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79위 시복식 참석 내막
1925년 7월 5일은 기해(1839)년과 병오(1846)년의 우리나라 순교자 79위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날이다. 따라서 내년 2025년은 시복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당시 79위에 대한 시복식이 열린다는 소식은 로마 교황청에서 시복 청원인으로서 활동하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가르니에(Eugene Garnier, 1862~1952) 신부를 통해서였다.
가르니에 신부는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민덕효) 주교에게 시복식에 관한 소식을 전했는데(1924년 9월 24일자 편지, 뮈텔주교일기 7권 p.330) 정확한 날짜가 정해진 것은 아니고, 다만 1925년이 확실하다는 것뿐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 천주교회에서는 3개교구(경성, 대구, 원산) 신자들에게 시복식에 참석할 인원을 모집하는 한편 경향잡지를 통해서도 공개모집을 하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경비가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각 교구에서 적어도 1~2명 정도는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참석할 지원자는 한 명도 없었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이에 대해 경향잡지 1924년 10월호에서는 “조선 치명자들이 복자로 반포 되는 예절에 참례하러갈 조선 교우는 1인도 없을까.”라는 논설을 통해 한탄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3개 교구 천주교 신자수는 99,123명이었다.
시복식에 참석할 때 드는 비용은 서울서 로마까지의 왕복 선가(船價,뱃삯) 900원, 한 달 체류 식비 200원 등 대략 1,200원이었다. 이 금액은 당시 경성에서 생활하던 서민 5인 가족의 20개월 동안의 생활비였으니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당시 풍수원 성당의 정규하 신부도 서울의 드브레 보좌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참석할 여비가 없으니 돈을 꾸어주면 이자까지 포함하여 갚겠다고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드브레 보좌주교로부터 정중히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참석할 일반 신자가 없어서 한기근 바오로 신부가 출발하던 전날인 1925년 5월 10일 경성교구 천주교 청년회 연합회에서는 선거를 통해 장면을 시복식 참가 대표로 선출했는데, 이때 장면은 미국 맨하튼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중에 있었고, 소식을 들은 장면은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동생 장발과 함께 미국에서 로마로 출발하였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참석한 인원은 모두 5명이었다. 즉, 뮈텔(민덕효, 서울 교구장), 드망즈(안세화, 대구교구장)두 명의 주교와 한기근 바오로 신부, 장면, 장발 씨였고, 개인자격으로 휴가 중이던 용산신학교 교장인 기낭(진보안)신부가 참석하였다.
한기근 바오로 신부는 뮈텔주교, 드망즈 주교, 기낭 신부와 함께 시복식 하루 전인 1925년 7월 4일 교황청을 방문하여 교황 비오11세를 알현하고 강복을 요청하는 한국인 신부들의 연명 라틴어 편지와 신자들의 상소문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교황께서는 ‘기념패’와 ‘성경 말씀 기록 쪽지“를 수여하시면서 조선 성교회의 모든 거룩한 사업과 모든 신품과 모든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강복하셨다.
지금과는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조차 없는 일이지만 후에 발표된 한기근 바오로 신부의 ‘로마여행기’나 장발 씨가 남긴 ‘시복식 참관기’는 비록 글을 통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이후 198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03위 시성식과,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124위 시복식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로마가 아닌 우리 순교자들의 숨결이 숨 쉬고 있는 우리 땅에서 또 다른 새로운 시복식과 시성식이 열리게 될 것이다.
나는 며칠 전, 가까운 지인 교우 부부가 은퇴기념으로 로마와 파리, 그리고 스페인의 여러 지방을 돌아보는 55일간의 순례 여행을 떠난 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로마여행기’와 ‘시복식참관기’를 전해주면서 당시의 감동처럼 영광스러운 순례길이 되길 희망하면서, 나도 순례기간 내내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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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문(경향잡지 1925년 5월호 566호)
조선경성교구 천주교 청년회 연합회원 일동은 땅에 엎드려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큰 아버지이신 교황폐하께 감히 아뢰옵나이다. 복되고 즐거운 우리 조상 치명자의 시복식에 참례하여 감사한 뜻을 표하고자하오나 여러 가지 장애로 인하여 비록 육체로는 참례치 못하오나 신목으로는 조선 성직자 대표 바오로 한 신부와 같이 참례하오며 감사하나이다. 원컨대 지극히 공경하올 교황폐하께 감히 주달 하옵나니 우리 조선 일반 신자에게 인자로히 강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밭에서 수고롭게 땀 흘리시는 성직자들을 도우며 폐하의 대명에 복종하기를 결심하나이다.
천주강생 일천구백이십오면 오월
경성교구 천주교 청년회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