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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시카고>
뒷얘기…브룩 쉴즈, 미셸 윌리엄스 등 영미권 스타들 거쳐가
글
| 장지영·공연 칼럼니스트
뮤지컬 <시카고>(2018년
5월 22일~8월 5일·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가 2018년 6월 23일 국내 누적 공연
1000회를 돌파했다.
2000년 한국 초연된 <시카고>는
18년 동안 14번째(라이선스·레플리카·내한 공연 모두
포함) 시즌을 맞이한 스테디셀러 공연이다.
<시카고>는
1920년대 여죄수들이 수감돼 있던 시카고 쿡카운티 교도소를 배경으로
불륜관계인 남편과 여동생을 살해한 보드빌 배우 벨마 켈리와 자신의 정부를 살해한 코러스걸 출신 록시 하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두 미녀 죄수를 통해 살인,
간통, 사기, 황금만능주의 등 부패한 미국 사회상을 보여주는 한편 돈밖에 모르는 교활한 변호사 빌리 플린의
모습에서 선정적인 황색 언론과 형법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극단 신시를 모체로 한 신시 컴퍼니는
199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더 라이프>를 정식
라이선스 계약으로 공연한 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 <갬블러> <사운드
오브 뮤직>, 2000년 <렌트>
<시카고>, 2001년
<키스 미 케이트>
<틱틱붐> 등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국내
대표적 뮤지컬 제작사로 자리잡았다. <시카고>는 신시 컴퍼니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시 컴퍼니가 그동안 수십억원을 투입한 대형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
<아리랑>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는가 하면
수익이 남지 않는 연극들을 제작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카고>와
<맘마미아>가 캐시카우 역할을 해준 덕분이다.
200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뤄진 <시카고>의 국내 초연은
벨마 역에 가수 인순이, 록시 역에 뮤지컬배우 최정원과 전수경 그리고 빌리
역에 허준호와 주성중이 캐스팅 됐다. 당시에는 한달 이상 대극장을 대관하기
어려웠던 때라 열흘 밖에 공연되지 않았지만 3800석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거의 찰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듬해 앙코르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다만 <시카고>의
2000년 12월 국내 초연과 이듬해 재연 공연은 현재 관객들에게 친숙한 <시카고>와 상당히
다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똑같은 레플리카 버전이 아니라 음악과 대본만
계약한 스몰 라이선스 버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피아노를 제외한 밴드가 무대
중앙이 아닌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한다는 점이 구별된다. 검은 색
의상이나 포시 스타일의 춤이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연출가 김철리 등 한국 스태프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다.
한국 관객들은 2003년 <시카고> 웨스트엔드팀의
내한공연부터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똑같은 버전을 보게 됐다.
웨스트엔드팀의 투어공연은 2002년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의 동명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기획된 것이다. 이후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국내 레플리카 버전으로 공연된
<시카고>는 초연에서 록시 역을 맡았던 최정원이 벨마 역으로, 옥주현과 배해선이 록시 역으로 출연했다.
호평과 흥행 모두 잡은 <시카고>는 이후
올해까지 거의 매년 공연되면서 대중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2003년 웨스트엔드팀 내한공연 이후 국내에서 <시카고>의 인기에
힘입어 2015년과 2017년 뉴욕 브로드웨이팀의 내한공연이 이뤄지기도 했다.
<시카고>는 자주 공연된
것에 비해 주역 배우의 변화가 적은 편이다. 특히 최정원은 내한공연을 제외한
국내 공연 시즌에 모두 참가했다. 그리고 옥주현과 아이비는
<시카고>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오랫동안 <시카고>의 음악감독이었던 박칼린이 벨마 역으로 나선 것을 비롯해 배우 김지우와 안재욱이 새롭게
합류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시카고>의 인기는 작품 성향이나 국내 뮤지컬 시장의 특성 등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다. 냉소적인 블랙코미디인데다 한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샤우팅 창법의 노래나
화려한 무대세트, 의상 등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메인 테마 ‘올댓재즈’에서 알 수 있듯 재즈풍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가 자리잡은 단순한 계단형 무대세트와 미니멀한 검은색 의상이 전부다.
게다가 신시컴퍼니는 최근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몸값이 높은 인기 배우나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하지도
않는다.
신시컴퍼니 관계자는 “<시카고>에 마니아
관객은 드물며 대부분 뮤지컬을 처음 보는 일반 대중이 많다.
<시카고>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스토리나 주제,
스타일이 현대에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등 시대를 타지 않는 매력이 있다”면서 “또한
2007년부터 자주 공연한데다 내한 공연도 이뤄지면서 브랜드를 구축한 것이
일반 관객을 더 흡수하게 된 것 같다”며 스테디셀러 비결을 분석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내에서 오랫동안 공연된 것에 비해 뮤지컬 <시카고>에 대해 의외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6년 여성 극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 모린 달라스 왓킨스가 쓴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왓킨스는 좋은 작가가 되려면 사회 경험을 해야 된다는 극작
워크숍 담당 교수의 조언에 따라 대학 졸업후 신문 ‘시카고
트리뷴’에서 7개월간 기자로 근무했다. 그리고
기자 시절 취재했던 2건의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희곡을
완성했다.
1926년 말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시카고>는 평단의 호평 속에 172회 공연된데 이어 2년간 미국
투어를 돌 만큼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1927년 흑백무성영화 <시카고>, 1942년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영화 <록시 하트>가 제작돼 히트를 쳤다.
그리고 1975년 뮤지컬 <시카고>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1977년까지 공연됐다(웨스트엔드 등 해외 공연 제외).
또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돼 지금까지
공연중이다. 리바이벌된 <시카고>는
브로드웨이에서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두 번째로 장기공연중인 뮤지컬이다.
<시카고> 리허설 중
심근경색으로 수술받고 개막이 미뤄진 경험은 1979년 그의 자전적 영화
<올 댓 재즈>에도 잘 묘사돼 있다.
198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브로드웨이의 인기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조
기디언. 그는 과로와 흡연,
음주로 몸을 혹사하는 바람에 매일 수많은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에 기념비가 될 만한 뮤지컬을 준비하는 한편 촬영이 끝난 영화의 편집에
몰두한다. 게다가 아내는 물론 애인을 두고도 새로운 여자들과 끝없이 바람을
핀다. 결국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그는 수술대에 오른다. 그의 입원이 장기화되자 뮤지컬 제작자들은 그가 죽고 뮤지컬이 중단돼 보험금이 나오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해 공연을 보류한다. 이 작품은 예술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예술가의
초상과 함께 냉정한 쇼 비즈니스의 실상을 보여준다.
포시는 결국 1987년 뮤지컬
<스위트 채러티>의 리바이벌 공연 리허설중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가 평소 술과 약물에 많이 의존했던 것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포시의 애착에도 불구하고 잊혀졌던 뮤지컬 <시카고>가 부활한 것은
1996년 뉴욕 시티 센터 주최 ‘앙코르!
시리즈’에서 콘서트 버전으로
공연되면서부터다. ‘앙코르!
시리즈’는 미국 뮤지컬 역사에서 잊혀지면 안되는 중요한
뮤지컬들을 기억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콘서트 <시카고>의 연출을 맡은
월터 바비는 포시 스타일을 무대에 구현하기 위해 레인킹에게 안무를 부탁했다.
레인킹은 5월초 4일간 공연된 콘서트 <시카고>에서 록시 역을
다시 연기하기도 했다.
콘서트 버전 <시카고>는 초연 당시의
대본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는 한편 포시 스타일 안무를 재현했지만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공연과 다르다.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
피트에 있었으며, 의상 역시 지금 같은 미니멀한 검은 색이
아니다. 콘서트였던 만큼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를 배치한데다
(뮤지컬 <캬바레> 등에
나왔던) 포시가 좋아하던 검은 색 의상을 채택한 것이다.
이 콘서트 버전은
평단과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시대를 앞서갔던 혁명적인 포시의 안무를 새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까탈스러운 평론가 벤 브랜틀리는
“‘관객과 사랑에 빠져라’는 포시의 신조였다. 이번에
레인킹과 그녀의 앙상블이 정확히 구현했다”고 칭찬했다. 덕분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 해 11월 뮤지컬 <시카고>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록시 역으로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해
46세의 레인킹이 한동안 출연하기도 했다. 리바이벌 된 뮤지컬 <시카고>는 이듬해
연출상, 안무상,
여우주연상, 리바이벌상 등 6개의 토니상을 가져갔다.
뮤지컬 <시카고>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엔 포시를 기리는 트리뷰트 뮤지컬 <포시>가
만들어졌다. 그동안 포시가 안무하거나 연출한 뮤지컬들의 장면을 콜라주한 이
작품은 원래 포시의 댄스 캡틴이었던 챗 워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워크숍 정도로 시작되었지만 프로듀서들의 관심을 끌면서 규모가 커졌다.
<포시>의 대본은 우리나라에서 공연된 바
있는 <더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극작가 리처드 멜트비가 썼다.
그리고 버돈이 예술자문을 맡고 레인킹이 워커와 공동 연출 겸 안무를 맡았다.
이 작품은 토니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최우수작품상 등 3개를 받았다.
참고로 버돈과 레인킹은 포시의 아내와 애인이라는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의외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버돈은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는 포시와 1971년부터 별거했지만 이혼을 하지 않은 채 평생 포시의
조력자이자 뮤즈 역할을 했다. 포시가 심장마비로 죽어갈 때도 버돈의
품에서였다. 레인킹은 1972년 포시가 연출,
안무, 각색을 맡은 뮤지컬 <피핀>에 앙상블로
참여했다가 포시의 제자 겸 애인이 됐다. 레인킹은 1978년 애인 관계를 끝낸 이후에도 포시의 영화 <올댓재즈>와 뮤지컬
<스위트 채러티>
등에 출연했다. 포시의 재능을 사랑했던 두 여자는 포시
사후엔 포시의 유산을 알리는 일에 힘을 모았다.
또한 뮤지컬 <시카고>는
2002년 로브 마샬 연출로 영화화됐다. 무용수 출신인 마샬은 브로드웨이에서 안무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다 TV와 영화로도 영역을 넓혔다.
영화 <시카고>는 뮤지컬영화의 스타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상
6개 부문 상을 가져갔다.
마샬은 이후 <게이샤의 추억> <나인>
<캐리비안의 해적 4: 낯선
조류> <인투 더 우즈> 등을 연출했다.
한편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시카고>의 주역으로는
그동안 뮤지컬 전문 배우만이 아니라 가수, 영화배우도
거쳐갔다. 브룩 쉴즈,
멜라니 그리피스, 질 하프페니, 미쉘 윌리엄스 등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다.
제작사의 경우 오픈런 공연에서 이런 스타 배우나 가수의 이벤트성 출연은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스타들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피스는
2003년 당시 남편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나인>
출연에 맞춰 자신도 <시카고>에 출연했다. 하지만 미숙한
노래와 춤 때문에 비판을 받았고, 당시 브로드웨이의 패러디 뮤지컬
<포비든 브로드웨이>은 그를 놀림감으로 삼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스타였던 그리피스를 보러 극장으로 몰려왔고,
제작사는 큰 수익을 거뒀다.
한편 2016년 7월에는 일본에서
여성들만 출연하는 다카라즈카 버전의 <시카고>가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됐다.
2014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100주년을 맞이해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들의 특별공연으로 기획됐던 <시카고>는 일본 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여자들만 출연한다는 점에서 공연 평론가 및
애호가의 흥미를 끌었다. 당시 미국 공연에서 일본 배우들은 본공연 뒤에
다카라즈카 가극 특유의 레뷔(춤과 노래를 곁들인 쇼)를 보여줬다.
▶1975년 뮤지컬
시카고 초연 일부 영상
▶1996년 콘서트 버전 <시카고> 영상 일부
공연 칼럼니스트 장지영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성균관대 공연예술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기자협회 지원으로 일본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에서 연수했다.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문화부 스포츠부 사회부 국제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다. 2003년 문화부에서 처음 공연을 담당하면서 공연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기자로서만이 아니라 공연 칼럼니스트서 다양한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라는 일본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격언을 따르려고 노력중이다.[출처] 올댓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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