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위에서 3.15 마산 시민 항쟁으로 확대된 민주 운동의 의미를 알아보자
※ 2.28 민주화 운동 정의
1960년 2월 28일 대구 경북고 학생 위원회 부위원장 이대우가 운동장 조회단에서 결의문을
읽은 뒤 8백여 명의 '학원 내에 미치는 정치 세력을 배재하자' 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 때 북진열공, 반공방일 시위에 동원되었고 고위 관료가 행차를 해도 박수를 쳐야 하는 현실에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3.15 정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고교생 시위는 더욱더 확대되었다.
대학생들을 불신하며 고교생 들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의지들을 보였다.
※ 3.15 정 부통령 부정선거
곳곳에서 대리 투표가 저질러 졌고 일부 지방에서는 사전 투표가 발각되었으며 , 3인조 투표도 각지에서 행해졌다.
자유당 완장 부대가 경찰, 청년단원들과 함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고 민주당 참관인은 내쫓겼다.
민주당은 일찍이 전남과 경남에서 선거를 포기하는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
3.15 정부통령 선거가 전적으로 불법, 무효임을 주장하며 민주당은 참관인도 철수시켰다.
선거 투표율을 이승만은 80%, 이기붕은 75%선으로 조작하라고 지시하였다.
시민들은 투표할 번호표를 받지 못하여 민주당 당사 앞에 몰려들어 번호표를 달라고 항의했다.
투표소 시설 또한 감시를 당하는 내통식이여서 비밀투표를 할 수 없었다.
투표지를 선관위에게 검사를 맡을 것을 강요당했다.
마산시 민주당원들은 데모에 나서게 된다.
부정선거 다시 하자는 목소리를 내세우며 시위를 이어갔다.
부정선거로 인하여 1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마산시청 일대에 모이게 되었다.
소방차가 전신주 들이받아 정전이 되고 아비규환이 되었다.
최루탄이 발사되고 총성이 울리고 중학생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과격해진 분위기에 시민 들은 파출소를 점령하고 북 마산 파출소에 불까지 나게 되었다.
자유당의 허윤수의 집은 파괴되었고 서울 신문사, 자유당 선거대책 위원회, 국민회 등의 포함된 건물과 파출소 2개가 파괴되었으며 이날 8명이 사망 , 70여 명이 부상, 200여명이 연행되었다.
2.28 민주화 운동은 4.19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구 시청 앞에서 시위가 고조 되면서 경찰과 미군이 출동하면서 대규모의 폭력적인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경찰과 미군은 물대포와 공수차를 이용하여 시위대를 진압 하였으며, 이로 인해 시위대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충돌은 결국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대한민국에서 이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발전해 나가게 되었으며, 인권과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28 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이날 국가보훈처 주관의기념식과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이후 대구시의 자체 행사로 기념되었으나 2016년 제56주년 2·28기념식을 맞아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2018년 1월 30일 2·28민주운동의 국가기념을 지정을 위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2월 6일 대통령의 최종재가를 받아 관보에 게재됨으로써 2월 2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