 하려고 보니 이 아주머니는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 어떻게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까?” 하니까 “밭 매다가 비가 와서 비 피하려고 들어와 있었는데 아이고 한숨 잘 잤네.”그래요. 제게는 좌절도 그런 좌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개척하는 목회자의 심정을 압니다. 너무 너무 갈등과 고통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스스로가 굉장한 연단을 받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실까? 정말 구원이 없으면 잃어버린 청춘은 누가 보상해 주나? 내가 정말 과연 교역자로서 이렇게 희생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그런 갈등이 굉장해서 강단에서 설교를 하면서도 속으로 “내가 하는 설교를 내가 믿느냐? 내가 믿지도 않으면서 설교하는 것 아니냐?”하는 질문이 떠오르고 완전히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삼박자 축복을 가지고 나니 내 마음이 신학적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첫 케이스로 이초희 씨 집을 찾아갔습니다. 다시 오지 말라고 한 집을 갔습니다. “주인 계세요?” 그러니까 문을 열더니 “또 왔네, 또 왔어.”그래요. “예, 또 왔습니다.”그랬더니 “우리는 천당 안 가, 교회 안가. 오지 말라니까.”그러더라구요. “아주머니, 나는 천당 가자고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 남편이 10년 동안 알코올중독자였다고 했죠?” “그렇죠.” “제가 고쳐주는 사람을 알아요. 알코올중독 대번에 나아요. 당신 남편이 알코올중독에서 낫고 직장을 얻어서 월급을 타고 쌀가마니를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열 자녀들이 전부 다 학교도 안 가고 도둑질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 전부가 다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서 희망있게 살면 어떻겠습니까?” “아주머니 심장병, 위장병이 낫고 사람 살만한 집이라도 하나 장만하면 어떻겠습니까?” “누가 그렇게 해줘?” “그분이 그렇게 만들어 주어요.” “그분이 어디에 있어요?” “날 따라오면 제가 소개해 줄께요.”
그러니까 두말 하지 않고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 제가 감동했습니다. 천당 지옥을 말했다가 벼락을 맞은 제가 남편 알코올중독에서 해방되고 자식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병 나을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주는 분이 계신다고 하니까, 필요를 채워줄 메시지가 있으니까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논두렁 길을 걸어서 다 떨어진 천막이 서 있는 교회까지 왔습니다. “그분이 어디 살아요?” 그래서 “이 안에 살아요”하고 말했습니다. 천막을 들추어보니까 맨땅에 가마니를 깔아 놓고 강단은 사과 궤짝 하나에 흰 보자기를 씌워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배를 잡고 웃는데 얼마나 웃는지 저는 그분이 그렇게 배를 잡고 웃을지 몰랐습니다. “깔깔깔”하고 웃더니만 “당신 팔자나 내 팔자나 같군.” 그럽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맞아요. 아주머니 팔자나 내 팔자나 거지 팔자입니다.” 그랬더니 아주머니가 “그런데 그이를 알면 그이가 당신을 왜 그렇게 만들어 놓았소?”합니다. “나도 지금 그분을 찾고 있어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데 그분을 찾아서 만나기만 하면 구원도 받고, 병도 낫고, 복도 받아요. 그분을 나도 지금 찾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와 같이 찾자 그 말입니다.”
그래도 그 말에는 현실성이 있으니까 욕을 안 하고 같이 찾자고 하면서 그때부터 교회를 나오는데 새벽에 나와가지고 기도하고 하루종일 그분을 찾기 위해서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고 그 다음부터 제가 용기가 생겨서 그 동리 가난한 판잣집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당신들을 새롭게 살려줄 분이 계십니다. 이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해줄 분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찾아가자”하고 전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195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에 기독교인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옛날에는 들은 척도 안 했는데 제가 그 말을 하니까 다 묻는 말이 “그분이 어디에 사느냐?”하고 “그분이 누구냐, 미국 사람이냐?”그럽니다.
병들고 아픈 사람들, 좌절과 절망뿐이었는데 좌우간 그분만 찾으면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는다고 하니까 제일 처음에 병자들이 오고 또 오고 하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 천막 속에 병자가 꽉 들어찼습니다. 예배당이 전부 병신당입니다. 앉은뱅이, 중풍, 찌그러진 사람, 폐병 걸린 사람, 그 당시에 얼마나 못 먹었으면 얼마 안 있다가 최자실 전도사님 자녀들도 다 피를 토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을 논산훈련소와 같다고 여기고 굉장한 신념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살 길은 이것밖에 없다.”싶어서 요한삼서 1장 2절을 기초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고 회개하라. 예수 믿고 회개하고 성수주일하고 하나님 섬기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당신들의 병을 고쳐 주신다. 병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셔서 생활에도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니 몇 명 모이는 교인들이 다 떠나가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난한 사람 모아 가지고 탈취하려고 그랬구나?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들이 낸 십일조 내가 손가락 하나 안 건드린다. 십일조를 드려야 축복받는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십일조를 가져오는데 어떤 아주머니는 죽을 한 종지 가지고 왔습니다. 죽밖에 십일조로 가지고 올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파를 몇 포기 가지고 왔습니다. 병아리 새끼를 한 마리 가지고 온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제가 강하게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하신다” 하고 말했습니다. 천당 얘기를 안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천당은 너무나 멉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지금 이 땅에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해서 새로운 삶을 준다”라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발했느냐 하면 1958년 1년 동안 헛장사했는데 제가 이 메시지를 전하자 1959년 1년 동안 3백 명이 모였습니다. 병이 많이 나았습니다. 저는 신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나 절막한 환경 가운데 그 복음이 아니고는 그리스도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제 생에 있어서 최대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서울역에서 동냥하던 청년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그 사람도 일어나서 뛰고 서울 적십자 병원 내과 과장 부인이 반신불수였는데 그 말을 듣고 서대문에서 거기까지 나와서 나아서 걸어나가고 폐병은 부지기수로 나았고 암도 떨어졌습니다. 물론 안 낫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 낫는 사람은 얘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늘나라 선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 낫는 사람은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제가 보니까 70%는 나았습니다. 24시간 매달려서 기도를 하니까 병자들이 많이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많이 격려가 되고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니까 아까 말한 이초희 씨 남편 유하문 씨도 10년 알코올중독자가 석 달 기도한 다음에 알코올중독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함경북도 도민회에서 그분에게 직장을 주어서 비로소 그분이 월급을 타오고 쌀가마니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땅이 있는 사람에게는 집을 짓도록 조금씩 융자를 해주었는데 그때 땅을 구해가지고 융자를 얻어서 아주 예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리고 직업이 없는 사람은 직업을 얻고 이렇게 해서 1960년도가 되자 교인이 6백 명이 되었습니다. 거기 동네 사람들이 다 와도 6백 명이 안 됩니다. 그들은 모두 서대문에서 왔습니다. 서대문에서 버스를 타고 주일날 그곳에 옵니다.
그래서 제가 느낀 것은 사람이 필요를 채워주면 필요한 사람은 동서사방에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위치가 나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니까 하나님 성회 총회에서 “조용기 목사의 신학이 잘못되었다. 조용기 목사 신학은 천국 복음이 아니고 현실 복음이다”라고 해서 실행위원회에서 모여가지고 저의 전도사 자격증을 박탈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무적자가 되었습니다. 무적자만 된 것이 아니라 총회에서 내가 있는 곳을 신학교 부지로 사서 나를 쫓아내기 위해서 교회 주위에 철조망을 쳤습니다.
교인들이 아무도 못 오게 거기에 철조망을 쳐버렸습니다. 철조망을 들쳐야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교인 6백 명이 되어서 천막을 세 개를 쳤는데 이제는 절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살인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총무가 장로였는데 총회 총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를 찾아갔습니다.
철조망 좀 치워달라고 하니까, “당신은 이단이니까 나가야 해. 요사이 성령 받고 방언 말하고 병 고친다고 야단법석을 하고 이런 것이 어디에 있으냐 말이야, 나가라”합니다. 그래서 제가 총무를 정면에 놓고 “조용기가 타락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그날 당신 가족은 저승에 가 있는 줄 알아라, 나는 폐병에 걸려서 죽다가 살아났고 결혼도 안 하고 홀몸이다. 내 생명이 이 교회에 달려 있는데 내가 타락했다는 소리를 듣고 내 손에 칼이 들리면 당신과 당신 식구들은 다 황천객이 된 줄 알아라”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은 주의 종으로서 할 수 없는 말인데 사람이 막다른 골목에 처하니까 그런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나 혼자 죽을 수 있느냐 총무 너희 가족 데리고 가야지”하니까 얼굴이 노랗게 변합니다. 나는 혈혈단신으로 부산에서 아무것도 없이 올라왔는데 뭐 겁날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아침에 교인들이 철조망을 들치고 기어들어와 아침 새벽 기도를 마치고 나오니까 바람이 휙 부는데 신문이 쪽지 하나가 날아와서 제 발에 감기는 겁니다. 그래서 신문지를 보니까 중앙청을 다시 복구해서 산업박람회를 하는데 광고에 보니까 산업박람회에서 제비를 뽑는데 추첨에 당선이 되면 시발 택시도 걸리고, 미싱도 걸린다고 씌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람에 날려와서 제 발에 걸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돈도 없고 갈 곳이 없는데 여기에 만일 미싱이 걸리면 우리 최자실 전도사님보고 제품을 만들자고 말하고, 택시가 걸리면 내가 택시 운전사 노릇을 해서 돈 벌어 가지고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자실 전도사님에게 돈 좀 빌려달라고 해서 최 전도사님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돈을 빌려와 가지고 갔습니다.
그때 불광동에서 서대문으로 나오는 버스표가 2원이었는데 2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가지고 밤새도록 금식하고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미싱이 걸리든지 시발 택시가 걸리든지 도와 주시옵소서. 안 믿는 사람도 걸리는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안 걸리게 하실 리 있겠습니까?” 저는 확신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걸리는데 교회 세우려고 하는 나에게 시발 택시 하나 안 걸리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를 하고 “믿습니다”하고 갔습니다.
산업박람회에 가니까 사람들이 걸렸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래서 최자실 전도사님과 제가 그것을 샀습니다. 사서 천막 뒤로 가가지고 최자실 전도사님이 그것을 펼쳐보았는데 얼굴이 노랗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이 남자를 존중하지 여자를 존중하겠느냐, 걸려도 내가 걸리지 최 전도사님이 걸리겠냐 그리고는 열어보니까 꽝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으로 떠나가버리고 맙디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느냐, 내가 밥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교회 세우겠다는 것인데…”하며 거기에 둘이 주저 앉았습니다. 이제는 빌려온 돈 갚을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돌아왔는데 걱정입니다.
그 날 그것 산다고 돈 빌리고 버스비 빌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서울에 나오면 불광동에서 서대문까지는 걸어나왔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노동장으로 가자 해서 집 짓는 데 가서 벽돌 찍는 일을 했습니다. 일일 노동자로 가서 나는 벽돌 찍고 최 전도사님은 공사장으로 벽돌을 나르는데 나는 아직 젊고 하니까 벽돌을 찍는데 저쪽에 보니까 사람들이 야단이고 여자 비명 소리가 납니다. 우리 최 전도사님이 벽돌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넘어졌습니다. 넘어져 이고 간 벽돌을 떨어뜨린 겁니다.
그러니까 공사 현장 감독이 젊은 사람인데 최 전도사님을 때립니다. 가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발길로 차면서 “이 년야, 일을 할 줄 모르면 오지를 말지 벽돌 깨진 것 물어내라.”그럽니다. 감독이 때리니까 우리 최 전도사님이 “주여, 주여”하면서 웁니다. 또 다시 제 눈에 불이 번쩍 하더니만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갔습니다. 가서 제가 입고 있던 옷을 찢었습니다. “야, 이 개새끼야 나와라, 너 오늘 내 손에 죽었다.”
그때 제 나이가 스물다섯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창때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한 40대쯤 되었더라구요. 제가 멱살을 잡고 “야, 이 개새끼야. 어머니 같은 사람을 두고서 네가 이년 저년 하면서 발길로 차? 이놈의 새끼 죽어봐라”하면서 제가 머리를 탁 받았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에 기계체조를 했기 때문에 상당히 근육도 있고 행동이 빨랐습니다.
제가 머리를 받고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을 거니까 이 사람이 달아나는데 제가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이놈의 새끼 너 죽인다”하면서 따라갔더니 막 도망갑니다. 그래서 최자실 전도사님에게 가 봤더니 발로 차여가지고 많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갑시다.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 보따리 싸가지고 우리 살 길로 각각 흩어져서 갑시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벌 옷도 다 찢어지고 일당도 하나도 못받고 천막 교회에 와서 거기 조그만 천막 옆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 복권 당첨도 안 되게 해주시고 건축 현장에 갔다가 이렇게 되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이야.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 있냐’싶었습니다. 다 싸가지고 “최 전도사님, 미안합니다. 나는 더 이상 목회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목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습니다. 교단이 내 자격증도 빼앗아갔죠. 천막 교회는 철조망 쳐버렸죠. 나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까 갈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최 전도사님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최전도사님이 우리 어머니와 동갑이었습니다. 나는 스물 다섯 살이고 우리 최 전도사님은 마흔세 살이었습니다. 최 전도사님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전도사님,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래요. “살아 있기는 뭐가 살아 있어. 살아 있으면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둘 리 없어요. 최 전도사님같이 세상 다 산 사람에게는 괜찮지만 스물 다섯 살 먹은 사람에게 이런 생활을 하란 말입니까? 나는 갑니다.” 그러니까 전도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젊은 종이 마음을 돌이켜 돌아오게 해주시옵소서.”하십니다. “젊은 종이고 늙은 종이고 나는 갑니다”하고 저는 떠났습니다.
제가 불광동에 나왔는데 못 간 이유가 있습니다. 버스 탈 돈이 있어야 가죠. 불광동 종점에 나왔는데 버스 타고 서울 시내에 나갈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옷도 다 찢어진 것을 꿰매가지고 입고 왔는데 가만히 서 있으니까 정말 갈 데가 없었습니다.
제가 회개하고 그것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갈 데가 없어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는 그래도 천막이라도 있어서 엎드려 있을 수 있고 또 교인들이 가져온 십일조라도 얻어먹고 그랬는데 나오니까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돌아왔소?” 그러시길래 하나님이 도로 돌아가라고 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철야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어떤 부자 과부 하나가 왔습니다. 불광동에 집을 두 채를 가진 혼자 된 자매님이 오셨는데 몸이 아파가지고 오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를 있는 힘을 다해서 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하니까 몸이 조금 좋아졌다고 대접한다고 오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갔는데 흰 쌀밥을 해서 상을 차렸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가서 2년 동안 쌀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미국 사람이 준 밀가루에 우유를 섞어가지고 빵을 만들어 먹었지 밥은 구경을 못 했습니다. 흰 쌀밥을 먹으니까 너무너무 맛있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맛있는 밥 처음 먹어봤습니다. 너무너무 맛이 있어서 정신 없이 밥을 먹었는데 다 먹고 나니까 그 집사님이 하는 말이 “천막에 철조망을 쳐놓고 말이 아닌데 하나님의 교회가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집이 두 채가 있는데 집 한 채를 교회를 위해서 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습니다. ‘와 하나님, 살아계시구나!’ 그래서 제가 “자매님, 그 집은 일단 바칠 마음이 생기면 당장 바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달라지면 안 되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 먹은 것을 당장 해야지 늦추면 안 돼요”하면서 집 문서를 내놓기에 당장 받았습니다. 받아가지고 주머니에 넣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축복은 다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팔아가지고 그 돈으로 우리가 천막 지은 그 땅을 샀습니다. 사서 우리 것이 되니까 철조망을 걷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때부터 불붙듯이 일어나는데 1961년도가 되니까 6백 명의 교인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 돈을 모아가지고 전부 다 벽돌담 짓고 해서 교회당을 짓고 거기에서 목회를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저는 서대문으로 나왔습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 존 허드슨 목사님이 한국에 사명을 가지고 나와서 서대문에 땅을 사서 쌀 창고 같은 천막을 지었는데 통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통역을 하며 같이 목회하자고 해서 제가 거기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의 목회 제1기 훈련은 끝났습니다.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삼중 축복,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희망을 주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메시지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죽으면 천당 가겠지만 우리는 현실에 사니까 현실에도 천국을 가져와야 하는 겁니다. 하늘나라 천국을 현실 생활 속에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제가 절실하게 깨닫고 하나님께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1961년도에 서대문에 나와서 그곳에서 교회를 다시 개척하는데 그때 제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내게 경고를 했습니다. “너는 여기에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위에 독립문 성결교회라고 성결교의 쟁쟁한 교회가 있고 바로 옆 건너에 아현감리교회가 있고, 바로 옆에 정동감리교회가 있고, 또 새문안교회가 있고 한국에서 손꼽는 쟁쟁한 목사님들이 있는 가운데 서대문 네거리에 들어와 앉아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사람의 목회가 될 턱이 있느냐 아예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입 가진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에게 릴레이하는 신학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우리 한국이 너무나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스러워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릴레이 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제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블광동에서 되는 메시지는 여기에서도 된다”고 믿고 1961년도에 서대문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저는 매일같이 새벽, 낮, 저녁 부흥회를 하면서 무지무지한 각오로 삼중 축복을 전했습니다. 마음에 신학이 정립이 되니까 설교가 그렇게 하기가 쉬웠습니다. 옛날에 신학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는 설교 한 편 만들려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뒤적였는데 이제는 어느 곳에 가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삼중축복의 대속을 갖다 주고 인간의 타락도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삼중의 고통을 가져왔다는 것을 중심으로 해서 얼마든지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서대문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교회당 크기가 한 천 명쯤 앉을 정도였는데 장소가 비좁아 터져 나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성령 세례를 받고 철야하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5층으로 지어 올리고 2천 명이 앉도록 확장했습니다.
1961년도에 시작한 것이 1964년도에 가서는 교인이 3천 명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하나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방언도 말하고 했는데 성령이 인격자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냥 성령을 막연히 체험으로 알았는데 그때 하나님이 섭리해 주서서 성령이 인격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함께 성령은 인격자로서 인격적인 하나님, 성령은 추수꾼의 주인이고 성령이 교회의 책임자요, 일꾼이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회개했습니다. 제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지 않았던 죄를 회개했습니다. 인격자이며 인격적인 대접을 해야 할 것인데 성령을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보좌에 계시고 예수님은 보좌 우편에 계시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 역사하는데 성령을 인격적으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게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서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들입니다. 의지합니다. 성령님 함께하시옵소서”했습니다. 또 제가 강단에 앉아서 설교하러 나가기 전에는 “성령님 함께 나가십시다.” 또 설교하고 앉으면 “보혜사 성령님,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기름부으신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또 부흥회를 나가면 “성령님, 당신이 나를 붙들어서 우리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을 올바르게 전하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령과 코이노니아, 동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하자 목회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자 제가 강단에 서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기름부으심과 하나님의 계시가 마음속에 임하여 줄기차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과의 깊은 동행을 한 이후로 3천 명의 교인이 1969년도에 등록교인만 8천 명, 만 명이 되었습니다. 서대문에서 6부 예배를 드리는데 만 명이 드리니 주일날은 교통이 전부 마비가 되고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그때 새문안교회 담임을 했던 강신명 박사님이 하루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조 목사님, 좀 만나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젊은 목사로서 도저히 여기에서 성공할 수 없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고 이렇게 많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신다. 나도 좀 배우자”하시는 겁니다. 제가 강 박사님의 말을 듣고 너무 감격했습니다.
그 노인이 와서 “나도 좀 배우자. 나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공부하고 새문안교회를 맡고 있지만 부흥이 안 된다. 사람이 감동을 안 받는다. 내가 가만히 보니까 조 목사보다도 학식도 많고, 경험도 많고, 설교도 잘할 수 있는데 내 말은 사람들이 안 들어준다. 비결이 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목사님에게 내가 어떻게 깡통 신학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말을 못 하고 “강 박사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히 받아서 설교하면 하나님 능력이 임해서 설교를 잘 할 수 있습니다”했습니다. “성령을 어떻게 받지?” “기도원에 가세요. 기도원에 가셔서 성령 충만을 받으세요”했습니다.
제가 솔직히 말해서 삼중축복이니 성령론이니 말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그 크신 어른 앞에서 어떻게 감히 입을 엽니까? 그래서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안한 말로 새문안교회 많은 성도들도 우리 교회로 왔습니다. 그래서 기성 교인도 오고, 안 믿는 사람도 오고 좌우지간 병든 사람은 다 왔습니다.
병든 자 다 오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이 오는데 우리교회 교인의 90%가 전라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는 전라도 사람들이 전라도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남의 집 식모 안 하면 마당 쓸고 포장마차 하고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 우리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영락교회는 이북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교회로서 부자들이 있으니 못갔습니다. 정동감리교회는 한국의 학식있는 인텔리들이 모였으니 거지가 된 사람은 못갑니다. 우리 교회는 거지 교회라 24시간 열어놓으니까 와서 그 답답한 사정을 울고 부르짖고 합니다. 제가 최근에도 수요예배 드릴 때 전라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손들어 보시라고 했더니 60%가 호남 사람이었습니다. 서울에 있으면서 우리 교회가 호남 교회가 된 아유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삼중축복의 메시지를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올 필요 없고, 학식 있는 사람도 올 필요 없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만 오니까 전부 전라도 사람만 온 것입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호남 사람들이 소외되었습니다. 제가 호남에서 집회를 다녔지만 거기에는 공장도 없고, 산업시설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서울로 다 올라온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우리 교회에 다 모였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그때 하나님이 또 제게 2기 성장기에 가르쳐 준 것은 구역예배입니다. 나는 혼자인데 교인이 자꾸 많아지니까 인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영락교회가 6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과로로 제가 쓰러졌습니다. 주일날 저녁에 설교하다가 쓰러져서 나를 들것에 실어서 적십자 병원에 갔는데 적십자 병원에서 나보고 다시는 목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심장도 엉망이고 신경이 과로로 형편없이 되어서 이대로 계속하면 곧 죽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목회를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목회를 그만 둡니까? 이것이 제 생명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양하면서 집에 드러누워 부르짖다가 발견한 것이 구역조직입니다. 평신도를 철저히 조직해서 평신도 운동을 전개해서 심방 못 가는 것 평신도가 하게 해야겠다 싶어서 주일날만 설교하고 하루종일 누워 있었습니다. 한 2~3년 동안을 제가 목회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러누워서 구역공과를 만들어서 남녀 성도들 가운데 지도자를 세워서 교육훈련 시켜가지고 온 서울시 교구로 나누었습니다. 대교구, 소교구, 구역을 나누어 가지고 대교구장은 목사로 하고, 소교구장은 전도사로 하고, 구역은 평신도로 해서 밀고 나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못 가더라도 구역장들이 심방하게 했는데 우리 구역장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내가 아파서 드러누워서 움직이지 못한 것이 1969년부터 74년도까지였습니다. 설교도 8분, 10분밖에 못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쇠약해졌는데 구역조직을 하고 강력하게 밀고 나가니까 3년 동안 교인이 3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정상목회를 못 했는데도 우리가 1969년도에 여의도에 교회를 짓기 시작해서 1974년도에 여의도로 옮겨왔는데 옮겨오자마자 교세를 점검하니까 교세가 3만 명이었습니다.
불광동에서는 삼중 삼박자 축복의 메시지를 가지고서 현실적인 사람들과 릴레이함으로써 복음을 증언했는데 성장기인 1961년도부터 1973년도까지 12년 동안 서대문에 있으면서 이 삼박자 축복에다 성령과의 교통과 구역을 통해서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나왔는데 그때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여의도로 나가면 망한다고 했습니다. 여의도로 나가는데 여의도에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집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상수도도 없고, 하수도도 없고, 난방도 없고, 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현균 목사가 나보고 하는 말이 “조 목사, 여의도로 기왕 나가면 거기에 아파트를 지어야 된다. 그래야 새벽기도도 나오고 삼일밤에 예배도 나온다. 안 그러면 교회가 먼데 누가 새벽에, 밤에 나오겠느냐”합니다. 그래서 제가 성령님의 음성을 안 듣고 신현균 목사의 말을 듣고 아파트를 짓다가 망할 뻔 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한사코 말리더라구요. “여보, 교회를 먼저 지어야지 아파트를 먼저 지으면 안 돼요.” “아니냐, 아파트를 먼저 지어야 교회에 올 교인들이 있다.” 그래서 아파트를 짓다가 중동 전쟁으로 오일쇼크가 왔습니다. 오일쇼크가 와가지고 청약한 사람들이 다 해약해 버리고 주택공사에서 돈 회수하고 완전히 죽을 뻔했습니다.
신현균 목사는 나와 40년 친구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현균 목사를 만나면 그럽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죽을 뻔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거기에 교회를 세우고 제가 여의도로 온 다음에는 교회가 발전기로 돌아섰습니다. 개척기, 성장기, 발전기로 들어왔는데 여의도로 와서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준 것은 오중 복음입니다. 여의도에 와서 하나님은 제게 강력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십자가의 대중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증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결교에서는 사중 복음인데 나는 오중 복음을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만신 목사님이 저에게 로얄티를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성결교에서 한 것에 하나를 더 보태서 했으니까 로얄티를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성결교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인데 저는 형통 하나를 더 보탰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깊이 바라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화목제물, 감사제물이 되어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십자가에서 다 해소했으므로 우리가 죄에서 용서함받은 것입니다. 첫째로 십자가를 중심으로 죄사함의 복음을 누립니다. 둘째로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 충만, 성령 세례, 성결의 역사를 주셨으니 성령 충만의 복음입니다. 셋째로 십자가를 통해서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니 치료의 복음입니다. 치료의 복음이 십자가에서 넘칩니다. 넷째로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우리의 저주를 다 짊어지셨으니 형통의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가난을 짊어지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그래서 형통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천국 영생으로 우리를 끌고 가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결교의 사중복음에 나는 형통의 복음을 하나 더 보탰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 불광동에서 삼중 축복으로 메시지를 만들었는데 이제 저의 메시지 안에는 어느 곳을 가도 오중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메시지를 증거해도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주님께서 값주고 사신 오중 복음이 있습니다.
여기에다가 하나님이 여의도로 나간 다음에 저에게 강조해서 보여준 것이 천국 복음입니다. 그냥 복음이 아닙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하고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칠십 인의 제자에게 말할 때 천국복음을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천국 복음이 온 천하 만국에 전파되리니 그때 끝이 오리라고 했습니다.
왜 천국 복음입니까?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임금이 있어야 하고,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금이 다스리고 경영하는 것이 나라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도 못 하리니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우리의 왕으로 섬기면 예수는 임금이고 나는 백성이니까 우리는 작은 천국입니다. 임금이 있고 백성이 있으니까 작은 천국입니다. 나라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반드시 다스리고 경영합니다. 다스리고 경영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IMF에 떨어진 것도 우리 나라를 책임진 주권자가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주권자가 통치하고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임금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백성이고 우리가 작은 천국이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경영하십니다. 주님이 직접 경영하십니다. 주님이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가지고 경영하십니다. 이것이 여의도로 건너오고 하나님이 저에게 강력하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경영하신다’라는 것은 그냥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천국 경영입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천국에 대해서 별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나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천국이 가까워졌다. 천국이 너희 속에 있다”라고 하시며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말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심령 천국, 교회 천국, 영원 천국인데 이 땅에, 심령에 벌써 천국이 임하고, 교회에 천국이 임한 것입니다. 교회도 주님이 임금이시고 성도들이 백성인 주님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입니다. 임금이 있고 백성이 있으니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나라라면 주님이 다스리고 경영해야 합니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민주주의 때문에 망했습니다. 교회는 철저하게 주님 중심의 신본주의입니다.
교회 장로님들이 모여 가지고 민주주의식으로 목사를 뽑았다가, 목사를 해임했다가 목사가 기도해서 무슨 일 하자고 하면 당회에서 안 된다고 하니 어떻게 교회가 됩니까? 교회는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세상에서 만든 것이지 교회에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철저히 신본주의입니다.
주님이 임금이 되시고 우리는 백성이 되고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를 경영하십니다.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경영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여의도에 나오고부터는 경영하시는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죽으면 천당에 데려가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인생을 경영하시고, 우리 가정을 경영하시고, 교회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능력으로 경영하십니다.
그러므로 IMF가 왔다고 해도 주님이 직접 경영을 하면 문제 없습니다. 우리가 경영을 부실하게 하니까 망하는데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경영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경영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늘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예수님을 완전히 주님으로 삼고, 주인으로 삼아라, 네가 주인되지 말아라. 주인이 경영하는데 우리는 부실한 주인이라 무능력해서 경영을 잘 못해서 인생을 망치니까 주인이 되지 말아라. 주님이 임금이요, 주인이시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의 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인을 섬기고, 주인에게 맡기고, 주인에게 기도하고, 주인을 의지하면 주인이 직접 경영하십니다. 우리 영혼을 천국 복음으로 경영하시고, 성령 충만으로 경영하시고, 치료로 경영하시고, 형통으로 경영하시고, 재림의 영생 복락으로 경영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한 능력으로 경영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경영하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강하게 전파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저희 교회는 72만 명이 되었습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치고 이제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처음 개척기에는 삼중 축복이었고, 성장기에는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평신도 구역을 조직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었으며, 발전기인 오늘날에 와서는 천국은 주님께서 실제로 다스리고 경영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종이에 기록된 천국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왔으면 주님이 직접 임금으로서 다스리시고, 경영하십니다. 이 경영은 우리의 모든 삶에 미친다는 것을 강하게 전하게 해주셨고 그것을 통해서 정말 주님이 경영해서 우리 교회는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이 5만 명입니다. 그러니 정말로 IMF시대에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나 모두 주님께 경영권을 맡기고 철야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부르짖어서 지금까지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적에 기적을 연속으로 일으켜 주셔서, 경영을 해주셔서 지금 살아남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교회는 국민일보를 경영하지 못합니다. 지금 한달에 우리 교회에서 국민일보에 20억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국민일보에서 모든 기자재를 도입한 빚이 5백억입니다. IMF환율 상승으로 말미암아 5백억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자도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이런 큰 짐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가 경영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경영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경영 안 하시면 우리 교회는 교회 파산 제1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경영하시므로 이 어려운 가운데도 무사히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는 40년 목회를 하고 이제 64세입니다. 한 7년 있으면 제가 교단법에 의해서 은퇴를 해야 합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이 꿈같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목회를 조금 알겠다고 생각하니까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동역자 된 여러분, 목회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너무나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성취에 대한 큰 희열과 기쁨도 있습니다. 제가 체험한 하나님, 제가 목회한 것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고, 입고, 마시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은 하나님 그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은 현실생활에 연관이 되어야 합니다. 릴레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생활이 교회에 오면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의 신학적인, 철학적인, 추상적인 복음이 아니라 먹고, 입고, 마시는 복음, 현실에 부딪쳐서 우리 삶을 경영해 주는 그리스도가 전파될 때 교회는 폭발합니다. 제가 40년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만일 40년 동안 제가 증거한 복음이 가짜였다면 72만의 성도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증거해도 사람들이 제 메시지를 안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시험해 봤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오늘날 고통당하는 사람과 연결시켜 주고 손을 잡게 해 주었습니다.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그러한 메시지였습니다. 이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제가 바라건대 교파를 초월해서 우리가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기초적으로 잘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느 범주는 뛰어넘지 않는 신학적인 기초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배운 것 가지고서 목회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학문과 현실은 다릅니다. 현실에서 실천신학을 여러분이 다시 배워서 새롭게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세미나 같은 것이 바로 실천신학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세미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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